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 4:1-4. 2021. 1/24.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인사 - 당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오늘 적은 모임이지만, 감화가 새롭습니다. 2021년이 시작 되어서 한번도 교회에서 모임을 갖지 못한 채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오늘 24일 처음 함께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여러분, 교회는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무시무시한 로마제국의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언제나 Solo 정신으로 살지 않고 함께 주님이 주시는 은혜 앞에 살았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함께 모여 마음을 합하여 주의 뜻을 가지고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함께 나누는 제자 훈련과 그 비전을 가지고 복음을 온 땅에 펼쳐 나갈 때, 그 교회를 세상이 감당치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일상의 제한으로 우리의 삶은 너무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교회당에 출입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해야 했습니다. 이는 모든 교회 사역에 충격을 주었고, 교회 사역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 우리는 큰 과제를 떠안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회복입니다. 우리의 삶에 어디가 무너져있는지 자신을 살피고 교회의 지체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하기를 소망하는 결심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교회의 회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목자로서, 광야의 벌판에 서 있는 모세에게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모세야 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목자의 상징인 지팡이를 들고 있는지 몰라서 묻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열등감으로 가득 차 광야에서 의미 없이 살아가던 모세를 일깨우고, 그의 인생을 아름답게 사용하시기 위해 하셨던 주님의 질문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입니다. 이 아침 여러분의 손엔 무엇이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 여기 저기 희망을 잃은 채, 광풍처럼 불어닥친 코로나19로 인해 두려움과 염려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젠 내 손에 쥔 것 마져 사라져가는 불안한 나의 모습 속에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모세에게 던진 이 질문 앞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하는 질문은
Ⅰ.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결과가 무엇인가 하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여기 지팡이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목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보잘 것 없는 비천한 마른 막대기에 불과한데, 모세 자신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는 히브리인이었지만 바로의 공주 아들이 되어 왕족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왕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모세는 Thutmoses 3세 때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모세라는 이름이 히브리어로는 물에서 건진 아이 이지만, 이집트 언어로 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뜻으로,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애굽을 포함한 근동지방을 통치할 만한 능력과 지식과 힘을 가지고 있었고 시대의 흐름을 읽고 역사를 분석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했던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민족을 위해 힘썼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 민족들로부터 배척을 당했습니다. 자기 생명하나 건지기 위해 왕궁을 떠나 광야로 도망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왕자로 있다가 광야로 도망치게 된 모세는 아마도 마음에 수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게 아닌데, 원래 꿈꾸던 삶은 이게 아닌데……. 일어서야지, 일어서야지." 다시 한번 일어서야 한다는 꿈으로 몸부림쳤지만 양을 치는 목자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처절하리만큼 느꼈을 것입니다. 자신의 꿈과 희망을 모두 이 광야에 묻어야만 했습니다. 그의 활동무대는 더 이상 왕궁이 아니었고, 고상한 인격과 세계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 민족을 이끌고 나갈 수 있기 위해 받은 훈련들이 이 광야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단지 좋은 목초지가 어디 있는지를 살피고, 어린양의 울음소리에 긴장하고 달려가야 하는 평범한 목자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삶의 결과는, 자기의 꿈을 묻은 광야와 목자의 상징인 지팡이 뿐이었습니다.
지난 해 10월 우리나라 최고 갑부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죽고 난 다음 항간에 이런 유머가 떠돌았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나 저승에 가자 먼저 세상을 떠난 정주영 회장이 마중 나와 아는 체를 하며 ‘여보게 돈 5천 원만 꿔주게나?’라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러자 이건희 회장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 돈 한 푼도 없는데요.’ 그때 정주영 회장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네도 빈손으로 왔는가? 나도 빈손으로 왔는데...’ 누군가가 조크로 한 이야기지만, 쉽게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인생도 결국 그의 손에 아무것도 쥔게 없는 것,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젠 더 이상 희망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이 모세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Ⅱ. 모세 네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지금 묻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몸부림치며 살았던 결과가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결국 그의 손에는 달랑 마른 지팡이 하나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3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땅에 던질 때, 갑자기 뱀으로 바뀌었습니다. 광야생활에 익숙한 모세는 뱀의 무서움을 압니다.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서 피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뱀은 애굽의 상징입니다. 애굽 왕의 왕관 속에는 나라의 상징인 뱀이 그려져 있어서, 어려서부터 모세는 애굽과 뱀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뱀을 피하면서 모세는 바로 이 애굽에서의 권력과 죽음의 위협을 피해 광야로 도망쳐온 자기를 보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죽음의 위협 앞에서 피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저 뱀 앞에서 피할 수밖에 없는 나는 그런 존재구나. 이것이 나구나’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모세의 나이가 몇이죠? 80십입니다.
