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아침 대하는 다니엘은 참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본문은 지금부터 26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다니엘은 우리보다 더 힘든 시절을 보낸 사람입니다. 그는 불과 15세 전후의 나이에 침략군 바벨론에게 불모로 잡혀간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생전에 고국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평생을 이국땅에서 볼모의 신세로 살았습니다. 당시에 그가 끌려간 바벨론은 하나님이 없는 사회였습니다. 그 나라는 온 천지가 죄악으로 캄캄했고 더럽고 추악한 냄새만이 가득한 이방국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90세가 넘도록 그 지역에 살았고 정권이 세 번이나 교체되는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도 새로 들어선 정권과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높은 위치를 지켜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니엘은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히 세계 정치를 움직이는 오고 오는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삶을 보여주는 영향력을 끼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바벨론에 노예처럼 끌려온 다니엘은 한마디로 미래가 없는 사람입니다. 요즘 말로 노예로 끌려온 그들에게 있어서 성공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사치스러운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절망의 환경 가운데도 그는 자신의 삶에 영향력을 끼치며 당당하게 살아왔습니다.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런 엄청난 인생을 살 수가 있었습니까?
오늘 함께 읽은 10절에 보세요. 여기 보면 그 칡흑같은 시대에서 그가 독야청청 살아남을 수 있었던 자세가 나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 말씀의 배경은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세 명의 총리와 120명의 관리를 세워 통치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최고의 자리에 앉히려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유대에서 포로로 끌려온 사람이고, 자기들의 신을 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른 총리와 관리들이 시기하며 음모를 꾸며 다니엘을 죽이려 했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왕 이외에 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절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게 만든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의 생애에 최고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다니엘을 죽이기로 작정한 음모 속에 말려들어 사자굴에 던져질 위기 앞에 그는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그의 감사는
Ⅰ. ‘알고도’의 감사입니다.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여기 “알고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엇을 알았다는 말입니까? 자기를 주이려하는 무서운 음모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이 시기하여 다니엘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을 고발하기 위해 허물을 찾았지만, 아무런 잘못도 발견할 수 없었고, 어떠한 흠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총리대신에 오른 그가 검은 돈의 유혹을 받을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정을 저지를 수도 있었지만, 그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다니엘로부터 아무런 잘못이나 어떠한 흠도 찾을 수 없게 되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다니엘을 고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한 가지 작전을 세웠습니다.
다리오 왕을 부추겨서 앞으로 30일 동안에 왕 외의 어느 신에게나 어떤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는 사람은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다니엘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커다란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음모 앞에 누가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이 땅에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셨을 때, 당시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막10:33을 보면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를 합니다. 결국 이 음모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이것이 구원자이신 예수님에게 우리가 했던 일입니다.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이야기이지만, 자기 욕망에 빠진 사람은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가 이상하게 변하고, 삶이 편안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결과는 언제나 비참해지고 불행해집니다. 인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매듭지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 교인들 중에서도 진리를 떠나 남을 음해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런 사람들의 뒤끝이 좋지 않게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욕망대로가 아닌 사랑의 향기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요13:34-35절에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새계명으로 주신 말씀인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람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면 사랑을 베품에 빚진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마지막 질문은 ‘얼마만큼 내 주장대로 살았는가?’가 아니라‘얼마만큼 사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느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때도 얼마만큼 감사하고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었느냐로 평가할 것입니다. 여러분, 한 해 동안 얼마만큼 사랑하며 사셨습니까? 2022년을 갈무리하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한 해 동안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았는가?’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맞이하게 될 새해에는 더 많이 사랑하며 감사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 다니엘이 모함 속에 걸려들어 죽을 줄 알고도 감사한 것은 지금의 현실 앞에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당시 왕에게 총애를 받을 만큼 뛰어난 자입니다. 얼마든지 자기의 억울함을 왕을 찾아가 왕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선처를 부탁했을 것입니다. 왕이 다니엘을 총애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풀어주든지 아니면 사자 굴에 던져 죽게 하는 것만큼은 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다니엘은 적들이 파놓은 함정을 알고도 그는
