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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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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롬11:1-8)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0-01-19 | 조회: 842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11:1-8 1/19

 

요즘 우리나라에서 제작되는 영화나 드라마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의 헐리우드까지 진출하는 엄청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번에 미국에서 수상한 기생충은 전 세계인이 그 영화에 열광을 하고 있습니다사실 영화나 드라마는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그 힘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하나는시청자들이 드라마의 배역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동일시 현상때문입니다.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가정하고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것입니다주연 배우가 내가 하고 싶은 행동내가 하고 싶은 말내가 하고 싶은 욕까지 대신 해주기 때문입니다또 하나는다음 사건의 '예측 불확실성때문입니다이 드라마가 다음에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한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드라마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인류 역사의 가장 흥미롭고 가장 심각하며 가장 위대한 드라마가 지금 이스라엘 땅에서 진행 중인 것을 아십니까? 이것을 가르쳐 많은 성경학자들은 "인류 구속사의 마지막 드라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 프러시아의 황제였던 프레데릭 대왕은 어느 날 궁중 전속 목사를 불러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증거를 아주 단순하게 직설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이때 궁중 전속 목사가 "그러면 아주 단순하고 직설적인 증거를 말씀드리지요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민족의 존재 그 자체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롬11장을 통해 바로 그런 증거를 제시합니다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역사를 주의해서 보면 살아 계신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섭리하고 있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우리가 지금 역사의 어떤 시점에 와 있는가를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바울 사도는 이제 예수님 이후의 이스라엘 민족을 둘러싼 세 가지의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이 세 가지 질문은 무엇일까요?1. 이스라엘의 불신앙 ?여러분성경을 공부하고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민족이요 그렇게 메사야를 기다려 온 민족이면서도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을까궁금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나요오늘 로마서 11장에 보면 바울 사도 자신이 이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1절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대인이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거부하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이 문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씀합니다우선 사도 바울 자신을 보라고 했습니다나를 보십시오나는 유대인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라새인으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자였지만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사도가 되었습니다!” 유대인 중에도 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믿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 2-5절에 보면 엘리야의 예를 들었습니다. 왕상 19:10-14에서 엘리야가 "주님그들은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주님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습니다남은 자는 나 혼자밖에 없는데그들은 내 목숨마저 찾고 있습니다." 하며 부르짖을 때하나님께서 왕상 19:18에서 "내가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내 앞에 남겨 두었다하신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유대인들 중에 여전히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맨 먼저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 것이라면 도대체 왜 그들 대다수가 믿지 않는 자리에 있게 되었을까요?바울 사도는 본문 25절에서 그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비밀 혹은 신비라고 증언합니다도대체 무엇이 비밀이고 무엇이 신비란 말입니까2

 

5절을 읽어보십시오"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준하게 된 것이라무슨 말입니까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복음을 거절한 것이 오히려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 보내시면서 마10:1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만일 어떤 마을에서 복음 전하는 너희를 영접치 아니하거든 무리하게 거기서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고 너희를 거절하는 그 집이나 성에서 발의 먼지를 떨고 다른 집 다른 마을로 가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원칙에 따라 먼저 이스라엘 땅에 복음을 전했지만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이 예수님을 거절하자 자연히 다른 마을다른 지방다른 국가 곧 이방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것을 알고도 허용하신 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신비하신 섭리의 비밀이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더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주로 믿고 고백하고 주께 돌아옴의 기회가 될 것을 전지하신 주께서는 미리 아신 것입니다이 사실을 바울이 롬11:12에서는 어떻게 증언하고 있습니까?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이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롬11:17이하에서는 소위 돌 감람나무와 참 감람나무의 비유로 설명합니다즉 돌 감람나무와 같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접붙임이 됨으로 참 감람나무인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같은 뿌리의 진액을 받는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인간이 미쳐 예측하지 못한 신기한 섭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할렐루야!

 

