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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강해4]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기쁨 (빌립보서 1:27-30)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2-02-27 | 조회: 269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기쁨 삼일절  빌1:27-30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로마 제국을 그토록 강대하게 만들었는가?” 지성적인 면은 그리스인들보다 못했고, 체력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보다 뒤떨어졌으며, 경제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쳐졌던 로마인들이 오래도록 번영을 누리며 세계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그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로마 시민다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법과 질서를 지키고, 원칙을 지키며, 로마 시민 됨을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한 정신이 바로 로마제국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그 오랜 세월 전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바로 시민의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7절 앞부분 보시면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도 바울은 오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 "생활하라" 이 단어는 '시민으로서 행동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행동하고 생활해야 합니다. 3:20에도 보면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받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복음 안에서 한마음과 한뜻으로 연합되어야 합니다.

 

27절을 보세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여기에 보시면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라."라는 말씀에서 '협력'이라고 하는 단어는 그냥 보통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운동 시합에서 꼭 우승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이 합심하여 사력을 다해서 경기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협력할때에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치열한 전투에서 같이 투쟁한다. 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전쟁에서 칼과 창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것이 백병전이었습니다. 육박전이라고도 하죠? 상대방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고, 적군을 무찌르지 못하면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는 냉엄한 현실이었습니다. 대충 싸우면 승산이 없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사활이 달려 있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협력'의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삼일절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03년 전에 나라를 빼앗기고 주권을 찬탈당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우리 선조들은 일본의 총칼 앞에서도 대한독립을 외치며 거대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여러분 3.1운동은 우리 민족 역사 가운데 다시 찾아보기 힘든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연합입니다. 만세운동에 온 겨레가 다 힘을 합해서 참여했던 것입니다.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연합을 위해 모두가 힘을 썼습니다. 해외에서는 우선 상해에 망명하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유학생들도 뜻을 같이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2.8독립선언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이것이 삼일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던 지역감정 문제를 뛰어넘어 하나를 이루는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국내의 모든 정파와 세력들이 하나가 되어 참여했습니다. 후에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 정쟁을 일삼게 되었던 사람들도 이때만큼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반상의 잔재가 남아있던 시기에 양반후손과 천민후손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남존여비가 사회 저변에 그 힘으로 작용하던 시기에 남녀노소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안에 남아있던 분열의 요소를 하나로 묶어낸 용광로와 같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 하나의 힘이 민족의 거대한 불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본문에 보시면 빌립보 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도 보십시오.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는지 모릅니다. 교회처럼 다양한 사람이 모인 곳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공동체는 비슷한 연령, 비슷한 취미,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지만 교회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갈등,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이상히 여기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점점 조율해 가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가 보면 연주하기 전 악기들이 튜닝을 합니다. 그때는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지휘자와 단원이 악보를 보고 집중합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그 지휘자에게 시선을 맞추어 최고의 연주를 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목회자와 교인들이 하나되어 나아갈 때 마치 잠시 후면 멋진 하모니의 연주가 이루어지는 것 같이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2:27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엡4:3절엔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늘 협력함으로써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발 더 나아가서 복음을 받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대적'이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을 반대했던 무리들을 가리킬 때에 사용된 말입니다. 이들은 불법을 자행하고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다'라는 단어는 '단어는, 겁을 먹은 말이 놀라는 그 장면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마구 날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은 대적들 앞에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두려워서 떨게 되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대적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1948, 범브란트 목사는 루마니아가 공산주의 국가가 될 때 체포되어 14년 동안이나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울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바울이 감옥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며 고통을 참고 견뎠다고 합니다. 마지막 3년은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서 말 못할 고초를 겪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수백 번씩 성경을 읽다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성경 곳곳에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성경에 몇 번이나 나와 있는지 샅샅이 헤아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그마치 365번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1365,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시시각각 밀려오는 절망과 두려움을 이겨내었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석방된 그는 주위로부터 자유세계로 망명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계속 루마니아에 남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을 받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을 특별한 은혜로 아는 것입니다. 29-30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교회 지도자 빈센트는 고난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약혼할 때 받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신랑되신 주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 결혼을 통하여 받는 예물에는 축복과 평안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과 핍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고난 또한 주님의 신부 된 성도에게 주는 약혼 예물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실 때문에 받는 고난이나 핍박이야말로 우리가 주님의 신부요, 천국 시민이라는 증거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겪는 고난은 선물이자 특권입니다.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은 말 그대로 잘 나가던 청년이었습니다. 교육의 도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은 로마인이 아님에도 로마 시민권을 가질 정도로 대단한 집안이었습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만 공부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율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른 나이에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학했습니다. 나중에 바울을 잘 알던 베스도 총독이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26:24)고 말할 정도로 많은 학문을 쌓은 사람입니다. 어느 누가 보아도 부러워할 만한 엘리트 코스를 걷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앞날은 창창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얼마나 많은 고난과 박해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2차 선교여정 중에는 주님께서 그를 계획에도 없던 마게도냐로 인도하시더니, 처음 복음을 전했던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주었다는 것 때문에 고소를 당해 수없이 매를 맞고 차꼬에 채워져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과 그를 대적하는 자들로 인해서 엄청난 고난과 박해를 받아야 했고, 바울을 죽이기 위해 비밀 결사대를 동원할 정도입니다. 마지막에는 노구에 병든 몸으로 로마 감옥에 갇혀 지내다가 결국 목이 잘려 순교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고난 앞에서도 그는 하늘의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고난을 기뻐하겠습니까? 아마 유관순 열사를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독실한 믿음의 집안에서 자라던 중 선교사의 권유로 이화학당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3.1 만세운동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6명의 학생과 함께 시위 결사대를 조직했고 3.1 만세운동 현장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일제가 3.1 만세 사건 이후 학교를 폐쇄시키자 고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고, 유관순 열사는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여 41일 아우내 장터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유관순 열사는 이 만세운동 현장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본 경찰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체포되어 투옥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하 감방에 갇힌 채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켰고, 나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209/2818살 꽃다운 나이에 순국, 순교하게 됩니다. 유관순 열사가 남긴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코와 귀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참으로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었다면 그 주님 주신 은혜 앞에 고난도 감수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기쁨이 아닙니까

 

저는 이 시간 3.1절을 되돌아보며 이제 뽑힐 이 나라의 대통령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거짓이 없는 진실성을 가지고 나라의 백성들의 아픔을 함께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선출 되도록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이 아침 우리나라의 최고의 지성인으로 한때 복음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분이 었습니다. 그분이 예수를 영접하고 암투병을 하면서도 주옥같은 글을 써 내려가는 이어령 교수의 자유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시를 통해 신앙인들이 살아야 할 자세를 보여주는 함께 도전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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