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동부 전선인 화천 백암산 기슭에 잡초가 우거진 비무장 지대를 순찰하러 가던 한 소위가 있었습니다. 양지 바른 산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이끼가 낀 채 허물어져 있는 돌 무덤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무명용사의 무덤인 듯한 그 옆에는 녹이 슨 철모가 뒹굴고 있었고, 돌무덤 머리에 꼿힌 십자가 모양의 비목은 금새라도 무너질 듯, 한 모습이었습니다. 한 소위는 이 모습을 보고 글을 하나 남겼습니다.
1.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깊은 계곡 양지녘에/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2.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달빛타고 흐르는 밤/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울어 지친 비목이여/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비목(碑木) 그것이 우리나라 3대 애창곡으로 불리는 비목이라는 시가 쓰여 진 사연입니다.
얼마 전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30세 미만인 사람중에서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대답한 사람이 47.4%나 된다고 합니다. 중 고등학생은 56.8%가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나라 젊은이 절반 이상이 6.25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6.25가 우리나라와 일본이 싸운 전쟁이라고 알고 있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은 이 땅에 전쟁의 비극이 일어난 지 72년이 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은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7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아직도 한 민족이 남, 북으로 갈리워서 철책선을 두고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북쪽과의 문제도 문제지만, 이 사건은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진보와 보수의 시각차의 갈등이 얼마나 큰지 목회자로서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6월 달은 우리나라로서는 정말 잊을 수가 없는 이 나라를 위해 엄청난 수고와 값비싼 희생을 치룬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미국의 철학자 산타아나가 말하기를 “뼈아픈 과거를 기억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하게 된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은 경험 속에서 지혜를 배우고, 지혜로운 민족은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모압 평지에 와 있습니다. 그들 앞에는 요단강이 놓여 있고, 그 요단강만 건너가면 오랫동안 기다리고 소망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시고, 그들은 광야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마음은 금방이라도 가나안 땅에 발을 내딛고 싶은 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들의 발걸음을 멈춰 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굳게 마음에 다짐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이것이 무슨 뜻이냐 묻거든’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뜻은
1. 과거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20절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 ’ 무슨 말입니까? 앞으로 광야를 벗어나 가나안 땅에 살아가야 할 세대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 세대는 광야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입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통 속에 살았던 사람들은 전쟁을 아는 세대는 기성세대를 말합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태어나 길게는 40년 이상 광야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이 광야 세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모세가 우려했던 세대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입니다. 이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세대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살벌한 생활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를 먹어 본 일이 없습니다. 바위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구경한 일도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기적다운 기적을 체험한 일도 없습니다.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전쟁을 아는 세대인 그들의 부모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가나안 문화에 접하게 됩니다. 가나안 문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광야에서 받은 율법을 지켜야 하는 지’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십계명을 외워라. 율법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율법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아무리 강조해도, 광야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해보지 못한 후손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입니까?”그렇게 물어올 것입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고리타분한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그렇게 항의하며 물어올 텐데, 그 때에 부모들이 그런 후손들에게 분명하고 명확하게 대답을 해 주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것이 무슨 뜻이냐 묻거든’ 이라고 질문할 때,
2.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21절
“우리가 옛적에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애굽에서 바로의 압정에서 430년간 종살이 했었다는 것입니다. 노예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예전에 노예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말입니까? 부끄러운 과거입니까? 그건 결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면 그걸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알려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자식들이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그렇게 물어오거든 가장 먼저 ‘조상들이 옛적에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했던 사람들’이란 사실을 알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노예생활했던 노예란다’하는 말보다는 ‘우리는 자랑스러운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우리는 특별하게 선택된 민족이다’ 그런 것들을 말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그런 건 전혀 쓸데없는 자랑일 뿐입니다. ‘우리는 노예 출신이란다’ 그렇게 가르쳐주라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언약의 자손인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랑할 그 어떤 것도 자기들에게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종살이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자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우리를 향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가르쳐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6.25전쟁 72주년을 준비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수 백번이라도 들려 주고 싶은 우리의 역사의 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 예배드리는 우리 가운데 그 전쟁의 고통을 몸소 겪은 분도 계시지만, 대다수는 그 아픔과 상처를 보지 못한 전후 세대가 많습니다. 세월은 이렇게 흘러갔지만, 전쟁의 상처가 정말 깊이 패인 채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의 아픔을 겪는 나라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우리는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953년 휴전으로 포성이 멎었지만, 10여년이 지난 1960년대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유엔에 등록된 120여 국가 중에 필리핀의 국민 소득이 170달러 태국 220달러 일 때 한국은 76달러였습니다.
