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 성탄 주일 요1:9-14. 2021. 12/19
뜻 깊은 성탄 기념 주일에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평화와 은혜가 성도님들 각 가정 위에 충만하게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이 맘 때면 항상 공연하는 작품이 있는데 「Jesus Christ Superstar」라는 제목의 뮤지컬이 있습니다. 이 뮤지컬 맨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을 못 박았던 가룟 유다가 되살아납니다.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그 혼령이 되살아나서는 돌아다니며 구슬피 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가룟 유다는 ����why didn't you tell me����라고 슬피 울면서 노래합니다. ����왜 당신이 부활한다고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습니까?����는 말입니다. ����당신이 말씀만 하셨다면 내가 미쳤다고 주님을 팔겠는가‘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이 말씀 안 한 게 아닙니다. 얼마나 자주 고난을 이야기하고 십자가에 죽으심을 이야기하고 또 다시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십니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한 것은 영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주 교회에게, 또는 개인에게 말씀하십니다. 계시록에 보면 말세에 나타날 일곱 교회 모습을 보여주면서 항상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마태복음 13장에서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하십니다. 세상에 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을 모르실리 없는 주님께서 왜 하필이면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는 당신이 하시는 말씀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깊이 깨닫고 새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신 사건이 바로 성탄입니다. 사도요한은 요1:18에����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우리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좀더 하나님을 잘 알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우리 인간의 역사 속에 좇아오신 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 아들이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하늘과 땅과 땅아래 모든 것들이 무릎꿇고 경배받아야 할 분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그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때, 우리 인간들이 드린 것은 고작 구유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말하길 ����우리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 아들에게 우리 인류가 최초로 준 선물은 구유였으며 마지막으로 준 선물은 십자가였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이 참 빛은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5절에 보면 “빛이 어두움을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에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탄주일 아침!!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알지 못했을까요?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는데 왜 그들은 그 메시야를 맞아들이지 못했을까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탄생하던 그 때, 이스라엘의 형편은 모두가 깊은 절망 가운데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땅에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거의 400여년 가까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더욱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런 메시야가 절실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메시야를 기다렸는데,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바람대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도, 그들은 메시야를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9-11절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빛은 그 비추는 곳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 빛이 비춰지면 그 빛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당신 자신을 가리켜서 요8:12절에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고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1. 깨닫지 못하더라(5절)
왜 세상이 빛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이유는 여기 5절을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빛을 희미하게 비추셔서도 아닙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분을 붙잡지 않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특징은 진리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땅에 오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자! 여기 빛은 생명의 빛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생명의 빛이 어두움에 비치지만, 그 어두움이 참 빛이신 예수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죄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 걸어가면 너무나도 잃어버릴 것이 많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포합니다. 마1: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는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죄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지 아십니까?
지금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엄청난 기세로 달려들고 있습니다. 벌써 전 세계 코로나19 감염 확진자 수가 2억 6천만이 넘어서고 있고, 사망자도 벌써 500만이 넘어서서 600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코로나는 빈부격차, 배움의 정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K-방역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루가 멀다하고 확진자수가 늘어나고 있고, 사망자도 많아지는 안타까움에 있습니다. 만약 과거 우리나라도 역병이 돌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 전염병이 마을을 쓸고 가면 거의 폐허화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역병이 돌면 마을을 폐쇄하고 심지어는 불로 전염병이 더 이상 번지지 않기 위해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람을 태우는 모습도 보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19로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아마 AI 조류 독감이나 구제역의 무서움을 알 것입니다. 구제역이나 AI 조류 독감이 어느 한 농가에 퍼지면 그 농가의 소나 돼지는 모조리 땅에 파묻어 죽입니다. 그 옆 마을, 인근지역 수 킬로미터 안에 있는 가금류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흙에 다 파묻습니다. 그 균은 사람을 통해, 자동차를 통해, 바람을 통해 전국적으로 삽시간에 퍼지게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을 아까워도 다 죽입니다. 살처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구제역이 심각하지만 우리 인간의 죄는 이런 구제역보다 더 무섭습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 인간을 보시고 구원받아야 될 존재로 선언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거침없이 이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죄의 값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심판을 면하려면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독생자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로 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이 땅에 오신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세상이 알아보지 못했던 그분은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었습니다.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장막을 친다, 텐트를 친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약에 보면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성막이 우리 구원받은 자들 속에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 살고 있는 곳에 함께 텐트를 치고 사신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전6: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참 빛으로 오신 예수를 거절했지만, 그 생명의 빛이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2-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어두움이 생명의 빛을 싫어하고 예수님을 거부해도 누구든지 예수님를 나의 주님으로 구주로 영접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위해 이 땅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침!! 내가 구원받았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십니까?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이 성탄의 사건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일3:1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요한은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어떠한 사랑’으로 표현했습니다. ‘어떠한’은 원어로 ‘포타포스'입니다. 이 말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놀라움과 경탄을 표현할 때 잘 쓰입니다. 마8:27에 보시면 예수님이 풍랑이는 호수를 꾸짖어 잠잠케 하시자 함께 있는 제자들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바람과 바다가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 잠잠해진 이 일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할 때 그들은 ‘어떠한(potapos)' 이라는 말을 써서 놀라움과 경탄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사도요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우리를 자기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다 담아낼 수 있는 말을 생각해 낼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모든 언어를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 앞에 설 때 성탄의 참 기쁨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탄절만 되면 한 시인이 생각이 납니다. 송명희 여사를 여러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뇌성마비로 한번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다 살아나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시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가슴에 저미어 오는 감동이 있지 않습니까?
그가 쓴 시 가운데 '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가만히 음미를 해 보십시오.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뇌성마비로서 남이 가진 것의 90%를 못 가진 자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자 무엇이라고 감사합니까? 남이 갖지 못한 것 내게 있고 내가 가진 것 남이 없는 것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주님, 나는 세상 사람이 가지고 즐기는 것 없어도 예수님 한분 그분의 사랑을 받고 그분을 눈으로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뇌성마비로 버거운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 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성탄의 기쁨을 이렇게 가슴 벅차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참 빛으로 오신 예수를 거절했지만, 우리는 생명의 빛을 이미 마신 자들입니다. 그 주님을 영접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 은혜 앞에 섰다면, 그 진리 앞에 섰다면, 이번에도 우리 주변에 구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신 주님의 그 사랑을 우리 함께 실천하여 전심을 다해 섬기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만의 누림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섬김과 나눔으로 함께 기뻐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인사
메리 크리스-마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