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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지금은 지혜롭게 살아야 할 때입니다(엡 5:15-17) [전도설교2]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2-09-25 | 조회: 195


여러분, 평소에 무엇을 많이 생각하십니까? 오늘 예배시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라고 물으시면 여러분은 무어라고 대답하실 것 같습니까? 구약에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이 어린 나이에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 아버지는 보통 왕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자리를 감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는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1천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이 제사는 엄청난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사할 때 쓰여지는 희생제물을 생각해보십시오. 요즘 소 한 마리 값이 얼마냐 하면 수송아지 시세가 평균 660만 원이나 합니다. 우리 돈으로 한 66억정도 되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흠이 없는 수소를 1000마리를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엄청난 희생과 시간을 투자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겠습니까? 보세요. 그가 천번의 제사를 마치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나 바라왔던 순간입니까? 그의 앞날은 이제 무엇을 구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 순간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바른 선택을 합니다. 그는 '이것을 주십시오' '저것을 주십시오'하고 이것저것 잡다하게 구하지 않습니다. 왕상3:9절에 보면. "지혜로운 마음을(듣는 마음)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급한 처지를 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구한 것은 지혜로움 마음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합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지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물과 사건을 분별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통찰력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말씀에서 바울은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15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하여무슨 말입니까? 삶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주의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것은 아주 귀하게 따로 보관하지 않습니까? 빗자루를 금고에 넣어 보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결혼반지는 어떻습니까? 반지를 손에 끼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그것을 벗어 놓을 때는 아무렇게나 던져 놓지 않습니다. 예쁜 보석함 안에 잘 넣어둡니다. 왜냐하면 아주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귀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막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아주 자세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너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혜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본문은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 지혜롭게 살려면 세월을 아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6절은 간결하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박윤선 주석에 보면 기회를 사서 내오라는 의미로 설명을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모든 시간(세월)을 기회로 본 것입니다. 기회는 머물지 않고 계속 흘러가므로 우리가 그것을 사서 내 것로 삼지 않으면, 그 기회(시간)는 악한 데 사용되고 마는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순간순간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한 의미있는 시간입니다. 바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그 시간들을 놓치지 말고 어떤 희생의 대가를 지불을 해서라도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매너리즘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실 것입니다. 사전에는 매너리즘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입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이 늘 같은 일상을 같은 방식과 태도로 살아가는 동안, 감격도 열정도 의미도 다 잃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매너리즘도 그렇습니다. 반복되는 신앙생활을 늘 같은 방식과 태도로 살아가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격도 열정도 의미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의 신학자 폴 트립은 목회, 위험한 소명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매너리즘의 또 다른 원인은 복음의 진리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해도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 어느새 구원의 복음에 익숙해지고 십자가에 익숙해지면서 눈물이 사라지고 십자가의 그 진리가 메마으게 다가옵니다. 보세요. 예수 믿고 성령의 감동을 받고 성경을 읽을 때 그렇게도 가슴이 뛰던 사람이, 어느새 성경 말씀에 익숙해지면서 더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타성에 젖어 말씀을 보아도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이 익숙해지면서 감동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이것이 성도의 위기입니다. 그리고

 

