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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을 헤쳐 나가며 - 광복 (욘1:11-17) 2021. 8/15. 76주년 광복주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1-08-16 | 조회: 297

풍랑을 헤쳐 나가며 - 광복 욘1:11-17. 2021. 8/15. 76주년 광복주일

 

코로나 19로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한지가 한 달이 되었다가 이처럼 예배당에 나와 성도들이 모여 광복 76주년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는 감격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개인이든, 단체이든, 사회이든 언제나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닙니다. 때로는 정말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기억들, 가슴 아픈 기억들, 고통스런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런 기억들은 빨리 잊을수록 좋습니다. 그런 아픈 과거에 매여 있다보면 결코 앞을 향해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잊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을 잊고 살아갈 때 그 잊어버림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손해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해방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피를 흘려 자유를 찾으려고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저는 오늘 요나가 탄 배가 풍랑 속에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76년 전의 우리나라 모습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 먼저 광복을 기념하면서 왜 우리가 나라를 빼앗겼는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본문 1:4절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여기 배가 거의 깨지게 되었다,’는 이 말은 다시스로 가기 위해 배를 탔던 요나에게 엄청난 위기를 만난 장면입니다. 그것도 바다 한 복판에서 풍랑 속에 허무하게 부서져버리는 이 배의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한 순간에 저들의 손에 넘어간 것은 우리 민족의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 모습과 같습니다. 구한말 조선은 힘을 기르지 못했고 주변 강대국은 우리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11년 전 오늘, 1910829일은 우리나라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날이기 때문입니다. 섬으로 된 일본은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넘봐 왔습니다. 그러다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우리나라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아, 우리나라에 보호조약을 체결할 것을 강요합니다. 고종황제를 비롯한 한규설, 이하영 등이 분명하게 반대의 뜻을 밝혔지만, 일본은 조약에 찬동한 이완용 등 을사 5적만으로 회의를 열어 을사늑약(을사조약)을 체결하고 맙니다. 그것이 19051117일이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우리나라는 모든 행정권과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사실상 통치권을 일본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는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5년 후인 1910822일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이 체결되고, 일주일 후인 1910829일 이 조약이 공포되면서 우리나라는 국권을 일본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날을 경술국치일이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829일이 무슨 날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답을 잘 못할 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2006년 강우석 감독이 만든 한반도라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 첫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재야사학자인 최민재가 주부 문화강좌에 온 아주머니들에게 ‘1117일일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묻습니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로즈데이 등 정체불명의 이상한 날들은 다 기억하는 아주머니 학생들은 강사가 묻는 1117일은 무슨 날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화가 난 최민재는 문화강좌에 온 아주머니 학생들에게 호통을 치며 그들을 쫓아 보내버립니다.

 

우리는 너무 중요한 날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것을 기억조차 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국가적으로도 이런 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비참한 역사일지라도, 생각하기에도 고통스런 역사일지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 바로 1910829일입니다. 그날 이후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까? 그날 이후 나라를 빼앗긴 우리나라는 농사 짓은 것을 다 빼앗겨야 했습니다. 심지어 이름까지 바꿔야 했습니다.

 

그날 이후 35년 동안 363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20여만 명의 이 땅의 젊은 딸들이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독립을 꿈꾸던 수많은 애국자들이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아야 했고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일본은 이 땅에서 수많은 문화재들을 약탈해 갔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말살하고 역사를 왜곡시켰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습니까?

 

