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명문가의 나들이 - 설날"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2-01-29 | 조회: 261

명문가의 나들이 설날 잠15:16-20. 2022. 1/30.

 

 

오늘 주일에 모인 여러분의 가정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번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가정이 성경적으로 잘 세워져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집을 세울 때 잘 세울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본문을 중심으로 '명문가의 나들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까 정부가 코로나의 확진을 우려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많은분들이 고향을 찾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이럴 때 우리가 부모를 찾아뵙거나 가족을 만나는 시간을 가질 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품격을 보여주는 정말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뼈대 있는 집안은 그 가정에 면면히 흐르는 가치, 정신, 가풍이나, 도덕적 영향력이 있는 가문을 의미합니다. 교회도 동일합니다. ‘교풍(敎風)’ 이 있는 교회는 웅장한 건물을 가진 교회 이전에 오히려 그 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좋은 영적 풍토가 있고, 주님의 복음과 교회의 본질에 충실한 교회를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가정과 교회는 반드시 신앙의 명문 가문과 명문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설날을 맞이하여 고향을 방문하거나 또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에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번 명절에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일까요?

 

 

1. 우리는 신앙의 뼈대 있는 가문임을 기억하십시오.

 

16절에 보면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기서 말하는 가산이 적다는 말과 부하다는 이 대조는 우리의 삶에 필요한 조건들을 상징한 말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이 조건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강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건강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모릅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결혼 조건에서도 돈을 얼마나 가졌는지를 따집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좋은 직장에 다니느냐 하는 것을 보는 것도 결국은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 계속해서 돈을 벌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런 조건이 우리의 삶에 어느 정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기왕이면 건강한 것이 좋고, 기왕이면 돈에 여유가 있어 풍족하게 살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의 필수 조건은 아닙니다. 건강하고 돈이 많다 하더라도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이 우리에게 행복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그 행복을 잃는 때가 옵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한결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어느 순간에 건강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도 어느 순간에 그 가진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건으로 인한 행복은 그 상황이 바뀌면 행복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없어도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가정에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입니다. 비록 가산이 적어 경제적으로 곤핍함이 있다 할지라도 결코 놓치면 안 될 것이 여호와를 경외함입니다. 주님을 신앙하며 섬기는 것이야말로 어떤 물질적인 부요함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돈을 좀 벌고 나서 신앙이 오염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표적인 가정이 나옵니다. 바로 고넬료의 가정입니다.

 

 

 

행전 10장에 보면 초대교회 역사에서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 소개됩니다. 이 한 사람 고넬료의 변화는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넘어가는 물고를 튼 엄청난 역사를 보여주는 계기가 됩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아 사람인데, 이스라엘 땅인 가이사랴로 파견온 군대장교였습니다. 고넬료는 로마 황제의 직할부대인 이달리아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 자격으로 가이사랴에 파견되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10:2절에 고넬료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는 정확한 정보가 없어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이 말은 온 집안이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신앙의 명문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입 니다. 고넬료는 자기 하나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도 이 신앙의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이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이 말은 변화하는 시대에 변하지 말아야 할 우리 명문 가문의 자세입니다.

 

 

오늘 이 강단에서 저는 이 예화를 드리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만큼 물질만능 시대에 신앙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주기철 목사님을 아실 것입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온갖 고초를 겪으시다 옥중에서 순교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아드님인 주광조 장로님이 극동 방송에 재직하실 때,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순교한 지 14개월 만에 이 나라에 8. 15해방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때 가족과 교회는 돌아가신 목사님을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을 수없이 닦아가며 감사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당시 그의 어머니는 위암으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는데, 하루는 인민위원회 간부들이 찾아와 어머니에게 돈과 남산동의 적산가옥 문서 그리고 논밭 문서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항일투사인 주기철 목사의 숭고한 정신에 감복해 김일성이 보낸 포상금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완곡하게 사절을 하며 주목사님은 이 세상의 포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순교했으니 하나님의 상을 받기를 바랄뿐이요!“ 완강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옆에 있던 자신은 마음에 커다란 갈등이 왔다고 합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어머니, 그렇다면 이 험한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는 저 돈이 저 재산이 필요한데어머니는 그런 자기를 의식하였는지 그들이 돌아간 다음 아들을 앉혀놓고 성경구절을 찾아 읽으라고 했답니다. 37:25-26절 말씀이었습니다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사실 주 목사님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었습니까? 그렇다고 가르치기를 했습니까? 남겨준 물질적인 유산이라고 배고픔과 원망과 좌절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놓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만이 인생의 최고의 가치가 있는 삶임을 어머니는 아들에게 알려 준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엄청난 유혹 앞에서도 그 집문서를 뿌리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묻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난한 게 문제가 아니예요. 실직이 문제가 아닙니다.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를 만날 때마다 그 문제에 가려져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게 문제요, 감사가 메말라 가는 게 문제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습니까? 14:26절의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꿈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교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우리의 자녀들이 인생을 살면서 폭풍우와 비바람을 직면하게 될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삶의 폭풍우와 삶의 파도 앞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보라고 가르쳐야 합니까? 탈무드에는 이런 흥미 있는 교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재산을 남기고 양식 있는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지식을 남기고, 지혜로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신앙을 남긴다.“ 그리고 명문 가문은

 

 

2. 서로 사랑으로 사는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17-18

 

