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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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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7 있을 때 잘해. (벧전 4:7-11)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0-12-27 | 조회: 490

있을 때 잘해. 벧 전 4:7-11. 2020. 12/27일 연말 설교

 

오늘이 마지막 주일인 1227일입니다. 금년 달력을 새롭게 건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달력의 마지막 장마저 내려야 합니다. 교회에 달력이 제작 되었는데도 전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세월이 덧없다는 말이 이렇게 실감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왜 연도수가 중요하고 연말연시가 중요할까요?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연도가 바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뭐가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금년에 떠오르던 해는 내년에도 무심하게 떠오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연도수가 바뀌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분주한 일상의 삶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던 우리가 잠시 멈추어서 인생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말이 있고 송년주일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당연하지만 때때로 잊고 사는 인생의 진실, 언젠가 내 인생에도 끝이 있고 떠날 날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제가 요즘 참 좋아하는 잭 니콜슨이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이 분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가 있는데 아마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입니다. 여기에 보면 불치의 병에 걸린 두 노인, (잭 니콜슨)과 카터(모건 프리먼)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목록을 작성합니다. “스카이다이빙 하기” “눈물 날 때까지 웃기” “장엄한 것을 직접 보기” “모르는 사람 돕기. 그리고는 주변의 가족과 의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납니다. 이집트에서 도착한 그들은 황혼녘에 눈앞에 보이는 피라미드를 보면서 카터가 말합니다. “천국의 문 앞에 서면 하나님이 질문을 하나 하는데, 그것은 인생의 기쁨을 찾았느냐?’라네.” 이 이야기를 듣던 콜이 자신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다고 하자 카터가 다시 묻습니다. “자네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나?” 여기 자네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나?”

 

어떻습니까? 나는 이 한해를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인생으로 살았습니까? 아니면 상처를 많이 받고 살았습니까? 2020년도도 엊그제 시작을 한 것 같았는데 벌써 한해의 끝자락인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는 마지막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왠지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으면 비장한 마음이 듭니다. 적어도 베드로가 성도들을 향해 이 말을 할 때에, 그런 비장한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언제 마지막이 올지 모르는데, 그 날이 도적같이 이르게 될 텐데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시작은 거창하지만 마지막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일들을 봅니다. 우리는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어왔습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작을 했어도 마지막이 좋지 않으면 실패한 것입니다. 어쩌면 마지막을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견디는 것이야말로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애플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음 시킨 이제 고인이 되었지만. 스티브 잡스(Steve Jobs)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미국 서부의 명문대학인 스탠포드대 졸업식에서 이런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 연설에서 자신은 17세 때 한 경구를 읽고서는 그것이 그의 생의 큰 전환점을 이루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경구는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그는 이 글에 감동을 받고, 그 후 50살이 되기까지 33년 동안을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는 이 질문에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라고 고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닙니까? 마지막을 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인데,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지막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내일이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적어도 베드로에게 있어 초대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문제는 마지막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모르는 것도 해야 할 일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행할 날들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꼭 필요한 것들을 뒤로 미뤄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 말씀을 오늘 설교 제목처럼 있을 때 잘해라는 주의 음성으로 와 닿습니다. 이 시대를 우리가 안다면 이제 !! 두익아! ! 정신을 좀 차려라!!’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제가 탄광 생활 할 때 굴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24시간 작업을 합니다. 그래서 8시간씩 3교대를 하는데 제일 힘든게 새벽에 출근을 하는데 새벽반에 투입 되면 전날 술이라도 먹고 출근하면 몸따로 마음 따로 그래서 사고가 많아 납니다. 새벽에 감독이 막 욕을 합니다. 나이 든 아버지 뻘 같은 사람들에게도 소리를 지릅니다. - !! 아무개 정신차려!! 여기서 정신을 차리고라는 소프로네사테분별력을 가져라혹은 마음을 잘 추스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근신하여침착하다” “냉정하다라는 뜻을 가진 넵사테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라는 말은 무엇이 중요한 가, 어떤 상황에서도 분별력을 잃지 말고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만큼은 가장 솔직하고 거짓이 없어집니다. 기도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확히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 단 둘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며 년 초에 계획했던 많은 일들을 하나님 앞에서 한번 확인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도 열심히 뛰어 다녔는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수고와 땀을 흘렸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참회하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산다고 했지만 과연 하나님을 어마나 기쁘시게 했는지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왜 베드로가 기도할 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라는 이야기를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난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주님 가시는 곳이라면 감옥에도 죽는데도 따라가기로 이미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고 큰소리치던 베드로,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아까워하지 않겠다던 바로 그 베드로가 말입니다. 특히 마26:33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그는 다른 제자들을 무시해 가면서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 앞에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그였지만, 그가 가진 신념도 그 열정도 초라하게 모래성처럼 무너졌습니다. 그런 실패자요 패배자인 그가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하면서 기도에 관련된 말씀을 할 때마다 절박한 심정으로 말합니다.

