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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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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 행복하십니까?(새생명축제) (신33:29)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0-10-18 | 조회: 390
행복하십니까? 신33:29. 2020.10/18 초청 주일



여러분, 행복한 교회 동성 교회 오심을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누가 만든 것인지 모르지만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부잣집 뜰에 난초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난초사이에 두꺼비 한 마리가 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주인이 와서 난초를 아주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가꾸는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두꺼비는 너무 부러운 나머지 난초를 향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목이 말라도 누가 물 한 모금 주는 이가 없고, 뱀은 날마다 나를 잡아먹으려고 좇아다니고 어디를 가나 천대만 받는 천덕꾸러기인데 너는 무슨 팔자가 좋아서 주인이 그렇게 곱게 키워주고 사랑해주느냐! 너는 참 행복하겠다.”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난초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너 그것 잘 몰라서 한 소리야. 나는 발이 없으니 목이타도 주인이 물을 줄 때까지 기다려야하고 소가 와서 나를 뜯어먹어도 도망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데 너는 발이 있지 않니! 그래서 너는 자유스럽게 목이 마르면 물도 마시고 도망가고 싶을 때는 도망도 가지 않니!” 그 말을 들은 두꺼비는 비로소 난초가 갖고 있지 않는 또 다른 행복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화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의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소유한 것에 만족이 없고 그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떤 자들이었기에 행복자란 이야기를 듣습니까?

 

Ⅰ.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오늘 본문 29절 가운데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도대체 너희들은 아무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의 선민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 엄청난 일 앞에 모세가 외친 것입니다. 지금 모세는 그토록 가고 싶은 가나안이 자신의 눈앞에 들어옵니다.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하던 소망 없는 이스라엘 백성인데 그 애굽을 나오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역사입니다.

 

자그만치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내리신 열가지 재앙 앞에 애굽은 손한번 써보지 못한 채 노예로 부리던 이스라엘을 자기 땅에서 내 보냅니다. 어찌 그 뿐입니까? 가나안을 향해 나갈 때, 홍해가 가로 막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 동안 방황 하는 고난의 연속입니다.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습니까? 백성들의 반역과 핍박, 심지어 모세를 죽이려고 달려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끊임없이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을 섬겼습니다. 지금 만감이 교차되는 현장에서 모세가 백성에게 이야기한 단한마디는 당신들의 힘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광야 40년의 삶은 끊임없는 불순종의 삶인데 이들이 아무 자격도 조건도 없는데 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저들의 행위와 노력을 보지 않고 그들을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 가나안 길목에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 날 수 없는 절망의 환경 속에 이제 요단만 건너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이는 말로 달 할 수 없는 감격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너는 행복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 같이 구원 얻은 자가 누구냐’라고 외친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백성을 삼으시고 구원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요3:16절에 보면 "“하나님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독생자를 주셨으니 /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 멸망하지 않고 /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은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보통얘기가 아닙니다. 생각할수록 신비한 얘기입니다. 생각할수록 감격스러운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얼마나 화려한 수사를 사용하여 자주 말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무궁한 사랑'이라고 큰 소리로 선언합니다.(렘31:3) 무궁한 사랑, 즉 한이 없고 끝이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적인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만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요13:1) 이는 중단됨이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한 차원 높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죽기까지 하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갈2:20)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그 사랑이기 때문에 이 사랑을 끊을 자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습니까? 인터넷 게임에 중독돼 생후 3개월 된 친딸을 굶겨 죽인 비정한 부모를 바라보는 찹찹한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불과 얼마 전의 일입니다. 우리는 보지 않습니까? 자기 쾌락을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면서 조금도 안타까워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짐승 같은 사람들이 자고 깨면 우리 앞에 벌어지는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성적 쾌락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가진 지위로 잘못된 욕정을 채우는 이 세상입니다. 이 땅을 바라볼 때 희망을 둘만한 곳이 없습니다. 어디 한군데 빛을 따라 가면 살 수 있겠다 하는 곳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사건이 바로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전 우주에 유일한 신이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가장 권세 있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분이요,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 그리고 땅 아래 있는 자들이 그 발 앞에 엎드려 영원토록 찬송해야 될 영광의 주님, 승리자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도 무덤덤해요. 별로 감동도 받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죄 때문입니다.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코로나 19’에 전염이 되면 그 한사람 때문에 직장이 폐쇄되고 확진 여부에 따라 15일 동안 자가 격리를 합니다. 어찌 그 뿐입니까? 이번에 유럽지방에 밍크 수백만 마리가 살 처분을 당했습니다. 청정 지역으로 일컫는 영국의 한 농가는 자식처럼 길러오던 멀쩡한 밍크들을 손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다 땅에 묻는 현장 앞에 망연자실한 모습이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코로나 19가 심각하지만 우리 인간의 죄는 이런 코로나 19 보다 더 무섭습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 인간을 보시고 구원받아야 될 존재로 선언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거침없이 이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죄의 값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심판을 면하려면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으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죄를 들추어내지만 그 목적은 우리를 살리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이 오신 것은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1: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죄 문제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고민해본 사람입니다. 암에 걸린 분들은 평소에 암을 치료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암이 낫는다는 말만 들으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성경이 죄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문제를 처리하기 원할 것입니다. 행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말씀을 하십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을 받는 방법이 너무나 간단하고 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지은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함을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사탄에게 속아서 사탄의 종노릇을 하며 살았는데 거기서 탈출을 하여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영원히 멸망할 인생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도 깜깜한 암흑 속에서 무엇이 참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 빛 가운데로 나와서 진리를 알고 사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모세가 외친 여러분은 행복자란 말은



