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하나가 되리라 - 통일 한국 겔 37:15-22, 2020.06.21
저는 오늘 말씀을 나누기 전에 20년 전에 우리 교회가 중국에 교회를 세우고 북쪽으로 올라가서 윤동주 시인이 살던 북간도의 명동촌에 들렀다가 두만강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북녘땅 무산광산이 보이는 언덕에서 시 한편을 썼습니다. 이 시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상영 장로님과 우리 양승관 장로님과 함께 중국 선교를 갔을 때 두만강이 흐르고 있는 한 언덕에서 쓴 시입니다.
나는 오늘 무엇 때문에산새,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는 숱한 세월 가운데도 여전한데/ 나는 이 언덕에서 무엇 때문에 울어야 하나/ 북녘 땅에도 이 소리는 있으련만/ 강하나 사이로 갈라져 버린 저 도시는/ 푸른 하늘을 잿빛으로 만들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천리 길 마다않고 너를 찾아왔지만/ 두만강 푸른 물 마져도 잿빛에 휘감아 내 마음에/ 절망의 소리만 들려지는구나나는 오늘 무엇 때문에/ 이 언덕에서 내 고통을 저 붉은 강물 속에 쏟아야 하는가/ 언젠가 저 검붉은 물이 보혈의 강이 되어/ 분단의 고통 속에 세월 마디마디 부서진 내 동포 상처 난 가슴 속에 흘러/ 생명의 태동이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 우리는 이 땅에 6.25전쟁의 비극이 일어난 지 70년을 맞는 주간을 갖습니다. 지금 한국은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아직도 한 민족이 남, 북으로 갈리워서 철책 선을 두고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휴전까지 무려 4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전쟁에서 전사한 우리나라 군인들만 14만여 명에 달하고,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자들 중에는 약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민간인들 중에는 약 37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고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민족 통일은 우리 민족 최대의 역사적이고 지상적인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년 이후의 우리 겨레의 통일 의식 조사 연구를 살펴보면 통일 의식은 세월이 흘러 갈수록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통일 비용 부담을 꺼리는 경제 의식이 가장 중요한 반통일 의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과연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소원해야 할 통일은 어떤 통일이며 이런 통일 한국의 비전을 위해 우리가 할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에스겔서 37장입니다. 저 유명한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왕국으로 분열된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후 북방 이스라엘은 앗시리아 왕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남방 유다는 바벨론 왕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조국이 멸망하는 이 시점에 유다 왕국에 살면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에스겔이라는 젊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때는 주전 약 586년경의 일입니다. 그는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자기의 조국 유다가 완전히 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는 이 선지자의 가슴속에서 탄생한 중요한 민족사적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연 남북 분단의 상처를 입고 쓰러진 자기 조국이 다시 통일된 하나의 나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그리고 기도하던 그는 16-19절에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무슨 말입니까? “막대기 두 개를 취해서 하나는 먼저 망했던 북쪽 이스라엘이라고 쓰고 또 하나는 남쪽 유대라고 써라. 그리고 그 둘을 네 손에 쥐어라 그러면 네 손에서 하나로 이어지리라. 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렇게 말할 때 그것이 무슨 뜻이냐 그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말하라. 너희들이 손으로 붙잡을 때 여호와 내 손에서 이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응답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하나는, 19절의 말씀처럼 “내 손(하나님의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통일의 비전입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그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했던 통일일까요?