 

벧전5:8절에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여기 보면 베드로가 자신이 지난 날 왜 무너졌는지를 말하는데 우는 사자같이 마귀가 자기에게 달려들었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자에게 있어 한 가지 생각은 오직 먹잇감을 찾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사단 마귀의 목적 역시 사람들의 영혼을 사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는 그런 일을 계획 없이 시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두루 다니며 시간, 장소, 환경, 분위기 등등을 살핍니다. 이는 한번 노린 먹잇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밀림의 수풀에 숨어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사자를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리 없이 다가서는 흔적 없는 발걸음. 먹잇감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는 날카로운 눈, 가까이에서도 눈치챌 수 없는 은밀한 잠복, 덮칠 때를 노리는 끈질긴 기다림... 그러다가 마침내 행동을 개시할 때의 그 신속함은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순식간에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어서 그것을 덮치고 물어서 찢어 발깁니다. 그런데 그 사탄 마귀가 지금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을 덮치기 위해 숨어서 노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틈을 보여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사탄 마귀의 밥이 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사망의 잠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있을 때 잘하십시오. 기도는 저축입니다. 여러분이 필요할 때, 하나님의 금고에서 상상도 못하는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해야 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종말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뜨거운 서로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8-9절을 보면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여기서 뜨겁게라고 번역된 엑테네라는 말은 열심히” “열렬한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는데, 단어는 원래 이 말은 '잡아늘인다' 하는 뜻입니다. 그냥 보통 열심히 아닙니다. 잡아 늘인다는 것입니다. 여기 고무줄이 있어요.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잡아 늘여요. 스프링의 탄성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까지 잡아 늘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상처난 인생들의 아픔을 감싸주는 것 - 이것이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줄 수 없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지난 날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얼마나 실수를 많이 했고 좌절 또한 수도 없이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끝까지 믿어 주었던 예수님의 등에 비수를 꼿는 일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은 그의 일생일대에 최고의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수치였습니다. 조그만 계집아이 말한 마디에 그가 가졌던 알량한 신앙이 그냥 무너진 것입니다. “너도 한 패지? 아냐 난 몰라, 나중엔 예수를 저주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을 향해 한 짓이 그 정도였으니, 누구 한사람 제대로 사랑하며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해서나 아무런 쓸모없는 무익한 인간이었을 뿐입니다. 그 무익하던 베드로가 새벽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는 대제사장의 집을 뛰쳐나가 통곡하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닭 울음소리로 인해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과 사랑 앞에 바로 섰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광경을 보면서 내가 있는 자리 -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상대를 사랑하는 삶 이것이야말로 건강한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교회 부교역자로 계시다가 지금 통탄에서 목회하시는 이종필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번은 그 분과 같이 목욕을 갔는데 옆구리에 큰 수술자국을 보고 놀랐습니다. 수술 자국이 왜 있는지 물어보니까 자기 형에게 신장을 떼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수술자국을 보니 가슴이 찡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할 때 그냥 사랑했습니까? 독생자를 아들을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적극적으로 우리를 사랑한 겁니다. 이렇게 우리 쪽으로 적극적으로 오는 겁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사랑하려면 자녀 쪽으로 가시고,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 쪽으로 가시고,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 쪽으로 가시고,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 쪽으로 가셔서 적극적으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 자 있을 때 잘합시다. 어떻게요? 서로 뜨겁게 사랑합니다. -

 

 

.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있을 때 잘해야 하는 것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해야합니다. 10-11절을 보시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여기 은혜를 맡은 청지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청지기가 누구입니까? 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모든 것을 내게 맡겨주셨기 때문에 내가 주인의 심정으로 주인의 것을 맡아서 주인이 뜻하는 바대로 잘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청지기는 묵묵히 일할 뿐,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청지기에게는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섬길 뿐입니다. 벧전 5:3절에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라는 말씀은 주인노릇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를 보듬어야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청지기는 봉사자입니다.

 

은사를 받은 대로 하면 됩니다.오늘 본문에도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은사 이상 봉사하라고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25장에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15절에 보면 "각 각 그 재능대로" 봉사하면 됩니다. 남을 보고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하면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갈 때 사울의 갑옷을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의 것으로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하면 됩니다.우리가 봉사할 때 내 힘으로는 잘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하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능력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선한 청지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해야 합니다.우리가 선한 청지기가 되어 서로 봉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봉사하는 희생정신은 아름답습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일꾼들이 이런 겸손한 섬김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배우려고 하는 자세, 그리고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동안에, 엄청나게 상처 받고, 그나마 있던 믿음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도 더 많이 성장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2020년도 마지막 주일을 영상으로 예배드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올해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전염병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고,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게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만, 분명한 것은 이것도 극복할 날이 분명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코로나를 이겨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안에 하늘의 기쁨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을 가지고 우리 주변을 보세요. 교우들이 보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 이 예배 마치고 나면 서로 카톡으로 안부 인사를 나누면 어떨까요? 목장이라든지 기관 그리고 찬양대 교회 학교 그리고 정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생각나거든 먼저 손 내미세요. 그리고 화해하세요.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 다시 말하면, 있을 때, 좀 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있을 때 잘합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고 또 우리의 마지막도 점차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끝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우리가 터득해야 합니다. 내일의 미래는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 결정되는 겁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열심히 서로 사랑하며 형제의 허다한 죄를 덮어줄 때에 주님도 우리의 죄를 덮어주며 우리를 보듬어 주실 것입니다. 원망보다는 감사, 불평보다는 이해로서 서로를 섬기시고 그리고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의 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십시다.

 

 

다시 정말 있을 때 잘합시다!!’ 기도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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