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 하나님의 사랑 요3:16. 2019. 12/22 주일 설교
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인사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즐거운 주일입니다. 이 시간! 성탄의 기쁜 마음을 담아서 서로 인사하십시오. "Merry Christmas!"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Merry는 '명랑한', '쾌활한'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Merry Christmas는 "기쁜 성탄되세요!, 즐거운 성탄 되세요!"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과 수요일 이틀에 걸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서로 기뻐하고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참 기쁘게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거대하고 뚜렷하게 드러난 단어가 하나 있다면 ‘구원’입니다. 인간의 편에서 보면 ‘구원’이라는 단어보다 아름답고 복되고, 인생을 바꾸어 놓아 필사적으로 붙들어야 하고, 더 절실한 주제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3:16절은 인간의 구원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알려 주신 구절입니다.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는 부족에게 문자를 만들어주는 선교사들이 첫 번째 번역하는 성경이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성경 전체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구절도 놓칠 수 없이 귀중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으며 타락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독생자를 주셨으니 /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 멸망하지 않고 /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 자신이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탄생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원래 본체가 하나이기 때문에 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기에 태어나셨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뿐이고 사실은 하나님 자신이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불가사의한 사건을 우리가 무슨 말로 설명을 하고, 우리가 어떤 지식을 동원하고 연구해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말은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보통얘기가 아닙니다. 생각할수록 신비한 얘기입니다. 생각할수록 감격스러운 말씀입니다.
Ⅰ.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자기 단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인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게까지 하면서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습니까?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습니까? 몇해전에 한 tv 뉴스에서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행사를 보여 준적이 있습니다. 학살된 6백만 명의 유태인 중 150만 명이 학살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진행되는 기념식이었습니다. 인간이 어쩌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안경만 가득한 방, 의족만 가득한 방, 여행용 가방만 가득한 방 그리고 머리카락만 가득한 방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고 죽어간 것입니다. 불태워 죽였던 현장 바로 너머에 독일군 장군들이 춤을 추며 밥을 먹었던 식당이 불과 십 미터 거리에 있었습니다. 철학의 대가들과 시대를 풍미했던 지성인들이 특히 많이 나왔던 독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랬던 사람들 속에서 죄책감 없이 다른 사람을 무참히 살해하는 죄악된 모습을 함께 발견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 배반자였습니다. 반역자였습니다. 사랑스럽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은 존재였습니다. 일찍이 마틴 루터는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만약에 하나님이라고 하면 이 세상 사람들 머리 위에 불을 내려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모조리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존재가 나요 여러분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이 사랑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아십니까? 이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십자가에서 고통당하며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했다. 바로 이 사랑이 "이처럼"이라는 단어 속에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이처럼" 나를 사랑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오늘 성탄 주일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드러내고 싶습니다. 요3:16절에는 ‘사랑하사’와 ‘주셨으니’라는 동사가 나오는데,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고 동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알 듯 말 듯, 닿을 듯 말 듯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행동하셨습니다.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으로 진입할 때, 교리적으로나 지식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고, 이 사랑을 느끼고 만지고 체험하는 신앙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겉에서 맴도는 신앙으로 교회 생활만 하게 됩니다. 너무도 구체화된 이 사랑을 피하고 믿음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앙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느끼고 맛보는 것으로 들어가야 합니다.Ⅱ. 성탄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신 사건입니다.
여기 16절 중반 절에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주셨다'라는 표현을 보십시요. 우리 한글 성경이 너무나 단순하게 번역을 해놓아서 주고받는다 할 때의 그런 단순한 의미만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주셨다'라는 이 말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자기희생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언자들에게 이르기까지 3천년동안 사랑의 말씀을 보냈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은 직접방문이라는 방법을 동원하셨습니다. 옳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의 방문이고, 배신하는 인간에 대하여 자신을 철저히 내려놓으시고 낮아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친히 속삭이는 사랑의 음성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확증하시려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시려고, 친히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의 중심 메시지는 화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담의 범죄로 인해 관계의 파괴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과 나, 나와 이웃, 나와 나의 관계가 파괴되어 결국 우리 인생에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살인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전쟁과 테러, 끝없는 분쟁으로 죽고 죽이는 살육이 끝도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환경이 파괴되어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런 세상을 회복시키려는 시도가 사람들에게 있었지만,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인생에게 다가오신 성탄의 소식은 인류에게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독생자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다가오신 이 땅에 오신 예수의 탄생은 회복과 화해입니다.
