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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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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그리고 그 이후 - 도마 ② (요 20:24-29). 2021. 4/18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1-04-18 | 조회: 377

부활 그리고 그 이후 도마 ② 20:24-29. 2021. 4/18

 

요즘 교회는 대 심방을 하고 있습니다적게는 하루에 3가정도 하고 많게는 7-8가정을 할 때도 있습니다코로나로 대면 접촉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이 때에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카카오톡 안에 페이스 톡을 통해 비대면 심방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나이가 든 분은 좀 불편하지만이젠 이 작은 스마트 폰이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2016년도 해외 리서치 기관인 디스카우트의 보고서가 있는데 여기에 보면 스마트폰 이용자는 하루 평군 2,617회를 만진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극단적인 사용자는 일반 사용자의 두배인 5,400번 이상의 터치를 한다는 내용입니다연간으로 환산하면 평균 100만번 이상 스마트 폰과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러한 영향으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지금 세대들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소통의 도구가 되었습니다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이 즐기고 좋아하며 자랑하고 싶은 사진이나 영상을 실시간으로 업로드하며 다수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젊은 세대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삶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그러나 하루에 2,617회 이상 열어보고 있는 스마트 폰의 작은 화면 속 그 어디에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친밀감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그 어디에도 서로를 안아주고서로를 만져주며서로를 위로해 주며 울어주는 살랑은 보이지 않습니다그만큼 외로운 시대입니다.

 

지금은 어느 시대보다 영적인 갈증이 심각한 때입니다세상의 생수를 거듭마셔도 갈증 해소는 그 때 뿐입니다홍수가 나면 사방이 물로 가득찹니다하지만 정작 그 물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여전히 생수가 부족한 것입니다. 어느 때보다 생수에 목이 마른 시대이지만우리 인생의 갈증을 해갈 할 수 있는 생수는 이 땅이 아닌 하늘로부터 오는 생수뿐입니다오늘 우리 시대에 아픔이 무엇인지 아십니까아무리 최첨단의 시대에 살아도 마음의 벽이 있는 시대에 특징은 상대를 믿지 못할 뿐 아니라 의심하며 불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비단 이것은 오늘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이 들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요20:19절에 여전히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곳에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주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영으로 생각했습니다늘 본문은 우리가 읽기에 기분 좋게 영으로 생각했다.’고 표현했지만정확하게 번역한다면 유령으로 생각했다.’는 말입니다지금 제자들은 믿음이 없는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천사의 말을 전해준 여인들의 말을 들었음에도베드로와 요한이 직접 빈 무덤을 보았음에도심지어 엠마오로 갔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뵈었다고 증언함에도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의심을 갖고 있었고여전히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도마라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그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결코 믿지를 않습니다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해도 오히려 더 매몰차게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며 손사래를 칩니다사람들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이해되어야 믿으려고 합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본문에 나오는 도마가 그런 사람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자기에 가두어져 살아갑니다그래서 의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믿는 자가 되라

24절에 보면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여기에서 디두모'란 `쌍둥이' 의미합니다예수님의 제자중 도마가 누구와 쌍둥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쌍둥이였던 도마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던 그 역사적인 현장에 무슨 영문인지 있지를 않았습니다그래서 본문 25절이 이렇게 계속되고 있습니다"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도마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신다 할지라도예수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자신의 손으로 확인하기 전 까지는 결코 믿을 수 없노라 단언하였습니다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손바닥에 있는 못 자국을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밀어 넣어서 그 창에 찔린 자국을 실제로 확인한 다음에라야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당신들 이야기는 믿을 수가 없다당신은 유령을 봤어진짜 부활했다면 몸이 있어야 되지 않는가따라서 몸을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로 믿을 수가 없다." 도마의 이런 마음을 주님이 아시고 이 사건이 있는 여드레 후에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셨습니다. 26-27절에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여러분한번 생각해 보세요지금 자기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자기 눈으로 보지 않고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을 수가 없다고 외치던 이 도마의 이 어리석은 모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가오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지금 자기 앞에 계신 주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셨기 때문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부활의 주님 앞에 다시 다가 오셔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이 주님의 음성 앞에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여러분이 이야기를 아십니까? 프랑스의 샤를르 푸코라는 군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에 들어가 선교하다가 원주민이 쏜 총에 순교했습니다그분이 쓴 사하라의 불꽃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우리가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까그런데도 왜 그리스도인들이현실적인 삶 속에서 성경과 전혀 동떨어진 행동을 합니까그 순간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그 어떤 순간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보는 이것이 믿음입니다여러분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는 만큼 그 사실을 내가 인식하며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믿음의 삶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가인이 동생을 죽였습니다아무도 없는 빈들에서 죽였습니다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쌓인 가인에게는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그처럼 하나님을 철저하게 경외하던 다윗은 남의 아내를 데리고 궁중의 밀실에서 통정했습니다치밀어 오르는 욕정 앞에서 다윗은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애굽에 도망갔을 때 아무도 위협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습니다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가친척을 떠나는 용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객지의 까닭 없는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그분을 인식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면여러분이 아무리 선교와 봉사 그리고 섬김의 행위를 아름답게 행한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 앞에서욕정 앞에서두려움 앞에서세상 사람들과 똑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은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그것이 참된 신앙입니다오늘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말씀 앞에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도마가 이렇게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28절에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님이 자기의 주인이시고 자기의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우리 개역성경에는 감탄형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도마는 예수님의 상처자국을 보는 순간 감탄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 나의 주님나의 하나님’ 예수님이 자기의 주인이시고 자기의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그는 비로서 자기를 에워쌓았던 불신의 비늘이 벗겨지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변함없이 받아주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구원의 가격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마르지 않는 하늘의 생수를 마신자의 특징은 바로 ‘구원의 감격입니다내가 어떤 노력이나 수고를 통해서 구원을 얻었다면 우리는 구원의 감격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대가로 당연히 얻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우리의 그 어떤 수고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신앙고백을 할 때우리는 구원의 감격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그런 구원의 감격을 안고 살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신앙인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런 구원의 감격으로 살 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찬송을 부르며 고난의 아픔을 견디며 살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여러분지금 여러분의 마음에는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까도마!! 그는 비로서 부활하신 그 주님을 만남으로 더 이상 연약한 실패자의 삶에 머물지 않습니다.