이때 그가 받은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17절에 이미 계시하신 말씀인데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서로 상반되게 들려온 이 두개의 메시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손으로 통일을 이루시겠지만 여전히 우리 손으로 우리가 할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질 민족의 통일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 그 일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Ⅰ. 통일에 대한 비전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포기하고 주저앉아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그렇게도 갈망하던 해방은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5년 만에 6.25 동란의 비극으로 한국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온 나라가 폭삭 망해버렸습니다. 전쟁이 끝난 우리나라는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유엔에 등록된 120여 국가 중에 필리핀의 국민 소득이 170달러 태국 220달러일 때 한국은 76달러였습니다. 우리보다 국민 소득이 낮은 나라는 인도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후진 국가였던 것입니다.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가 오늘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된 것은 한 마디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꿀꿀이 죽 먹고, 구제품 입으면서 지내던 때가 불과 수십 년입니다. 보릿고개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게 불과 삼사십 년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도 100불 미만이었던 우리가 지금은 약 3만 불입니다. 이런 엄청난 축복을 누리는 자리에 이른 것을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역설적인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아직도 우리나라는 전시 상태이지만, 반만년의 한반도 역사 가운데 가장 전쟁이 적고 평화로운 기간이 역설적 사실로 지난 70년이 아닙니까? 불과 반세기만에 우리나라는 선진대열에 오늘만큼 모든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날의 전쟁과 식민지에서 겪어 온 상처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 세대들은 과거 세대를 꼰대 세대라는 용어로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의 균열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잉그하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세계에서 세대별 가치관의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가 한국이다." 조금 쉽게 말하면 세계에서 한국만큼 세대간의 거리가 먼 나라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곧 부모와 자식 사이가 이렇게 먼 나라가 없고,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 사이가 이렇게 먼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뒷받침이나 하듯 이 세대차이를 표현하는 단어나 용어들이 점점 더 난폭해지고 살벌해지는 것을 봅니다.
보수라고 일컬어지는 대부분은 전쟁을 아는 세대입니다. 지들은 한마디로 일과 전쟁만 하다가 인생을 다 보낸 세대입니다. 이런 독특한 그들이 경험과 배경 때문에 그들의 정치관은 자연히 보수주의였습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대신 변화나 개혁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모르는 세대들은 그들의 부모가 땀과 피를 흘려 뿌린 씨앗을 거두면서 행복하게 자라고, 신나게 젊음을 구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아버지 세대와 틀려. 아버지 세대는 아버지 세대고, 우리 세대는 우리 세대야.' 이들이 전쟁을 모르는 세대였습니다.
통일을 대하는 시각도 다릅니다. 과거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은 통일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지만, 지금 세대는 상당히 실리를 생각을 합니다. 요즘도 정책을 보면 북한을 자극하기보다 그들을 이해심을 가지고 대하는 인상이 강하다는 것을 봅니다. 이 노력의 일환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고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열리고 이어서 판문점에서 3나라 정상이 모였을 때, 우리 국민은 많은 기대를 가졌지만, 얼마 전에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남북 공동 연락소를 수십년 이루어 놓은 화해의 상징을 단 3초 만에 엄청난 폭탄으로 발파해 버렸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 우리는 지금의 문제 앞에 상당히 당황 하는 것 사실입니다. 그러나 17절에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나님은 오늘도 인간의 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쉽게 표현하면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갈망은 우리가 내려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이번 사건으로 말 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일일이 반응하기보다 인내하며 평화의 노력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다시는 이 땅에 6.25전쟁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하며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위해 설득하는 일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Ⅱ. 여기 진정한 통일은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이 통일이 이룰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17절에서는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고 말씀했는데 19절에서는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이 말씀은 화해와 통일이 사람들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쥐고 계시는 창조주와 섭리주의 손입니다. 렘18:6절에 보면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내가" "내가"라는 말이 거듭해서 4번 나옵니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얼마전에 고신대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쳤고 지금은 백석대학교수로 계시는 이상규 박사는 전쟁기의 다섯 가지 기적이란 6.25에 관한 소논문을 썼습니다.
첫째는 미국의 신속한 참전이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 대통령은 트루먼(Harry Truman)이었습니다. 민주당 출신 제35대 대통령인 트루먼은 미주리 주에 있는 사저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으나, 북한군의 남침 보고를 받고 이틀 후인 6월 27일 성명을 발표하고 참전과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우리도 이 빠른 의사결정은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정말 힘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둘째, 유엔 상임이사국의 참전 결정도 기적이었다.
상임 이사국 5나라 한나라도 반대하면 안되는데 북한 편인 소련이었다. 그런데 소련 대표가 북한에 반대되는 결의를 하는 안보리에 불참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점은 한국전쟁을 둘러싼 의문 중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미스터리입니다.
셋째, 인천상륙작전은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키는 기적이었습니다.
상륙을 위한 LST가 정상적으로 가동하려면 수심이 50미터 이상 되어야 하해서, 썰물 때는 작전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상륙작전은 3-4시간 정도의 밀물 때를 이용해야 하는 위험한 작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군이 좁은 수로에 기뢰를 매설할 경우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은 미친 짓이라고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작전의 성공을 확신하고 대통령을 설득하여 승인을 받았습니다.
