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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붙들어 주심 – 가정 (시 37:23-26) [전도설교3]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2-10-02 | 조회: 228


 

여러분, ‘파이어족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파이어족이란 젊었을 때 열심히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자립한 후에 조기에 은퇴하고 노년을 즐기면서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모으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절약합니다.하고 싶은 것도 하지 않고, 즐기는 것도 다 포기합니다. 차도 사지 않고 죽을 고생을 해서라도 돈을 모으는 것이 목표입니다. 젊었을 때 거지처럼 살더라도, 빨리 돈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충분한 자금을 모아 40대에 퇴직하는 것이 희망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돈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틀렸다의 저자인 수즈 오만이 지적한 대로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500만 달러 (60)를 모아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최소한 수십억을 모아야 조기에 퇴직하고 노년을 즐길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만큼의 돈을 모으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젊었을 때 그렇게 죽도록 일만 하고 돈을 모아 노년을 즐긴다고 하지만, 오늘의 삶을 즐기지 못한 사람들이 노년이 되면 인생을 보람되게 보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삶에서 행복을 포기하고 내일의 꿈만 꾸다가 나중에 희망하는 그런 삶을 찾지 못한다면, 오늘 죽도록 고생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주변에서 많이 보는 것처럼, 젊었을 때 파이어족만큼은 아니어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조금 여유있게 살려 하는데, 건강이 나빠지고 가정이 위기를 맞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만 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신앙의 원칙이 있습니다. 본질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지만, 그렇게 대단했던 사람들이 왜 끝이 초라하게 끝나버리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본질과 원칙을 벗어나 인생을 경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가정 초청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인생의 원칙과 본질이 무엇입니까? 조이스 럽이 쓴 느긋하게 걸어라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두 목회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은 기록한 책입니다. 거기에 보면 순례길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을 프리메로 디오스’(Primero Dios)라고 말합니다. 프리메로 디오스라는 말은 하나님을 첫 자리에라는 뜻의 스페인어입니다. 무언가를 결졍하려 할 때, 또는 마음속에 어떤 염려나 두려움이 찾아올 때 먼저 하나님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결국 다 잘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찌 순례길에서만 그렇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나그네의 삶이요, 하나님을 신앙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당연히 하나님을 첫 자리에라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시편 37편은 아마도 다윗이 사울에게서 버림을 받고 피난을 다니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쓴 시편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다윗만큼 인생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노년에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면서 철저하게 깨닫게 된 것은 자신의 삶에 하나님을 첫 자리에두고 사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오늘 무엇보다 회복 되어져야 할 것이 바로 우리 가정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을 첫 자리에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23

 

23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여기 하나님께서 사람의 길을 정하셨다이 말씀을 신학에서는 예정론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사실 이 예정론에 대해 오해가 많습니다. 많은사람들이 예정론을 숙명론과 혼동합니다. 숙명론이란 인간의 운명은 이미 작정되었고, 그 작정된 길로 갈 뿐이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사주팔자를 들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운명이 여덟 숫자 안에 다 담겨있고, 그 운명대로 살도록 되어있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숙명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의 길을 정해놓으셨다면, 아마도 사람은 로봇이나 배우와 같을 것입니다. 정해진 프로그램이나 각본에 따라 살아갈 테니까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로봇이 죄를 지을까요? 결코 로봇은 프로그램을 어기며 자기 멋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다만 고장이 나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프로그램을 자기 뜻대로 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짓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시고 그 뜻을 알려주셔도 인간이 어길 수 있습니다. 그 정해진대로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숙명론적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정하셨다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6:9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우리가 저마다 인생을 나름대로 잘 살아보려고 계획도 하고 작정도 하고 노력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학교는 누구나 초행길입니다. 똑같은 길을 되돌아가 다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삶은 익숙한 생활을 반복하여 살기에 우리에게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지만, 때로는 낯선 길을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는 낯선 길이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궤도 수정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래도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이 길을 가면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잠16:3절을 보면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맡겨야 합니다. 맡긴다는 말은 내 삶을 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주님 앞에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어머니 기도회의 표어가 무엇입니까자식의 장래는 기도하는 부모의 무릎에 달려 있다오늘 가정 초청 주일인데 사실 우리가 자녀들을 뒷바라지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잘 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 24시간 내내 할 수 있나요? 어디든지 따라다니며 할 수 있나요? 우리 인생이 짧은데 자녀의 평생을 책임져 줄 수 있나요? 어림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뒷 바라지를 하고 기도의 뒷바라지를 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부모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은 좀 부족해도 기도 뒷바라지를 잘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33:3절을 보십시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러므로 자녀를 위해 소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 붙들어 주십니다. 24

 

