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 축복으로 가는 징검다리 신16:12-17.2023. 11/12
시인 김준태씨의 ‘감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이 짧은 시 속에 시인의 살아온 생애가 풍자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자라 어릴 적에는 감꽃 떨어지는 것을 세다가,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때에는 전쟁으로 인해서 죽은 병사의 시체를, 현재는 자리를 잡아 번 돈을 세고 있는데 앞으로 자신은 무엇을 세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침 예배로 모인 여러분은 저물어 가는 이 한 해를 살아오시면서 무엇을 세셨습니까? 이 질문은 곧 ‘무엇을 하고 살아가십니까’라는 의미와 ‘한 해를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라는 의미도 됩니다. 무엇보다 11월은 감사의 달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은 초막절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초막절을 통해 감사가 축복으로 가는 징검다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Ⅰ. 초막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3절에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거두어들인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입니다. 그리고 ‘추수’란 한 마디로 ‘기쁨’이죠. 제가 어린 시절 미아리 산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몹시도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을에 김장철이 되면 온 동네가 함께 집집마다 돌아가며 김장을 담습니다.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푸마시하며 김장을 통해 잔치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김장 속을 가지고 함께 먹는 잔치하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추수는 우리 농촌에서 경험하는 추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의 종살이에서 나와서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아다녔습니다. 마침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신들보다 먼저 정착해서 사는 가나안족을 살펴보았을 때에 자신들은 마치 메뚜기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옛날 어린 시절에 경험한 희미한 기억입니다. 벼메뚜기를 잡는다고 논두렁을 헤집고 다녔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논두렁에 가서 손을 휘두르면 근처 벼 잎에 숨어 있던 메뚜기가 놀라 퍼덕거리며 날아갑니다. 메뚜기란 것이 그렇습니다. 외부에서 어떤 조그만 위험이라도 느끼면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정신없이 흩어지는 것이 메뚜기입니다. 그러나 결국 메뚜기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대한 가나안 민족을 몰아내고 이곳에 기적처럼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이는 지난 날 자신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건기와 우기가 있었고 소위 우기라 불리는 동안 내리는 이른 비는 10월부터, 늦은 비는 3월쯤에 내립니다. 그리고 그 이외의 시기에는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건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정착한 곳� € 대부분 해발 몇백 미터 높이의 산악지역이었습니다. 이 산악지역은 우기 시절에 아무리 많은 비가 온다고 해도 빗물을 담수하여 농수로 사용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빗물은 순식간에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가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 농사를 짓고 수확을 거둔다는 것은 이들에게 크나큰 기쁨이요 분명 하나님에 대한 엄청난 감사거리였습니다. 그러므로 13절에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고 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주일 동안 다음과 같이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초막절만 되면 사람들은 들로, 산으로 가서 올리브 가지나 종려 가지 등을 잘라와서 자기 집 옥상이나 마당,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야외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텐트, 초막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서 1주일 동안 가족들이 기거했습니다.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러나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도와 주셨는지, 어떻게 때를 따라 먹여주셨는지, 어떻게 원수로부터 지켜주셨는지, 어떻게 그들의 몸에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은혜를 주셨는지를 낯선 광야에 나와 불편을 감수하고 나뭇가지로 초막을 지어놓고 그 속에서 살도록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기쁨이 있고 여기에 감사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는 축복의 징검다리입니다. 그리고
Ⅱ.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라 14절
14절에 "절기를 지킬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초막절에 어떤 특정 부류나 있는 자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쁨을 맛보는 축제였던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과만 관계하는 기회가 아니라 이웃들과도 함께 기뻐하는 절기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소유가 없는 객과 나그네, 농사지은 것 없는 과부와 고아, 분깃이 없는 제사장인 레위인 들에게는 물질을 나누어주고, 그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며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심은 ‘나를 위해서 더 많이 저장해 놓아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경고해 주십니다. 어떤 부자가 그 해 농사를 지어 많은 곡식을 거둬들였습니다. 기존에 있던 창고가 비좁을 정도로 거둬들인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 큰 창고를 짓고 거기에다가 곡식을 가득 채워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됐다. 여러 해 먹을 것을 가득 채워놓았으니, 평안히 쉬면서 마음껏 즐기며 살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영혼을내가 불러갈 것인데,여러 해 먹을 것을 그렇게 쌓아놓은 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비단 그 어리석은 부자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감사할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초막절이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만의 누림이 아니라 내 가진 것을 내 이웃과 나눠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는 표현해야 합니다. '감사는 은혜 받는 그릇'이라고 우찌무라 간조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감사의 그릇이 클수록 은혜가 크게 임하고 또 우리가 감사하는 그릇이 많을수록 은혜도 많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받기도 하고, 은혜를 베풀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대개 보면 남의 은혜를 많이 받고 사는 사람보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잘됩니다.
