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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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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감사 (시 30:1-12) 2021. 11/7.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1-11-07 | 조회: 313

평생 감사 시 30:1-12, 2021. 11/7.

 

몇해 전에 미국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뉴욕 타임지에 이런 기사 하나가 떴습니다. 국민일보에서 인용한 기사 내용인데 인류 역사상 제일 잘 살았던 사람이 누구인가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뽑힌 사람이 다름이 아닌 다윗 왕이었습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다윗보다 더 잘 산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한 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겐가 인정을 받고 산다는 것,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살아가는 것은 요즘 다원화 된 사회에서 정말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다윗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값진 생애를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이 다윗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을 했습니까? 여러분 궁금하지 않습니까? 13:22절의 말씀을 보면 다윗을 무엇이라 소개합니까?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여기에서 '마음에 합한다'는 말은 '마음이 맞는다', '마음에 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경험하듯이 마음이 맞는 사람과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 없어도 잘 통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하여 그와 같은 마음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다윗이 어떠한 사람이길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부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영웅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닙니다. 또는 그가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어 나라를 통일하는 큰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그도 치명적인 실수를 한 인물이 아닙니까?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정말 하나님 앞에 불충한 죄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습니까? 도대체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도 인간관계에서 느껴서 아시지만, 직장 생활이라든지, 회사에 다니면서 상관의 마음에 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일하는데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을 보면 굉장히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니 너무나 부러운 존재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자신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람도 그리고 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도 아낌없이 칭찬하는 다윗, 그런데 다윗에게 있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생애에 늘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감사라는 단어입니다. 어느 시인의 이야기처럼 '시편의 골짜기 골짜기마다 다윗의 감사의 씨앗이 뿌려져 있다'고 했습니다. 신구약을 통틀어 다윗처럼 감사생활이 일관된 사람도 드뭅니다.

 

오늘 함께 본 본문은 다윗의 감사 생활에 대해 잘 증거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신앙을 가리켜 훌륭하다고 평가하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감사 신앙입니다. 다윗도 처음에는 이게 잘 안됐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신앙의 수련을 통해 환경이나 조건을 초월해서 항상 감사하는 신앙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도 처음부터 늘 감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윗도 처음에는 다른 이들처럼 환경 조건에 따라 휘둘리고, 그의 마음이 흐렸다 갰다 했습니다. 고난의 때에는 낙심했습니다. 그리고 형통할 때는 교만했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을 수련하고 연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늘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1. 다윗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감사를 배웠습니다. - 감사의 과정

 

다윗은 형통할 때에 자기가 잘 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교만했죠. 그러다가 고난을 당했고,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 ��윗은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신앙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여기 6절을 보면, 그는 과거 형통할 때에 영원히 그 인생이 요동치 않을 것으로 착각하고 장담했습니다. 6절에 보면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그러나 사실 자신이 그만큼 축복 받고 형통한 삶을 살았던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한 동안 잘나가니까, 좀 잘되니까 모든 것이 자기 힘으로 잘되는 줄을 알고 자신만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그런 사실을 다윗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웠다는 것은 산은 최고의 정상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명예라든지. 부 건강 이 모든 것을 다 거머졌다는 말입니다.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도우심으로 다윗의 인생이 정상까지 오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순간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다윗은 인생의 최고의 자리에서 인생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쳤습니다. 한순간에 지위와 가정을 다 잃고 유랑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심지어 죽음의 자리까지 이르는 절망이 그의 삶을 덮어왔습니다. 이 세상을 사노라면 누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로 인하여 인생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인생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을 때 무슨 생각이 나겠습니까? 물론 절망감과 함께 이제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좌절감일 것입니다. 이제 다시는 사람들이 나를 찾지도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사람의 손에 붙들려 사용될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비참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비참한 순간에 그동안 자기를 덮고 있던 오만과 고집의 가면을 벗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데 너무 내 자신만 믿고 교만하게 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라는 사람은 지금 이 어려운 자리에서 한 발만 더 밀어붙이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인데, 그 동안 무엇을 믿고 그렇게 날뛰었는지 기가 막힌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코만 잠깐 막아도 숨이 막혀서 죽을 수밖에 없고, 당장 몇 끼만 먹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2. 기도의 자리에 서서 감사 다지기

 

여기 다윗이 이 고난의 자리, 실패의 자리에서 무엇을 합니까? 8-10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여기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처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 땅에서 아직 사명이 남은 것 같은데 원수들에게 무력하게 고통당하죠. 설상가상으로 질병의 무게에 눌려 죽음 앞에 섰다면 얼마나 큰 통증이 일어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가족이나 친지 혹은 자신이 죽음의 계곡에 서 본 일이 있습니까?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에 서 본 일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한밤중에 여러분의 허파 속으로 공기를 불어넣으며 펌프질을 하는 기계 소리를 누워서 들어 본 일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 나중에는 그 눈빛에 있던 생기의 빛마저 서서히 사라져 가는 모습을 지켜본 일이 있습니까?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이 죽음의 계곡은 당신에게 낯선 곳이 아닐 것입니다. 그곳은 황량한 계곡입니다.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계곡 밑을 내려다보면서 울음을 터뜨리고 할 말을 잊어버립니다. 그 계곡 끝에 서게 되면 모든 삶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못한 것이 금방 구별이 됩니다.