우리보다 국민 소득이 낮은 나라는 인도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후진국가였던 것입니다. 6.25라는 동족상쟁의 비극 속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으로 이 땅을 지킨 분들이 부모세대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을 위해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들 목숨을 담보로 월남에서 싸운 용사들과 뜨거운 중동지역에서 수고한 산업 역군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이 세계로 발돋움 할 수 있었습니다. 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해 과거의 고통을 즐거이 참고 견디어온 앞선 세대들, 그들의 노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삶의 전 영역에서 풍요를 누리고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과거가 없었다면 뿌리 없는 나무와 같이 우리에겐 현재도 미래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의 세대가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지금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살게 될 다음 세대에게 모세가 꼭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리 조상들이 노예생활했던 노예란다’라는 말입니다. 옛날에 종살이하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 얼마나 귀한 은혜인가 말입니다. 그리고 23절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무슨 말입니까? 지금 너희가 누리는 이 모든 복은 하나님이 너희를 눈동자 같이 지켜 주셨고 너희를 인도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임을 이야기합니다. 너희들의 열심히 아니라 노예로 비참하게 살았던 그 땅에서 하나님이 너희를 ‘거기서’ 이끌어 내어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가 외친‘이것이 무슨 뜻이냐 묻거든’이란 말은
3. 이제 우리가 살아야 할 몫-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24절)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살아야 할 그 땅은 죄악이 관영한 땅이다. 그러나 거기에 휩쌓이지 말고 광야에서 함께하시고 너희들을 인도하신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다음세대에게 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병든 문화와 세속에 쪄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남북의 대치 상황은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상태이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안전 불감증에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정치나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영적으로도 타락의 깊은 수렁에 빠진 조국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8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가정이 중독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국민 8명 중 1명이 알코올이나 인터넷, 도박, 마약에 중독돼 사회경제적 비용만 연간 109조 5,000억 원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2022년도 한해 예산이 604조인데 상당한 숫자입니다. 중독 전문가 단체인 ‘중독포럼’에 따르면 10년전 통계이지만, 알코올 중독자는 155만 명, 인터넷 중독자는 233만 명, 도박 중독자는 220만 명, 마약 중독자는 10만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 약 5,000만 명 중 618만 명이 4대 중독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범죄 시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8시간 10분마다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점점 사람 생명의 존귀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명경시 풍조는 자연스럽게 황금만능주의, 쾌락 지상주의로 연결이 됩니다. 일 년 술값으로 14조, 성매매로 24조가 소비된다고 합니다. 성매매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는 33만 명으로 이는 20, 30대 여성 취업 인구의 8%나 된다고 합니다. 쾌락이면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을 찾아가는 불나비처럼 쾌락의 불더미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심각하지 않습니까? 이젠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6.25 72주년을 돌아보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전쟁기념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길이 49m에 달하는 검은 대리석으로 된 한국전 참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기념비 한쪽 벽에는 전쟁에 참여했던 참전용사 2500명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반대편 벽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6.25전쟁 때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전쟁에서 전사한 우리나라 군인들만 14만여 명에 달하고,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자들 중에는 약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민간인들 중에는 약 37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고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희생과 헌신이 세월 속에 묻혀서 점점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 모세가 가나안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우리가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가를 들려주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로 인해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아직도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앞에 여전히 우리는 갈등과 대립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서 아낌없이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셔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희생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 우리와 이웃 사이에 모든 막힌 담을 허무는 은총이 되었습니다. 이제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도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될것입니다.
무엇보다 남북이 다시는 전쟁의 아픔을 자녀들에게 물려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대와 세상을 향하여 복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오후 3시에 청년들의 회복을 위한 집회를 하려 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바로 서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 도 함께 나와 이 집회에서 청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