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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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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이것이 옳으니라(엡 6:1-3)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3-05-15 | 조회: 317
 
5월의 신록이 깊어지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계절의 여왕이요, 꿈과 희망의 계절이며, 또한 가정의 달이기도 한 이 5월에 우리는 그 동안 효도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부모님을 생각할 때 가슴이 저려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면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살아생전에 불효한 것, 마음 편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속 썩여 드린 일만 생각이 날 것입니다, 또 부모님이 살아계신다 해도 이 세상의 생존경쟁 속에 바쁘게 사느라 제대로 효도하지 못하고, 또 삶 속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실패와 어려움 때문에 마음을 아프게 하고 걱정 끼쳐드린 것 등 잘 해드리지 못한 것만이 생각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내년이면 인구 5명중 한명이 65세가 되어 노인 인구가 천만명이 넘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25년이면 인구의 25%가 65세가 되는 초고령화 사회에들어서게 됩니다. 노인들의 평균 수명 증가와 가임 여성들의 출산율 저하로 우리나라는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급속한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노령화 사회현상이 촉진되면서 이미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노인들의 사회 보장 문제가 최대의 사회 현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의 뒤안길에서 아직도 논의되기를 기피하고 있는 최대의 숨겨진 또 하나의 사회 현안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소위 노인 학대의 문제입니다. 어느 기관이 조사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 노인의 8,2% 무려 10%에 가까운 노인들이 그들의 자녀 및 가족원으로부터 학대받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가뜩이나 고령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박탈감이나 외로움이 뼈속까지 파고드는데 이런 문제를 만나면 얼마나 당황하고 힘들어하겠습니까? 요즘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노인들의 고독사 문제는 사회적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 못지 않은 빠른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던 한 시대가 있었다면 바로 1세기의 로마제국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하며 가져온 팍스-로마나의 식민지 문화, 개방적인 로마 문화는 당시의 기존 전통 윤리에서 사람들을 해방하기 시작했고 가정 붕괴가 촉진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바울사도는 소아시아의 가장 로마적인 도시였던 에베소에서 복음을 받아드리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들이 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중에 효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효에 대해서 1-3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효를 해야합니까?
 
Ⅰ.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하나님께서 보실 때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은 지극히 옳은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옳다는 것은 “원리에 맞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계에 기본 원리를 세우신 것처럼 인간 세계에 기본 원리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자연의 기본 원리에 맞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여 희생하고 자식은 그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간 세계의 기본 원리에 맞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은 옳은 일입니다.
 
넌센스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인은 누구일까요? <하와>입니다. 왜 하와가 제일 행복할까요?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며느리들이 만나서 수다를 떱니다. “나는 시집의 ‘시’자만 나와도 치가 떨린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말합니다. “나는 ‘시’자는 고사하고 ‘ㅅ’자만 봐도 경기가 난다.” 그러자 교회 다니는 친구가 말합니다. “나는 그래서 성경 중에 시자로 시작되는 시편은 보기도 싫어” 누가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씁쓸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여러분 가운데 부성애를 나타내는 가시고기와 모성애가 강한 우렁이를 아십니까? 가시고기는 소설로서 더욱 유명합니다. 이 '가시고기'는 이상해요. 여러분, '가시고기'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가시고기는 바다에 살다가 이른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서 민물하천으로 올라옵니다. 수컷 가시고기가 민물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동안 암컷은 둥지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놀기만 합니다. 둥지가 완성되면 암컷은 '집이 얼마나 잘 지어졌는지'를 확인하고는 마음에 들면 그곳에 알을 낳습니다. 알을 낳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4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알을 낳은 암컷은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 버립니다. 그러면 수컷은 알을 낳고 도망가버린 암컷을 대신해서 알을 지킵니다.
 