 

그 자리에서는 내가 무슨 차를 타고 왔느냐, 내가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은 아무 관심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했고, 내가 사회적으로 얼마만큼 지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도 안중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인생의 성패, 승자와 패자, 성공자와 실패자라고 하는 어떤 구별도 그 자리에서는 하등의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만큼 죽음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새파랗게 질리게 만들고 완전히 기를 꺾어 버립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여기 다윗도 예외가 아닙니다. 9절에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여기 무덤에 내려간다, 진토는 죽음 이후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 죽음은 우리 인생의 기회가 다 상실당하는 절망의 자리입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인간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부르짖습니다. , 미사여구를 집어놓는 화려한 내용의 기도가 아닙니다. 딱 하나입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한때, 자신이 왕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절망의 자리에서 단지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그가 해야 할 소명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시고 성령을 부어주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단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를 예수님이 당신의 자녀로 삼기위해 치루신 그 희생의 열매가 바로 여기 모인 우리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이 코로나 19는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하지만, 이 속에서 우리에게 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의 영향력을 온 세상에 펼쳐 가기를 원하셔서 나를 자녀 삼으셨는데 그 소명 앞에 내가 한 것은 무엇입니까? 코로나로 감염되고 하루에 죽어 나가는 우리의 이웃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 나오지 못하는 내 모습은 아닙니까?

 

저는 이 코로나19 기간 동안 우리 자신들의 믿음을 점검하는 내 신앙의 회복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세상이 주는 세상의 가치를 붇잡고 살아 왔습니다. 남보다 더 가지지 못한 것이 우리에게는 실패요. 패배자인 것처럼 생각을 해 왔습니다. 우리가 평안하고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잘 몰랐지만, 우리가 어려움에 빠진 후에야 비로서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동안 내가 믿는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랑이요 자기 과시였다는 깨달음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태에서 죽으면 그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 다윗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제 죽음이 그를 덮어왔지만, 그 속에 잠자고 있던 신앙이 꿈틀거린 것입니다. 단지 살려는 본능으로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한번 태어났다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단지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주님 앞에 순종하며 사는 이 문제를 바로 깨닫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3.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서서 진정한 감사

 

4절입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이 다윗의 감사는 그냥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의 심령 속에 터져 나오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받은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은혜를 깨닫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이런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 다윗도 그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는 5-6절에서 말합니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가 이 구절을 쉽게 번역 한다면 "진노는 잠간이요, 은총은 영원하니, 저녁에는 눈물을 흘려도, 아침이면 기쁨이 오리라."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슬픔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녁에 슬픔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합니다. 비록 내가 저녁에는 눈물을 흘릴지라도, 아침이면 반드시 기쁨이 온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1-12절에 보면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띄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여기 베옷은 죽은 사람들이 입는 옷입니다. 이 베옷을 벗겨내시고 기쁨으로 띠 띄우셨다는 것은 우리의 절망, 두려움의 옷을 벗겨내시고 참된 회복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십자가를 통한 부활 신앙의 역사가 아닙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현재의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장래의 영광을 반드시 우리 품에 안겨 주실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믿음이고, 그게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원천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앞길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지금이 우리의 생애에서 아주 견디기 힘든 위기상황이라고 생각되신 분은 혹 없으십니까? 지금 코로나로 인해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 가운데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참 암울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정치적인 틈바구니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참 힘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불어주셨고, 우리 안에 믿음을 주셔서 믿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 믿음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을 그 위기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은 오늘 어려운 때를 살아가고 우리에게, 힘든 위기 속에서 비틀거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구원과 능력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힘들고 고난이 겹쳐 견디다 못해 쓰러질 것만 같을 때에도 주님은 우리 곁에 서서 감사하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을때에 우리보다 한 걸음 앞서 걸어가시면서 나를 따라 오라고 손짓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을때에는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강한 팔로 밀어주십니다.

 

오늘 시인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라고 외칩니다.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들어오는 모든 죽음과 고통의 독이 우리 주님을 모심으로 인해 모두 제거되고, 우리의 앞날에 하늘의 기쁨으로 성령께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만큼 크고 귀한 은혜는 없습니다. 그것은 지나온 삶에도, 그리고 지금 살아가고는 삶에도, 또 한 앞으로 다가올 삶에도 변함없는 은혜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감사의 조건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답게 이번 11월 감사의 달에 깊이 우리의 삶을 묵상하며, 감사한 일들을 많이 발견하고 감사로 가득한 삶을 사십시다. 기도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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