명절 증후군이란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명절 때 받은 스트레스로 정신적 또는 육체적 증상을 겪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후유증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족처럼 편안하게 하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가족처럼 고통을 주는 존재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대상은 모르는 사람보다 우리의 가족이 더 많습니다. 가족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또 다시 상처를 안고 돌아옵니다. 아예 기쁜 마음으로 가기가 힘듭니다. 명절증후군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특히 여자들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명절이 가까우면 머리가 아프고 우울해지고 긴장되고 짜증납니다. 돈 문제, 노동문제, 동서와 시누이와 시어머니 볼 것을 생각하니 벌써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시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다 풀어서 부부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명절에 차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지도 모릅니다. 기독교인의 매력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화해하는 기회로 여기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가르쳐줍니다. 17-18절에 보면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여기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여기 사랑을 라틴어로 아모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모르는 죽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는 부정을 뜻하는 말입니다. 곧 희생이 없이는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이러한 희생적 사랑 곧 아가페 사랑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 외에도 당시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십자가 옆에는 또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그러나 왜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들이 죽음과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이는 죄가 없으신 온전하신 예수께서 죄인을 위하여 희생하시는 아가페 사랑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죽었던 생명을 살리고 우리에게 사랑의 가치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한 가정을 꾸려가는 데도 그 희생의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가정이 아닙니다. 그런 가정이 요즘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고 나면 사건이 터지는데 뭐,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식을 죽였다... 이런 일을 보다 보면 이 세상이 정말 사랑이 고갈되고 말라버린 땅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터진 저수지처럼 되버리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 몸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하는 것이 심장이란 사실을 아십니까? 심장은 우리 몸에서 쉽게 암이 발생하지 않는 유일한 곳입니다. ‘심장암이라는 말은 아직 들어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는 심장에 다른 장기보다 열이 많기 때문이고, 염통으로 염분이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편 생각하기로는 쉴 틈도 없이 격하게 일하고 있는 그곳에 암세포가 발생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뜨겁게 뛰는 심장과 견줄만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나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하기를 단1 초도 멈출 수 없습니다. 사랑이 멈추는 것은 곧 죽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곳이 가정입니다.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용납합니다. 병들었다고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병든 이를 보며 가슴 아파합니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족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족함을 품어주고 용납해 줍니다. 지금은 부족할지라도 점점 성장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린아이같이 연약한 우리를 품에 안으시고 성장하기를 기다려주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가족 간에 서로를 품어주고 사랑하면서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를 이겨내도록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서로가 성처받지 않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번 명절에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결속을 다지는 좋은 기회입니다. 의도적이라도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많이 만들어서 가족의 결속을 다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명문 가정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3. 부모공경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시게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기 보다는 염려와 근심거리가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늙어가면서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입니다. 마치 빗살이 하나 둘씩 잘려져 나가듯이 사랑하며 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노인들 곁을 떠나갑니다. 자식들이 결혼해서 떠나갑니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먼저 하나님 나라로 떠나갑니다. 평생을 사랑하며 살던 아내와 남편이 곁을 떠납니다. 이제 외롭게 남은 빗살 한 가닥처럼 홀로 남은 세월에 그 깊은 외로움이 밀려옵니다.

 

 

오늘의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손들과 떨어져 살고 있고, 갈수록 혼자 사는 비율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시와 학대 속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좀 더 따뜻한 배려와 섬김이 필요합니다. 산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남아 있고, 물은 언제까지나 그곳을 흐르겠지만 늙으신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그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한번이라도 더 그 손의 체온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도 십자가의 그 고통의 한 복판에서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가시던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발견하셨습니다. 죽어가는 아들에게 어머니보다 더 그리운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에 두 팔을 벌리신 채, 마리아를 가리켜 어머님, 보십시오. 바로 어머님의 아들입니다.' 그것은, 어머니 마리아가 율법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동정녀 처녀의 몸으로 당신을 잉태하고, 당신을 낳고, 당신을 키워 주었기에,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시어 그리스도로서 구원의 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다는, 어머니에 대한 주님의 긍지의 대선언이었던 것입니다.

 

 

동정녀 처녀였던 어머니가 내 어머니 되어 주지 않았던들, 그 모든 일이 가능할 수 없었다는 긍지로운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 한 마디로 인해, 처녀의 몸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낳으므로 마리아가 세상사람들로부터 겪어야만 했던 온갖 고초와 고난의 고통이 눈녹듯 사라졌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 하시며 당신 모친의 여생을 간절하게 부탁하실 수 있었고, 남의 손을 빌어 효도하려는 여타 인간들과도 구별되실수 있었고, 그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이 예수님의 삶 속에서 성취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사실 땅에 보이는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하늘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할리 만무합니다. 아래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위로 하나님을 공경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은 효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명문 가정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 살아생전 효도를 다 하지 못한 것입니다. 효도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해 가는 비정상적인 세태 속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제5계명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없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명문가의 가정이 되기를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주셨던 부모님에 대한 긍지를 찾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설에 우리가 신앙인으로 격을 갖춘 명문가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의 모습이 드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서로 사랑하는 우애가 넘치는 가정 그리고 효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정, 이 가정이야말로 명문 가문으로 나가는 축복의 길입니다. 이제 명절 나들이를 하는 여러분 위에 신앙의 향기가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