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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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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해 지고 있습니까? (약4:1-5) 2021. 9/26.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1-09-26 | 조회: 271

성숙해 지고 있습니까? 4:1-5. 2021. 9/26. 

 

5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는 말씀이 있습니다무슨 뜻입니까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질투하실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 시기라는 말은 원어로 젤로스라고 하는데또 다른 말로 질투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매우 특별한 속성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질투입니다6:15절에서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하나님은 질투하십니다그런데 하나님의 질투는 사람들의 질투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질투하시는지 아십니까하나님이 우리와 경쟁하기 위해서아니면 열등감 때문에 우리를 질투하실까요아닙니다우리가 하나님만 사랑해야 하는데그 사랑이 다른 곳으로 쏠릴까봐 우리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계속해서 사랑을 베풀어주고 싶어 하시는 분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신자가 한 눈 파는 것을 보면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얼마나 화려한 수사를 사용하여 자주 말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무궁한 사랑'라고 큰 소리로 선언합니다.(31:3) 무궁한 사랑즉 한이 없고 끝이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적인 사랑'이라고 말합니다우리만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13:1) 이는 중단됨이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한 차원 높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줍니다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죽기까지 하는 사랑'라고 말합니다.(2:20)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그 사랑이기 때문에 이 사랑을 끊을 자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 엄청난 사랑을 받고 살아도 여러분우리는 어떻습니까우리 역시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고 살아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살 때가 많지 않습니까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내가 내 생명보다도 너를 더 사랑한다그래서 내가 죽었노라그리고 지금도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 말씀하셔도 우리는 별로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나를 사랑해야 되는지도 잘 모릅니다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그 큰 고통을 당해야 하셨는지도 잘 모릅니다만큼 우리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우리가 대하는 야고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이면 자녀답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를 묵상하다보면 우리의 성숙을 점검하는 계기가 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구원은 정말 중요합니다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구원그리고 그 이후의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성숙해지는 모습이 너무 중요합니다성경은 이 부분을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5:6절에 보시면 지난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그리스도를 알기 전 나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줍니다"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바울은 좀 고상한 표현을 썼지만, '경건치 않은 자'란 도무지 인간 같지 않은 자도무지 변화될 수 없는 죄에 찌들대로 찌든 불신과 음란과 거짓으로 물든 소망 없는 자란 말입니다그리고 내려가서 8절에 보시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도무지 자격 없는 자이 소망 없는 인생을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인생황혼에 한 차디찬 감옥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고백합니다"하나님내가 지난 시절 얼마나 당신 앞에 잘못된 삶을 살아왔습니까믿는 자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복음을 방해하는 핍박자요훼방자요포행자로 살아온 나입니다. 그런 나를 당신의 능하신 손길로 그 모든 것을 덮어주시고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나를 충성되이 여겨 하나님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나를 끝까지 믿어주신 하나님나의 연약함을 허물치 않으시고 오히려 격려하시고 소망을 주신 하나님내가 어찌 이 사랑이 은혜를 감당하겠습니까?" 보십시오그는 자기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하나님 사랑을 깨달은 그 날부터 어떤 자리 어떤 환경어떤 핍박 앞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습니다그리스도를 닮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쏟았습니다자신을 믿어주신 자신을 죄에서부터 건져주신 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그러므로 이제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고 살아간다면더 이상 지난날에 나의 연약함에 머물지 말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그 중에 하나가

 



정욕을 다스려야 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불행으로 몰아넣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싸움일 것입니다. 역사학자의 연구로는 지난 5천년 동안 지구상에서 전쟁이 약 만오천 번이 있었다고 합니다수많은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고통당했습니까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수백만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우리 민족이 당한 그 고통 그리고 그 후유증이 지금도 남북이 긴장 관계가 끊치지 않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여기 보면 두 종류가 나옵니다싸움과 다툼이 나옵니다헬라어 원문을 보면 둘을 구분합니다앞부분의 싸움은 중무장하고 싸우는 폭력적인 것을 말하고 두 번째 다툼은 높은 언쟁을 말합니다말로 하는 싸움입니다.

 

생각해 보세요오늘 날 우리 사회는 여당과 야당경영자와 노조수많은 집단간의 싸움으로 병들어가고 가고 있습니다어떤 학자들은 싸움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손실이 1년에 수십조가 넘는다고 말합니다정말 심각하지 않습니까왜 저 부부는 저렇게 싸울까왜 저 친구는 늘 저렇게 불만뿐일까왜 우리 집에는 평안한 날이 없을까도대체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이런 싸움과 다툼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교회 바깥 사람들만의 문제일까요신자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까요우리는 싸움과 다툼에서 자유로울까요전혀 그렇지 않습니다야고보는 싸움에 대한 교훈을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구원받는 저와 여러분교회에 속한 자들에게 일어난다고 말합니다다시 묻습니다우리는 왜 이렇게 싸움과 다투는 것일까요이런 싸움과 충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아마도 마음 속으로 이렇게 대답하고 싶을 것입니다사탄으로부터 오고 거짓 형제와 이단으로부터 온다고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과연 그렇습니까다시 1절을 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여러분이 싸움은 인간적인 정욕으로부터 옵니다.