바울 사도는 엡 2:14-16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모든 평화는 너와 나의 화해 속에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화해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화해는 서로 손을 잡는 것입니다. 서로 악수하는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는 것이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194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독일과 벨기에의 국경부근 한 작은 오두막집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립니다. 문을 열고 보니 어느 미군 병사가 눈에 쓰러져 있는 자기 동료를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도와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인과 아들은 망설이다가 그들을 방으로 안내합니다. 그리고 그 부상병을 침대 눕히고 치료를 해줍니다. 부인은 굶주린 그들을 위해 음식을 더 만들고자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때에 누군가 또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연 부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독일군이었습니다. 적군을 보호하는 것은 반역죄로서 총살감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네 사람의 독일군에게 조용히 인사를 했습니다. "성탄을 축하합니다." 그들도 역시 같은 인사를 하고는, 자기들은 부대를 잃었으니 하루 밤 쉬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때 부인은 엄숙하고도 단호하게 말합니다. "물론 쉬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방에는 이미 다른 손님들이 먼저 와 계십니다. 그분들과 싸우시면 안 됩니다. 당신들 같은 소년이 죽음과 싸우고 있고, 내 아들과 같은 소년이 여러분같이 길을 잃고 배고파 지쳐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미군입니다. 오늘은 성탄절 이브입니다. 오늘만큼은 싸우지 마세요." 그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독일군 지휘관이 부인의 제의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독일군과 미군이 마주쳤고, 잠시 적막이 흘렀습니다만 다행이 아무 일이 없자, 부인은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참 후 신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위생병인 듯한 독일군 한 명이 미군을 치료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모두들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부인이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어머니 같은 부인의 기도에 모두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다음날 아침 부인은 식탁보로 들것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독일군은 지도를 꺼내 미군들에게 돌아갈 길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독일군과 미군은 악수를 나눈 후 각기 돌아서서 자기들의 길을 떠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프리츠 빈큰’이라는 사람이 리더스 다이제스트 지에 기고한 글인데, 이 사람은 그때 미군과 독일군의 화해를 주선했던 그 부인의 아들입니다. 그때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프리츠 빈큰의 결론적인 이야기는 “화해만이 인류의 소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화해의 계절입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간에, 친척과 친척사이에, 이웃과 이웃사이에, 성도와 성도 사이에,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민족과 민족 사이에,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화해를 이루는 계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Ⅲ. 믿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세상 사람들이 화해와 기쁨을 가졌나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놓고 기뻐 춤을 추며 그를 영접했습니까? 아닙니다. 기뻐하고 영접한 사람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되었습니까? 너무나 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성탄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의 숫자는 불과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소수입니다. 성탄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기뻐하고 영접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서 천대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시당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자, 짓밟힌 자, 실패한 자, 병든 자, 죄인으로 몰린 자,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가 오심을 기뻐했습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예수님의 첫 번째 탄생을 믿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말씀을 합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믿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이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이요,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전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번 성탄절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뭔가 좀 다른 성탄절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성탄절은 손을 잡을 수 없었던 사람들과 손을 잡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남과 북이 화해하고, 찢어지고 나눠진 사람들의 마음이 화해하면 좋겠습니다. 서초동과 광화문이 손을 잡고, 여와 야가 손을 잡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친히 오셔서 인생들의 손을 잡아주셨는데, 우리에게 누구의 손인들 잡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옆에 분들 손 한 번 잡아주세요.
그렇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내어주는 계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내어 주시되 남긴 것 없이 시원하게 손을 펴신 날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러분, 언제나 꽉 쥐어진 손을 활짝 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가락 두 개 포개어 하트모양 만들어 “사랑합니다.”라고 외친 것으로 사랑했다 생각마시고, 시원하게 손을 펴시기 바랍니다. 크리스마스는 시원하게 손을 펴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사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크게 생각해 보면 두 가지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것과 남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탄 절기는 우리를 위해 육체를 입으시고 말구유에 오신 아기예수를 영접하고 축하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 분의 오심을 축하하고 기뻐해야하기도 하지만, 그분의 오심의 의미를 알고, 그분의 정신을 실천해야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뭔가 다른 방법으로 성탄절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화해의 역사, 평화를 만드는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생을 굽어 살피시려고 허리를 굽히셨다는데, 우리도 미운사람, 원수 같은 사람, 내 취향이 아닌 사람, 내게 손해를 입힌 사람,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긴 이들에게 내가진 것을 나누며 화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가난한 자, 궁핍한 자, 약한 자와 무시당하는 자와 아픔을 함께 하시고 그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까지 오셔서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이번 성탄절은 이렇게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낌없이 주신 그 사랑을 힘입어 우리 주변을 돌아보며 낮아지신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에 동참하시는 행복한 성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