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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우리의 참된 스승 (요13:12-17) 2021. 5/16.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1-05-16 | 조회: 376

우리의 참된 스승 요13:12-17 2021. 5/16. 주일 설교


사람이 한 세상을 살고 가면 오래 산 것도 부자로 산 것도 권력자로 산 것도 다 무의미합니다문제는 그가 떠난 후 무엇을 남겼는가가 문제일 뿐입니다한 부자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재산을 관리하는 변호사에게 기자가 그는 도대체 얼마나 남기고 갔는가?”라고 물었습니다변호사는 짤막하게 다 남기고 가셨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그러나 문제는 그가 남긴 것의 내용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남기고 살아가십니까과연 내가 살고 간 그 자리에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청교도들은 재산을 남기고 가는 것을 가장 큰 어리석음으로 간주했다고 합니다그래서 그들은 삶을 떠나기 전 재산을 가치 있게 쓰도록 훈련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청교도들은 다른 무엇보다 경건한 영향력을 남기고 가는 인생을 가장 가치 있는 인생으로 평가했습니다예수님은 짧은 인생을 살고 가셨지만 십자가를 남기셨습니다그 십자가는 자신에게는 희생이었지만 그 희생의 결과는 인류의 희망인 영원한 생명인 구원이었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과거에는 '스승'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존경심이 우러났습니다스승의 그림자는 감히 밟지도 않았잖습니까그만큼 무게가 있었고희생의 모습이 너무도 귀하게 여겨졌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점점 스승이라는 말이 사라져 갈 뿐만 아니라 한때는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에 있습니다사실 오늘날 스승의 날은 오늘날 많은 스승들이 탄식하며 보내는 날이 되었습니다. 충북대학교의 어떤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한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나는 스승의 날을 무척 싫어한다나만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수많은 선생님들이 스승의 날을 부끄러워하고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 나는 스승의 날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단 하나의 일념(一念)으로 긴 하루를 보낸다.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무엇이라 해도 스승 한 사람의 영향력은 그의 지도를 받은 제자의 삶 전체를 바꾸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본문에도 보시면 아시겠지만예수님은 위대한 스승이 이십니다우리가 살펴 볼 본문의 내용에서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십니다저녁을 잡수신 후에 겉옷을 벗고수건으로 허리를 두르십니다대야에 물을 떠다가 삼년 동안 함께 했던 제자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하나씩 씻겨주십니다그리고 14절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위대한 스승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 존경받는 스승은 삶의 방향을 가르쳐주는 사람입니다.


여기 제자들의 발을 씨기는 모습 속에 제자들이 받은 충격을 굉장했을 것입니다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한마디로 출세였습니다요즘 나라의 요직을 맡기 위해 국회 청문회에 선 사람들을 보십시오학력이나 위치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배경은 대한한 스펙을 가진 자들입니다그러나 그 과정 속에 정직하지 못했고성공이라면 출세라면 갖은 방법을 다 써서라도 움켜잡는 모습 속에 청문회에서 그 민낯을 다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지금 제자의 발을 씻기는 모습은 세상을 섬기라는 것입니다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으로 살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세상은 우리에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고 말합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높은 자리를 탐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은 자리에 설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세상은 우리에게 으뜸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으뜸이 되려하기보다는 종의 자리에 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것은 속도와 방향입니다지금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한 순간도 긴장감을 놓쳐서는 안되는 구조 속에 살아갑니다과거에 진공관 시대에서는 상상도 못할 것들을 누리며 살아갑니다그러나 이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방향입니다왜 공부해야하는 지왜 출세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방향이 서야 이 사회가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이름은 기억합니다그러나 보톨도 지오바니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지오바니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입니다미켈란젤로는 나이 14살에 당시의 유명한 조각가인 지오반니의 문하생이 되고자 그를 찾습니다그의 놀라운 재능을 본 지오반니는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기술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지오바니가 말합니다네 기술만으로는 안된다너는 네 기술로써 무엇을 위하여 쓸 것인가 먼저 분명한 결정을 해야 된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나가서 두 곳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처음으로 구경시켜준 곳은 바로 술집입니다. “스승님술집 입구에 아름다운 조각이 있어요.” “이 조각은 아름답지만 조각가는 술집을 위해서 이 조각을 사용했단다.” 이 스승은 다시 어린 미켈란젤로의 손을 잡고서 아주 거대한 성당으로 가서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여주었습니다너는 이 아름다운 천사의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아니면 저 술집 입구에 있는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똑같은 조각이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또 하나는 술 마시는 쾌락을 위해서 세워졌단다너는 네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느냐?” 스승의 물음에 어린 미켈란젤로는 세 번씩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하나님을 위하여하나님을 위하여 쓰겠습니다!” 그 결과 그는 천지창조라는 위대한 예술품을 탄생시켰습니다위대한 스승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자가 아닙니다처세술을 가르치는 자가 아닙니다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물질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우쳐 주어야합니다아무리 좋은 재능과 기술도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무가치한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이라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존경받는 스승은 본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교육은 말로써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위대한 스승은 바로 섬김의 본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사실 본문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예수님은 누군가 자신의 제자 중에 발을 씻기는 섬김을 실천하는 모습을 기다리고 계신 것으로 보여 집니다일반적으로 유대의 관습에 의하면 발 씻음은 샌들을 신고 다니던 시절입니다더위가 심한 사막지대에서는 손님들에 대한 예절이어서 집 문 곁에 물동이와 대야를 준비했다가 귀한 손님이 도착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섬김의 실천이었던 것입니다그런데 어떤 제자도 이런 섬김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요한복음13:3은 저녁 먹는 중에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사실 발 씻음은 저녁 전에 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아마도 예수님은 그때까지 제자들의 행동을 기다리고 계셨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자들 편에서 아무런 행동의 징후가 없자 본문이 시작되는 4절에 보면 그분은 마침내 저녁 드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십니다아마 저녁 식사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그러나 주님은 먼저 서둘러 자신의 식사를 끝내시고 이 소중한 기회를 섬김을 가르치는 기회로 사용하고자 하신 것입니다그리고 마침내 이 실천 후에 주님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시지 않으셨습니까? 15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그렇습니다그분의 실천은 '본 '(example)이었습니다.

