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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요 20:24-29)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3-04-24 | 조회: 241
사자성어 가운데 화룡점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용을 그린 다음에 마지막으로 눈을 그린다는 말입니다. 이 의미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최후의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 함으로써 그 일이 완성되는 것이며 또한 일 자체가 돋보인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도마 이야기는 요한복음 전체로 볼 때 오늘 본문은 마치 화룡점정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성경 각권과 다르게 기록한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20: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한 마디로 예수 믿고 생명 곧 영생을 얻게 하려고 이 책을 썼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런 목적하에 내용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기록했습니다. 우선 1장에서 12장까지 전반부는 일곱 개의 표적과 일곱 개의 “나는 ... 이다”라는 자기소개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13장 이후 후반부는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생명을 주시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과연 하나님이신가’는 예수님 시대에 아주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보았던 사람들은 목수의 아들이고, 동일한 육체를 입고 있는 예수가 하나님 되심을 쉽게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위대한 말씀들을 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이신가 하는 것에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이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하는 말은 죄이고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형제들도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가 기적을 행할 때, 사람들은 예수에게서 메시아의 흔적이 보이니 환호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에 기대를 겁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물 위를 걷고, 풍랑이 잠잠해지고, 소경을 눈뜨게 하는 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대를 했는데 예수는 세월이 갈수록 점점 십자가에서 죽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자 예수님의 최측근인 제자들마저도 예수를 부인하고 떠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되심을 아무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약 4복음서를 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알리려고 합니다. 특히 요한복음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의 “그가 살아나셨다”라고 하는 것은 “그가 진정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가 살아나셨다면 그분이 진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부활사건은 성경의 약속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토록 말했던 바로 그 주인공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고 성경이 말하는 메시아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사건을 통해 온 천하에 하나님이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활사건은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부활사건은 창조의 역사와 맞먹는 사건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의 창조로 새 역사가 온 우주와 온 땅에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인해 축복과 은혜가 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부활의 사건으로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역사가 저주의 문을 깨고 새로운 생명의 문을 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창조와 맞먹는 능력입니다. 죽음의 저주를 영원한 생명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이 부활신앙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이 의심으로 가득찬 도마에게 다가온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도마는 “의심 많은 자“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도마가 자리에 없는 사이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너 없는 사이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녀가셨다“고 말했을 때 도마는 서운해 한 것이 아니고 기다린다는 듯이 “나는 그 옆구리 창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냥 “그랬느냐”라고 하든지 “너희들이 잘못 본 것 아니냐”고 말하든지 아니면 “왜 내가 없는 사이에 다녀가셨느냐”고 아쉬워하든지 해도 뜻이 전달된 것인데 “내가 직접 창자국과 못자국에 내 이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도마는 분명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단호하게 내가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 부활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다가오와 말씀하신 첫 일성이 무엇입니까?
 
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는 3년동안이나 주님의 제자로 살았던 도마에게 책망하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도마를 제자 삼으신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기적들을 보게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죽음도 능히 이기실 참 생명 되심을 얼마나 자주 보여 주셨습니까? 그 모든 것만으로도 주님의 부활을, 주님의 하나님 되심을 얼마든지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도마는 춤이라도 춰야 할 그 부활의 현장에서 주님을 또 한번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벌이는 것입니다.
 
