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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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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다움이란 (단1:8, 3:17-18, 6:10) 2021. 5. 23.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1-05-23 | 조회: 412
청년다움이란 단1:8, 3:17-18, 6:10 2021. 5.23. 청년주일

 

청년 여러분, 오늘 성년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교회 청년들이 성년 - 어른-이 된 것을 온 성도들 앞에서 확인하고 이들을 축복하고 기도해주고 격려해주는 뜻 깊은 주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성년식을 갖는 청년들과 선. 후배 모든 동성의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이는 들었지만, 갈렙같은 청년이 많은 우리 교회에 모든 성도에게도 동일한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나이 불문하고 모두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요즘 미래의 꿈을 꾸며 불가능이 없어 보이는 청년들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들이 어느 선교회에서 자신들의 고민을 쏟아놓았는데 공통점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1.나는 뭘 먹고 살 것인가? 진로에 대한 고민 2.나는 누구랑 같이 살 것인가? 결혼에 대한 고민 3.나는 무엇을 믿을까? 신앙적인 갈등과 고민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공통적인 고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상황이 너무 힘드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코로나 19로 인해서 경제적으로 더 힘들고, 공부하기 더 힘들고, 취직하기 더 힘들고, 살아가기 더 힘들지 않습니까?

 

이 아침 우리가 함께 보는 다니엘서의 말씀을 통해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은 지금부터 26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다니엘이라는 청년도 우리보다 더 힘든 시절을 보낸 사람입니다. 그는 불과 15세 전후의 나이에 침략군 바벨론에게 불모로 잡혀간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생전에 고국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평생을 이국땅에서 볼모의 신세로 살았습니다. 당시에 그가 끌려간 바벨론은 하나님이 없는 사회였습니다. 그 나라는 온 천지가 죄악으로 캄캄했고 더럽고 추악한 냄새만이 가득한 이방국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90세가 넘도록 그 지역에 살았고 정권이 세 번이나 교체되는 정치적인혼란 속에서도 새로 들어선 정권과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높은 위치를 지켜갈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이란에서는 다니엘을 선지자로 추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사의 수산성이 있던 이란의 슈스(Shush)라는 도시에 다니엘의 영묘가 있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인 이란 사람들이 영묘를 조성해 놓고, 정성을 다해서 참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이란이 팔레스틴 지역을 놓고 엄청난 대립을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중앙아시아인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라고 하는 도시에도 다니엘의 묘가 있습니다. 다니엘의 시신 일부를 가져다 묘를 만들고, 정성을 다해서 참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유대인입니다. 어떻게 유대인과 앙숙인 이슬람 사람들이 자기조상도 아닌 사람의 영묘를 이토록 지극정성으로 받드는 것일까요? 다니엘은 이슬람교가 시작되기 수백 년 전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저들은 다니엘을 자기들의 선지자로 숭배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던 사람 다니엘을 높이신 것입니다. 비록 포로로 끌려왔어도 왕들의 총애를 받아 높은 자리에 올랐고, 높은 자리에 올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정치를 잘해서 그 땅의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고, 그가 남긴 영향력 때문에 비록 종교가 달라도 자손 대대로 존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 5: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다 보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우리를 높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 그대로 다니엘을 높이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저를 높이셨습니다. 그것도 전무후무하게 높이셨습니다.오늘 우리 주변에 스스로 높아지려 몸부림치다 추한 꼴이 드러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대단한 것처럼 행세하다가 민낯이 드러나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처럼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높아지려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겸손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높이실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하나님께 높임을 받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다니엘을 주목하셨고, 다니엘을 높이셨을까요?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Ⅰ. “뜻을 정하여”첫 번째 단서는 오늘 본문 8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여기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라는 부분입니다. 이 말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한다는 확실한 원칙 말입니다. 손해가 있어도 불이익을 당하여도 남이 나에게 뭐라도 해도 어려움을 당해도 나는 이미 뜻을 정했다.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간다.’는 말입니다.  단지 먹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들이 가졌던 신앙의 정체성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쾌락과 환락으로 떨어지게 하고 우상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는 왕의 진미를 거절해버렸던 것입니다. 용기있는 거절입니다. 이 거절이 주어지는 불익이 어떤 것인지 왜 몰랐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도 공생애 첫발을 내딛으실 때,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때 마귀가 다가와 먹는 문제 명예 무제, 신앙의 문제를 무너뜨리려고 시험을 합니다. 그때마다 말씀으로 이 위기를 벗어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끊임없는 세상의 유혹이 나를 흔들 때마다 뜻을 정하여 이 어려움을 견디며 이겨나가기를 바랍니다.