 

의 의미가 무엇입니까누군가가 따라 오게 하려는 것 아닙니까누군가가 누구입니까그의 제자들예수의 제자들이 아닙니까제자의 의미가 바로 따라가는 자들”, ‘배우는 자란 뜻이 아닙니까? 우리가 자신들을 예수의 제자로 자처한다면 예수의 본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그런데 우리가 왜 그렇게 못할까요자신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내 한 몸 조금 편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작은 고난들을 견디기가 싫은 것입니다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20세기 초 일본에서 갓 목사안수를 받은 나가노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당시 일본은 기독교인이 거의 없었던 때라 개척지를 물색하면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수십리 지역에 교인이 하나도 없는 가나사와라는 지역을 택하고 이 청년목사는 텐트를 치고 교회를 시작했습니다자기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목회를 시작했는데 3달이 지나도 6달이 지나도 어느 누구하나 전도가 되지 않았습니다대부분 이쯤되면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혹시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인가하는 별의별 생각이 있었지만 그 자리를 옮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 자리에 보내 주는 것을 믿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아내와 아이와 예배를 드립니다어느 수요저녁 때 장막의 커텐을 제치고 청년하나가 들어 왔습니다. 5년만에 처음 예배 가운데 대하는 사람인지라 그 어느 때보다 더 정성을 드려 설교를 했고 예배 후 그 청년과 함께 식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식사도중 갑자기 이 청년이 윽하고 피를 토합니다폐병환자였습니다


