희망을 성취한 사람 (대상4:9-10) 2010. 1. 17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0-01-18 |
조회: 1903
새해 세 째 주를 맞아 희망을 가지고 한 해 동안 살아야 할 우리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중요한 한 사람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는 처음 듣는 분도 계실 텐데, 성경에서는 딱 한번 등장합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 이 야베스라는 낯선 이름을 가지고 브르스 윌킨스라는 분이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을 썼습니다. 21세기 벽두에 그러니까 2001년도에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기독교 서적이 일반서적을 넘어 베스트셀러 1위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수백만 권의 책이 미국에서 팔려나갔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에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길래 이토록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그의 기도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여기 9.10절을 함께 읽도록 합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하였으니 이는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것을 허락하셨더라.’내용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야베스가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얘기합니다. 주목할 것은 야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존귀한 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야베스'라는 단어는 '고통'이란 뜻입니다. 무슨 일로 고통이라고 지었는지는 모릅니다. 야베스를 낳다가 어머니가 아팠는지,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야베스가 태어나고 그 집에 불행이 찾아왔는지, 집안이 망했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어머니께서 그 아이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지었어요.
만일 저의 이름이 '안 고통 목사'라면 교회가 부흥이 될까요? 도대체 어떤 부모가 자기의 자녀를 '고통'이라고 이름을 지어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성경에 보면, 그 이름이 그 사람의 인생을 대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곱'은 '움켜쥔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역시 움켜쥐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그는 '평화'라는 이름의 의미 그대로 한평생 전쟁 한번 치루지 않고 팔자 좋은 인생을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이름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따라서 아들을 낳아서 '고통'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정말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Mr. Pain'하고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의 의미인 '고통'을 자꾸 느끼게 만드는 것은 별로 좋지 않아 보입니다. 야베스가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그 이름이 항상 자기 뇌리 속에서 불길한 생각을 갖도록 만든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이 이름대로 살아야 될 팔자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이름 때문에 평생 고생하다가 인생을 끝낼지 모르겠다.' 하는 어떤 불길한 생각이 계속 그를 사로잡았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그의 눈앞에 있는 환경은 그리 썩 좋은 환경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을 보면 넘어야 될 산들이 첩첩산중이고 자기 이름은 불길하게 고통이니,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지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민만 하지 않고 이 문제를 끌어안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바짝 다가앉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그는 자기의 이름과 어린 시절을 다 뒤로하고, 말년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 드셔서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형제보다, 어떤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사람보다 더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일생 동안 드린 참으로 짤막한 기도 때문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입을 열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나로 말미암아 우리 집에 고통이 왔다고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그래서 내 이름을 고통이라고 지었고, 저는 어린 시절 참으로 불행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 제가 기도합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입을 열어 기도했을 때, 그는 운명이 바뀌어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이야기만을 알리기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하셨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이야기를 여기에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운명이 바뀌어짐이 야베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오늘 하나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해서 성령의 조명하심을 입으며 날마다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우리가 기도하기만 하면, 오늘 이 내용으로 입을 열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간구하기만 하면,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운명도 바뀌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여기에 기록해 놓으신 줄 믿습니다. 야베스가 드린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도대체 2010년 새해에 어떤 기도를 드려야 우리의 운명이 바뀌어질 수 있다고 선포하십니까? 오늘 이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이 새해에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고, 붙들어야 할 기도 제목은 바로 하나님께 '복을 주시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먼저 우리가 희망을 성취하는 사람이 되야하지 않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기도를 하되 정말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그런 응답받는 기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여기 보면 그는 첫째로, 하나님, 나를 복 주시옵소서.
