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신32:7. 2023. 6/25
6월달은 국가 보훈의 달로서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잊을래야 잊을수 없고 또 잊어서도 안될 6,25사변이 일어났던 뜻깊은 달입니다. 제가 뉴욕 중부 교회서 집회를 마치고 미국 백악관이 있는 워싱톤을 간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전쟁기념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길이 49m에 달하는 검은 대리석으로 된 한국전 참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기념비 한쪽 벽에는 전쟁에 참여했던 참전용사 2500명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반대편 벽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용산에도 전쟁기념관이 있는데, 거기에 이 글을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6.25전쟁 때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6.25의 참상을 보십시오. 전쟁을 3년1개월을 했습니다. 6.25전쟁 때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전쟁에서 전사한 우리나라 군인들만 14만여 명에 달하고,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자들 중에는 약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민간인들 중에는 약 37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온 강토가 피로 물든 처참한 전쟁이었습니다. 요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피난길을 나선 사람만도 24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사용된 폭탄수는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전쟁으로 인한 피해였습니다. 도저히 국가가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고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선진국에 서 있을 만큼 엄청난 변화를 맛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로 늘 긴장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시간 저는 동족상쟁의 비극적인 전쟁 6,25 73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가 살길은 무엇인지를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읽은 이 신명기 전체 말씀의 중심이 오늘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의 중심은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난 광야 40년 역사에 너희 눈으로 보았던 것, 너희 눈으로 직접 체험한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 그것만 잊어버리지 아니하면 너희는 장구한 백성이 되고 복 받는 백성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Ⅰ. 잊지 말아야 할것이 바로 이 민족의 역사의식입니다.
이 신명기에는 기억하라, 잊지 말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모세는 7절에서 애굽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왜 그 옛날을 기억해야 합니까? 왜 그 고통스러운 때를 잊지 말아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 치욕의 때를 잊어버렸을 때에 그들은 감사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감격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40년 동안 힘든 광야생활을 해 왔습니다. 말이 40년이지, 그 40년 광야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스라엘 역사는 한마디로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남의 나라 지배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구약시대에는 애굽의 지배를 430년 받았습니다. 그 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그 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또 얼마 가지 않아 남유다도 바벨론에 멸망하여 바벨론의 지배를 받습니다.
근세사에 보면 독일 나치에 의해 600만 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는 야드바셈이라는 유태인 대학살(홀로코스트)전시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을 지어 놓고 그것을 “야드바심”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기억하라”는 히브리어입니다. 그리고 기념관 입구에는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Š ” 말라”는 글귀를 새겼습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6백만 명이 넘는 유태인을 학살했습니다. 유태인은 이 과거를 잊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합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생존과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억압을 당하거나 자유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서로 부딪히는 반도국가입니다. 서북쪽에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대륙세력이 해양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갈 때나, 반대로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해양세력이 대륙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갈 때마다, 그 중간에 위치한 우리나라를 반드시 거쳐 갑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그 길목에 서 있기 때문에, 나라의 국력이 약하면 반드시 온 나라가 피로 물드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또 중국이나 오랑캐로부터의 침략, 일제 36년간의 침탈의 역사는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크나 큰 아픔으로 깊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국력을 자랑한다고 하지만, 아직도 동북아 지역의 외교무대에서 자주권을 마음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Ⅱ. 우리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아야 합니다.
묘하게도 73년 전 오늘, 주일 새벽에 북한군이 쳐들어 왔을 때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렸습니다. 도무지 회복의 조짐이 없는 위기 속에 우리가 반전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유엔의 도움이었습니다. 당시 UN 안보리에 소련이 참석해서 안보리 결정을 반대했다면 UN군이 우리를 돕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련이 안보리에 참석하지 않았고, 만장일치로 UN군의 개입이 결정되어 UN이 우리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소련이 안보리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휴전 협정으로 전쟁의 포성은 멎었지만, 폐허화가 된 서울 시내를 바라본 미국의 ‘더 타임즈’ 기자가 신문에 “서울 도성이 다시 건설된다고 믿는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황금 장미가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은 완전히 폐허가 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한국이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생각해 보세요. 얼마 전에 미국을 방문한 우리 대통령이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 때 구한말 한국에 와 뼈를 묻은 미국 선교사들을 언급하고 고마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과 같은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왜, 무엇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가장 더럽고, 가장 희망 없는 나라에 와서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했습니까.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이 땅에 원조도 구제도 아닌 복음만이 폐허화가 된 조선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십자가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은 지금 우리나라의 한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로제타 홀 여사는 가족 전체가 한국에서 봉사하다 전염병으로 남편과 딸을 잃었습니다. 둘을 한국 땅에 묻고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한국에서 더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고대 병원, 이대 병원을 세우는 등 43년간 봉사하다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죽으면 한국에 묻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지금 서울 양화진엔 홀 여사와 아들 부부까지 5명이 묻혀 있습니다. 고개가 숙여지고 목이매입니다.
