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 있게 하는 부흥 행19:17-20. 2023. 9/8.
비행기가 비행할 때에 ‘마의 11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비행 중의 가장 위험한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이륙할 때의 3분, 착륙을 할 때의 8분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제로 항공 사고의 74%가 마의 11분에 발생한다는 통계를 보아도 이때가 가장 위험한 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말을 빌면 '비행기가 이륙하자면 많은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행기에 달려 있는 엔진 모두가 불을 붙여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작은 불꽃 하나만 스파크를 일으켜도 폭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챌렌지호 폭발사건이나 종종 보도되는 이륙시 비행기 폭발사고는 모두 이런 연유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비행기를 아는 사람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최초의 3분에 가장 많이 긴장을 한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비행기의 모든 엔진이 불이 붙어ì ��하고, 2만4천내지 4만 피트 상공에 이르러 고도를 잡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엔진을 분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부흥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엔진에 불을 붙여야하고 고도를 잡을 때까지 그 조건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가 이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흥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한 개의 엔진에만 불을 붙이고 이륙을 하다가 여러 장벽에 부딪혀 아예 모든 엔진에 불을 붙일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비행기를 몰고 활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자동차보다 더 불편한 모습이 되 버리고 맙니다. 비행기의 용도는 하늘을 나는데 있지 지상을 맴도는데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정복하도록 되어있지 세상의 눈치를 살피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 도시가 복음을 통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금 바울은 지금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의 장도에 오르게 됩니다. 안디옥에서 불과 한 달 남짓 쉼의 시간을 가진 후 여독이 풀리기도 전 그는 다시 전도 여행길에 오른 것입니다. 지난주도 보았지만, 바울의 제2차전도 여행 여정의 가장 핵심적인 선교 전략지가 고린도였다면 제3차전도 여행의 핵심적인 선교 전략지는 에베소 도시였습니다. 바울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어주시고 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심 앞에 그 심령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열정을 가지고 에베소로 떠납니다.
당시 에베소는 세계적인 무역 도시였으며 인구가 한때 30만에 달하는 곳이었습니다. 로마 당시 소아시아 최대의 도시로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신 로마로 불리웠습니다. 무려 2만 5천명을 수용하는 대 극장, 체육관, 음악당과 거대한 쇼핑상가와 대 목욕탕 시설이 있는 도시로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에베소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집정관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한 후 수시로 에베소에 들러 보석과 화장품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석주 127개가 동원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테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5월에 세계의 호사가들을 불러 모으는 아테미 여신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도시의 겉모습일 뿐 이미 영적으로 썩을 대로 썩어버린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이 도시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복음인 것을 확신했고 그래서 자신의 고귀한 인생의 시간을 이 도시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온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하게 되었다고 해서 한 순간에 과거의 모습이나 생활습관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Ⅰ. 영적 상태 점검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 믿은 자들의 영적 점검입니다. 이 에베소에는 이미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령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절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의 질문은 당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도전적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냥 예수 믿으면 되는 거지 무슨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이 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늘 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그 중심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가 오늘 이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예수 믿을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각 자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은 성령 충만함을 요청하는 말입니다. 구원받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새 생명을 얻는 것이고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즉 죄를 이기는 능력, 마귀를 이기는 능력, 복음을 전하는 능력을 받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고 우리 속에 있는 새 생명을 키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평생 한번이면 족하지만 성령충만은 거듭거듭 받아 충만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을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하는 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2절 하반절에 보면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에베소 교인들은 성령 없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즉 믿기는 믿었는데 학습으로 말미암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평생 한번이면 족하지만 성령충만은 거듭거듭 받아 충만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을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하는 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성도가 성령 충만하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내 전 인격을 그분 앞에 드릴 뿐만 아니라 주님의 삶을 따라갑니다. 이젠 생각도 관심도 달라집니다. 이기적인 내 모습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 앞에 수종합니다. 헌신합니다.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일전에 매화꽃이 활짝 핀 이른 봄날 매화 농장을 찾은 일이 있었습니다. 온 농장 전체가 매화꽃으로 가득 찼습니다. 마침 그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고 구경꾼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런데 농장 주인이 가위를 들고는 여기저기 다니며 가지를 치고 꽃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주인이 손을 보고 지나가자 나무는 볼품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구경꾼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왜 예쁜데 가지를 치고 꽃을 자릅니까?” 