여러분, 사람마다 이 땅에 태어나는 환경이 다 제각각입니다. 못생긴 얼굴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도 선택하지 않았고, 환경도 외모도 체질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나고 보니까 부모님은 부자였고, 마침 좋은 머리를 물려받았고 거기다 부모님이 잘 생겨서 미남 미녀가 되어 미인대회에 나가 뽑히기도 합니다. 가정환경이 좋아서 복된 인생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보고 복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생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바로 주어진 좋은 조건 때문에 불행과 파멸로 끝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때 박대통령의 아들 지만 군을 보고 장래가 보장된 사람이라 했지만, 오히려 대통령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마음에 심한 좌절과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들을 겪고 지금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존재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복의 조건들이 행복의 진정한 조건이 되지 못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또 어떤 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불행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장애인으로 태어날 때가 있습니다. 가난한 부모를 만나 공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잘 생긴 얼굴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유전자를 받아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이 불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불행한 조건이 더 복되고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도록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복이나 소유의 기준도 행위의 기준에 따름이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가느냐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복에 복을 더하여 달라는 기도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붙잡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처럼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동안 야베스의 삶은 이름 그대로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야베스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그대로 고통과 슬픔을 주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복을 무진장으로 받는 복 받은 사람이 아니라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꿈과 비젼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합니다.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게 하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셨지만, 지금 북한은 인권유린의 사각지대입니다. 특히 자유를 찾아 탈북하는 사람들이 붙잡히면, 당사지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얼마 전에 탈북 여성 중에 이화여대에서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애란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좋은 환경에서 공부만 해도 어려운데 어떻게 명문 대학에서 박사학위의 취득이 가능했을까요? 그분의 간증에 의하면 기도로 가능했다는 겁니다. 그녀의 집안은 평양 창동교회 출신으로 북한에서 차별을 많이 당했습니다. 탈북을 결심하고 압록강 넘었고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탈북자들이 그렇듯이 공부를 시작했는데, 제일 어려운 게 영어였습니다. 하도 어려워서 눈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무료로 좋은 강사를 붙여주셨습니다. 토플을 5번 응시하던 끝에 500점(PBT)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석사 과정일 때 논문을 써야 되는데 늘 퇴짜를 맞았습니다. 이번에는 새벽기도 40일을 작정했습니다. 눈물로 하루하루 기도하던 중 37일째 되는 날 방언이 터지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연구 모형을 보여주셨습니다. 지도교수의 승인을 받고 석사 논문을 거뜬히 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겁니다. 그가 이 학위를 따고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께 메 달린 것입니다. 기도의 역사에 대한 감동이 아닙니까?
둘째로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시옵소서 지경이란 땅의 경계를 말합니다. 본래 우리나라의 경우 경계가 만주, 몽골까지였습니다. 그런데 다 빼앗기고 좁아져 휴전선 이남으로 작아졌습니다. 캐나다, 중국, 미국, 러시아 등은 우리나라 보다 땅 넓이가 30배에서 50배가 더 큽니다. 그런 나라들에 비하면 땅이 너무나 좁습니다. 오래 된 이야기입니다만, 캐나다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한 일이 있습니다. 절경에 장관이었습니다. 동행했던 친구에게 "이 폭포 뚝 떠다가 한강에 옮겼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 친구 하는 말 "이건 거져줘도 한국에 갔다 놓을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온타리오 호수도 함께 옮겨와야 되는데 그 호수 크기가 남한 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땅덩어리 좁은 거야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그러나 걱정은 사람들의 통이 적다는 것입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이북, 경기도, 강원도 지역을 찢어 나누고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민족화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요즘 보면 세종시에 대한 문제로 지금 온통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더 미래를 본다면 정말 양보 할 것은 양보해야 하는데 전부 보면 당리당략입니다. 과거 이조시대에 사색 당파를 보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답답합니다. 우리 좀 마음을 넓히고 세계를 호흡합시다. 큰 꿈을 꾸고 비전을 세웁시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맙시다. 마음의 지경을 넓히고 생각과 행동의 지경을 넓힙시다. 특히 청년들에게 공부의 지경, 진로의 지경이 넓혀지기를 바랍니다.