Ⅱ. 구원 이후에도 내 인생을 끝까지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방패나 칼은 다 전쟁에 쓰이는 방어용과 공격용 도구입니다. 전쟁에서 이것이 없으면 백전백패입니다. 며칠 전에 보셨죠? 북한이 얼마 전에 열병식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 많은 무기 가운데 ICBM 신형 미사일은 핵을 장착해서 마음만 먹으면 미국을 초토화 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때문에 세계가 긴장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변변한 무기도 전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광야 생활 속에서 그들은 전쟁에서 고도화 된 이방군대를 초토화 시켜습니다. 그 이유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히13:5의 말씀에 보면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 과연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never’입니다. '결코'라는 말입니다. 한번 택한 나를 언제나 보호하시고 도우시겠다는 말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의 찌끼만도 못한 내가 무엇인데 도대체 내가 나를 보아도 늘 죄의 더미 속에 빠지고 일어서면 또 넘어지고 하는 연약한 인생인데 어디가 이뻐서 한번 택한 나를 결코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놓치지도 않으시겠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구원받은 백성들의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자!! 오늘 새생명 축제에 여러분과 함께 예배드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도 제가 봐도 괜챦은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앞모습뿐이지, 그 삶의 옆문이나 뒷문으로 들어가 보면 어느 가정, 어느개인 할 것 없이 예외 없이 깊은 탄식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 안에 연약함과 죄의 상처와 자기만의 안고 있는 삶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겉모양으로만 봐 가지고는 그 삶을 다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누구나 앞문은 굳게 닫고 오십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졌고 남 보다 행복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그 속에 어떤 슬픔이 담겨있는지. 또 가슴 깊은 곳에 어떤 아픔의 눈물이 흐르고 있는지를 사람들의 겉모습만 봐 가지고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그렇습니다. 어떤 인생의 짐도 심지어 내가 내 힘으로 벗어 던질 수 없는 죄 짐도 그 분은 당신이 나 대신 짊어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을 우리가 믿기만 하면 이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 가운데 다가오셔서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줄로 확신합니다. 아-멘


이 은혜가 여러분 위에 항상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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