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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살전5:18) 2021. 11/21. 추수감사절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1-11-21 | 조회: 325

이제는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살전5:18. 2021. 11/21. 추수감사절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성경적으로는 구약성경의 감사절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미국의 청교도들이 드린 추수감사예배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청교도들이 드린 이 추수감사예배는 오늘 우리가 드리고 있는 추수 감사예배와는 상황이 너무 달랐습니다. 풍성한 추수결실에 대한 감사라기보다는 위기 속에서 드렸던 감사였기 때문입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가기 위해 탄 메이플라워호는 사람이 타기 힘든 화물을 실어 나르던 배였습니다. 그리고 크기도 180톤에 27.5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배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이런 열악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게다가 날씨가 좋지 않아 항해 내내 험한 풍랑과 비바람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도착한 곳도 원래 목적지인 따뜻한 남쪽 버지니아가 아니라 추운 북쪽 매사추세츠였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혹독한 추위가 밀려드는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게다가 생각지 못했던 인디언의 공격과 전염병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 겨울에 102명중에 44명이나 죽어갔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낯선 땅으로 왔지만 생존의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위기 속에서 배에서 내리면서 하나님께 이런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1.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그런 배라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2. 평균 시속 2마일의 항해였으나 117일간 계속 운항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3.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감사합니다.

4. 폭풍으로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합니다.

5. 여자들이 항해 도중 파도 속에 빨려 들어갔었으나 무사히 구출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6. 인디안들의 방해로 상륙지를 찾지 못해 한 달을 방황했으나 호의적인 인디안을 만나 상륙지를 얻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7. 고통스러운 삼개 월 항해 중 돌아가자는 사람이 없었음을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에 소개하는 데살로니아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에는 환난이나 고난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합니다. 1:6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많은 환난 속에 있었다. 2:2절에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2:14절에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3:7절에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우리는 이 구절들을 통해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처한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이 역경의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내 사정, 내 형편이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처지에서 감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많은 어려움과 역경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붓을 들어 이 편지를 썼습니다. 본문 18절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세 가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감사해야 하는가하는 감사의 이유와 우리가 언제 감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감사의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 감사의 이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해야 할 삶의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의 삶!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여기 감사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묻습니다. 왜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합니까? 감사는 하나님께로 나가는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100:4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인생의 수많은 위기와 아픔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남도 아닌 장인어른인 사울 왕으로부터 억울하게 쫓겼습니다. 그것도 무려 10년이 넘도록 말입니다.

 