우리는 중국과 2000년 이상 관계를 맺어왔지만 미국 선교사들과 같은 도움을 준 중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도 일부 상식 밖에 사람들은 자식들을 군대 안보낼려고 하지만, 6.25 전쟁 당시 미국을 보세요. 이 전쟁에서 미국의 33대 아이젠하우어 대통령도 아들을 잃었습니다. 벤프리트 장군도 아들을 잃었으며,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도 아들을 잃었고, 워커 중장은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24사단 딘 소장은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뭐가 있습니까? 이 땅에 지하자원이 많습니까? 석유가 납니까? 인구가 많습니까?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배 열심히 드리고, 기도한 일입니다. 주일예배 드리고, 주일 저녁예배 드리고, 새벽기도회하고, 수요기도회하고, 철야기도회하고, 산기도 하고, 금식기도 하고, 구국기도 하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렸잖아요? 그러자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 잊지 말아야 합니다.
Ⅲ. 우리 후손들에게 이 역사,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7절 하반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의 고난의 역사를 자손들에게 얼마나 철저히 가르치는지 모릅니다. 1년에 3대 절기를 명령하며 지난 날의 역사를 잊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들아 초막절을 지키는 모습은 얼마나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 앞에 살아가는 가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초막절 기간 동안 집에서 자지 않고, 들에 나가 텐트에서 생활 합니다. 초막절을 하루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7일 동안이나 지킵니다. 7일 동안 텐트에서 지냅니다. 편안히 침대에서 자다가 이제는 땅바닥에서 잡니다. 참 교육입니다. 과거의 아픔과 고통을 기억하고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자녀들에게 보여 줍니다.
1967년에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6일 전쟁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전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300만 명밖에 되지 않은 이스라엘이 1억이 넘는 아랍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군사력으로 보아도 이스라엘은 아랍연합군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랍연합군의 탱크는 무려 5400대인 반면 이스라엘은 800대에 불과했고, 전투기도 아랍 연합군은 900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겨우 200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전쟁이 시작된 지 6일 만에 아랍연합군을 무찌르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에 유학 중이던 아랍인들은 전쟁 소식에 다들 숨었지만,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너나 할 것이 없이 자신의 고국에 들어와 전쟁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 다얀장군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이렇게 정신 교육을 시켰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서서 우리를 위해서 싸울 것입니다. 안식일 전에 전쟁을 끝내고 안식일에 하나님께 기쁨과 승리의 찬양을 돌려드립시다” 그러한 신앙과 정신으로 무장한 군사들을 두고 새로운 무기로 무장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6일 만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고 살고 있진 않습니까? 일본 사람들이 우리 한국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사건이 터지면 쉽게 흥분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잊어버리는 근성을 가진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잊어버리면 아픔의 역사는 반복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6.25전쟁에서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포성이 멎은 지 73년이란 세월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잊게 합니다. 얼마 전에 갤럽 인터내셔날에서 이런 조사가 있었습니다. ‘나라의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가의 위기 때 나가서 싸우겠다”라고 답한 사람이 42%로 나타났습니다. 이 수치는 전세계 평균 61%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끄러운 통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남북의 대치 상황은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상태이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안전 불감증에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정치나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영적으로도 타락의 깊은 수렁에 빠진 조국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지금 대한 민국은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특히 K-Pop, k- 컬쳐(문화) K-Food, K-Beauty, 심지어 K-방산 같은 말들은 외국 언론이나 인터넷과 유튜브 영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자신들이 잘사는 줄 모르는 유일한 나라”, “재미있는 지옥”, “갈등공화국” 등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개운치 않습니다. 밖에서 볼 때 잘살게 됐고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이긴 한데, 자기들끼리 너무 비방하며 갈등하면서 지옥처럼 사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영 간의 이념갈등, 세대갈등, 젠더갈등, 지역갈등, 노사갈등 등이 치유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 밖에 무궁화를 보셨나요? 얼마나 근사합니까? 우리나라 국화가 무슨 꽃입니까? 얼마 전에 마당에 무궁화가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나서 보니까 밝은 햇살을 받아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실 무궁화는 장미꽃 같은 정열은 없습니다. 벚꽃 같은 화려함도 목련화 같은 우아함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백합화 같은 수려함도 코스모스 같은 청순함도 없습니다. 무궁화는 왠지 촌티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궁화가 마음에 끌립니다.
무궁화는 은근과 끈기의 꽃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 4시쯤 피기 시작해서 질 때는 다섯 꽃잎이 하나가 되어 얌전히 오므라들어 꼭지 채 떨어집니다. 다음날 아침에 수없이 피어 있는 무궁화는 전날의 꽃이 아닌, 모두 새롭게 피어난 꽃들입니다. 매일 모두 새로운 꽃을 100여 일 동안 끈질기게 이어 피우는 꽃입니다. 또 토지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잘 자랍니다.
저는 이 무궁화꽃이 괜히 우리나라 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는 931번 외세의 침략을 받고도 살아난 전 세계 유일한 민족입니다. 은근과 끈기를 상징하는 대한민국 국화로 무궁화는 적절합니다. 무엇보다 무궁화를 사랑하는 것은 샤론의 장미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무궁화의 영어 이름(rose of sharon)은 샤론의 장미, 샤론의 꽃이라는 뜻입니다. 찬송가 89장에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에서 샤론의 꽃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아2:1)에서 사론의 꽃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애국가에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소서’로 생각이 되니까 이 무궁화가 더 사랑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기도해야 합니다. 저 북녁땅에 2500만 내 동포가 하루 속히 자유를 찾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당쟁을 일삼는 여야가 조국을 위해 하나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회들이 이 땅에 자유를 위해 목숨 바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그 빚을 갚는 길은 바로 전도입니다. 깨어 복음들고 온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