9월 15일 항공모함과 순양함, 구축함과 제10군단 병력이 탐승한 대규모 선단이 인천 앞바다에 집결했고 여기엔 유엔군 소속 함정은 261척, 미 제5해명연대 제3대대의 선봉 공격대가 인천 수로에 진입하면서 총 7만 5천명이 투입된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성공률이 5천분의 1에 불과했으나,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넷째, 흥남 탈출은 기적이었고 기적의 항해였습니다.
흥남부두 철수 사건은 기네스북에도 올라갈 정도로 대단한 사건입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23일, 함경남도 흥남부두에는 피난길에 오른 피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흥남부두에 몰려든 피난민을 보고 당시 흥남철수작전의 총사령관이던 알몬드 장군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화물선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그 화물선에 피난민들을 태우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 배는 무기를 다 버린다 해도 2천여 명 밖에 태울 수 없었는데, 레너드 라루 선장과 로버트 러니 사무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하나님께 운명을 맡기자’며 태울 수 있는 한 최대의 인원을 태웠습니다. 그래서 무려 만 4천 명이나 태워 거제도로 가게 됩니다. 그 결과 전쟁무기 대신에 만 4천명의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는 6.25전쟁에 희망의 등불이었습니다.
다섯째 한미방위조약의 체결은 또 하나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 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오늘까지 ‘한미 동맹’의 든든한 조약이 되었고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안전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 민족이 되는 것은 어떤 정치력이나 경제력이나 무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대국들의 힘이 한반도의 통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적화통일, 흡수통일, 민족이 다 망하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통일 한국을 말할 때 피해갈수 없는 질문의 하나는 우리가 희망하는 통일 한국의 이데올로기적 정체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통일 지상주의자들은 어떤 정체성을 선택하던 상관없이 통일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통일 조국은 그냥 단순히 하나 된 조국이 아니라, 성소가 재건되어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는 미래의 조국이었습니다. 다시 37:26의 하반부를 읽어 보십시오. “--내 성소를 그들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적어도 우리가 소원하는 미래의 조국은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고 경배할 자유로운 조국이지, 어떤 측면에서도 신앙의 자유가 위축되고 견제되는 전체주의나 사회주의적 통일 조국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방법으로 그런 미래 통일 조국을 만들어 갈수가 있겠습니까? 사실 그 대답은 에스겔 37장 전반부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과 성령이 아닙니까? 선지자 에스겔은 죽은 뼈로 가득 찬 민족의 골짜기에 생기가 불어오고 말씀이 대언되는 순간 죽은 뼈들이 거대한 군대가 되어 일어나는 민족 부활의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답은 부활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통일 조국은 부활의 복음으로 새로워진 조국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남북의 통일을 우리가 소망해야 합니까? 서로 다른 체제가 굳어져 가는 이때에 말입니다. 저는 남북의 7500만 동포들이 하나가 되어 제사장 사명을 가지고 선교 한국을 위해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 북한 동포들을 보십시오. 잘못 된 체제로 소수의 사람만 배가 부르지 수많은 내 동포들이 인권이 유린되고 노예처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저들의 사상이 무너지고 체제가 붕괴되는 날이 속히 오도록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통일 한국이 과연 이 땅에 올수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우리는 그런 조국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신앙인은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바울을 보세요. 롬10:1을 보면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 동족을 보면서 바울은 끊임없이 고통하고 괴로워했습니다. 바울의 고통에는 자기 민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원통해서 답답해하는 마음, 무엇이나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동일한 기도가 출 32:32에도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사하지 아니하시려거든,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 주옵소” 정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른 이의 영혼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기도가 있습니까? 우리에게 이 부르짖음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손안에서 하나 되는 민족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삼각산에 가면 추운 겨울에도 산속 바위 위에서 통곡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요즈음 살만하니까 물질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를 살다보니 점점 기도 소리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르짖는 기도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하나 되는 것은 사람의 손만 가지고는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통일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갈라지고 분열되고 분단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남북으로 동서로 갈라지고 전보와 보수가 갈라지고 심한 갈등구조 속에 있습니다. 하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분열의 손, 파괴의 손이 아니라 평화의 손으로 살며 하나님의 손에서 통일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