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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그리스도인 답게 살자(딛2:11~14)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3-08-06 | 조회: 224

그리스도인답게 살자 딛 2:11-15 2023. 8/6

오늘부터 다시 우리 교회의 표어인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말씀을 가지고 다시 말씀 앞에 서려고 합니다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우리의 가슴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찰을 붙이고 다닌다면 그게 오늘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단순히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의 명을 받은 독일군들은 유대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처음에는 유대인을 학살하라는 명을 받은 독일군 가운데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몇 사람을 학살한 뒤에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독일군들도 많았습니다독일 군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3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수용되어있는 포로수용소에 화장실을 하나만 남기고 없앴습니다처음에 유대인들은 화장실 앞에서 길게 줄을 섰습니다급한 사람들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아귀다툼이 벌어졌습니다그러다 견디지 못하고 아무데나 일을 보기 시작했습니다얼마 가지 않아 수용소 곳곳은 배설물로 넘쳐났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고배설물과 뒤엉켜 살아가면서 짐승처럼 변해갔습니다하나씩 둘씩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이 모습을 지켜본 독일군들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유대인을 죽이면서 한결 양심의 가책이 덜했습니다살인을 하면서도 과거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서서히 유대인이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보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부질없어 보이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매일 오후 4시 반에 유대인 포로들에게 따뜻한 물 한 컵씩이 배급되었습니다이 때 일부 유대인들은 물을 남겨서 이를 닦았고세수를 했습니다그리고 깨진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했습니다자기 스스로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입니다독일군 눈에 이들은 특별하게 보였습니다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이들을 함부로 학살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그래서 이런 노력을 한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인격의 고상함을 저버리면 안 됩니다그래야 내 스스로도 인간다운 삶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남들에게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마찬가지입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을 살면서 그리스도인다움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습니다그리고 세상사람들로부터도 그리스도인으로 존중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리스도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될 때 직장동료들이 보이는 반응이 대체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역시 그리스도인이었군요!”라는 반응입니다. 동료들이 함께 일하면서 남다르다고 여겨왔는데그 이유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삶의 현장에서 모두가 좋은 동료요 귀감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알고 보니 그리스도인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다른 하나는 당신도 그리스도인이었습니까?”라는 반응입니다동료들이 함께 일하면서 자기들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겨왔는데뜻밖에 그리스도이었다는 것입니다삶의 현장에서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비난까지 받는 사람인데그리스도인이어서 놀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평을 받아야 할까요?

 

우리가 함께한 이 디도서는 바울이 그레데로 디도를 순회 전도자로 보냈는데 본문 앞에 112절에 보면 그리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하니.” 이 지역의 상태가 엄청난 현장입니다역사적으로 보면 지중해 한 가운데 있는 그레데섬은 고대로부터 범죄자들이 유배되던 장소였기에부도덕하고 난폭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이런 세상 한복판에서 그들과 동화되지 말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자세를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

 

내면을 가꾸며 살아야 합니다. 11-12 속사람을 새롭게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여기 보면 세상에 살고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자신이 낳은 아이를 냉장고 집어놓고도 뻔뻔하게 사는 모습묻지만 살인으로 인간의 존엄을 무참하게 짓밟는 사건이 불과 며칠 전의 일입니다우리는 보지 않습니까자기 쾌락을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면서 조금도 안타까워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짐승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이 땅을 바라볼 때 희망을 둘만한 곳이 없습니다어디 한군데 빛을 따라 가면 살 수 있겠다 하는 곳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분간할 수조차 없는 어둠 가운데로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계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친히 육체를 입고 구원하려 오신 것을 오늘 본문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이 패역된 세상에 우리를 부르신 그 은혜 앞에 하나님의 지녀가 된 우리를 구별된 삶으로 주님이 쏟으신 피값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주님의 성품을 닮게 하는 양육을 하셨다는 것입니다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입니다이 말은 먼저 우리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합니다속사람입니다이 속사람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성품 변화입니다이는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성령의 간섭 속에서

 

첫째로 이 세상의 정욕을 버리라고 합니다(12).