 



부활 신앙만이 나의 삶을 바꾼다. 29

29절에 보면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얼핏 보면 예수님께서 도마를 꾸짖는 말씀처럼 보입니다그러나 원문을 보면 이것은 꾸중이 아니라 주님께서 도마를 깨우쳐 주시기 위한 깊은 사랑의 권면인 것을 알게 됩니다원문은 주님께서 다정스레 도마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도마야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지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복이 있단다" `보지 않고도 믿는다'는 것은 결코 맹목적 신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핍박과 죽음이 두려워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비겁하게 틀어박혀 있던 제자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방문을 박차고 나와서 예수 살아나셨다고 외치는 사람으로 바뀐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자신들을 그토록 조롱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당당하게 예수님을 증거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것 때문입니다.

 

부활의 황홀한 능력 때문입니다그래서 많은 분들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그 주님 붙잡고 이 땅에서 주께서 맡긴 사명을 당당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도마!! 그는 더 이상 과거에 메이지 않습니다우리의 하나님은 한번도 택한 자녀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는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그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 앞에 한생을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그가 한 신앙고백대로 인도에서 선교사역에 최선을 다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에는 인도의 힌두교인들에 의해 창에 찔려 순교를 당했습니다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했던 것처럼 순교를 당했습니다도마의 선교이후 인도에는 기독교가 지금까지 2000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힌두교나 이슬람의 엄청난 핍박 가운데서도 현재 인도의 13억 가운데 기독교 인구가 약 7000만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도마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열매가 된 것입니다현재 인도의 기독교인들은 도마의 순교 자리에 도마 순교기념교회를 세우고 도마를 통해 역사하시는 그 부활의 예수만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힌두교도들 앞에 당당하게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갑니다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기독교문화권의 나라들에서는 아이들의 이름을 성경인물의 이름으로 짓는 경우가 흔합니다그 중에서도 남자아이들의 경우신약성경의 사도들의 이름이 가장 많습니다베드로를 뜻하는 피터(Peter), 바울을 뜻하는 폴(Paul), 요한을 뜻하는 존(John) 그리고 야고보를 뜻하는 제임스(James) 등입니다이들이 사도들 중 주연급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그런데 이들 못지않게 많이 사용돼 온 이름이 도마를 뜻하는 토마스(Thomas)입니다예를 들어 중세를 대표하는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해서 토마스 제퍼슨토마스 에디슨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게다가 토마스의 애칭인 톰(Tom)과 토미(Tommy)까지 합하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사도들의 이름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심많은 제자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더 이상 연약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갑니다우리도 어떻하면 이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전15: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왜 사도 바울은 부활에 대한 말씀을 하면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하는 것입니까그 이유는 매일 부활 을 경험하며 살기 위해서입니다매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매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는 부활을 경험하며부활의 능력으로 살 수 있습니다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지 않기 때문에 부활의 능력을 갖지 못한 채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자처럼 사는 것입니다2:20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렇습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영적 은혜 안에 살게 됩니다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만 다시 사는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도마는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이제 오늘 우리 시대에 부활의 증인은 바로 우리들이어야 합니다부활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부활을 경험해야 합니다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을 통해서 죄된 나의 자아가 죽고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남으로 부활을 경험해야 합니다그러면 우리는 세상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거나 두렵지 않는 담대한 부활의 증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길 원하십니다우리는 부활의 증인이기 때문입니다이 부활의 능력만이 이 시대에 복음의 역사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이 은혜가 넘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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