농장 주인이 대꾸를 합니다. “그냥 놔두면 매실이 제대로 열리지를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똑 같은 것을 보면서 서로 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구경꾼들은 만발한 매화꽃을 보면서 아름다운 경치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농장주인은 꽃이 지고 난 뒤 맺힐 매실 열매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어떤 관심이 있는가를 보고 계십니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의 화려함, 세상의 출세와 성공, 온통 세상사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비록 예수님 앞에 나왔다고 해도, 제자로 삼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구경하다가 떠납니다. 이들이 무리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영적인 것,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로 삼으십니다. 이에 성령 받은 자들이 3절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자!, 12명의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이 거대한 우상의 도시를 감당할 수 있나요? 바울은 에베소 도시에서
Ⅱ. 두란노 서원을 세웁니다. 8-9
8-9절을 보면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그리고 나중에 보니까 10절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강론을 하는 일들을 두 해 동안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 교회의 제자훈련은 단지 고급지식을 나누어주는 그런 사역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임재 앞에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나와 어떤 관계가 되는지를 피를 토하듯 가르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소리로 들을 때가 많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칭찬받는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바울이 1달도 못되어 쫒겨난 교회입니다. 그런데 훗날 이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들 가운데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믿음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그리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 심지어 자신의 물질, 또 시간의 희생마져도 아깝게 여기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수고하는 근사한 교회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 까요? 살전 2:13절에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진정한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가 서면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중국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당신이 기적 같은 놀라운 선교를 할 수 있었던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프로그램도 아니고 전술 전략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그와 함께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ì ��하며 신뢰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붙들고 어떤 큰일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위기에도, 절박함에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도 열두 제자 곧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는 일로 시작하셨습니다. 이 에베소 교인들의 변화는 권세 있는 부흥을 세상 앞에 보여 줍니다.
Ⅲ. 참된 부흥이 일어납니다.
17-20절을 보십시오.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여기 보십시오. 바울이 증거 한 말씀 앞에 에베소 전체가 영적인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보십시오. 지금 은 오만이나 되는 엄청난 마술책들을 가지고 와서 불사르는 장면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 책을 최고의 경전으로 여기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삶은 마술에 달려 있었고 그들이 마술에 종사하고 있는 한, 그 책은 그들의 마술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책을 중심으로 가치가 형성되고 사람들의 삶이 그 책에 구속받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그 책이 가르치는 바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니까 자신들이 붙잡은 이 마술 책이 얼마나 무가치한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치 있게 생각해선 모든 내용들이 사실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두 무가치하게 여겼습니다. 에베소 고장 한가운데서 하늘로 치솟는 불길과 함께 타오르고 있는 그 마술책들과 함께 이교도적인 그들의 모든 삶도 같이 불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신 우상숭배의 종말이며 여호와의 인정함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의 종말이며 복음의 승리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에베소 교회에 일어난 이 놀라운 일을 보십시오. 무엇이 이 오만한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을 높이게 만들었습니까? 무엇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교만한 헬라인들로 하여금 두려움 가운데 떨며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예수의 이름을 떨리는 음성으로 찬송하게 만들었습니까? 에베소 사람들로 하여금 평생에 생업처럼 여겨 오던 마술책을 불사르며 여호와를 노래하게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자복하게 하고 예수를 믿게 만들었습니까? 에베소 사람들로 하여금 허탄한 일을 버리고 예수의 이름을 높이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엄청난 반응입니다. 두려움이었습니다. 17절에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란 말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영적인 실재 앞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복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은 교회 안에 이러한 영적인 실재를 다룰 수 있는 권세가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흥은 교회를 권세 있게 만듭니다. 부흥이야말로 교회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만든 단체와 구별되는 신적인 권세를 가진 공동체임을 보여 줍니다. 그것을 개인에게 있어서나 교회에게 있어서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위대한 영적인 부흥을 맞이하고 권세를 가진 공동체로 나타날 때 세상은 권위를 느끼게 됩니다. 부흥이 아니고는 결코 교회가 영적인 권세를 회복할 수 없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세속의 대명사로 불리원지는 이 에베소 한복판에서 우상 서적과 음란 서적 그리고 온갖 퇴폐적인 것들이 검은 연기로 불에 타 하늘로 치솟는 이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다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바된 소수의 헌신된 제자들과 함께 주의 능력을 붙잡고 일어섰을 때 그들의 말 한마디에 사탄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고 그들을 사로 잡던 모든 온갖 더러운 영들이 물러가게 됩니다.
우리 역시 십자가에 보혈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달려 나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만이 오늘의 이 시대를 바꿀 수 있고, 내 가정, 내 이웃에게 참된 기쁨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이 터치 153 새생명 축제는 바로 내 신앙의 점검입니다. 마치 병원에가서 건강 검진을 하는 것처럼 내 영혼이 주님을 행해 바로 서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 오늘도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한생명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