본문 24절을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하나님의 백성이 인생길을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는데 완전히 엎드러지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넘어질 때 하나님께서 손으로 붙들어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선 넘어지지만 엎드러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넘어지는 것은 무엇이고 또 엎드러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넘어진다는 것은 눕다라는 뜻의 나팔’(נפל)이란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끄러져서 바닥에 눕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에 비해서 엎드러진다는 것은 내동댕이치다라는 뜻의 유탈’(יוטל)이란 말의 수동형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동댕이쳐져서 다시는 일어나기 힘들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복싱경기를 보면 선수가 넘어지는 경우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운이고, 다른 하나는 KO입니다. 다운은 미끄러져 넘어지는 슬립다운이 있고, 펀치를 맞아서 넘어지는 다운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운당한 선수는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심판이 볼 때 다시 경기할 수 있다고 판단돼서 경기가 재개됩니다. 우리 교회에도 왔던 홍수환 선수는 카라스키야를 꺽고 45기 세계 챔피온이 된것입니다. 그러나 KO를 당한 선수는 넘어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일어난다고 해도 심판이 볼 때 다시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경기가 바로 종료됩니다.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인생을 살면서 다운당할 수는 있지만 결코 KO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을 기록한 다윗의 일생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큰 공로를 세우고 난 다음, 그는 그의 장인이 된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어요. 한 십년을 쫓겨 다녔어요. 왕이 되고 나서도, 사울 왕 일가와 7년간을 또 싸워야 했습니다. 그의 말년에는 압살롬이라고 하는 아들이 아버지한테 칼을 겨눴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다윗에게 충성했던 다윗의 참모였던 아히도벨이 역적이 된 압살롬의 편에 붙어서, 자기를 죽이려는 모든 계략을 꾸몄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아들이 자기에게 칼을 겨누고, 가장 믿었던 심복이 돌아서서 자기를 잡는 계략을 세우고 있으니, 죽일 계략을 세우고 있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환란이 다가와서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주님이 일으켜 주시고 또 일으켜 주십니다.

 

그러나 잠24: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결국 악인이 엎드러지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엎드러진 것입니다. 배신한 아히도벨이 엎드러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또 일으켜 주시고, 또 일으켜 주셔서 결국 승리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이 은혜 앞에 서 있다면, 절대로 힘들고 어렵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145:14절에,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무슨 말입니까? 때로는 살면서 수치와 심지어 비굴한 자리에 있을찌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참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일으켜 주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은 가정을 책임져 주십니다. 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여기 다윗은 삶의 여정에서 한가지 얻어진 결론은 바로 믿음의 가정의 축복입니다. 시인 자신이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자신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보았던 경험을 말합니다. 자신이 평생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의인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거나 먹을 것이 없어 남에게 구걸해야 하는 걸식함을 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붙잡아 주시는데,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손을 붙들어 주십니다.

 

극동방송국에 부사장으로 계셨던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인 주광조 장로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순교한 지 14개월만에 이 나라에 8. 15해방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때 가족과 교회는 돌아가신 목사님을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을 수없이 닦아가며 감사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당시 그의 어머니는 위암으로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를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는데, 하루는 인민위원회 간부들이 찾아와 어머니에게 돈과 남산동의 적산 가옥 문서 그리고 논밭 문서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항일투사인 주기철 목사의 숭고한 정신에 감복해 김일성이 보낸 포상금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완곡하게 사절을 하며 주목사님은 이 세상의 포상을 받기 위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순교했으니 하나님의 상을 받기를 바랄뿐이요!“ 완강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옆에 있던 자신은 마음에 커다란 갈등이 왔다고 합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어머니, 그렇다면 이 험한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는 저 돈이 저 재산이 필요한데어머니는 그런 자기를 의식하였는지 그들이 돌아간 다음 아들을 앉혀놓고 성경구절을 찾아 읽으라고 했답니다. 37:25-26절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의롭게 산 자가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들이 구걸 당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저는 항상 은혜를 베풀므로 그 자손들이 복을 받았도다 사실 주 목사님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었습니까? 그렇다고 가르치기를 했습니까? 남겨준 물질적인 유산이라고 배고픔과 원망과 좌절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놓치지 않았던 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엄청난 유혹 앞에서도 그 집문서를 뿌리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을 자녀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사랑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3: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지명하여 부르시며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기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처럼 가정붕괴 시대에 우리 가정에 하나님을 첫 번째로 모시는 삶이 얼마나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가정이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누리십시오. 그 은혜 앞에 섰다면,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흘러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흘러 보내는 그곳이 기적의 장소가 됩니다. 우리의 사랑을 흘러 보내는 것,그것이 기적을 일이키는 방법입니다. 그 현장이 바로 여러분의 가정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흘러보낼 때 우리의 영혼에도 하늘의 은혜가 깃들이고, 그렇게 흘러 보낼 때 우리의 영혼도 살아납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 누군가에게 눈을 돌려 그에게 눈길을 줄 때 그 눈빛으로 누군가가 다시 살아나고, 그로 인해서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회복의 역사가 여러분의 가정에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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