Ⅱ. 전에 하던대로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말씀이 “전에 하던 대로”라는 문구입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 그 때로부터 약 70년의 시간이 흐른 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전에 하던 대로’라는 말은 이전부터 계속해서 그렇게 해 왔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평생 누가 자기를 해꾸지 해도, 음모를 꾸며도 누가 지신에게 불이익을 주어도 흔들리지 않고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다 발각되면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다니엘도 사람인데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보통 그리스도인들 같았으면 기도를 쉬었을 것입니다. 30일이 지난 뒤에 다시 기도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더라도 문을 닫고 남몰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신앙은 평상시에는 그 진위를 잘 모르지만 위기 때가 되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지금은 몰라요!! 다 각오도 다짐도 하지만, 정말 변함없는 믿음을 가진 자인지는 평소에는 판가름나지 않습니다. 오직 결정적인 때에 드러나는 법입니다. 내 건강이, 내 재물이, 내 생각이, 내 뜻이 찍히고 떨어지고 빼앗기고 부서지고 깨어져 나갈 때, 바로 그 순간마저, 우리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면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충성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결정적일 때를 위해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일 때,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믿음이 필요할때에 비신앙적인 길을 걷는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참된 충성된 신앙인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위대한 것은 그가 네 번씩이나 총리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위기가 들이 닥쳤는데 ‘전에 하던 대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다니엘은 위기가 닥치자 침착하게 기도의 자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기도에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위기를 맞게 되자 기도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Ⅲ . 그래도 감사했습니다. 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여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 감사는 보통 감사가 아닙니다. 자신이 망할 줄 알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사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감사에 따라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래서 감사는 축복의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보세요. 간신들은 다니엘이 왕의 긴급명령을 어기고 계속 하루에 3번씩 기도하는 것을 왕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왕은 충성스럽고 실력 있는 다니엘이 죽게 된 것 때문에 심히 근심하며 다니엘을 구하려고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내린 조서를 변개 할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근심하였고, 마음을 썼고, 힘을 썼습니다. 왕은 사자굴에 들어갈 다니엘에게 이르기를 "네가 항상 섬기시는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그러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아라" 고 위로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이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구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은 단 6:18절에 보시면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다리오 왕은 궁궐로 돌아와서 사랑하는 충신 다니엘이 사자에게 물려 죽을까봐 걱정이 되어, 밤새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고, 평소 즐기던 음악도 듣지 않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왕은 자기의 실책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충신이 죽게 된 것을 슬퍼하며 후회하고 괴로워하였습니다.
다니엘이 그럼에도 감사했을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셔서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그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천사들이 사자들의 입을 막아 줌으로써 그의 몸이 조금도 다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들을 처자식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졌고 사자는 그들이 굴 밑에 닫기도 전에 그 뼈까지 부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악한 흉계를 꾸민 자들은 가족들과 함께 참혹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마음을 못되게 쓰면 못씁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선악 간에 다 심판하십니다. 전국 백성들에게 왕은 긴급명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모든 백성은 떨며 두려워할 지니라"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영원히 변치 않으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않고 그 권세는 무궁하다는 것을 이방의 왕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단 6:28절에 보면 그럼에도 감사를 한 다니엘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신임만 얻은 것이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 왕이 바뀌었지만, 다니엘은 여전히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감사의 능력입니다. 그는 감사를 통해 계속해서 형통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이 감사함으로 그의 불행은 끝이 났습니다. 그가 감사함으로 그의 형통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이 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행을 끝내려고 하기 전에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형통한 삶을 추구하기 전에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면 우리의 불행이 끝이 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형통케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다음 주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비록 우리가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1년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더 나아가 아직까지 응답을 받지는 못했지만, 환경은 어렵지만, 문제는 여전히 내 앞에 있지만, 그럼에도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런저런 역경과 시련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니엘에게도 시련이 있었는데, 어찌 우리에게 역경과 시련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역경만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건강이 나빠졌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시험을 잘못 치루는 바람에 입술에서 원망이 나오려고 합니까? 그럼에도 원망 대신에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업이 부도를 당하여 낙심이 됩니까? 그럼에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과 같은 축복과 형통의 문들이 여러분들 앞에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추수감사절 뿐만 아니라 매일 매 순간 그럼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