 

 Ⅱ.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3장에 보면 이들에게 또 한번의 위기가 옵니다. 저는 우리 청년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롤러고스트를 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위기가 오고 우리의 삶을 흔들게 만듭니다. 그때마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지금 느브가넷살은 자신의 통치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두라 평지에 자신의 신상을 세우고 그 우상 앞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절하라고 합니다. 3:15절을 보면 느브갓네살 왕이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누가 감히 내가 하는 일을 가로 막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어떤 신이 있어 내 권위를 부정하며 내 하는 일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이 때 다니엘의 세 친구가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17-18절에 ‘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여기서 ‘풀무 불’이란 풀무로 바람을 일으켜 불을 피우는 요즘 말로 용광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소 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해서 이 세 사람을 끌고 가던 사람이 풀무 불 밖에서 불에 타죽을 정도로 뜨거운 용광로였습니다. 이 두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리아실지라도’ 라는 자세로 풀무에 들어간 저들의 모습 속에 어떤 생각을 갖습니까?

 

하박국 3:17-18절 말씀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비록 내 바람대로 내 믿음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찬양하며 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신앙의 깊이가 마치 바다처럼 깊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을 향하여 전적인 신뢰를 보냈던 이 세 청년을 하나님께서는 끝내 외면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세 청년이 풀무 불에 던져지자마자 불속에 뛰어들어 그들을 껴안고 구원하신 분이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살리려 하나님 그 분이 십자가 불속에 뛰어들어 우리의 무거운 죄의 짐을 가슴에 끌어안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셨던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Ⅲ. “알고도”

다니엘서 6장에 보면 그의 생애 또 한번의 위기를 만납니다. 이제 그는 이 땅에 모든 자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압니다. 이 신앙을 송두리째 뽑혀지는 위기를 만납니다. 단 6: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 장면의 아마 다니엘에게 엄청난 신앙의 위기였을 것입니다. 당시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총애하여 셋 중의 최고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이 시기하여 다니엘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다니엘의 유일한 약점인 신앙적 부분을 악용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왕 이외의 사람이나 신 앞에 절하는 자는 사자굴에 넣기로 하자고 왕을 설득했고, 왕의 재가를 받아서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를 전국에 배포했습니다.

 

다니엘은 총리였기 때문에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이 일로 다니엘은 조서대로 체포되었고,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은 하던 대로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져서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기도한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불굴의 신앙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다니엘을 주목하시고 높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의 삶도 만만치 않습니다. 진로 문제 결혼 문제, 신앙을 지키기 힘든 것들이 나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휩쓸려 청년 다움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스기니스가 쓴 ‘저항’이라는 책을 보면 오늘 우리 시대를 “신앙의 변절을 요구하는 시대”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의 시대는 신앙의 포기를 요구하는 시대였다면, 오늘은 신앙의 변절을 요구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의 시대에는 박해를 통해서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면, 오늘은 유혹과 미혹을 통해서 신앙의 변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니엘처럼 박해에 저항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유혹과 미혹으로 우리의 신앙을 변절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저항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롬 12:2에서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따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한 마디로 ‘저항’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풍조에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는 세상풍조에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다며 추구하는 세속주의 세상풍조에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세속주의 물결이 거대한 해일처럼 모든 사상, 가치관, 사람들의 생각을 뒤덮어버리는 시대 속에서 우리의 올바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아무도 가지 않은 바다 한 가운데 한반도 크기의 7배에 달하는 엄청난 섬이 생겼습니다. 인공위성에서 사진을 찍어 급히 확인해 본 결과 그것은 쓰레기가 저절로 모여서 만들어진 섬이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전 세계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바다의 조류에 저항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다 한곳에 모여 섬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조류가 만나는 곳은 때로 난파선의 무덤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법칙에도 해당됩니다. 조류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쓰레기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시대의 조류에 흽쓸리고, 세상의 힘에 굴복해 떠다니다 보면, 저절로 쓰레기 섬, 난파선들의 무덤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조류에 저항 없이 쓸려 다니는 자의 종말은 세상조차 외면하는 무익한 존재가 되는 것뿐입니다. 이런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당히 시류를 이용하거나 피하는 것으로는 교활한 세상에 백전백패 할 뿐입니다. 신앙인으로서 후회 없는 삶을 움켜쥐는 비결은 용사처럼 시류를 돌파하고 믿음을 가지고 나에게 맡긴 하나님의 사명을 당당하게 성령을 의지하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뜻을 정한다는 것,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자세를 가진다는 것, 또한 조서의 명을 어기고 엎드려 기도하며 산다는 것, 어느것 하나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내 인생을 붙잡고 그 어려움을, 그 문제를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죽고 사는 일, 우리의 성공하고 실패하는 일, 우리의 행불행 모두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은혜 앞에 청년다움을 기백을 세우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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