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목을 보면 많은 분들이 부담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믿지 않는 분들이 교회에 나오기를 기피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그 첫 번째가 교회에 나가니까 돈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설문조사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 돈이나 재물과 관련된 구절이 무려 16,000개 이상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 2/3나 되는 많은 부분이 돈이나 재물과 관련된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도대체 왜 성경은 이렇게 많은 부분에서 돈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신앙생활에서 돈이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어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돈에 대해서 올바로 알아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 번은 마르틴 루터가 “진정한 회개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루터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머리의 회개와 가슴의 회개 그리고 돈지갑의 회개입니다. 머리의 회개란 지적인 변화로 복음과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가슴의 회개란 사랑과 정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돈지갑의 회개입니다. 돈을 어떻게 모으고, 또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회개의 중요한 척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돈에 대한 이해와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구원을 체험했다고 하십시다. 그가 정말 새 사람이 되었다면 저는 먼저 현저한 변화를 가져와야 할 삶의 영역 중에 하나가 돈 씀씀이의 변화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돈은 인생의 가치관을 대표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경험하셨겠지만, 돈을 잘 버는 일은 힘이 듭니다. 돈을 잘 벌어보려고 최선을 다해보지만 대부분 돈을 제대로 벌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법을 지키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온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돈을 잘 쓰는 일 역시 힘이 듭니다.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헌금 생활을 어떻게 하는 가는 정말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헌금이라는 것은 단순한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신앙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마지막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 사역에 동참했던 빌립보 성도들의 헌금관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돈을 사용하는 보면서 물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을 감동시킨 빌립보교회의 헌금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Ⅰ. 바울의 괴로움에 참여했습니다. 14-16절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바울은 여기 14절의 표현처럼 ‘괴로운 삶’이었습니다. 이 괴로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바울은 자기가 당한 어려움을 조금도 은폐하지 않고 솔직히 털어놓고 있습니다. 고전1:8-9절에 보면 소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이었다고 말합니다. 살소망이 끊어 졌다고 말합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심정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이 환난이 어떤 어려움이었는지는 모릅니다. 여하튼 그는 이런 절망감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절망의 환경 가운데 있는 바울의 괴로움에 이 빌립보 성도들은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자신들의 소유를 나누었고, 시간을 내어 바울을 찾아 위로했습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여기 ‘복음의 시초’라는 말은 빌립보에서 선교 여행을 선교여행을 떠난 지 십 년이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시초(ἀρχῇ)라고 표현함으로 변함없는 사랑으로 바울의 사역 을 섬겨왔습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사랑으로 나누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그들이라고 항상 평안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닙니다. 고후 8:1,2을 보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그들에게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환난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들 자신도 극한 가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저는 이 빌립보교회 교인들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 - 두 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을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주고 베푸는 자에 속합니까? 아니면 늘 받는 자에 속하십니까? 우리가 어려서는 주로 받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숙해 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주는 것, 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 아니겠습니까? 행20:35절에 보면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한 최대의 사건은 요한3:16에서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의 사건일 것입니다. 이 소중한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3:16을 경험하고 이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얼마나 요일3:16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라는 신학자는 요한3:16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이 요일 3:16에 순종하고 있지 않는 한 아직 그의 믿음의 삶은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요일3:16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어지는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나누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들이 바울에게 전한 물질을
Ⅱ. 풍성한 열매를 맺히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합니다. 17절
1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이 말씀을 쉽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내가 물질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내게 물질을 보내주기를 원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들을 위해서, 여러분들의 풍성한 열매의 삶을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풍성한 열매란 무엇입니까? 나눌 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잠11:25절에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이것은 세상을 사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이 주신 보장 같은것입니다. 나누면 윤택하고 부요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늘 우리에게 다르게 말합니다. 갖고 있어야, 안써야 돈이 모이고 부자가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릅니다. 이웃에게 나눠 줘야 정말 윤택하고 부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전도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전11:1절에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기가 막히지요. 물 위에 던져서 흔적이 없는데도 여러 날이 지나면 도로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손에 움켜 쥐지 마십시오.
