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절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3-07-02 |
조회: 144
맥추감사절 신16:9-12. 2023. 7/2
요즘도 리더십을 위해 쓰여진 책 가운데 꾸준히 읽히는 밥 포드의 「하프타임」이란 책이 있습니다. 하프타임이란 말은 원래 스포츠 용어입니다. 축구나 농구와 같은 운동경기를 보면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누어 경기를 치룹니다. 각각 정해진 일정 시간 동안의 전반전이 끝나면 짧은 시간 휴식을 갖고 난 후에 후반전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기가 그러하듯이 전반전보다는 후반전이 더 중요합니다. 전반전에 경기를 잘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후반전을 망쳐버리면 전반전에 쌓아놓은 성적은 물거품이 되고 결국 역전패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전반전에는 별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지라도 하프타임을 갖고 난 후 후반전에 더 열심히 해서 전세를 역전시켜 역전승을 거두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가운데 “성공추구에서 의미 찾기로 바꾸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결산이 가까울수록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에 내 삶을 바치며 살아 왔느냐 입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느냐, 내 이름이 남느냐, 그런 것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의미와 보람과 기회를 발견하고 “하나님, 정말 하나님이 주신 일 대문에 내 인생은 보람 있었고, 신바람 나고, 놀라운 인생이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 평생의 보람 있는 가치를 발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2023년도 꼭 반을 살아 온 현장입니다. 여러분의 전반기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오셨습니까? 아니면 이 남은 2023년도 후반기는 어떻게 계획을 하시고 계십니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제 후반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우리는 맥추 감사주일을 맞습니다. 이 맥추감사절을 맞아 감사에 대해서 깊이 말씀을 나누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감사를 잘하면 영적으로 상당히 건강하고 성숙한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감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 비해 감사를 잘 아는 사람이 그만큼 건강하고 성숙합니다. 영적인 면뿐만 아니라 육적인 면에서도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건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감사에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22절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참 무서운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우리가 누구입니까? 그 생명이 코의 호흡에 붙어 있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원수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사 십자가에서 돌아가게 하시고,그 위에서 방울방울 흘리신 보혈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말끔히 씻어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무조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름 지으시고, 언제든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앞으로 하나님,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 엄청난 희생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너를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은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입니까?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감사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마치 마약견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춰진 마약을 특유의 냄새 맡는 능력으로 찾아내는 것처럼, 특유의 영적 감각으로 감사를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살전 5:18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모든 일이 형통해서 감사할 것이 넘칠 것 같은 상황에도 감사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적극적으로 감사거리를 찾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생각해도 원망과 불평거리만 가득한 상황에도 감사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잘 찾아보면,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 등장한 동사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Ⅰ. 기억하며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10, 12절
12절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맥추감사절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첫 열매가 아니라 < 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나눔고딕 ExtraBold;font-family:나눔고딕 ExtraBold;mso-ascii-font-family:나눔고딕 ExtraBold;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font-size:12.0pt;color:#111111;">‘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으며, 또 어떤 구원을 받았는지’를 기억하게 하시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암이 무서운 것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있다가 한참 진행이 된 후에 알게 되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맥추 감사주일을 통해 내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 ‘종’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애급에서 바로의 압정에서 430년간 종살이 했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종살이하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 얼마나 귀한 은혜인가 말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구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내가 믿을 때, 그 구원의 감격이 나에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소위 구원의 첫사랑입니다. ‘아직도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느냐? 첫사랑의 감격이 아직도 네 가슴에 뜨겁게 남아 있느냐?’오랫동안 신앙생활하다 보면 모든 것이 기계적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귀를 꽉 막아 버리고 자기 최고 우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의 결국은 패망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결국은 넘어집니다. 오늘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말씀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우리의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Ⅱ.