이방인의 시대 언제까지?그러면 도대체 언제 얼마동안이나 복음이 이방인중에서 증거 되는 시간을 하나님이 허용하셨을까요바울 사도는 본문 25절에서 "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 까지--"라고 대답합니다여기 이방인의 수가 차기까지라는 표현과 매우 유사한 표현으로 예수님은 일찍 이방인의 때(시대)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21:24을 보십시오"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이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주께서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예언하신 것입니다적어도 이와 같은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Titus)황제가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에 군대를 이끌고 진격함으로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그때부터 이방인의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로 사마리아로 안디옥으로 로마로 서진하면서 영국으로 미국으로 한국으로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 열방 가운데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이 시대에 주께서 복음 증거자들을 전세계에서 일으키시사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기까지 복음의 역사를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그러면 문제는 얼마동안 이방인의 때가 계속 될까요누가복음의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 의해 밟혀있는 동안은 이방인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방인의 때가 끝날 무렵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사건이 일어 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1)복음의 전 세계적 전파 2)이스라엘의 영적인 회복 사건 3)마지막으로예수님의 재림인 것입니다그러니까 예수님의 재림직전에 일어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은 복음의 전 세계적인 전파와 이스라엘의 회복인 것입니다마태24:14을 보십시오"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사랑하는 여러분서서히 우리가 그런 시점을 향하여 다가가고 있다고 느끼지 않으십니까위클리프 성경 번역자들은 아마 2020년대 말에는 세계 거의 모든 부족어로 성경번역 작업이 마무리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정확하게 말하면 저와 여러분은 오늘 날 이방인의 시대가 끝나 가는 가장 흥분된 역사의 교차로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이제 인류 역사의 마지막 남은 최후의 드라마는 이스라엘의 회복인 것입니다.11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시작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그럴 수 없느니라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솔직히 이스라엘이 실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그들은 종교적인 기득권불신앙불순종오만 때문에 메시야를 죽이고 말았습니다메시야를 환영하지도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실패한 겁니다실족한 것입니다그런데 여러분?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라고 말합니다실패하긴 했는데 그 실패가 멸망이냐 끝이냐 패배냐?’는 겁니다사도 바울은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실족한 것은 분명하지만 망하기까지 실족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아무리 그들이 거부해도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이것이 은혜요십자가의 사랑입니다지금 바울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을 포기한다는 것입니까아닙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결단코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금 회복시키시고 찾으실 것입니다이방인을 자물쇠로 본다면 이스라엘은 열쇠입니다 열쇠로 열어야 자물쇠가 열립니다그렇습니다여러분이스라엘의 구원 없이 이방인만 구원받지 못합니다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하나님은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실족하게 하시고 실패하게 하셨습니다그래서 이방인이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20절을 보겠습니다.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기독교 역사상어거스틴 만큼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잘 분석한 사람도 드문데그는 기독교의 핵심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첫째도 겸손이요둘째도 겸손이요셋째도 겸손이라고 말했습니다바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하나님은 우리의 교만과 거만을 싫어하십니다(8:13). 하나님께서는 원가지인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복음을 거절하자그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찍어버리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스라엘처럼 교만하여 복음을 거절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21-22절을 보겠습니다"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분들은 겸손하게 복음을 받아들이십시오그 길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찍히지 않는 유일한 비결입니다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미 구원받은 분들은 구원을 주신 주님 앞에 겸손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 분을 올해도 신뢰하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내 삶을 드리시길 바랍니다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자주 아니 더 많이 이 세상이나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아닌지요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어떤 청년이 산을 타다가 미끄러져 벼랑끝 나무위에 걸렸습니다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데 점점 힘이 빠져 갑니다마침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도와 주셔요,하나님."했더니 소리가 들립니다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손놔내가 받아줄게그러자 그는 다시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누구 다른 분 없어요?"

 

시편기자처럼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편62:1-2) 지난 한 해 살아오시면서 힘들 때 있으셨지요그 때 기도하셨습니까잘 하셨습니다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가 힘들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넉넉히 이기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때로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하지 못했고하나님의 붙잡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손을 놓아버린 채 살던 적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여기 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셨고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기 동족을 위해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이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알기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자신의 동족을 위해 간구합니다9:1절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생각해 보세요바울이 그들에게 한 때 도움이라도 받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입니까이들은 바울에게 어떤 관계입니까바울이 피를 토하듯 끌어안고 기도하며 사랑했던 그들은 다름 아닌 바울을 배척했던 자들입니다우리가 잘 아는 바와같이 바울은 일생동안 자기 동족으로부터 쉬지 않고 박해를 당했습니다바울은 평생동안 괴롭히고 해를 끼친 사람은 이방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그의 동족이었습니다돌로 친 사람도태장을 때린 사람도 동족이었습니다재판에 붙인 사람도 동족이요감옥에 가두어 놓은 것도 동족이었습니다그야말로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고 예루살렘에서 소동을 벌인 자도 동족이요사사건건 미움과 박해를 가한 사람도 동족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자들을 사랑할 수 있으며 기도할 수 있으며 자기의 단 하나밖에 없는 그 생명을 바칠만큼 희생할 수 있겠습니까이를 갈며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그들의 죄는 미워했지만 그들의 영혼은 미워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그들이 핍박할수록견딜 수 없는 자리까지 고난에 빠뜨려도 오히려 바울은 자기 동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더욱더 간청했던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이처럼 자신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준 자신의 동족을 위해 이 몸부림치는 기도는 다른 데 있었던 게 아닙니다자기 자신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인생인데도 불구하고 그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도까지 되지 않았습니까그는 자기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보았습니다견딜 수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이 얼마나 큰가를 보았습니다죄인 중의 괴수였던 자신을 핍박자요훼방자요포행자였던 자기를 그 완악함과 그 더러움을 다 받으시고 십자가의 용서의 진액으로 사랑의 보혈로 자신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대체 무엇이었겠습니까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습니까우리는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무엇보다 주님의 관심은 여러분의 가정의 구원입니다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지도자가 교만하면 그 허리를 꺽을 것입니다겸손해야 합니다역사의 주관자는 일개 대통령이 아니라 주권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이제 우리는 그 때를 알 수 없지만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 앞에 최선의 삶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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