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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감사함으로의 초대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3-11-05 | 조회: 255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11월 감사의 달을 맞이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신앙 생활은 배움에서 시작합니다. 리가 기도를 잘하려면 기도를 연습하고 배워야 합니다. 은혜받았다고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깊이 알려고 한다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도 배우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 좋은 주변 형제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눈여겨보면서 배우고 연습해 보십시오. 그러면 드디어 나에게도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며 나아가 습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배워서 습득한 사람은 훨씬 더 감사가 풍성하고, 깊이 있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일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공할 때야 어느 정도 감사할 수 있지만, 실패할 때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란 웬만큼 배우며 연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힘듭니다. 이익을 많이 남겼을 때는 저절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손해를 입었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평소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굉장한 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성도의 고백처럼 "나는 장미를 들고는 수백 번 감사를 했지만 가시를 가지고 감사한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라는 말은 솔직한 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장미를 놓고 감사해야 되지만, 가시를 놓고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가시를 가지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물이 무지개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길 원한다면 장미와 가시를 동시에 놓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생 장미만 들고 인생을 화려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가시 때문에 찔리고 고통 하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절망의 환경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 감사는 그 자체로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받는 대상을 변화시키는 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감사는 우리를 바꾸고 세상을 바꿉니다. 저는 이 아침 우리 모든 믿음의 식구들에게 감사의 초대장을 보내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행하다고 외쳤던 현대인들과는 달리,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도 오히려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울이었습니다. 로마의 옥중에서 쓴 편지인 빌립보서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감사는

. 상황을 뛰어넘는 감사입니다.

왜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할 때가 많은 줄 아십니까? 첫째는, 변덕스러운 우리의 상황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셋째는, 죽음의 문제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는 어느 날 문득 감사가 사라지고 기쁨을 빼앗기고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이 세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의 처한 상황 때문에, 꼬인 인간관계 때문에, 그리고 질병과 죽음의 문제, 이 셋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을 할 수 있습니까?

 

지금 바울은 지금 거의 5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 갇혀서 온갖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감옥의 문이 열릴 것인지, 아니면 그 감옥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인지, 아무런 기약도 없이 막연하고 고통스러운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는 것 같은 생각에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을지의 여부도 확실히 모릅니다. 오히려 그가 사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징후가 더욱 짙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누가 고난당하는 것을 감사하겠습니까? 감사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그 결과가 좋다 하더라도, 그 고난의 끝에서 엄청난 영광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고난당하는 것을 감사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포자기, 절망, 불평, 원망의 넉두리를 하기 쉽습니다. "바로 살아 보겠다 몸부림하는 나를 5년 세월 감옥에 넣어두다니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부귀영화를 위해서 달려왔단 말인가? 내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달려왔는데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나의 모든 것은 끝났다, 깨끗이 포기하자, 그만두자, 전도고 뭐고 이제 나는 끝이다."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아니했습니다. "감옥이 나의 꿈을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풍랑이 나의 믿음을 흔들어 놓지 못할 것이다. 환경이 생의 목적을 뒤집어 놓지 못할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엇때문입니까? 고후 5:1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상황에 매여 살 때 그때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에는 우리에게는 상황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후에는 달라집니다.

 

바울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8:2절에 보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리고 9:1-2절에도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이로 인해 교회는 요즘말로 하면 한 순간에 폭탄을 맞은 것처럼 쑥대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이런 잔인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믿겠습니까? 그런 핍박의 장본인이 자신의 인생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로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립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보아도 자격이 없다고 보는데 하나님은 자격 있다고 하시고, 그는 자신을 감히 사도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시며, 자신은 죄가 많아서 안 된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문제삼지 않으신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파격적인 대우, 즉 연약함과 잘못을 불문에 붙이시고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이 믿어 주셨기 때문에 먼저 자기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감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 기쁜 일이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2) 기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 3) 역경 중에서도 여전히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만난 뒤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평생을 추구하며 소유했던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이유는 이는 바로 이 상황, 이 환경너머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 앞에 선 믿음의 사람들은 쉽게 지금 다가오는 환경 앞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이 너무도 힘들고 어렵지만 자기는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울의 감사는

 

 . 선취적 감사입니다.