알을 빼앗아먹기 위해서 모여드는 침입자들로부터 알을 지켜내기 위해서 1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만 8일째 되는 날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합니다. 새끼들이 모두 부화했지만, 수컷은 둥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어린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둥지를 짓기 시작할 때부터 약 15일 동안 수컷 가시고기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직 새끼만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붓습니다. 그러고 나면 수컷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주둥이는 다 헐어버리고, 화려했던 몸 색깔은 볼품 없이 퇴색해버립니다. 그리고는 둥지 앞에서 힘없이 몇 번 움직이다 죽고 맙니다. 둥지를 떠났던 새끼들은 죽은 수컷 주위로 몰려들어, 죽은 아비의 살을 파먹습니다. 새끼들을 위해 자신을 다 쏟았는데 그 놈들은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비의 심정을 손끔 만도 알지 못해요. 그저 그들이 하는 것은 앞 다투어 지 애비의 살을 파먹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T.V를 통해 보았는데 화가 나더라구요.
 
모성애를 상징하는 우렁이를 아시나요? 저의 어린시절 논두렁을 걷다보면 가끔 우렁이의 빈껍데기를 보게 됩니다. 어릴 땐 잘 몰랐지만, 어른이 되어서 왜 그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렁이는 제 몸에다 알을 낳으며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합니다.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고 빈 껍데기가 되어 조용히 물에 떠내려 갑니다.여러분, 모성이 섬세하다면, 부성의 사랑은 거룩한 희생이 담겨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침! 묻습니다. 가족을 보호하고 울타리가 되는 아버지의 희생과 살을 깎아 먹이는 어머니의 희생은 어디에서 보상받게 될까요?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그들은 우리 인생의 울타리이십니다. 그 울타리 안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분명 부모님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부모님을 높이십시오. - 그것이 옳습니다.
 
Ⅱ.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십계명 중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여기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k bad'는 ‘무겁다'는 뜻입니다. 즉, ’공경한다'는 것은 ‘무게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신 부모님께는 우리가 도저히 흉내내거나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무게, 경륜의 무게, 인식의 무게가 있는 법입니다. 바로 그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 무게를 인정하면 귀히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무게'란 ’긍지'와 동의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님 인생의 무게를 존중한다는 것은 자식으로써 부모님에 대한 긍지를 품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요, 만약 이 긍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부모님의 무게를 인정하기는커녕 깃털보다 더 가벼이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효도란 함께 모시고 사느냐 아니냐, 용돈을 얼마나 드리느냐, 얼마나 호강을 시켜 드리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참된 효도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에 대한 긍지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요즘, 자식들의 고민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가정이 한 둘이 아닙니다. 특히 맞벌이 부부라든지,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어있는 분들은 요양원이나 시설에 보내는 것에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을 낳아 주신 부모님이 단지 귀찮아서, 혹은 남의 손을 빌어 형식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양로원에 보내는 것은 물론 천륜을 어기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에 대하여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자식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부모님께서 노인들을 위해 특수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양로원에서 같은 또래의 노인들과 함께 살기를 진정으로 원하시기에 양로원에 모셔다 드리고 정기적으로 찾아뵙는다면, 그것은 결코 불효가 아닙니다. 도리어 참된 효도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한 집에 모시고 살면서도 함께 사는 애완용 강아지만도 못하게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씻을 수 없는 불효입니다. 따라서 내 부모님의 재산이 얼마냐, 내 부모님이 얼마나 출세한 분이냐, 얼마나 배운 분이냐에 상관없이, 그 분의 자식으로 태어난 데 대한 긍지가 참된 효도의 필수조건이 됩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도 존중도 섬김도 오직 이 긍지로부터만 비롯되는 까닭입니다.
 
