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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내가 지금 갈망하고 있는 것은 (시42:1-5)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3-09-24 | 조회: 266

내가 지금 갈망하고 있는 것은 시편 42:1-5.

 

우리 모두에게는 감출 수 없는 내면의 갈망이 있습니다. 여기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도 그렇고 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갈망은 삶으로 표현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년이 될 때까지 내면의 갈망은 형태만 다를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갈망이 가는 곳으로 움직여 삶이 흘러갑니다. 갈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죽기 직전까지도 살고 싶다는 갈망이 일어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국의 존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이면서 신학자로 많은 책을 쓰셨습니다. 이분의 책 가운데 하나님을 기뻐하라 - Desiring GOD”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함은 이분의 목회와 설교에서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과 비교될만한 다른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것을 강조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미로에 빠져버린다고 말합니다. 오늘 시인은 2절에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갈망 뭔가 몸부림을 치는 간절함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보는 이 시 42편은 표제가 고라 자손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마스길이란 말은 교훈을 주는 시라는 뜻입니다. 시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고라의 자손들이 누군가가 부른 노래를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수집해서 시편에 포함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는 누가 어떤 상황 가운데 썼을까요? 역시 학자들이 연구해 보니까 사용된 시적 표현이나 느낌이 다윗의 시들과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다윗이 쓴 시를 고라 자손이 수집해서 성전 찬양에 사용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 ë �¼ 때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뒤에 성전에 가서 예배드릴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지은 노래라고 봅니다.

 

. 두려움이란 바다에서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고? 내 영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고?’ 마음이 낙망하고 절망을 하는 것입니다.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4절 끝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마음에 고통이 너무나 많이 쌓여서 주체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광장히 강하고 또 대단한 것 같지만, 그 속을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참 약한 존재란 것을 알게 됩니다. 이번에 송파와 김포에서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이 되지 않았습니까? 빚 문제로 시달리다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아야 하지만, 정말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가여울 정도로 나약하다는 사실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게 됩니다. ì ��말 우리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비극을 당하여 몸부림칠 때 하나님께서 무관심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을 바꾸어 주시기는커녕 오히려 어두운 절망의 골짜기로 빠져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시는 것같이 보일 때가 더 많습니다. 여기 시인은 자신의 어려움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3-4절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그리고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 말은 자기 주변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이 자기를 조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보고만 계시느냐?’, ‘신앙생활 잘한다고 하더니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을 보니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냐?’ 때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영적인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속도 모르고 함부로 말하면서 우리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왜 이런지 그 배경이나 원인을 알아보지도 않고, 결과만 보고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대적들의 공격과 방해를 합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나를 시기하고 비판하고 공격하던 사람들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런 일들을 보고, 기회다 싶어 거세게 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더니, 네가 말하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네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라고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나를 미워하고 나를 핍박하던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영적인 위기를 겪을 때가 있습니다. 이들은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가리키며, 그것 보라고 예수 믿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더욱 거세게 공격해 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겪고 있는 일을 감당하기도 힘이 드는데 이렇게 공격해 옵니다. 그래서 깊은 영적 위기를 겪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낙심의 상황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 바라봄의 자세

여기 5절을 보세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 °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여기 하나님을 바란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시편 저자는 1절에서 참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란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인은 자신의 갈급한 영적 상태를 사슴의 갈급함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대체로 사슴을 동물원에서나 보았기 때문에 사슴이 자연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슴에 대한 이미지는 어려서 본 동화나 만화 영화에서 보았던 것들입니다. 아름답고 숲속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꽃사슴과 같은 그런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사슴들은 이런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거친 광야에서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에 모습도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숲속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사슴은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원래 사슴은 열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하루에 두 번은 물을 마셔야 생존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매년 절반이 건기입니다. 이때면 물이 흐르는 시내가 없습니다. 늘 마실 물을 찾아 헤맵니다. 문제는 물이 있는 곳에는 포식자들이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존이 힘이 들어 지금은 거의 멸종상태라고 합니다.

 

이 저자는 그렇게 가물 때 사슴 한 마리가 목이 너무나 말라서 물을 찾느라고 옆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고 온 사방을 누비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루 종일 이 언덕 저 언덕 골짜기마다 다니면서 물을 찾는 모습을 본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것을 연상하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낙망이 될 때 하나님을 찾는다면 어떤 식으로 찾을까? 바로 저 사슴처럼 찾아야 되겠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슴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집요합니까? 얼마나 간절합니까? 물 아니면 죽음입니다. 물을 찾으면 사는 거고, 물을 못 찾으면 죽는 것입니다. 얼마나 절박합니까? 그러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물을 찾을 때까지 그는 쉬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물을 추구하고 사방으로 뛰어 다닐 것입니다. , 하나님을 찾을 때는 저렇게 찾아야 되겠다. 낙망이 될 때는 저런 식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이 낙망을 벗어 버리고 일어설 수가 있겠다.’ 저자가 그렇게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낙망을 자주 합니다. 우리 모두 불안에 떨 때가 자주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이 상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는 것인데,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아니면 죽음이다.’ 하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 일어서게 하시는 하나님

본문 5절 하반절을 보면 시인은 자기 스스로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리고 11절 하반절에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인은 하나님께 열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위기를 극복할 길을 찾았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에게만 소망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연약한 자신을 바라보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시인은 지난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베푸신 은혜를 기억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고난 가운데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행하신 일들이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탄성을 지릅니다. ‘그렇지, 하나님이 계시지, 내가 지금 왜 두려워하나?’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고백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기억하나이다.” 이런 기억이 시인에게 위기를 극복할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다시 뜨겁게 하나님을 갈망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억은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 공부한 것을 기억하는 것과 공부는 했는데 기억하지 못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리고 기억을 하되 때가 중요합니다. 시험보기 전에는 기억했는데 시험 그 자리에서 기억하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시험 볼 때 기억하지 못했다가 시험 끝나고 나와서 기억해도 소용없습니다. 시험 볼 그 때 거기에서 기억하는 것, 그것이 능력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시험을 당할 때 그 때 거기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위기를 겪고 있을 때 그 ë �Œ 거기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14:26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기억할 수 있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 그분이 기억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특히 영적인 위기를 겪고 있을 때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을 소망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성령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분이 하나님을 기억나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일어서게 하시는 분입니다. 묻습니다. 누가 이스라엘 민족을 430년 동안의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였습니까? /누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였습니까?/누가 광야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을 날마다 한결같이 만나로 먹이셨습니까?/누가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그 오랜 질병에서 건졌습니까?/누가 12해 혈루병 여인을 그의 안타까운 질병에서 건져냈습니까?/누가 죽은 나사로를 장례가 끝난 무덤 밖으로 불러내었습니까?

 

, 아침 묻습니다. 이처럼 낙망하는 내 인생을 붙잡고 도우시는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43:1-3절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멘 누가 함께 하십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가 처한 이 환경과 이 아픔이 나를 두렵게하고 염려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아시는 하나님이, 내 작은 신음마져도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이, 내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신 그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붙들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환경을 바라보거나 주변에 영향력에 흔들림 없이 오직 주님만 갈망하며 믿음으로 아아가는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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