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한 식탁 고전11:23-29. 2019. 11/24. 성례식
오늘 성찬식에 동참한 여러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한 생을 살면서 먹는 문제는 행복과 직결된 문제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맹자는 인생을 사는데 정말 재미있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사람들이 정말로 이것은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식사 한 번 먹는 비용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점심식사 한 끼 먹는데 53 억원을 내야하는 식사가 있습니다.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는 워렌 버핏은 매년 자신과 점심식사 하는 것을 경매로 붙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수익금을 빈민구호단체인 글라이드에 기부하는데, 버핏은 20년 동안 이런 일을 해 왔습니다. 올해에는 5월에 저스틴 선이라는 사람이 버핏과의 점심 식사 경매에서 역대 최고가인 456만 달러(약 53억원)로 낙찰에 성공했는데 저스틴은 가상화폐(암호화폐) 트론(Tron) 창시자 겸 CEO입니다.
버핏과 점심식사 하는 것이 53억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 많은 돈을 주고 버핏과 식사를 한 사람들은 그에게서 투자에 대한 조언을 듣고 점심식사 값으로 지불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50억이 넘는 돈을 주고 점심식사 한 끼 하는 것도 괜찮은 투자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투자할 돈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를 몰라 고민하는 사람에게 50억이 넘는 점심식사는 가치 있는 또 하나의 투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싼 금액을 준다고 해서 음식이 맛있는 것은 아닙니다. 50억이 넘는 점심식사는 식사가 주목적이 아니라 버핏으로부터 조언을 듣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냥 3시간 동안 어떤 사무실이나 강의실에서 투자에 대한 강연을 듣는 조건으로 50억을 지불할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듣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조용한 강의실이나 사무실이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훨씬 더 좋은 환경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강연의 자리와 식사의 자리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사의 자리는 마음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유명인사와 함께 식탁에서 이런 거금을 내고 함께 식사를 해도 흥분이 되는데 그런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주님과 더불어 식탁에서 음식을 한다는 것, 정말 근사하지 않습니까? 성찬은 인간이 아닌, 우리 주님께서 배설해 주신 식탁이라는 것입니다.
Ⅰ. 이 성찬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식탁입니다. (23-25절)
23절과 2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또 계속해서 25절을 보겠습니다.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여기에서우리는 성찬의 떡과 잔을 먹는 마시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찬을 대할 때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주님을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기념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찬의 떡과 잔을 대할 때마다 주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찬에는 ‘떡’과 ‘포도주’가 사용됩니다. ‘떡’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는데, 요 6:48-51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던 만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이 ‘만나’는 육체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육체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생명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산 떡’이라고 했습니다. 산 떡인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을 위한 영적인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eternal life) 줍니다. 요 6:51을 찾아봅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성만찬의 떡을 먹으면, 영생을 보증 받습니다.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타냅니다. 오늘 본문 25중에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를 생각하셨습니다. 온 애굽 땅에 ‘죽음의 신’이 가득 차 장자들이 죽어갔습니다. 바로 왕의 장자까지 남김없이 죽어갔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만 구원받았느냐 하면 문인방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칠해진 가정이었습니다. 문인방과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가 칠해져 있으면 죽음의 신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passover!)이라고 합니다. 유월절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첫 번째 약속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새 언약입니다. 마26:27-28절은 주님께서 성만찬을 재정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므로 성만찬의 잔을 받으면 죄 사함을 보증 받습니다. 따라서 성만찬은 나의 구원과 영생을 보증하는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둘째로, 이 성찬은 사명을 다짐하기 위한 식탁입니다.