인생 말년에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맨발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이방 나라에 가서 침을 흘리며 미친 사람 행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원수들로부터 둘러쌓여 진퇴양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생의 모든 닫힌 문을 활짝여는 마스터 키를 발견합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다윗은 찬양하며 노래합니다. 그 마스터 키는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기르시고, 주의 백성 삼으신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그의 궁정으로 초대하십니다. 감사하는 자만이 천국의 잔치에 초대를 받습니다. 감사는 자만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반대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는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천국은 오직 범사에 감사하는 자에게 열려진 문입니다. 감사의 문을 통과한 자들은 주님과 함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는 축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감사의 문을 통과한 자는 주의 영광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주기도를 고백합니다. 하늘에 뜻이 이 땅에 이루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도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그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여 내뜻 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때로 되시를 원합니다라고 눈물로 기도합니다. 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이 땅에 펼쳐질 하나님 나라의 소망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이 세상에 영혼들을 아버지의 품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나의 거룩성의 회복입니다. 구별된 삶입니다. 예수 닮는 삶입니다. 세속에 묻들지 않고 신앙인의 품격을 가지고 사는 거룩입니다. 보세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원망과 불평의 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감사의 문을 선택했습니다. 비록 예수님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그들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견고하게 일어섰습니다. 서로 사랑의 수고를 통해 돌아보고,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다시 오실 부활의 주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소망의 가지고 인내했습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님을 본 받는 소문난 그리스도인들이 됐습니다.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떠올리며 감사하는 자들로 사는 이것이 고난의 현실을 극복하는 것임을 알기에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범사에 감사하기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감사의 렌즈를 끼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궁정으로 들어가는 문이요, 이 땅에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감사하기로 결단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이 곁에서 도와주십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불신자들은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재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그대로 감사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여기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 앞으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기에 감사합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도전을 받습니다. 위로를 받습니다. 소망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감사의 삶을 살도록 명령하시는데,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다시 한번 본문을 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여기 범사에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라는 뜻입니다. ‘상황을 초월하여라는 말이 범사입니다. 지금 살후 1:4절에 보면 이들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절에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환난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당하는 시련 때문에 겪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반면 박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외부에서 주어지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신앙인이 신앙으로 살려 하는 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당하는 고통을 말합니다.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그런 환난과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겪는 시련과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그들에게는 믿음 때문에 당하는 박해도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 생활하는 것이 더욱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도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그런 모든 환난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인내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받는 박해는 오늘 우리가 믿음 때문에 당하는 시련과는 많이 다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때로는 직장을 잃어야 했습니다. 장사를 해도 사람들이 물건을 사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생활이 궁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들 가운데서 홀로 예수 믿는다면 그는 가족들에게도 미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가족으로 인정해주지도 않습니다. 가정에서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를 섬기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왕으로 섬긴다는 것 때문에 범죄자로 몰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믿음과 인내로 견디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초신자들임에도, 또 복음에 대해서 많이 배우지 못한 상태임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살후 1: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뭐가 감사하다는 말입니까? 여전히 그들의 삶은 힘이 듭니다. 더구나 신앙생활한다는 것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건과 환경을 따져 감사하려 한다면 결코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감사하다고 말씀하고 있고, 심지어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감사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어도 우리가 감사의 방법을 모르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감사의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본문을 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여기 우리의 감사의 방법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이 구절을 예수 때문에 감사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사랑, 그 십자가의 은혜를 알면 오늘 설교 제목처럼 이제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라는 진정한 고백이 나옵니다.

 

생각해 보세요. 보세요. 세상이 버린 곳,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 마구간에 아기로 오신 예수, 바로 그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입니다. 하나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만도 대단한 희생입니다. 그런데 그가 오신 자리가 마구간입니다. 그곳은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낮은 자리입니다. 거기다 태어나자마자 애굽으로 피난 생활을 하십니다. 사람들을 위해 오셨는데 그 사람들에게 쫓겨 피신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실 때 마땅히 거처할 집한 칸 없어서 밤에는 감람산에서 주무실 때가 많고, 또는 가난한 3남매가 사는 나사로의 집에 머무를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도 마땅히 묻히실 무덤하나 없어서 아리마대 요셉 무덤을 빌려서 묻히셨습니다. 세상 사람들 예수님을 볼 때 30세 되신 분을 50세로 보기가 예사입니다. 이처럼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쏟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그 고초, 그 희생을 당하셨습니까? 바로 나를, 여러분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이 섬기러 오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다면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이 사랑, 이 은혜 앞에 섰다면 우리 이제는 감사할 수 있지 않으십니까? 이 결실의 계절 가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기회가 되어지길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받아주시고, 내 삶을 새롭게 하시고 내게 영원한 소감을 주셨다면, 이제 나룰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어떠하던지 우리는 충분히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1년 올 한 해 너무너무 힘들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우리는 힘든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사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힘들수록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힘든 시대 먹고 살 것 때문에 걱정하고 한숨이 깊어만 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큰 저주는 먹을 것을 얻지 못한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메마름입니다.

 

여러분, 우리 생애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 이제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큰 시련을 겪는다하더라도 우리 입에서 감사라는 말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감사하면 행복해집니다. 감사하면 따뜻해지고, 감사하면 마음에 여유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릴 가장 큰 찬양의 제사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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