.요나는 이 배가 침몰되는 원인 바로 나 때문입니다라고 외칩니다. (10-12 )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여기 본문에 보면 요나가 탄 배안의 사람은 왜 자신들에게 이런 풍랑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배가 침몰 직전에 있는 이 절망의 상황 가운데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제비를 뽑아서 이번 이 큰 폭풍의 원인을 찾고자 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흔히 사용하던 방법입니다. 제비를 뽑아 결과를 보니 바로 요나가 뽑혔습니다. 그제서야 요나는 12절에서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라!”며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요나는 지금 되어지는 모든 일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로만 보내시지 않으셨으면 자기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다른 선지자들처럼 목숨걸고 선지자 사역도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괴롭히지만 않았다면 자기가 이렇게 니느웨로 가기를 싫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요나는 모든 것이 남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내 탓이라고 고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요나의 회복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12절의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그가 대답하되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무슨 말입니까? 이 풍랑이 휘몰아치는 두려움의 바다는 바로 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임질 줄 아는 태도, 늦었지만 그는 책임의 자리에 기꺼이 섰던 것입니다. 여기 본문의 15절의 말씀을 보세요.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참 놀랍지 않습니까? 요나가 타고 있던 배를 삼킬 것 같은 거대한 풍랑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잔해 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 우리의 아픔이 무엇입니까? 어떤 문제를 만날 때 책임을 지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더 뒤틀리고 해결이 안 됩니다. 오히려 남의 탓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청문회나 국정감사를 보면 모두 내로남불입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왜 나라를 빼앗겼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당시 나라를 일본에게 뺏긴 자에게 큰 책임이 있지만, 결코 몇 사람의 지도자를 정죄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하게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을 지게 하지만 더 나아가 국권 상실의 궁극적인 책임은 저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을 해요. 결국 우리 모두가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교회를 개척하신 황두연 목사님은 일본 황제가 신일 수 없다는 신앙절개를 가지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옥고를 치루기도 했고 진정한 민족의 미래를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한 생을 나라를 위해 삶을 바쳤던 분입니다. 이 책임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지금 코로나 19로 온통 나라가 비상이 걸렸는데도 몰지각한 사람들은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으로 감염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은 나 하나쯤이야 하는 책임감이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 아닙니까?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새롭게 만들어야겠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바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광복절을 기념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 해방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배안에 있는 사람들이 풍랑으로 배가 깨질 판에 요나가 나를 바다에 던지라는 이 말 앞에 무엇이라 이야기를 합니까?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재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 그 사람들이 누� ��에요? 사공들이죠. 배의 선원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단 말이죠. 요나서 15절에 보면 이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자기의 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우상 숭배자들이에요. 그들이 늦게나마 요나가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배를 한순간에 삼킬듯한 풍랑이 잠잠해지는 그 광경 앞에 그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 본문 14절에 이제 이들이 기도를 해요. 하나님 안 믿었던 사람들이 기도합니다. 누구한테 기도합니까? 14절입니다. "무리가 여호화께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보세요. 요나가 진지하게 회개하는 이 모습 앞에 배 안에 탄자들이 요나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반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물론 상해 임시정부가 독립을 위해 큰 수고를 했습니다. 광복군이 만주에서 나라의 독립을 찾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저는 안중근 의사를 하얼삔으로 보낸 역사의 현장을 우리 청년들과 러시아에 있는 고려인 마을인 우스리스크에서 보았습니다. 애국지사들이 곳곳에서 저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광복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3국 동맹 즉 독일, 이태리, 일본이 연합군의 공세에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19439월 이태리가 먼저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19455월 독일도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지막까지 버티던 일본에게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의 수뇌가 1945726일 포츠담에 모여 무조건 항복하든지 아니면 전쟁에 패망하든지 선택하라고 최후의 통첩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소위 포츠담 선언입니다.

 

일본은 포츠담 선언의 최후의 통첩을 거절하고 버텼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가공할 미지의 신무기인 원자폭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94586일 히로시마에 한 발, 그리고 89일 나가사키에 또 한 발 투하되어 두 도시는 한 순간에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고, 1945815일 낮 12시 당시 천황 쇼와가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을 선언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은 아주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힘이 아닌 아주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광복이 찾아온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아주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을까요? 우리는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광복을 주시기 위해 이 놀라운 역사적 사건을 준비하셨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묻습니다. 풍랑 속에 희망을 잃어버린 요나를 살려 준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요나를 살려준 하나님께서 죄악과 우상으로 찌든 앗수르의 도성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엔 구원받을 백성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사명이 있습니다. 1980년 여의도 광장에서 한경직 목사님이 기도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이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사장은 기도하는 중보자입니다. 지금 이 코로나가 소멸되는 것은 과학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지도자와 백성이 자신들이 쌓아 온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제 말이 틀려나요? 아닙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주관자이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했다면, 우리가 모르는 역사를 펼치실지 기대하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무얼 두려워합니까?

 

이 민족이 광복 76주년을 맞이하여 기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나라 정치와 경제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먼저 기도할 것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돌아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역대하 714절 말씀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여러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하십시다. 그래서 코로나 19의 확산이 진정되고, 교회당에서 예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마음껏 찬송하고 예배할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하십시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실 때에만 희망이 있습니다.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고쳐주시기를, 이 땅을 고쳐주시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신뢰함으로 나악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고 이 땅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숙제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조국의 통일입니다. 이 조국 통일은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적 섭리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때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국의 통일을 지켜내고 하나 된 통일조국을 세계 속의 선진 강국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우리의 헌신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 서야 하겠습니다.

 

이제 고난의 파도를 너머 여기까지 이 민족을 인도 하신 주님의 뜻 앞에 이 민족이 전 세계에 주의 영광을 선포하는 역사가 이 민족위에 넘치시길 바랍니다. 우리 동성 교회는 사명의 교회입니다. 이곳에서 이젠 하나님의 사람들이 배출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영권, 인권, 물권의 복이 가득해서 복음을 전 세계에 증거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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