Ⅲ.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최선을 다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15-16
15절에 보면, 초막절을 지킬 때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출로 인해 즐거워하라는 것은 이미 베풀어주신 것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많든 적든 창고에 들여놓을 수 있는 곡식을 주신 것에 감사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으로 즐거워하며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1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었는데 열심히 일한만큼 추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수고한 것만큼 다 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갚아 주실 것이기에, 그것을 믿고 미리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노력하고 수고한 만큼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 성적이 영 좋지 않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장사했는데 남는 것은 고사하고 밑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한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수고를 받지 않으시고 내게 아무런 은혜도 베풀어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다’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복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기대하며 즐거워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에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 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명령하시기를, 3번 절기를 지키면서 감사를 드릴 때 반드시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말씀이 몇 번이나 나옵니다.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3년 전에 우리나라 최고 갑부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죽고 난 다음 항간에 이런 유머가 떠돌았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나 저승에 가자 먼저 세상을 떠난 정주영 회장이 마중 나와 아는 체를 하며 ‘여보게 돈5천 원만 꿔주게나?’라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러자 이건희 회장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 돈 한 푼도 없는데요.’ 그때 정주영 회장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네도 빈손으로 왔는가? 나도 빈손으로 왔는데...’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무척이나 아등바등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게으름을 피우며 인생을 대충대충 사는 것보다 그렇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 더 좋긴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었고 그것을 누린다 í ��더라도 그것이 어느 순간엔가 나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고, 나는 빈털터리가 되고 마는 순간이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감사를 기쁘게 받으실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감사하는 내 마음, 내 정성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정작 감사를 드린다고 드렸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지 않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을려고 합니다. 우리 다같이 보십니다. 17절에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말로만 하는 감사는 껍데기일 수 있습니다. 가식일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표현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표현을 분명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추수감사절 헌금을 드리긴 하지만, 작은 과일 하나일지라도 들고 와서 제단 앞에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직접 몸으로 감사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나는 이 한해 어떻게 살아왔는가하는 것 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나눠드린 봉투에 5가지 감사를 기도하면서 적어보세요. 아직 우리가 감사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내게 축복의 열매로 자라고 있습니다. 내가 겪었던 고통과 아픔의 순간,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언젠가 내게 큰 축복으로 열매 맺혀질 것입니다. 그런 힘든 일들이나 힘든 순간들이 내게 고통만 안겨준 채 지나버리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복 주실 것입니다.
감사에는 현실을 초월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자꾸만 일이 꼬일 때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집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답답하고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아도, 그럴수록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정말 신기하게도 길이 열리게 됩니다. 감사는 막혀진 길을 뚫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풀려지지 않는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기적입니다.
영국의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 목사님은 “감사는 산수에서 더하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은총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의 삶에 기적을 경험하게 만들어줍니다. 감사는 기적의 씨앗입니다. 아-멘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지게 만듭니다. 우리의 삶을 너무 분주하게 살면서 잊어버렸던 감사를 회복하는 절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불평거리를 뒤집어 보면 감사가 보입니다. 억지로라도 감사하며 사십시다. 그래서 그 감사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더욱 풍성히 누리십시다. 감사는 하늘의 은혜를 내 삶으로 끌어오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우러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서라도 해야 합니다. 감사를 창조하는 신앙 - 그 신앙이 하늘의 복을 풍성히 누릴 수 있는 신앙입니다.
감사 - 그것은 불평과 불만을 제거하는 제초제이자 축복의 징검다리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고, 삶을 바꾸는 능력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