누구든지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 세상의 정욕을 버리지 않으면 경건해질 수가 없습니다이 세상의 정욕은 무엇입니까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유함으로 육신의 만족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5:17절에서 이런 사실을 다른 용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이 있고 또 성령의 소욕이 있다는 것입니다육체가 우리 안에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육체의 소욕이고성령이 마찬 가지로 우리 안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성령의 소욕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이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았습니다마음에 소원을 품는 대상이 이 세상에 속한 것들입니다. 일시적인 것이요채워도 채워도 다 채울 수 없는 것들입니다그래서 결국 헛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들입니다구체적으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욕망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망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적인 욕망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몸부림치는 권력욕과 명예욕 같은 것들입니다그것이 바로 정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고 나면 달라집니다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게 됩니다그리고 이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따라 살게 됩니다그 마음은 우선 대상이 저 하늘에 속한 것들입니다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들입니다영원한 것이요한 번 채우면 늘 충만한 기쁨을 주는 것들입니다구체적으로 성전을 사모하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싶은 마음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싶은 마음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입니다.

 

둘째로 근신함과 신중함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신중함이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내면의 욕망을 제어하고 신중해야 함을 의미한다(2)의로움이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정하게그리고 진리에 입각하여 행동해야 함을 나타낸다. (3)경건함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해야 하는 삶을 의미합니다왜 이렇게 강조합니까그것이 정욕을 버리는 것이고 또한 신중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그리고 이젠 그리스도인으로서 적극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바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4
1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먼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셔서 죄사함 받게 해주시는 것이고다음은 우리가 선한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그렇습니다우리가 예수를 믿었다면 먼저 우리는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그리고 나서 우리는 선한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 됩니다그런데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은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사람에 관한 일이라면선한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겉사람에 관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답다고 평을 받게 되는 것은 결국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판가름이 날 것입니다그러면 선한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물론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선한 일은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결과적으로는 같아보일지 몰라도 그 과정은 다릅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해야 하는 선한 일은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을 따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본 두 가지를 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마 10:38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마 16:24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따르고 선한 일을 하려면

 

1.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이렇게 옛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이게 살아있으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힙니다내 신앙생활에 가장 큰 짐이 됩니다보다 구체적으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간단히 말해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 삶 속에서 나를 부정하고 대신 주님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다음 몇 가지로 세분화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우리가 말로만 하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진정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둘째로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듯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셋째로내 모든 소유가 내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내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넷째로하나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내 인생의 생사화복이 내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인정하며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께 다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심방 중에 어떤 여 집사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목사님 솔직히 제게 시어머니는 십자가예요!” 사사건건 잔소리하고 들볶아대는 시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말이죠또 어떤 분은 저는 매일 십자가를 지고 삽니다라고 ë ��씀하셨습니다그게 무엇이냐고 했더니 찬 바람만 불면 그 다리가 가렵고 아프니까 그것이 자기에게 십자가라는 것입니다또 어떤 분은 자식이 십자가라는 것입니다끝없이 속 썩이고 힘들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십자가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십자가는 인생을 사는 동안 겪게 되는 힘겨운 일들 그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자기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그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들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십자가는 주님을 따르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것이요지게 되는 것입니다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것들이요 지게 되는 것들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말합니다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명입니다마찬가지로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각자에게 맡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그 사명이 바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우선 보편적인 사명이 있습니다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이 있습니다처한 곳에서 빛이요 소금으로 살라는 사명이 있습니다다음으로 특수한 사명이 있습니다제게는 이 교회를 목회하라는 사명이 있습니다여러분에게는 각자의 상황에 맞는 사명을 주셨습니다이 사명들 그 자체가 바로 십자가입니다왜냐하면 이 사명을 제대로 잘 감당하려면 고난을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우리는 지금 공사 중입니다우리의 신앙도우리의 인격도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지기 위해서 공사 중에 있습니다우리 힘으로는 그 공사를 완성시킬 수 없습니다1:6절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한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그렇습니다예수님께서 공사 중인 우리의 신앙을 온전케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때로 공사 중에 실수하고 실패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 주신 힘으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때론 죄의 유혹에 넘어지고세상의 무거운 짐에 눌려 쓰러질지라도좌절하지 말고 주님의 손을 붙잡고 다시금 용기를 내어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우리의 신앙은 완성품이 아닙니다아직도 공사 중입니다아직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제작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도록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주님을 신뢰함으로 나아가십시다우리의 모습 가운데 아무리 못난 부분이 많다 하더라도 주님은 책망하지 않으시고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우리를 온전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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