우리가 성찬의 떡을 먹고 성찬의 잔을 마실 때마다 굳게 다짐할 것이 있습니다. 짧은 생을 살면서 과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나를 사랑하사 자기를 십자가에 희생하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도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본문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요.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이 말씀 안에 들어 있는 준엄한 명령이 있습니다. '너는 보통 값진 생명이 아니니라. 네가 평생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너 대신에 죽은 예수를 전하는 것이니라.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시간 묻습니다. 과연 한 생명을 주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올해 이 성찬을 받는 여러분은 얼마나 그 십자가의 사랑 앞에 헌신하셨습니까? 무엇이 가장 강합니까? 무엇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썩은 밀알이 되는 것처럼 자기를 던져 희생하는 그 사람의 힘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십자가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서 은혜 받으면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은혜 받으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려 헌신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나 같은 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그 은혜가 너무 감격스러워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자기 생을 드리겠다고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요. 아까운 것이 없어요.주일 날 그저 한두 시간 내어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는 분입니다. 헌금 몇 푼 하면서 그것 가지고 아까워하십니까? 주님을 위해서 헌신해야 될 일을 빤히 보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고도 마음에 가책이 없습니까? 아직도 십자가의 사랑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에 아직도 사로잡히지 못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에 사로잡히면 여러분은 그렇게 머물고 있을 수 없습니다. 순종하게 만듭니다. 헌신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주님을 모르던 사람이 전도를 받아서 교회 나온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왜입니까?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성찬을 대할 때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았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명을 영어로 ‘mission‘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missio’라는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missio’는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사명을 발견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뜻을 찾으셨습니까? 카알 힐티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발견하는 날이다.?이 성찬의 식탁에서 이 은혜가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Ⅲ,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먼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본문 28-29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자기를 살피라는 말은 자기의 죄와 허물을 살피고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조그만 죄와 허물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크리스천 작가 김성일씨를 아시지요? 그 분의 작품 중에 ‘제국과 천국’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 성만찬예식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시대 초기에는 네로황제를 비롯하여 10번의 기독교 대박해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사도들의 제자들도 발각되는 대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때에 성도들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준 것은 무엇인줄 아십니까?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를 당하였기 때문에 설교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습니다. 설령 지도자들이 있다하더라도 감시자들의 눈길을 피해 여러 사람이 한군데 모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설교를 들을 수 없었지만 끊임없이 계속했던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찬식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성별한 떡과 포도주를 검은 보자기에 싸가지고 신실한 성도들이 어둠을 비집고 바삐 움직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몸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피입니다.’를 고백하며, 성만찬을 받습니다. 깊은 지하묘소인 카타콤에서 음습한 벽에 몸을 기대고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의 성만찬을 받습니다. 숲속에서 나무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두 손으로 떡과 포도주를 받들면서 감격스럽게 성만찬을 받습니다.” 때로는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식인종이란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그들은 성만찬예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성만찬은 그들의 믿음의 내용이었고 소망이었습니다. 이 성찬식으로 그들은 그 무서운 박해를 견디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예배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의 중심은 성만찬이었습니다. 성만찬은 이와 같이 주님의 몸과 피를 받드는 거룩한 예식이기 때문에 쉽게 가볍게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성찬에 대해서 좌우로 치우치면 안됩니다. 자기를 살피지도 않고, 주의 몸을 분변치도 못하고, 함부로 성찬에 참여해도 안 되겠지만, 막연하게 나는 부족하다,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 기피하려고만 드는 비겁한 자세도 버려야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께서 “받아먹으라”, “받아 마시라”고 명하신 명령을 불순종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계속해서 살겠다는 완악한 태도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성찬은 기피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잘 살피고, 주님의 구속의 도리를 잘 깨달은 다음,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은혜를 사모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나를 살리시기 위해 참혹한 십자가 위에서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자신의 온몸을 찢으시고 모든 피를 다 쏟아놓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이 아침! 우리는 감히 우리 스스로는 이 식탁에 초대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베푸신 은혜의 식탁에 나와 이 세상의 최고의 만찬을 대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뗄 때,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잔을 대할 때, 도대체 내가 누구이길래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터뜨려 나를 구원의 자녀로 삼으셨는가 깊이 생각하며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시한번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죄사함의 은총과 구원의 확신을 통해서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이 생명의 떡을 나누는 사명을 감당하는 축복의 식탁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