6절에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염려는 우리의 의지대로 하고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본문이 말씀하는 답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하면 염려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감사가 선취적 감사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그것을 보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을 믿고 미리 앞당겨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본을 보여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대표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두 사건에서 구체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오병이어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굶주리고 있던 오천 명을 잔디 위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셨습니다. 그 다음에 하신 일을 마 14:9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여기서 축사하셨다는 것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시기 직전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아직 이적이 나타나기 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입니다. 그런데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이루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다음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찾으셨습니다.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고 이미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해서 냄새가 나는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11:4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입니다.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명하시기 전입니다. 그런데 마치 이미 나사로가 살아난 것처럼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들이 일어난 시점이 같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미리 감사의 기도를 드린 뒤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구체적인 사례는 받을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얼마나 놀라운 힘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 보다 더 놀라운 힘을 보여줍니다. 본문에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리 드린 감사, 받을 은혜에 대한 감사는 예수님 수준의 믿음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받을 은혜에 대해 감사할 때 그 놀라운 감사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그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 하나님이 지켜 주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7

7절에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지키시리라'는 용어는 무장한 군사가 성을 지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무장한 군사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지켜서 마음에서부터 염려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염려가 일어나더라도 우리의 생각을 지켜서 그 염려가 부풀려지지 않� �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그렇게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의 세력이 온갖 방법을 다해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공략하기 때문입니다. 벧전5:8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우리를 어떻게 삼키는지 아십니까? 마귀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공격합니다. 잘못된 생각과 마음이 일어나도록 조장합니다. 4:23절에는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합니까? 생명의 근원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염려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상항이 달라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 주시는 평강이 내 마음을 생수같이 흘러 넘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염려와 근심이 사라집니다. 오히려 감사가 일어납니다. 그 힘이 우리를 당당하게 살게 합니다. 감사는 기적의 씨앗입니다.

'감사 나눔 신문'이라는 신문이 있습니다. 발행인 김용환 장로님이라는 분이 감사라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너무도 놀라서 이 경험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신문을 발간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신문을 보면 감사의 신비로운 힘을 소개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이 신문에 실린 한 이야기입니다. 포스코 3선재 공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태종성 부공장장이 이 신문에 난 기사를 읽고 호기심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양파 1개를 담은 컵 두 개에 각각 감사합니다.’ 짜증나라는 글을 써 붙였습니다. 그리고 직원들과 함께 감사합니다라고 써 붙인 양파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짜증나라고 붙여진 양파에는 짜증나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붙여진 양파에서는 싹이 났는데, 짜증나라고 붙여진 양파는 악취를 풍기며 썩어갔습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직원들이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실험을 했습니다. 결과는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엉뚱한 발상을 했습니다. 고장이 잦은 기계에 감사합니다를 써 붙였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작한 지 한 달이 됐는데 고장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적합품 발생률이 0.44%에서 0.29%로 낮아졌습니다. 감사가 기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삼성중공업, 동원산업, 그리고 네패스도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역시 이런 회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사실 누구도 모릅니다. 감사 안에 신비한 힘이 있는데 어떻게 그 힘이 작동되는지, 현대과학으로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한 양자역학 전문가가 이렇게 추정했습니다. 감사는 파동을 일으키고 그 파동이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이런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그 자체로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받는 대상을 변화시키는 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감사는 우리를 바꾸고 세상을 바꿉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해보십시오. 여러분이 달라집니다. 감사해보십시오. 여러분의 가족들, 주변 사람들, 그리고 일의 결과도 달라집니다. 감사가 여러분과 여러분 주변의 사람, 사물, 그리고 일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이 감사의 계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함으로 감사를 회복하시고 행복한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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