여기 도마 앞에 서신 부활의 주님은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히11:6절에 보시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하)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하나님을 흔들림 없이 신뢰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변화산 아래에서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예수님이 오셔서 그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는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하고 물을 때에,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이 일 때에 제자들이 두려워하자 주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 8:25).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는 외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얼마나 크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믿음의 크기가 좌우됩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누구인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 분이 누구신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인간이 없는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도마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를 내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를 다시 일으키시고, 도마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이끌어주십니다. 우리의 열심보다 하나님의 열심이 탁월하십니다.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습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아버지는 탕자를 기다렸습니다. 탕자가 자신의 길을 돌이키려고 하기 전부터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셔서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우리를 사용하시기 원하십니다. 여기 예수님은 의심에 가두어진 도마에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29절에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보아야만 믿는 믿음의 자리에 머무르지 말고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부활하신 주님 앞에 그는 그의 생애의 최고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Ⅱ.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8절에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우리 개역성경에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하고 서술형으로 번역되어있지만, 원문은 서술형이 아닌 감탄형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상처 자국을 보는 순간 감탄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도마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도마의 외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에 대해서 너무나 명백하고 분명한 고백입니다. 도마의 외침은 단순히 놀라서 터져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회개의 고백입니다. 지금 도마의 이 고백은 더 이상 옛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살겠다는 삶의 전환입니다. 도마의 이 고백과 더불어 이 순간부터 도마는 새롭게 변화되었음입니다. 주님을 대면하고 도마의 생각은 전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불평에서 고백으로, 불신에서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열 한 제자 가운데 가장 의심하던 자가 그들 가운데 가장 분명한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되시고 주님 되심을 이보다 더 감동적으로 누가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Ⅲ. 순교의 자리까지
도마는 이 신앙고백 후 고백대로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한 뒤에 주님을 부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신앙고백 후에 변치 않고 주를 섬겼습니다. 특히 도마는 주님의 보내심을 받고 사도로 복음을 전하며 남은 평생을 보냈습니다. 당시 제자들 중에 가장 멀리까지 복음을 들고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칼라미나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창에 찔려 순고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 신앙고백을 드리고 그 신앙고백대로 살다가 순교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도마의 선교이후 인도에는 기독교가 지금까지 2000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인도의 기독교 인구가 약 4000만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도마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열매가 된 것입니다. 현재 인도의 기독교인들은 도마의 순교 자리에 도마 순교 기념교회를 세우고 도마를 기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고백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백이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 신앙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습니다. 얼마전 국민일보에 연재된 ‘역경의 열매’중에 본죽의 최복이 대표의 이런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1997년 겨울, 그녀는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병동4층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운영하던 화장품 수입 유통회사가 IMF때 부도가 나고,여러 협력업체까지 함께 도산하면서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빚쟁이들과 피해자들의 아우성에 아침이면 눈을 뜨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결국 정신을 못 차리게 되고 입원하게 된 것입니다. 신경정신과 병동에서는 몸에 걸친 옷 외에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책을 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볼펜이나 노트를 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합니다.그렇게 모든 것이 허무하고 무료하게 지내던 어느 날 밤, 잠잘 시간이라고 간호사가 병실의 불을 끄고 나간 후, 손바닥만한 작은 창문으로 멀리 개척교회의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십자가가 밤이 깊으니 거기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텐데 왜 이제야 십자가를 볼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그녀는 밤이면 창밖의 그 십자가를 보며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 ‘빨리 나가서 아버지 집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이 오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병원에서 나오게 되었고, 남편이 시작한 호떡 장사를 도우면서 재기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본죽 1호점을 오픈한 이래 지금까지 약 1,800개의 매장을 가진 한식 프랜차이즈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예수 안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심령이 가난한 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서 눈이 열려진 것입니다. 그 은혜의 눈에 비록 개척교회였지만, 그는 십자가의 사랑 앞에 자신을 드립니다. 그 십자가는 그분을 다시 일으켜 세웠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지금도 지치지 않는 열정과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 너머 부활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지금도 젖은 눈으로 매출액에 상당 부분을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노회에 등대교회에 노숙자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것이 부활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날이 갈수록 삶 가운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잠시의 고난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지는 몰라도 반드시 이겨내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 허다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부활의 능력을 부어주셨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보십시오. 의심하는 시대, 부정(否定)하는 시대, 반역하는 시대, 모든 것을 머리로 판단하는 시대가 아닙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어지면, 모든 것이 바닥납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믿음이 없으면 바닥을 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날아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어지면 죽는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세상을 능히 이깁니다.
 
여러분, 부활 신앙의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이제 끝내십시다. 예수를 잃은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요, 예수를 얻은 사람은 모든 것을 얻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자를 죽이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 준비해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 엄청난 선물을 거절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어떤 길도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갑니다. 교회는 우리를 살리려 피 흘리신 아들을 품에 안으신 하나님의 품입니다. 설교는 죽으신 아들을 품에 안고 흐느끼시는 하나님의 울음소리입니다. 찬송과 기도는 그분 때문에 살아난 심령들의 감사의 외침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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