 

여러분이 싸움은 인간적인 정욕으로부터 옵니다인간적인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정욕과 욕심이 다뤄지지 않는 한우리의 욕심이 우리 안에 있는 한 싸움은 그칠 수 없습니다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습니다삶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는 상대편의 문제 때문만이 아닙니다상대편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싸움의 가장 첫 번째 문제는 나의 정욕 때문입니다여러분의 삶 가운데 가정에서든지 교회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싸움이 자꾸 일어난다면 일의 성격상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거나 상대의 탓이기 보다는 근원적인 문제는 자기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무슨 일을 하든이야기를 하든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이 일을 하는가 입니다동기를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끊임없이 우리를 파고들어 와 우리 내면에 깔려 우리 삶을 움직이려 하기 때문에 여기에 머물게 되면 싸움다툼이 일어납니다이 시기와 다툼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이런 자리에 서게 되면

 



기도 줄이 막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대화입니다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편입니다그런데 기도하는 내게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으로 내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런 기도가 응답이 되겠습니까정욕을 다스리지 못할 때 이것은 기도의 장애물로 나타납니다3절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이상하게도 그 마음에 욕심이 가득한 사람자기 뜻을 이루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의 기도는 응답이 없습니다그리고 기도도 형식적인 기도가 많습니다기도는 하는데 행함이 없습니다기도는 하는데 행동이 없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행동은 하는데 기도가 없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행함을 강조하고 있는 야고보 사도의 별명은 낙타무릎이었습니다마지막까지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다가 돌에 맞아 순교한 야고보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성도들은 낙타같이 굳어진 무릎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이 시신 앞에 야고보의 무릎이 낙타 무릎처럼 각질이 굳어지 이 모습 앞에 제자들은 통곡을 했습니다지나간 날 예수님을 자기의 형으로만 알았던 사람요 7:5를 보면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의 공생애시절에 아직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그동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형미워하기도 했고 때로는 정신 이상자 취급까지 했던 형이었지만부활하신 모습을 보자 달라졌습니다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그러므로 야고보는 약 1:1을 보면 하나님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여기에서 자기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과거에는 자기가 예수의 동생이었지만 회심한 이후 자신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그리고 평생 기도 무릎으로 살았던 그는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를 이야기합니다기도 자체는 거룩한 행위입니다영적인 삶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영역은 큽니다기도를 빼고 우리의 신앙을 말할 수 없습니다영적 성숙으로 가는 길에 기도는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여기 3절의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그것은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설득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아무리 설득이 대단하고 정성을 다 쏟아도 하나님은 욕망의 기도에 대해서는 냉정하십니다기도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자기포기자기부정입니다이것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신 모범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완성적 기도입니다그러나 기도하다 잠들어 있던 제자들은 육욕적 모습을 보였습니다결국 베드로는 남의 귀를 자르는 사고를 치고 맙니다정욕적인 모습은 분쟁일 일으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앞에 순순히 자신의 몸을 맡기셨습니다당신의 소원과 욕망을 포기하십니다. 주님은 다투지 않으셨습니다온유함으로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이셨습니다모세는 광야에서 반역하고 대드는 백성들과 싸우지 않습니다비밀은 엎드림입니다백성들만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거친 성품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다루어지기를 날마다 간구하며 엎드렸습니다기도는 우리 안의 정욕을 다스리는 일이지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수단이 아닙니다사랑하는 여러분자고깨면 싸움과 다툼으로 혼란스러운 시대 앞에 이 숨막히는 시대 앞에 우리는 엎드려야 합니다그러나 잘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4절에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라며 간음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그러면 여기 간음한 여인은 누구를 이야기 합니까바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한쪽 발은 교회에 담가 있고 또 한쪽 발은 세상을 향한 자들을 말합니다세상과 벗됨이 바로 간음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성경 역사를 보세요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정욕에 노예가 된 사람이 어떤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되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읍 점령할 때 탐심을 버리지 못했던 아간은 시날산의 명품 외투와 금덩이 은덩이를 빼돌린 결과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을 점령할 때 패배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그의 가족들이 아골 골짜기에서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아야 했습니다왕이라는 체면을 지키기 위한 세상과 짝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고길보아산에서 블레셋 군대와 싸우다가 자기 아들들과 함께 죽고 맙니다하나님께로부터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은 다윗 왕도 정욕이라는 탐심에 끌려 간음죄를 지은 결과 그의 그 이후 인생은 고통과 아픔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은혜를 받고 다른 사람처럼 자신도 자신의 재산을 전부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내놓겠다고 다짐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마지막 순간 탐욕에 노예가 되어 거짓말을 한 결과 부부가 한 날에 장례를 치러야 하는 비극을 겪게 되었습니다왜 무너집니까그들의 시선이 하나님께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나를 구원하신 주님은 질투하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데 그 은혜를 저버리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히면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눠지며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끄는 대로 따라갑니다유혹의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욕망을 극복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자기에게로 관심이 집중됩니다당연히 다툼이 일어납니다상대를 배려하고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그래서 다른 사람과 충돌을 일으킵니다그렇다면 이 세속의 정욕에서부터 벗어나 좀 더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할 때 정욕으로부터 멀어집니다하나님에게서 눈이 멀어질수록 우리의 눈을 끄는 것들이 너무 많아집니다왜 우리가 예배에 집중해야 할까요분산된 마음을 하나님께 두지 않으면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깊은 영적 경험을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치 배가 부른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세상적인 유혹에 이끌리지 않습니다이 사실을 알았던 바울은 갈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이제는 나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탐심이 나를 지배하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지금 어떠십니까성숙해 가십니까성숙의 최고의 가치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시기하시기까지 나 하나만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 살아가는 것 여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성숙한 삶입니다그 은혜 앞에 서면 내 안에 마르지 않는 하늘의 생수를 마시며 삽니다그렇게 움켜잡았던 세상의 온갖 것들이 바울처럼 배설물로 여기게 됩니다묻습니다아직도 구원이후에도 여전히 투쟁적인 삶을 살고 계십니까분노가 잦고 다툼이 자주 일어납니까늘 긴장이 있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고 있습니까지긋지긋한 다툼의 삶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십니까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주어집니다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 앞에 서십시오내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인도하실 것입니다기도 하십시다-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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