19-2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행위를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당장에는 손해 보는 것 같고, 뭔가를 잃는 것 같아도 이웃에게 물질을 나누면 우리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재물이 내 인생에 담보가 되면 그때부터 그 재물은 독이 됩니다. 손을 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십시오. 물질은 함께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돈을 잘 벌어야겠지만, 돈을 가치있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돈을 잘 쓰는 사람 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 워렌 버핏입니다. 이분은 작년 한 해 동안 세계 곳곳에 기부한 돈이 무려 31억 7000만 달러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4조가 넘는 큰 액수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누적 기부금이 275억 달러, 우리 돈으로 30조가 넘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분은 1958년 3만 불을 주고 산 고향 오마하 평범한 마을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60년째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출근하며 동네 식당에서 동네사람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부자면서도 서민들처럼 살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에만 돈을 쓰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으로 빌 게이츠를 들 수 있습니다. 이분은 기부왕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작년에도 각 언론사에만 무려 4000억 원을 기부했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분은 자기 자녀에게는 먹고 살 만큼만 유산을 물려주고, 자기가 살아생전 좋은 일이 쓰고 남은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대략 그 금액이 79조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분들에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돈을 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쓸 계획을 세웁니다. 다음으로 여분의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계획합니다. 이분들은 워낙 남은 돈이 많기 때문에 그 계획 세우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가고 있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이분들은 부자면서도 돈의 시험을 잘 이겨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도 돈을 사랑하는 유혹을 이겨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돈을 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축복의 비결입니다. 바울은 복음 사역에 물질로 동참한 빌 립보 성도들의 예물을
Ⅲ. 향기로운 제물이라 표현 했습니다. 18절
본문 18절에 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향기로운 제물'은 구약의 제사의식을 반영하는 표현으로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헌신적인 삶을 상징합니다(롬 12:1). 제물을 영어로 표기하면 "sacrifice"라 했습니다. 제물은 곧 희생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신을 제물로 드린다는 말은 곧 희생한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보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을 통해 온 땅에 생명의 향기가 퍼지지 않았습니까? 엡5:2절 하반절에 보면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기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무엇이라 말씀을 하십니까?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제사를 통해, 피를 통해 죄를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린 다음에야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의 통로를 열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향기로운 제물과 자신을 생축으로 아낌없이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 앞에 사는 자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부자는 많지만 대부분 졸부들입니다. 존경받는 부자가 얼마나 됩니까? 누가 자기 돈으로 남의 자녀를 유학 보내 줬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부자는 많지만 모두 자기 몸, 자기 자녀만 챙깁니다. 장·차관 청문회를 한번 보십시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데,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듣는 말은 마음이 상하는 말뿐입니다. 남들처럼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위장전입을 하고, 아파트 계약을 하면서 다운 계약서로 작성하고, 세금을 줄이려고 거짓 신고를 하고, 불법으로 돈을 받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부지기수인 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국 교회의 지체들 가운데 장관도 나오고 차관도 나와서, 온국민이 보는 청문회에서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잘 흘려보내서 수많은 사람들이 유학도 가고 어려움 가운데서 도움과 위로도 받았다고 간증할 날을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지위와 신분을 악용해서 코 묻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땀 흘려 벌어서 이웃에게 열심히 나누고, 부부가 살아갈 노후 연금 정도만 가지고 사는 청렴결백한 장·차관들의 이야기를 이제 좀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돈이 많고 신분이 높아야 영광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돈 많은 무리처럼 살지 않고, 수고하고 땀흘려 일해서 이웃에게 마음껏 나눠 주었더니 어느 날 하나님이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그 영혼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보증해 주시고, 우리가 달려온 걸음을 인정해 주시고, 그들의 입술을 빌려서 우리의 삶을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 진짜 영광 아닙니까?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있어도 어느 날 연기처럼 다 사라지고 맙니다. 명예와 존귀가 좋아 보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영광 가운데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성도들이 나누고, 베풀고, 흘려보내야 합니다. 이 부요함을 가지고도 무너져 내리는 대한민국 땅에 참된 부의 사용이 드러나서 사람을 살리고, 영혼을 치료하고, 심령을 시원하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물질 나눔과 시간 나눔과 희생이 조국 사회의 구석구석에 흘러가서 그 은혜가 모두를 통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