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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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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2 연약한 자를 받으라 (롬14:1-6)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0-08-02 | 조회: 467

연약한 자를 받으라 14:1-6. 2020. 8/2

 

어느 분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하나를 던졌습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꼭 한 주간만 남았다면 그 엿새를 어떻게 보내겠습니까? 여기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5가지 유형의 대답이 나왔다고 합니다관광형으로 구경이나 실컷하고 죽겠다는 것이고 철학자형으로 내일 내 인생의 마지막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로맨티스트형으로 남은 시간 부지런히 연애나 실컷하고 죽겠다고 했고 망각형으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덜어보기 위해 술에 취해 살겠다 했습니다그리고 또 한 유형은 식사형으로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죽겠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여러분은 어떤 유형에 속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그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부르는데 예수님은 가장 괄목한 만한 두가지의 일을 하셨습니다말씀을 가르치시는 일을 하셨고 )기도하셨습니다요한복음13장에서부터 시작하는 다락방에서의 주님의 가르침은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르침이기도 했습니다주님은 그동안 동거 동락하던 제자들에게 만찬을 베푸시면서 그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피를 토하듯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신 설교의 핵심은 “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는 부탁의 말씀입니다너희가 과연 나의 제자란 증거가 무엇이겠는가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이 대목을 가장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마지막 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보내셨습니다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기도를 하셨지만그 기도 가운데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가장 많이 하셨습니다이제 내가 떠난다면 이들이 어떻게 이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겠는가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저들을 보면서 눈물로 기도하신 내용이 요한복음17장에 나옵니다그 기도내용 중 가장 많은 부분이 “ 아버지여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은 왜 이런것들을 강조하셨을까요예수님의 마지막 부탁과 최후의 소원을 한 마디로 말하면 세계 복음화였습니다그런데 이 숙제를 감당해야 될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세계 복음화의 숙제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동의하시겠지만 이 세상에서 교회만큼 이질적인 집단이 없을 것입니다세상에서 모이는 대부분의 단체는 어떤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창이다종씨다동향이다 같은 취미를 가졌다는 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 끼리 끼리 모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런 공통적인 특성이 구성원들을 쉽게 어울리게 만듭니다그러나 교회는 어떻습니까자연적인 성향으로 볼 때 잘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빈부귀천이 확연히 나타나고 배운 분도 있고 못 배운 분도 있고 한데 모여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 섞이기 어렵고 서로 밀어내기 쉬운 성질을 가진 일단의 사람들이 맏음이라는 띠에 묶여서 모였기 때문에 가끔은 교회 안에서 참으로 다루기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분열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다시 로마서를 다루게 됩니다여러분이 로마서 전체의 중심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가장 복된 소식을 말합니다바울은 바로 이 복음을 위하여 로마서를 썼습니다사실 바울은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한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잡아서 죽이던 자였습니다. 바울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비방자요박해자요폭행자요...죄인 중에 괴수”(딤전 1:13, 15)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런 모든 악행을 용서하시고오히려 그를 주님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바울은 하나님의 엄청난 긍휼과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그는 자신이 엄청난 빚을 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그 때부터 그의 삶은 바뀌었습니다죽을 때까지 다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사랑과 은혜의 빚을 진자가 되었습니다래서 그는 주님 앞에 가는 그 순간까지 복음에 빚진 자되어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본문에 보시면 사도 바울이 활동할 당시의 로마교회는 많은 문제 중에 특별히 비판하는 문제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두가지 문제를 놓고 비판하였습니다하나는 먹는 문제였고다른 하나는 날짜 문제였습니다첫째로 먹는 문제를 놓고 서로 의견이 갈려서 비판하게 되고 급기야 교회 안에서 큰 분쟁이 일어났습니다예나 지금이나 먹는 것이 문제입니다과거 사람들도 지금 못지않게 먹는 일을 중요시 한 것 같습니다로마교회의 어떤 성도들은 고기는 쳐다보지도 아니하고 정육점 근처에도 가지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에서는 고기를 우상에게 제물로 바친 후그것을 시장에서 판매하곤 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우상에게 제물로 받쳤던 고기를 먹는 것은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고기는 전혀 먹지 아니하고 채소만 먹었습니다반면에 어떤 성도들은 구운 고기 먹고 싶으면 구워서 먹고튀겨먹고 싶으면 튀겨 먹고날 것으로 먹고 싶으면 날 것으로 먹었습니다거리낌없이 마음껏 고기를 먹었습니다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라 할지라도 내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감사하고 먹으면 아무 문제될게 없다고 주장하며 주저하지 않고 먹었습니다.