. 지혜로운 자는 세월을 아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합니다.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사랑하는 여러분!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분별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은 열심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성과 성실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한 가지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6:38-39절에 보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여기 하나님의 뜻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 - 영혼 구원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한 생명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녹취록입니다. 이 영혼을 포기할 수 없는 영혼의 추적자에 관한 기록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하나님을 영혼의 추적자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여러분을 포기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탕자처럼 멀리 떠나 그분을 잊고 방황할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기다리셨습니다. 고멜과 같이 세상에 짝하여 방탕할 때도 그분은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쾌락에 묻혀 살 때도 그분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가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번 택한 자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집요하게 추적하셔서 기어코 여러분을 주께서 자녀 삼으시지 않으셨니까? 자신이 잘나서 변화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의 나를 만들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 살전4:3절에 보면 거룩하게 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구원과 거룩 - 이는 성도의 삶의 여정입니다. 이 거룩이란 의미는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구별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에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아니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바른 신앙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살기 위해서는 매일 매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여 바라보며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 속으로, 그분의 은혜 안으로, 그분의 크신 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과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할수록 우리는 주님과 더욱 친밀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찾고 주님을 깊이 생각함으로 우리는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생각하는 것은 곧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하는 것을 보면, 함께 걷고, 함께 맛있는 것 먹고, 함께 영화보고, 함께 게임하고. 시간이 모자랍니다. 하루종일 함께 있었는데도 언제 시간이 다 지나갔는지 아쉽습니다. 저녁에 헤어질 때면 안타까워서 돌아보고 또 돌아봅니다. 서로 집으로 가면서도 계속 카톡으로 연락하고, 서로 함께 있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영화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경치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함께 있는 그 사람이 좋아서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서로 함께 있는 것, 아니 서로의 존재가 가장 최고의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우리 역시 이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기도가 좋고, 찬양이 좋고, 예배드리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이유가 주님 자체가 좋아서이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요즘 무엇을 생각하며 사십니까? 혹 세상의 일들에만 마음 빼앗긴 채 살고 계시진 않습니까? 주님을 찾고,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을 깊이 생각하며 사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매일 아침 날마다 샘솟는 삶을 보내드리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내 삶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분주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주한 세상에서 살다 보니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아집니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여기 술 취하지 말라성령 충만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우선 술에 취한다는 것은 술 몇 잔을 마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자기가 술기운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아예 술기운이 자기를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술기운이 자기감정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멀쩡하던 사람이 울기도 미친 사람처럼 웃기도 합니다. 또 자기 인격을 지배합니다. 얌전하던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옷을 벗고 아무데서나 소변을 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철저하게 성령의 강력한 지배를 받게 됩니다. 성령께서 감정을 지배하십니다. 그래서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생각을 지배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선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지를 지배하십니다. 담대해지고 결단하게 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술 취함과 성령의 충만의 열매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술 취함은 그 열매가 엡 5:18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방탕함입니다. 술 취하게 되면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 스스로 실수를 저질러 큰 손해를 보게 되고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성령으로 행하게 되면 아름다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5:22가 그 열매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런 열매들은 마치 맛있게 잘 익은 과일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듯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기쁘고 행복하게 해 줍니다. 이렇게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이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 생을 성령의 매인바 된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성령으로부터 지배를 받고 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보십시오. 800만의 성도가 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온 땅에 펼쳐 날 갈 수 있는 엄청난 자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합니다. 마치 우리의 모습은 머리 잘린 삼손처럼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모습으로 세상 앞에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깨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 타락한 세상에 복음의 횃불을 들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영혼 구원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삶의 현장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바울 당시 에베소 도시에는 30만 인구 가운데 1%가 될까말까한 성도들이 복음을 들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훗날 이 음란과 쾌락의 상징인 에베소 도시가 복음으로 무너졌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영적 긴장감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한 생명을 주께로라는 표어 아래 태신자를 세우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한 사람의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는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영혼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곳곳에서 부르짖는 영혼들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이 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영혼을 결코 살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영혼들이 겉은 멀쩡한데 영혼이 병들어 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치 않은 가운데 먼지와 쓰레기 같은 향락과 죽음 한 가운데 방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영혼의 먼지와 쓰레기를 빗질로 쓸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영혼의 소리를 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합니다. 그리고 영혼의 절규를 듣는 즉시 응답하여 그들을 살려야 합니다. 영혼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만이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합신에 유영기 교수가 강의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느 섬마을에 사는 한분의 간증 이야기인데 어느날 파도가 심하게 치고 비바람이 밤새 동안 치는데 밖에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이분은 풍랑이 심하게 이는 소리라고만 생각하고 잠을 잤는데 아침에 보니까 시체들이 해안가에 떠밀려 온 것입니다. 그는 통곡을 했습니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파도소리로만 안 것입니다. 그 때 이분이 크게 깨닫고 목회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한 신학교 교수가 절규하는 이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한 사람의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는 밤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난파선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하는 영혼의 절규하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영혼을 결코 살릴 수 없습니다. 기회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미뤄서 될 일이 아닙니다. 복음이 유일한 능력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결코 전도를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지혜롭게 살아야 할 때입니다. 나에게 선물로 주셔서 돌보도록 한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한 생명에 대한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다음 주는 가정의 영적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길 바람니다. 주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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