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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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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행 10:1-4)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3-02-05 | 조회: 225
최근 우리나라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이 우리 사회의 총체적 위기 요인을 다섯 가지를 발표했습니다. 첫째가 가정의 붕괴이고, 둘째가 도덕성의 타락이고, 셋째가 집단이기주의이고, 넷째가 경제문제이고, 그리고 다섯째가 북핵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진단에서 주목할 것은 가정의 붕괴를 첫 번째로 손꼽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바로 가정의 붕괴라는 것입니다. 이 가정의 붕괴는 도덕성의 타락이나 집단이기주의 문제보다도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경제문제나 북핵문제보다도 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가정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면서 우리사회 전반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소위 ‘가족해체’ 현상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족해체’란 가족 간의 불화나 사회적인 이유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구조가 붕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현상이 있습니다. 이름을 붙여보자면 ‘영적 가족 해체 현상’입니다. 믿음의 가정 안에 믿음을 잃어버리는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가족들 가운데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신론이나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가정이 영적인 만남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무늬만 신앙인이지,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고, 가족들이 믿음의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많은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기를 포기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는 우리 교우들의 가정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적극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표어 아래 오늘은 우리의 가정은 문제가 없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우리 가정이 본질에서 어떤 가정이어야 하는가를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가정은 어떻게 살았기에 이런 강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까?

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2절에 보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기 ‘경외’의 원어 뜻은 “공경하다. 존경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 아닙니다. 고넬료는 신앙적인 유산이나 믿음의 계승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군인으로 백부장입니다. 당시에는 로마가 이스라엘(유대)을 지배하고 있을 때인데, 로마는 사마리아 지역인 가이사랴 지역에 총독의 관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100명씩 병사를 조직해서 지휘관을 한명 두었습니다. 고넬료는 100명의 군대를 통솔하는 로마 군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이런 고넬료가 식민지 지역에 파견 나와 살면서 회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쉬운 일입니까? 만일 황제가 이것을 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넬료의 성공과 출세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황제를 신으로 믿는 나라의 장교가 자기 나라 신을 믿지 않고 식민지국의 신을 믿는다면 황제가 좋아하겠습니까?

제가 목회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중에 몇 해 전의 이야기인데 한 현직 국회의원과 식사 자리를 했습니다. 그분은 불교계에서 알아주는 불교 정치인인데, 식사 중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나는 기독교로 개종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분을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지금 개종을 하면 정치적 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지금도 그분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권력을 가진 자가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고넬료가 필요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신만 믿는 것이 아니라 2절 보면, 온 집안과 함께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온 집안과 더불어” 고넬료는 부인, 아들, 딸과 더불어 온 식구들이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겁니다. 혼자서 개인적으로 예수를 잘 믿을 수는 있어요. 남편 혼자 잘 믿을 수도 있고, 부인 혼자서 잘 믿을 수도 있어요. 부모만 예수를 잘 믿을 수가 있고, 자녀만 예수를 잘 믿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고넬료는 “온 집안과 더불어” 예수님을 잘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넬료는 자신과의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습니까? 행10:22절을 보면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는 정복자로 이스라엘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 고넬료는 자기 부하들에게 인정을 받았을 그뿐만 아니라 당시 이방인을 꺼리는 유대인들조차도 이 고넬료를 칭찬했습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즘 사회를 보십시오. 직장생활이나 이 시대의 지도자들을 존경하는 모습이 사라져가는 시대입니다. 지난주 저의 집사람과 영웅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시간 내내 눈물을 참아가며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자기 아들이 29살의 젊은 나이에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4개월 만에 사형이 결정이 납니다. 이 사형을 선고받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당시 안중근 의사가 재판의 부당성으로 항소하게 될 때 어머니로부터 편지 한 통이 날라왔습니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슨,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이 영화는 우리에게 조국이 무엇이며 가정이 붕괴하여 가는 시대에 부모에 대한 효도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영화입니다. 이 안중근 이 한 사람은 당시 동료에게서도 칭찬을 받고 심지어 일본인들 조차 지금도 안중근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중근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가톨릭을 믿었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도 거부감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 한사람으로 이 땅에 다시 국가가 무엇인지 가정이 어떤 것인지를 조선인들에게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고넬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 심지어 자신을 배척하는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늘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고넬료가 살았기에 이런 역사가 가능했겠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Ⅱ. 이웃을 향한 배려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 바로 구제입니다.

