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분부-지상 최대의 명령(마 28:16-20)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3-04-30 |
조회: 261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부분이며 가장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셨습니다. 그일을 감당하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감람원이라고 하는 산에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이들에게 지상 최대의 명령을 합니다. 19-2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 주신 이 명령 안에 기독교의 모든 명령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 명령 하나를 우리의 일생에 성취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는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명령입니다.
오늘 본문 19-20절에는 동사가 모두 4개 나오는데 가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그중에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 주동사입니다. 나머지 단어들은 제자를 만들기위한 방법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르쳐 선교학자들은 '주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6월이면 교회 창립 54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와 비전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참 예수의 제자들을 일으켜 그들을 통해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중국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당신이 기적 같은 놀라운 선교를 할 수 있었던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프로그램도 아니고 전술 전략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그와 함께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뢰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붙들고 어떤 큰일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위기에도, 절박함에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도 열두 제자 곧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는 일로 시작하셨습니다.
이 부르심 앞에 선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이제 이들은 부활신앙을 가지고 새시대를 이끌 자들입니다. 여기 11제자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지근거리에서 함께했던 자들입니다. 소위 3년의 삶이란 전문가가 되는 기간이 아닙니까? 요즘 우리나라 무기가 세계에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4.5세대라 일컫는 K-21비행기를 만들 정도로 엄청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를 모는 조종사를 생각해 보셨나요?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까 공군 조종사 한 사람을 양성하는 데 사관학교 4년을 마치고 정식 F-16 조종사 한 명이 양성되는 데는 무려 28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것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가진 사람을 뽑는데 한 기수당 100여명 정도가 뽑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또 28개월 간 훈련을 하는데 거기서도 반수 이상이 탈락을 한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20% 정도인 14-5명 정도가 F-16조종사가 되는데 그 한 사람을 훈련시키는데 드는 비용 산출이 안될 정도로 엄청난 돈이 든다고 합니다. 그만큼 힘든게 조종사들입니다. 그렇게 훈련을 받고 비행기를 타다가 행여나 사고가 나서 죽게 되면 비행기 한 대 값도 값이지만 그 어려운 고생 끝에 겨우 조종사가 되었는데 그 유능한 비행사 한 사람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동료와 지휘관들의 아픔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여기 대 사명을 받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은 이 위대한 사명을 제자들에게 맡기시고 승천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가 얼마나 엄숙하고 무거운 자리입니까? 그런데 오늘 이 명령을 하는 이 현장에 제자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열한 제자가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여기 의심이라는 단어는 ‘반신반의하다. 망설이다’는 뜻입니다. 자 이 모습을 가진 자들에게 주님은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소위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이들에게 도대체 주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시고 당신의 마음을 그들에게 쏟아 놓으시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때 주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런 인생을 3년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은혜를 주시고 주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이들을 쓰시겠다고 그 고통 그 아픔을 감수하시고 그들을 양육하셨는데 이제 자신들에게 부활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던 그 부활이 현실로 드러났으면 두려움에서 일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기쁨을 가지고 증인으로 담대하게 서야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복음의 증언자로 설 이들 가운데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모습 앞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이런 제자들에게 이 대 사명을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복음을 전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 3 년을 돌아보면, 교회 역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태를 맞아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단 피해를 최소화해 보려고 힘써왔습니다. 대면예배가 어려워지니까 온라인예배를 통해 예배를 이어가려고 해왔고, 사역을 이어갈 수 없으니까 온라인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길을 찾느라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부족하지만 비상상황에 대처해왔습니다. 이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다시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하려고 준비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태를 통해서 말씀하시려는 것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누가 뭐라해도 위기의 시대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바른신학보다는 번영신학의 노예가 되었고, 바른 교회보다는 기복주의에 젖어서 세상에 영향력을 상실했고, 바른 생활이 아닌 교역자들과 교인들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의 길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새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주님은 제자 삼기 위해 3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 가야 합니다.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존재의 목적이 가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전도가 아닙니까?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복음을 전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도 악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세상은 아직도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점령지역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미 악한 권세를 짓밟고 승리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마귀와 사탄과 악령을 일컬어 '세상의 신'이라고 요한복음에서 3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지 30-40년이 지난 후에도,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사탄을 일컬어 '이 세상 신', '이 세상 왕'이라고 말합니다.