 

로마 교회의 두 번째 문제는 날짜 문제였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금요일저녁부터 토요일저녁까지를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켰습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 안식 후첫 날에 부활하셨습니다그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안식일 대신주일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또 어떤 사람들은 토요일이나 주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모든 날이 중요하기 때문에아무 때나 예배 드려도 좋다고 주장하였습니다결국 예배날짜 문제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이런 갈등 속에 있는 성도를 향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약한 자를 비판하기 보다는 이해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비판입니비판은 단순히 비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무서운 교만의 죄를 포함합니다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남을 비방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일이다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지만비방은 세 사람을 죽인다비방하는 사람 자신그것을 듣는 사람그리고 비방 당하는 사람이다.” 비판은 마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열린 문의 뚜껑을 닫는 것과 같습니다비판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해서 소망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로마 교회에도 이 비판 때문에 상당히 심각한 분열의 양상까지 치닫게 되었습니다이때 바울은 1절과 3절에 받으라는 단어를 쓰면서 이 갈등을 해소 하려고 했습니다먼저 1절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여기에서 '받으라'는 말은 호의적으로 친절하게 맞아들이라는 뜻입니다즉 믿음이 약한 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사랑으로 이해해주라는 말입니다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자리를 둘러보면나이성별직업학력등 여러 종류의 분들이 앉아 계십니다또 믿음의 생활을 시작한지도 다양하고 믿음의 정도가 제각기 다릅니다한 자리에서 함께 찬양을 드리며함께 기도를 하며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믿음의 키 높이는 각각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키 높이가 서로 같지 않고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그리고 믿음이 장성한 분들은 믿음이 아직까지 연약한 분들을 비판하기보다는 따뜻한 사랑으로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물론 이 말은 믿음이 연약한 자의 잘못된 행동까지 무조건 인정해 주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해'와 '인정'의 의미에 대해서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이해는 영어로 understand, 즉 '누구 밑에 서다'라는 원래의 의미로서자기 자신이 밑으로 내려가서 상대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정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옳다고 믿는 것입니다우리는 잘못을 하는 사람을 보고그 잘못을 인정해서는 안됩니다그러나 그 사람이 아직까지 믿음이 연약하다면 그 사람을 이해해주어야 합니다여기서 믿음이 강하냐약하냐의 차이는 상대방을 내가 얼마만큼 받아들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도 나를 받아 주셨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그들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셨습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습니다하나님이 받아주셨다면 우리도 받아 주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다면 우리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우리 주님 역시이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이 세상 한 복판에 당신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으로 물들고 오염된 나 하나를 건지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뛰어드신 것입니다뭐 자격을 따지지도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달려와 십자가에서 나의 더럽고역겨운 냄새로 진동하는 나의 죄를 그대로 끌어안으시고희생 제물로 나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내가 뭔데도대체 나란 인간이 뭐길래하나님께서 외아들 독생자를 아무 조건 없이 주셨습니까? 이 은혜를 깨달았다면이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면 이제 주께서 나를 받으신 것처럼우리도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 먹는 문제와 날짜에 대한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겉으로 보면 성경적인 삶을 사는 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나 실질 적으로는 구원을 받았지만아직 성숙치 못한 연약한 모습들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바울은 5절에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한대로' 즉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소신껏 판단하고 행하라고 합니다한마디로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고알아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무책임한 이야기로 들려 질 수 있는 말입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기준이 있습니다6절을 보겠습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6절에서 반복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주를 위하여'라는 말입니다주를 위하여 날도 지키고 주를 위하여 음식도 먹으라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우리는 무언가를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사람을 위하든 돈을 위하든 권세를 위하든 쾌락을 위하든 아니면 주님을 위하든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게 마련입니다나름대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정해놓고 그것을 향해서 열심히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가 항상 분명해야 합니다. 이 삶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우리의 삶은 늘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느냐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의 내용과 방향이 전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아무리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더라도 삶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어떤 일을 만나도 거기서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아내어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갑니다그러나 아무리 넉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더라도 그 삶의 목적이나 방향이 불분명하거나 잘못되어 있다면 그 인생은 별 볼일 없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우리 성도의 삶의 목표는 주를 위하여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그동안 당연히 여기던 일 중에 하나가 성도의 교제가 무너져 있다는 사실입니다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일상의 제한으로 우리의 삶은 너무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만남을 주저하며 미뤄야 했고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교회당에 출입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해야 했습니다가족들과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도 한 번쯤 더 생각해야 했고여행을 가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그러면서 우리가 평소에 일상적으로 살아왔던 평범한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익숙함에서 벗어나보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왔던 일상의 삶이 소중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매일 24시간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평범한 시간의 자리에서 잠시만 벗어나 보면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우리는 그동안 서로 함께 지내던 교우들 가운데 근 6개월씩이나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한 분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지내고 있습니까우리의 소중한 형제입니다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신앙의 동지입니다. 4:3절에 보면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어떤 일이 있어도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든지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꼭지켜야 합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는 한번 더 내 주변을 깊이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함께 한다는 것의 소중함입니다내 주변에 보이지 않는 분들에게 다시 다가서서 그들을 격려 할 수만 있다면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만 있다면그리고 그들을 작은 예수처럼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교회는 은혜의 현장이 될 줄로 믿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주님이 나를 받으신 것처럼 나도 있는 그대로 내 사랑하는 교우들을 진심으로 받으십시요!!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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