요즘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이 말은 지금 경제는 나아지고 있는데 취업이 안 되는 특이한 현상을 일컬어 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금융위기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수출이 세계 9위였습니다. 대단한 수치입니다. 흑자가 엄청났습니다. 이런 수치만 보면 지금 경제가 나아지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 백수가 400만이 넘어섰습니다. 이 말은 우리 인구 10명 가운데 1사람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직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세번째로 그는 자신으로 하여금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어려움은 옵니다. 시험과 환난의 풍파가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진실하게 살수록 피해를 보고, 아픔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성도들은 이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한 비전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 “근심” 이라는 단어는 "메리조"(분리시키다, 나누다)라는 말과 "누우스"(마음)라는 말의 합성어인데 이는 마음이 둘이나 셋으로 분리되고 나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헨리 나우웬이,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근심한다는 건 뭐냐. '아직 내 앞에 오지도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무언가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마음이 혹시로 가득찬 것이다.'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혹시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을까, 혹시 실직하지 않을까, 혹시 시집 못 가면 어쩌나, 혹시 학교 간 애가 안 돌아 오면 어떻게 하나' 이런 식으로 아직도 오지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가득 채우는 것이 염려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멍청한 짓입니까? 이런 '혹시'가 내 마음에 염려로 자꾸 차 오르기 시작하면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고, 의심이 많아지고, 탐욕이 생기고, 조급해지고, 나중에는 우울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이와 같은 쓸데없는 근심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을 망가지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호흡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날마다 새롭게 창조하시고자 하는 성령의 발목을 잡아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나에게 오지 아니하는 내일을 놓고 왜 그렇게 근심과 염려로 살아야 합니까?
지금 야베스는 자기의 이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이러다가는 망할 것 같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졌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찾아 매달린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베스가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라고 굉장히 점잖은 표현을 썼지만 원뜻은 '부르짖는다. 소리를 지른다'는 뜻입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고통을 물려주었지만,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바꾸어 복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죠지 뮬러가 말한 것처럼 '믿음의 시작은 근심의 끝이요, 근심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다. 그러므로 근심하느냐, 믿음이 죽는다. 믿음을 가지느냐, 근심이 죽는다.' 옳은 말 아닙니까?
그런데 보세요! 이렇게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허락하셨다.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믿습니까? 우리의 운명이 바뀔 수 있어요.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야베스를 존귀한 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존귀한 자’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공동번역에 "야베스는 일가 가운데서 가장 세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씨족 사회를 살려낸 인물,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던 한 부족을 벌떡 일으켜 세운 인물이 "야베스"였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셨다면, 하나님이 십자가의 보배 피로 여러분을 구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면, 왜 인생을 그렇게 값어치 없게 끝내시렵니까? 지난 날 실패하셨나요? 이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무섭나요? 그냥 사는 인생이니까 하며 삶의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리셨나요? 한 생을 믿음으로 살았던 철학자였던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 그걸 피해 가려 하지 마라. 피해 가려 하면 그것은 끝까지 나를 따라올 것이지만, 정면으로 뚫고 가려 하면 그것은 우리 앞에서 도망치고 말 것이다.” 그 적극적인 삶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희망의 열매를 줍니다. 기도는 우리를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하는 항구요,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지팡이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육신을 고치는 의사요,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명줄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세요!! 고통으로 범벅이 된 한 인생의 기도를 들어 주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나의 작은 신음마져도 응답하시길 원하십니다. 지금 야베스가 드린 이 기도를 잊지 말고 일 년 내내, 평생 동안 이 기도가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나를 복 주세요. 내 지경을 넓혀 주세요." 우리가 이 기도를 2010년 한 해 동안 드림으로 말미암아 2010년 마지막 주일날, "내가 이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내 지경을 이렇게 넓혀 주셨어. 하나님이 나를 복 주시고, 나를 근심에서 면케 하셨어!" 이런 간증을 서로 나누는 희망을 성취하는 귀한 동성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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