고후4:4절에 보면 이 세상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려 놓아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못하게 하고, 설령 들었다 해도 깨닫지 못하게 하고, 깨달았다 해도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그 마음을 꽉 붙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점령하는 지역입니다. 이런 사탄의 점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면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을 보아도 신통치 못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현장을 보아도 악하고 무서운데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도무지 될 것 같지도 않은 일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명령하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 난제를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 같은 별수없는 존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key가 성령입니다. 이 악한 세상을 다룰 수 있는 열쇠가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우리는 강해집니다.
얼마만큼 강해집니까? 예수님만큼 강해집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어두워도 우리 앞에 대적하지 못하는, 적수가 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성령이 key입니다. 그러므로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지금 가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우리를 그냥 증인으로 보내시지 않습니다. 권능을 받게해서 보내십니다.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씀합니다. 세상 앞에 꿀리지 않는 담대함과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통해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이들은 고난 앞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한 분 나를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으신 주님의 사랑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담대하게 증거 합니다. 그리고
Ⅱ.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이젠 더 이상 죄와 마귀의 종노릇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신앙고백입니다. 보십시오. 세례를 통해 내가 예수님과 하나된 이것을 안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하나님 사랑을 깨달은 자들은 어떤 자리 어떤 환경, 어떤 핍박 앞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쏟았습니다. 자신을 믿어주신 자신을 죄에서부터 건져주신 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도 이 십자가의 사랑 앞에 빚진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Ⅲ. 가르쳐 지키게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제자들은 당시 세상 사람들이 멸시하고 천대하는 소위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꿈도 없고 희망도 없이 하루 하루를 패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그들은 더 이상 옛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 앞에 다듬어지고 세워진 그들은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가지고 나아갈 때. 이 무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그들의 관심의 초점이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갖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복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 확신을 가지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제자를 세우는 일에 목숨을 겁니다.
무엇보다 초대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 앞에 자신의 삶을 내어 드렸습니다. 행2:4절에 보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앞세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는 말씀이 이끄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교회와 성도들이 번영신학이라는 잘못된 신학사상에 오염되어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말씀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이끄는 목회, 말씀이 이끄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노회에서 장로 고시를 보는데 고시 면접위원 중에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5분의 장로님들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그 노회고시를 본 날이 월요일입니다. 그 장로님이 어제 주일 본인 교회의 목사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소위 교회 장로님이 되시겠다는 분들이 어제 설교를 하나도 기억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러면 우리 교회는 어떨까 생각하며 안수 집사 3분에게 같은 질문을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다들 생각이 안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교회를 섬기면서 몇 명을 전도했는가를 물었습니다. 아무도 20년을 다녀도 전도를 안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이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타성을 버려야 합니다. 이젠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영적인 양식입니다. 안 먹으면 영양 실조에 걸립니다. 말씀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순종해야합니다. 한 마디로 말씀이 이끄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이끄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우선 선포되는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우신 주의 종들을 통해 성령의 감동으로 주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예배 때마다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씀인지를 잘 이해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누가 영혼을 살립니까?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입니다. 영혼을 바라보면 눈물이 흐르고 “저 영혼을 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여러분 코카콜라를 아시죠? 세계적인 기업 코카콜라는 아사 캔들러 라는 분이 창업을 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코카콜라만 생각하고 코카콜라만을 말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그는 성공의 비밀을 묻는 기자에게 ????내 혈관에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카콜라고 흐르고 있습니다.????고 외치며 한 생을 여기에 매달렸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에 대해서 미치도록 목말라하십니까? 인생은 어떤 목마름을 갖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 중의 하나가 목마름의 힘입니다. 어떤 큰 일을 이룬 사람을 보면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많이 목말라 했던 사람들입니다. 목마름이 있어야지 성취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부흥을 합니까? 부흥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저 밤낮으로, “하나님,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땅의 황무함을 보시옵소서! 부흥의 불길을 보내주시옵소서!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해 주시옵소서! 영혼을 살리고 교회가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탄원하여 엎드린 교회가 있습니다. 부흥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 목마름을 사용해서 부흥을 주십니다.
오늘 주님은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이 선교 보고차 고국에 들렸다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누가 물었습니다. 이미 이때는 리빙스턴이 사자에게 물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 빈 소맷자락이 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굶고 못먹어 얼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바라만 보고서도 모인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교사님, 사나운 맹수, 야만인들 속에서 그토록 어려운 일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입니까????? 리빙스턴이 대답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사명을 다 하기까지는 나를 결코 데려가지 않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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