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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8 다윗과 골리앗 (삼상 17:41-45)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0-06-28 | 조회: 670
다윗과 골리앗 삼상 17:41-45. 2020. 6/28. 32. 357. 14. 24
 
2020년을 시작 할 때만해도 우리 모두가 희망에 찬 한 해를 기대하며 살아왔는데 오늘 전반기를 마치는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코로나19로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위기에 대한 명언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위기는 위기인데도 불구하고 위기인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위기는 위기인 것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사태에서 이 명언이 그대로 입증되었습니다.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전 세계가 이 c-19 확산되자 허둥대다가 세계 보건기구가 펜데믹을 선언했습니다. 팬데믹을 선언했다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 코로나19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데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글로벌 경제의 침체 등 지구촌 구석구석이 위기상황에 이르렀음을 경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의 크기가 머리카락 1/2000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현대문명이 멈춰 섰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무너져버렸고, 상점, 기업, 학교, 공연장, 운동경기, 종교시설 등이 문을 닫거나 온라인으로 운영 중입니다. 더 큰 문제는 언제 이 사태가 종식될 것이며, 언제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벌써 185개국에서 확진자가 900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40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 교회의 위기
우리가 지금도 많이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에 많은 것들을 바꾸어놓았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탈종교화입니다. 이 여파는 한국 교회에도 그대로 밀려오고 있고 이 어려움을 비껴 나가기가 매우 힘든 자리에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서 탈종교화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코로나19 이후로 비대면(Un-tact)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교회의 모임이 힘을 잃거나 의미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모여서 찬송하고, 모여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교제하는 일들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지앤컴리서치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난 5 24일을 기준으로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린 성도들의 숫자는 코로나 이전에 비해 61.8%에 불과했습니다. 바꿔 이야기 하면 코로나 이전에 100명이 모인 교회라고 한다면 코로나 이후 62명 정도만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기독교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입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생겼습니다. 전체적으로 하면 우리 국민의 약 80% 가까이가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39%가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났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문화 속에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강한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더 뿌리 깊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갈수록 탈종교화, 특별히 탈 기독교화 현상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가정의 위기입니다.
최근 코로나19사태는 생각지 못했던 가정의 위기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면서 가족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대폭 늘었습니다. 이름하여 집콕문화가 확산된 것입니다. 영국의 코로나에 관한 한 보고서를 보면 평상시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하루 평균 90분 정도였지만 코로나19사태 이후에는 무려 15시간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부부간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부부갈등이 증가했고, 이것이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생기면서 코로나 이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한 것은 부부관계 뿐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개학이 연기되고 온라인수업이 진행되면서 자녀를 돌봐야 하는 부모 특히 엄마들의 양육스트레스와 피로감은 한계치 가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사태의 장기화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압박이 심화되면서 일어난 현상 가운데 가족들 간의 갈등이 매우 위험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코로나19사태 이후 가정폭력 신고건수가 32% 증가했고, 영국도 20%가량 늘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동 학대 신고 건수가 10.7% 늘었다는 것입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지만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짐승 같은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이런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하도 사건 사고가 빈번하다 보니 쉽게 잊어버립니다.
 
40대 한 여성이 9살짜리 의붓아들을 영행용 가방에 7시간이 넘게 가뒀다가 결국 이 아이를 죽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50대 한 남성이 자기 친 딸을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해서 네 차례나 임신과 낙태를 하게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천안 계모 사건도 분이 삭혀지지 않는데 창녕 아동학대 사건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그 외에도 코로나19의 밀물이 밀려오면서 수면 아래 잠겼던 문제들이 잘 보이지 않는데 이 C- 19가 썰물처럼 빠져 나갈 때 우리의 현실은 매우 어둡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무거운 질문 앞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탈종교화, 탈 기독교화 되어 가는 이 세상의 엄청난 도전 앞에 우리는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본문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에서 찾아보고, 거기에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본문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에서 찾아보고, 거기에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나라는 블레셋입니다. 이스라엘 남쪽 해안가에 정착하였고, 발달된 철기문명을 받아들여 철로 만든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아직 철기문명이 받아들이지 못해 철로 된 무기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왕과 왕자만이 철로 된 칼을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엘라 골짜기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 죽이는 힘과 살리는 힘
여기 엘라 골짜기는 상수리나무가 많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최고의 환경을 갖춘 지역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 모습이지 그 속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는 현장입니다. 여기엔 두 세력이 있습니다. . 죽이는 힘과 . 또 하나는 살리는 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에게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장이 가득 했습니다. 신장은 283cm입니다. 머리에는 놋투구, 가슴에는 작은 철편들을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붙여 만든 갑옷이 있었습니다. 다리와 종아리는 놋쇠로 만들어진 갑옷이 싸고 있었고, 어깨에는 언제고 던져 찍을 수 있는 단창 통이 얹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입고 있는 갑옷 무게만 57Kg이었고, 창 무게가 7Kg에 달했습니다. 골리앗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모습이었습니다.
 
어찌 그 뿐입니까? 기골이 장대한 그런 골리앗이 온 몸에 갑옷을 두르고 어마어마한 무기를 손에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눈을 부아리면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러자 그런 모습을 본 이스라엘 군사들은 모두 두려움에 치를 떨며 도망치거나 숨기 바빴습니다. 분명 이스라엘에도 장수가 있었습니다. 잘 훈련받은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이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과도 같았습니다.
 
그 때 다윗이 그 전쟁터인 엘라 골짜기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아직 어려서 전쟁에 참여할 나이가 아니었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고 형들에게 먹을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얼떨결에 전쟁터에 찾아왔다가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독하며 소리지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광경을 본 다윗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그 소리를 듣고 견딜 수가 없어서 자신이 그 골리앗과 싸우러가겠다고 자청합니다. 형들도 말리고, 사울 왕도 말렸습니다. 싸움에 용맹한 장수들도 겁을 내는 판에 어린 다윗이 싸우러 가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 다윗,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자신이 쓰고 있던 놋투구를 다윗의 머리에 씌워주고, 자신이 입고 있던 갑옷을 다윗에게 입혀주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을 다윗에게 줍니다.
 
골리앗과 싸우러 가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보십시오. 자신이 입은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몇 걸음 걸어보더니 너무나도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갑옷을 벗어버리고 칼마저도 포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입도 다니던 옷을 입고, 자신이 양을 칠 때 가지고 다니던 막대기를 가지고, 맹수를 물리칠 때 사용했던 물매에 돌맹이 다섯 개만 주워가지고 골리앗과 싸우러 갑니다. 
 
여러분, 골리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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