여러분, 신앙인의 삶이란 반드시 삶에 향기가 일어납니다. 2절에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많이’의 원어 뜻은 ‘크게, 자주’라는 의미가 있고, ‘구제’의 원어 뜻은 “불쌍히 여기다. 자선, 자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넬료는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고, 자주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자녀가 보고 무엇을 느꼈겠습니까? 그는 식민지의 주둔한 권력자입니다. 얼마든지 사람들을 갈취해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더군다나 유대 사람들을 천하게 생각하고 하찮게 여기며 종처럼 여길 수도 있잖아요. 지배계층이니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고넬료는 식민지 백성을 불쌍히 여겨서 구제를 많이 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는 부모를 그대로 닮아갑니다. 식성도 닮고, 걸음걸이도 닮고, 생활습관도 닮습니다. 외모도 닮고 마음도 닮습니다. 부모가 믿음으로 살면 자녀도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배웁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면 자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부모님의 모습을 배웁니다. 자녀에게 많은 재산 물려주는 것도 좋지만, 사실은 재산이 자녀에게 물려줄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닙니다. 자녀를 크고 화려하고 좋은 집에서, 최고의 명문학교에 진학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최고로 중요한 것은 부모의 좋은 모델링입니다. ??최고 경영자 예수??라는 책을 쓴 로리 베스 존스는 ??억만금의 재산보다 한 줄의 예언을 물려 줘라“고 말했습니다. 그 한 줄의 예언이 무엇일까요? ??모델링??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음에도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족들에게 입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녀양육에는 지독한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냥 놔두면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는 물질도, 정성도, 보살핌도, 공도 들어가야 합니다. 요즘 아이 하나를 낳아 키우는 비용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 하나를 낳아 18세까지 키우는데 총 2억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2-3 키우는 게 얼마나 큰 부담입니까? 그런데 자식 하나를 양육하는데 돈도 돈이지만 정성이 들어야 합니다. 화초 하나를 키우는데도, 강아지 한 마리를 사육하는데도 얼마나 공이 들어갑니까?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키워도 저들을 신앙으로 키우지 않으면 결국 어느 순간에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문제가 나면 무너지게 됩니다. 신앙이 재산입니다. 고넬료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남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주의 은혜 앞에 서니까, 가치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높은 자리,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지만, 십자가의 그 은혜와 사랑을 깨달으니까 어려운 이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아버지를 본 자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그 영적으로 어둠이 깔린 시대에 한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그 위기를 견뎌낸 것이


Ⅲ. 하나님의 은혜 앞에 살아갑니다. - 바로 기도생활입니다.

본문 2절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우리가 정상적인 성도의 삶을 산다면 기도의 삶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항상 기도하고 살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기도가 곧 그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생활이 무엇입니까? 영적 생활은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살던 사람이 믿음 안에서 거듭남으로 성령의 감화와 인도로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 중심으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한 영적인 생활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기도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그의 자녀가 이 땅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기도는 믿음의 사람들의 특권이며, 비밀의 세계입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역사의 거룩한 발자취를 남기고 간 사람들은 그들이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도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가히 상상도 못할 일들을 해냈습니다.

그들은 기도라는 비밀의 통로를 통해 하늘의 온갖 신령한 능력을 공급받았습니다. 그 능력으로 개인의 숙명적인 문제와 가정의 환란과 국가의 엄청난 재앙들을 해결해 나갔습니다. 기도로 유유히 흐르던 홍해를 가르기도 하고, 하늘에 태양을 잡아 두기도 했으며, 기도로 185,000명의 대군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천사를 움직여 하룻밤 사이에 송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기도는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려 제물을 태우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기도로 3년 6개월의 한발로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게도 했으며, 병든 사람의 병을 고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기도 했으며, 감옥에 갇혀 있던 이가 기도로 땅을 진동시키고, 착고를 풀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찌 그뿐입니까? 기도의 사람은 이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기의 내면을 주의 말씀으로 채우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응답받는 기도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도의 자리는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을 피하면 평생을 살아도 영적인 풍요를 한번 누리지 못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한 번만이라도 승리하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3~4절에 보게 되면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것입니다. “하루는 제 9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여기서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말은 헬라어로 “므네모쉬논”입니다. 이 말은 “기념물”, “기념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반드시 거기에 맞는 기념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응답입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여기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자만 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자만 보내서 부족하니까 성령 충만했던 사도 베드로를 그 가정에 보내십니다.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이 당신의 사자와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특별하게 보내주셨나요?

그 이유가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 보시기에 고넬료의 기도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의 기도를 받으신 것입니다.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하던 베드로는 이 가정에 세례를 줍니다. 이때 모든 식구가 이방인으로 예수를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이 한 가정의 변화는 세계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생명의 물결이 되어 당시 세계의 심장부라는 로마의 영적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었던 고넬료의 삶을 보면서 교회사에서 이와 같은 역사를 일으킨 한 가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목사님의 가정입니다. 에드워드 목사님은 개혁주의 목회자로서 영국의 조지 휫필드와 함께 미국의 영적 대각성을 일으킨 믿음의 거장입니다. 그는 목회 자일뿐 아니라 학자로서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으로 신앙으로 많은 후학을 길러 냈습니다. 신랑 조나단과 신부 사라를 위해 그 부모가 통나무를 베어 지어주었던 신접살림 집인 메사추세츠 주의 작은 시골 마을 샴프톤에 있는 통나무집은 현재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들 부부의 집이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은 조나단과 사라의 후손들이 5대에 걸쳐 엄청난 수의 유명인을 길러 냈기 때문입니다. 이들 부부의 후손 729명을 조사해 보았더니 부통령이 1명, 주지사가 3명, 대학 총장이 13명, 시장이 3명, 국회의원이 3명, 의대 학장이 2명, 판사가 30명, 교수가 65명, 변호사가 100명, 고급관리가 80명, 선교사가 300여 명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세대까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자녀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믿음의 가문을 꿈꾸신다면 여기 이방인이었지만,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 위해 기도와 구제를 통해 새 시대를 열었던 이 가정이 부럽지 않습니까? 저는 서두에 가정의 위기라는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가정을 내버려두면 붕괴가 됩니다. 그러나 성삼위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온 식구들이 어두운 시대를 진정 그리스도인다운 가정을 세운 이 가정은 우리에게 엄청난 도전을 줍니다. 이제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십시오. 온 힘을 다하여 여러분의 자녀를 세상의 악한 것들로부터 보호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녀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문이 세상에 거룩한 영향을 끼치는 모델이 되는 가정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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