40년 전이면 혹시 모릅니다. 40년 전의 모세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왕자라는 지위도 있었고, 젊음이라는 힘도 있었습니다. 왕궁에서 배운 학문과 무예도 있었습니다. 한 민족의 지도자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80세의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세울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40년 전 왕자라는 지위와 다르게 지금은 아무런 지위도 없습니다. 가장 힘없는 목동입니다. 젊음도 사라졌습니다. 80세의 노인입니다.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40년 전에 가졌던 학문과 무예는 다 무용지물이 되었고, 그의 머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어찌 모세뿐이겠습니까?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강한 것 같지만 내면은 참 약한 존재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자체 발사대를 만들어 우주 로켓을 쏘아 달 까지 간다는 프로젝트를 내 놓으니 우리 인간은 참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 수 백만, 수억 개의 정보를 조그만 칩에 저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두뇌는 신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 1세기 전 만해도 평균 수명이 40세도 안 되던 나이를 100세까지 끌어올린 것만 봐도, 거의 하나님에 버금가는 능력이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대단한 존재입니다.
반면에 인간에겐 나약하고 작은 모습도 있습니다. 주체하지 못하는 슬픔 앞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서운 고독 앞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심각한 질병 앞에서 하얗게 질려 버리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지푸라기와 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가엾을 정도로 나약하다는 사실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을 향해 ‘상한 갈대요 꺼져 가는 등불의 한 심지’(마 12:20)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붙잡히지 않고서는 한순간도 지탱할 수 없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다 괜찮아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상처가 있고, 질그릇 같이 연약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고통을 그대로 끌어안고 살아야 할 때도 많고, 아무 이유도 모른 채 힘든 삶의 여정을 걸어가야 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가 가는 이 힘든 길의 이유와 과정을 안다면 좋으련만 우리에게는 그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론 내가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때로는 가기 싫은 길일지라도 묵묵히 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 현실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이 모세에게 다가오신 주님이 던진 질문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심각한 질문입니다. 지금 모세는 그 어디에도 기댈데 없는 절망의 상황이 아닙니까? 이 질문은
Ⅲ.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4절
자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여기 상식에 안 맞는 말씀을 하십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뱀은 머리를 잡아야지 꼬리를 잡으면 오히려 위험합니다. 아마 모세는 얼떨결에 뱀의 꼬리를 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꼬리를 잡자마자 뱀은 다시 지팡이로 바뀌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던지라’ 하실 때 던져서 뱀이 되고, 그리고 계속 ‘꼬리를 잡으라’ 하실 때 꼬리를 잡고, ‘쳐라․가져라’ 하셨을 때 ― 그때마다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그에 손에 들려진 그 마른 지팡이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너의 인생을 나에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를 때 우리가 할 일은 “기꺼이” 순종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부를 때 우리는 “기꺼이” 응답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도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는다 할지라도 그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하려 할 때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도 다른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뱀이 된 지팡이를 꼬리를 잡으라고 하는 말씀을 우리가 하나님의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그건 너무 억지 같은 명령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고, 모세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게 됩니다. 출4:17절에 보시면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말씀합니다. 모세가 다시 손에 잡은 지팡이는 이전의 지팡이가 아닙니다. 새로 붙잡은 지팡이는 뱀이었는데 하나님이 잡으라고 하셔서 두렵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붙잡은 뱀이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4:20절 말씀에 보면 “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지팡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세의 손에 들려진 말라깽이 나무 지팡이가 금지팡이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그대로 말라깽이 나무 지팡이입니다.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땅에 던져진 모세의 지팡이는 더 이상 모세의 지팡이가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양을 칠 때 쓰던 평번한 지팡이였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고, 그 지팡이가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면서 수없이 많은 기적을 일으켰는데, 모세의 능력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모세의 손에 들려진 하나님의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바로 앞에 가서 기적을 베풀 때에도 지팡이로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까 하수의 물이 다 피로 변했습니다. 홍해를 가를 때에도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리키니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낼 때에도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까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에 이스라엘을 이기게 만든 것이 바로 모세의 손에 들려져 있던 하나님의 지팡이였습니다. 그 지팡이가 단순히 모세가 양치기 할 때 쓰던 모세의 지팡이였다면 그런 능력을 나타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이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아침에 우리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십니다. 여러분, 그 때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데요. 제 친구에게는 자랑할 것이 많이 있지만,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요.”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지팡이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지팡이는 있습니다. 아직 남은 건강, 아직 다 쓰지 않은 젊음, 아직 건재한 삶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어린 소년 다윗은 사울 왕의 멋진 갑옷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울 왕의 긴 칼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있는 것, 곧 물매질로 골리앗과의 싸움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다윗은 남에게 있는 긴 칼이나 멋진 창이나 아름답게 보이는 갑옷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물매질로 구척거인 골리앗을 한 방에 날려버렸습니다. 여러분, 그 동안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습니까? 코로나 19로 이젠 작년 한 해 동안 실패하셨습니까? 여러분들 손안에 없는 것이 많습니까? 없는 것, 부족한 것, 잃어버린 것 때문에 고민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믿음으로 승부를 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