Ⅲ. 효도는 중요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계명들이 있습니다. 그 계명들은 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계명에만 뒤에 보너스가 붙어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잘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땅에서 장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부모 공경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노부모가 치매에 걸려 자꾸만 집을 나가시는 부모를 공양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수다가 심한 노부모를 극진히 공양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부모를 모시기는 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하는 일에 예부터 상이 주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이 복을 받습니다. 천하없어도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부모는 자식에게 공양 받고 효도하기만을 기다리면 안 됩니다. 부모는 자식으로 하여금 부모를 공경하게 해서 복을 받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적극적인 부모의 역할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서 이 약속된 복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은 내 존재의 뿌리입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부모님이 자녀를 잉태하면 어떻습니까? 10개월 동안 오직 뱃속에 있는 생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몸이 아파도 약을 먹지 않습니다. 행동거지 하나라도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노심초사합니다. 그리고 뼈가 녹아내리고,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감내합니다. 어머니의 생명을 건 사랑의 결과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를 키우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전쟁을 겪으시고, 보릿고개의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오직 자식 하나 잘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키우셨습니다. 당신들은 제대로 잡수시지도 못하셨지만 자식들은 배고프지 않게 살도록 허리끈을 졸라매고 온 정성을 다 쏟으셨습니다. 평생 동안 다 주시고도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것이 부모님의 심정입니다. 그 은혜를 안다면 우리는 당연히 부모님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면 세 가지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힘이 없어집니다. 돈이 없어집니다. 형편이 없어집니다. 그러기에 자녀가 부모의 힘이 되고 돈이 되어야 합니다. 형편을 잘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어머니~ 그 이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이름입니다.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속에 별처럼 살아있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부모님의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인생의 자선전입니다. 흰 머리카락은 나를 위한 고생의 여정입니다. 갈라진 손과 발은 나를 위한 영광의 흔적입니다.
 
혹시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십니까? 강우석 감독이 만든 ‘공공의 적’(2002년)이란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겸손하고 인자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잘생긴 아들을 낳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많은 재산까지 물려주었고, 아들은 큰 사업을 하며 잘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마지막 남겨진 몇 십억의 재산을 어느 고아원에 기증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찾아와 그 돈을 주식에 투자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고아원에 주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벌써 고아원에 재산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이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보람이라며 고아원에 주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러자 부모의 큰 은혜를 입어 성공한 아들은 부모의 은혜는 고사 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아야겠다고 결심하고 폭우가 내리는 어느 밤 아버지 집을 찾아가 안방에서 방문을 열고 나오는 아버지의 배와 가슴 등을 칼로 무자비하게 난자하여 살해합니다.
 
아버지의 비명소리를 듣고 나오는 어머니도 칼로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맙니다. 그 때 그 아들은 어머니를 살해하기 위해서 휘두른 칼에 자신의 손톱 일부가 잘려나갔고, 그것을 본 어머니는 칼에 난자된 상태에서 아들의 그 손톱을 보고는 집어 삼켜버립니다. 혹시 경찰의 조사과정에서 그 손톱이 증거물이 되어 아들이 살해범으로 발각될 것을 염려하여 숨을 거두면서도 온 힘을 다해 그 손톱을 주워 자신의 입에 넣고 삼킨 것입니다. 비록 공공의 적이고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못난 아들이지만, 그 아들을 숨을 거둘 때까지 보호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본문은 진정한 효도가 무엇인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바뀌어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효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는 바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의 향기입니다. 그 사랑의 향기를 맡고 우리가 살았다면 이제는 그 향기를 되돌려 드려야 할 때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주셨던 부모님에 대한 긍지를 찾으십시오. 우리의 부모님이 아무리 늙고 병들고 볼품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치밀하신 섭리에 의해 우리 부모님이 되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긍지가 될 충분한 자격을 이미 갖추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님에 대해 이 긍지를 갖고 있는 한, 설령 남에게 불효처럼 보이는 행동도 그 본질은 실은 효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긍지를 갖지 못한 자식이라면, 그가 부모에게 행하는 것들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또다른 불효의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살아온 나이만큼이나 깊게 패인 주름살하며 다시는 펴지지 않는 허리, 그리고 이젠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걸음걸이마져 버거워하시는 우리의 부모님들을 잘 섬겨야하지 않으십니까? 기도 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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