나가노 목사는 갈등합니다이런 괘씸한 자가 있나” 당시 폐병은 죽음을 상징했고또한 전염성이 매우 컸습니다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가 처음 보낸 준 사람이니 너는 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라는 말씀 앞에 마음을 정리하고 피를 다 닦아 낸 후 다시 음식을 가져다가 먹게 했습니다그 청년을 일본의 유명 정치인의 사생아로 태어나 오랜 방항 끝에 신학교에 다니다가 폐병을 얻게 되었습니다학교를 휴학하게 되었고다니던 교회에서도 그 청년을 받아들이지 않고 낫고 나면 오라고 파문했습니다그 순간부터 분노와 서글픔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성령을 부정하고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나는 누구에게 나의 치료비를 요구하지 않는다나는 누구에게 나의 폐병을 옮길 만큰 경솔한 사람이 아니다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폐병환자인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대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런 기대와는 달리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사람이 없음을 보고 결국 자살을 결심합니다내가 살아서 무엇하겠는가그런데 자살전에 한사람일 얘기를 했습니다북쪽 가나사와 지방에 가면 나가노라는 목사가 있는데 한번 그 목사를 찾아가보십시오이 청년을 찾아갔습니다그 날 저녁밥을 먹다가 피를 쏟은 것입니다남들이 다 외면했던 이 버려진 한 영혼의 고통을 가슴에 함께 아파하며 피를 닦아 내며 다시 밥을 지어주는 이 사람 앞에 이 청년은 주님을 다시 만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그는 주님의 은혜에 의해서 몸인 완쾌되었고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유명한 가나와 도요히꼬 목사가 됩니다그리고 그 역시 자기 동족가운데 가장 어려운 지역에 들어가 빈민을 위해서 섬김과 희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 빈민사역 중에는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고통하는 것이 변비입니다항문에 변이 차돌처럼 굳어있어서 변을 보지 못해 고생고생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손을 그 항문을 후벼줍니다만 아무리 해도 되질 않아서 가나와 도요히꼬 목사님은 항문에 자기 입으로 침을 만들어가며 혓바닥으로 차돌처럼 굳어있는 변을 녹여서 빨아냅니다그 사실을 알게 된 일본기자가 목사에게 묻습니다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저는 배운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은 제가 각혈한 핏덩이를 닦아주셨습니다그 분이 하신 것에 비하면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그 목사가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중국의 빈민들을 위해서도 똑같은 삶을 살았습니다당시 장개석 총통의 부인인 송혜령 여사께서 크리스챤이었기 때문에 이 도요이꼬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그 분을 모셔서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1945년도에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군대와 함께 민간인들이 철수를 할 때 일본인들이 점령한 나라에서 현지인들로부터 테러를 당한 사건이 많았습니다그렇지 않습니까오래 세월동안 얼마나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까어떻게 곱게 내 보내겠습니까우리 나라에서도 저들이 나갈 때 제일 지독하게 당한 때가 사할린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그런데 일본 폐망 당시 중국땅에 있던 일본 민간인 숫자가 200만명에 다달았습니다.


그 200만명 중에 단한사람도 테러를 당하지 않았습니다천황의 항복선언과 동시에 장개석 총통이 포고령 제1호를 내렸는데 철수하는 일본 민간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나 물자를 빼앗거나 테러를 한 자는 중형에 처한다는 것 때문에 일본인들은 무사할 수 가 있었습니다그 배후에는 도요히꼬 목사님의 감동이 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여러분나가노 목사는 평생의 한명의 그리스도인 밖에 배출시키지 못했습니다그러나 요즘처럼 소외도고 잊혀지기 쉬운 한 영혼을 주님의 심장으로 품을 때 도요히꼬가 나오게 되었고이와 같은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게 된 것입니다이 한사람의 영향력이 패망한 일본을 구한 것입니다그는 자신의 선생인 나가노 목사한테 배운데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죄더미 속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10:45절에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바로 섬김입니다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언제나 남을 섬기는 분으로 사셨습니다예수님은 섬기는 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예수님께서 섬김의 절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어놓으셨다는 말입니다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받으실 수 있는 대접을 포기하셨습니다. 대신 가장 낮은 사람인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때로는 오해를 때로는 천대를 받으셨습니다그러나 기꺼이 그렇게 하셨습니다우리를 섬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존경받는 스승은 사랑의 눈물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제자들 가운데 누가 있습니까유다 아시죠유다는 지금 예수를 배반하려는 계획을 다 짜놓고 있습니다예수님은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유다는 배신자입니다두 얼굴을 가진 사람입니다표리부동한 사람입니다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그런 그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보통 사람 같았으면 손이 덜덜덜 떨렸을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유다의 발을 다른 제자들처럼 다 씻겨 주셨습니다그때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발을 척 내 맡기는 유다를 볼 때 속에서 치가 떨렸을 것입니다그런데도 예수님은 나머지 제자들에게 눈치 채지 않게 초연하게 다 씻어주셨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시간까지 유다를 기다리셨습니다발을 씻겨 주셨고 기회를 주셨습니다그런데도 유다는 천연스럽게 행동하며 회개의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자기를 파는 제자에게까지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 아닐까요이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 없습니다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입니다그 강하고 뜨거운 사랑이 독생자까지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것입니다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사랑입니다그 사랑으로 이 땅에 선물처럼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여러분아무리 인간의 지혜가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아무리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보다 큰 힘은 없습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다듬어져가고 변화되어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그리고 교사 여러분하나님은 오늘도 존경받는 영적 스승을 찾고 계십니다인생의 방향을 가르쳐 주는 스승삶으로 본을 보여주는 스승그리고 눈물과 사랑으로 헌신하는 스승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찾고 계십니다바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찾는 영적 스승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여러분을 통하여 자녀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교회학교 교사들을 통하여 이 시대를 살리는 영향력 있는 주의 자녀들이 나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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