예물을 들고 나와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6,17절에도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맥추감사주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원인을 조사해 보면 1순위가 언제나 "교회에 나가면 돈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래전 종교 개혁자인 칼빈은 당시의 교회를 가르쳐 "오늘의 교회의 문제는 돈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에 대해 바른 이야기를 안하는 것이 문제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비유를 연구해 보면 그 비유의 절반이상이 돈과 관련된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돈은 절실한 인간 현실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본래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제물이라고 불렀는데 제물을 영어로는 sacrifice곧 희생의 제물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헌금의 성격은 어느 정도 희생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그것은 갚을 수 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성의 없는 헌금행위는 우리가 받은 은혜가 마치 싸구려 은혜인 것처럼 은혜를 격하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이란 희생만 하다가 마는 것이냐고 물을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희생은 일종의 씨 뿌림과 같은 것입니다. 씨 뿌림은 땀 흘림이요 희생이지만, 거기에는 열매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비밀을 안다면 희생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바울은 고후9장에서는 이것을 '심음과 거둠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고후9:6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8절의 약속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희생은 결코 자학적인 희생이 아닌 기쁨의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직전에 값비싼 향유를 깨뜨려 주님의 발에 부은 마리아의 행동은 억지로 누가 하라고 해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은 자발적이요 자원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여인입니다. 그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제자들은 조건으로 바라보니, 그것은 미친 짓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나 삶 속에서 헌신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들의 헌신은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사랑스럽고 멋집니다. 그런데 헌신을 해도 어색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자기 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헌신이 아니면 힘들고 지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우리 힘이나 의지에서 나온 것이라면 끝까지 가기가 힘듭니다. 핵심은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는 것,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성숙한 모습입니다. 매일 감사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을 무척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숙한 모습입니다.
Ⅲ. 즐거움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여기 보면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예배 처소 교회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돈 앞에서 즐거워하고, 세상 앞에서 즐거워하고, 여러가지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 올 때마다 즐거움을 얻어야 합니다. 천국에 갈 때 어떻게 가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 앞에 갈 때 즐겁게 가셔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불교는 깊이 들어갈수록 허무해지고 유교는 깊이 들어갈수록 완고해지고 기독교는 깊이 들어갈수록 행복해진다." 그래서 유교는 날마다 제사집 같고 불교는 날마다 초상집 같고 기독교는 잔치집과 같다고 그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올 때마다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뭐하러 오셨습니까? 잔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잔치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원리인 것입니다.
여기 즐거워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즐거워하라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절기에 즐거워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까? 이는 구원의 감격 때문입니다. 다윗도 시116:1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고백합니다. 여기에 대한 반응은????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라고 외칩니다. 이는 도무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이 없는 자기를 이처럼 자녀 삼으시고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그 사랑에 감격을 ‘구원의 잔’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셨을 뿐 아니라 이처럼 축복의 자리까지 인도하신 그 주님의 이름을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까? 우리는 절대로 실패자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어떻게 인생을 살다가 가든지 우리는 절대로 실패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모든 삶은 성공자의 삶이요, 승리자의 삶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영원의 주인공이요, 사죄의 주인공이요, 성공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이런 황홀한 선물을 받았는데, 우리 마음에 감격이 없다면 어딘가 병이 들은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남에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딘가 고장난 것입니다. 소중한 것을 손에 쥐고 있을 동안은 그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감격에 대해 바울은 롬5:1절에서 외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말씀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enjoy하자 하나님과 즐기자!! 하고 2절에서는 “즐거워하느니라”, 3절에서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는 표현을 씁니다. “누리자” “즐거워하자”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가 가져다주는 축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는 종살이하던 이 백성들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서 맥추절에 언약의 백성들에게 세대와 신분과 계급을 초월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서로 나누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의 위기는 가난이 아닙니다. 사업에 실패하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을 잃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위기는 감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한번 잠시 멈추어 중간 평가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쫒기는 사람처럼 늘 불안하고 만족이 없고, 기쁨도 즐거움도 없는 가여운 인생은 아닙니까? 아니면 내 삶의 감사가 마르지 않는 생수처럼 늘 흘러넘치는 인생이십니까?
이제 후반기 우리도 하프타임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 점검을 하십시오. 구원의 기쁨이 있는지, 또 늘 감사와 즐거움이 나의 만족이 아닌 이웃에게 증거 되는지, 무엇보다 누림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희생의 향기가 나에게 있는지 자신을 깊이 살펴 보시고 메마른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젖는 감사가 풍성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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