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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직무(2) -"싸웠노라, 마쳤노라, 지켰노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3-12-10 | 조회: 194

아름다운 마무리 - "싸웠노라, 마쳤노라, 지켰노라!"  딤후4:6-8

 

사람들은 돈이면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살아갑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가수요, 락큰롤의 황제였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의 음반만 6억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늘 외로웠습니다. 수십 억이 그의 노래와 연기에 환호했지만,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결국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던 프레슬리는 1977년에 진통제만 5,300알을 먹다가 42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습니다. 마릴린 몬로는 어땠고, 엘리자 베스 테일러는 또 어땠습니까? 제 아무리 남 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화려한 조건을 갖추고도 불행한 인생으로 마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도 오히려 행복하게 살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울이었습니다. 로마의 옥중에서 쓴 편지인 빌립보서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3:6-7). 사도 바울은 또 며칠 후면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계속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그리고 죽음을 코앞에 두고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미친 사람처럼 한평생을 그 예수를 위해 뛰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감옥에 갇혀 억울하게 죽게 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은 후에 받게 될 의의 면류관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든 것을 다 갖추고 살면서도 불행했던 사람들과는 달리, 사도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도 행복해했고, 감옥 속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장차 받을 상급을 그리면서 기대에 찬 삶을 마감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여기 6절에 보면 ????전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여기서 ????전제 구약시대 제사의 마지막 순서입니다.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절차로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인생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예감하고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그는 지나온 인생을 회고 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삶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것을 다 버리고 새로운 꿈을 가지고 살았던 바울의 말년은 어떻습니까? 그는 이제 노년이 되어 그의 인생을 마감해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도 바울이 딤후서를 쓸 때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주후61-62년 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힌 후 약5년 후인 주후 67, 네로 황제 때에 순교를 당합니다. 그러니까 딤후서는 사도 바울의 생애에서 마지막이 가까웠을 때 쓴 편지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렀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열심히 수고했으니 쉴만도 하지 않나요?’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그 흔한 집한칸이 없는 차디찬 감옥이었습니다. 몸은 병들었습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외투 한 벌이 없는 참으로 힘든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마지막까지 고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그가 7절에 외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싸웠고, 마쳤고, 지켰노라 이 말씀에는 같은 의미의 세 가지 내용이 하나로 묶여있습니다.

 

. 삶의 여정

첫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됐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자라야 하고, 믿음의 지경을 넓혀 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전쟁과 같은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싸움이 누군가를 공격해서 피해를 입히거나 망하게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타격하거나 죽이는 싸움이 아닙니다. 나의 믿음을 지키느냐 빼앗기느냐, 내 믿음을 성숙하게 하느냐 주저앉느냐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악한 싸움이 아니라, 선한 싸움이라고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 이 믿음의 싸움의 구체적인 성격을 가르쳐주는 말씀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엡 6:1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 상대해야 할 적이 누군가를 가르쳐줍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귀라고도 하는 사탄입니다. 그리고 그의 휘하에 있는 악한 영들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은 다른 말로 하면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저명한 기독교 저술가인 C.S. 루이스가 쓴 마귀의 지령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마귀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무관심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까 루이스가 볼 때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지나치게 모든 것을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매사에 사탄이 관여해 있는지 여부를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마치 밤길을 걸을 때 귀신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경계하는 태도로 걷는 사람이 무슨 소리만 나도 귀신이라고 놀라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 전쟁에 대해 모르고 알아도 무관심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탄이 시험하고 있는데 자기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적인 갈등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사탄이 함정을 파놓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그 길로 갑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큰 문제입니다. 이 싸움은 늘 긴장과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바울은 고전 9:27절에 내가 내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자신이 가진 하나님이 주신 그 사명에 대해 자격상실을 당할까 얼마나 신중하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고전15:31절에 날마다 죽노라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살았습니다.

 

둘째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입니다.
여기서 달려갈 길이란 말은 원어로 드로몬”(dromon)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마라톤 경기에서 달려야 할 경주코스를 말합니다. 마라톤 경주를 마치려면 이 드로몬 곧 경주코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완주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먼 거리를 다 달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마라톤 선수는 철저한 준비를 하고 경기에 임합니다. 우선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합니다. 옷도 팬티하나에 런닝 차림이 다입니다. 운동화도 자기 발에 맞는 최대한 가벼운 것으로 신습니다. 심지어 어떤 선수는 눈썹까지 밀고 나오는 선수도 있다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운동을 통해 스스로 몸을 가볍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꾸준한 운동으로 호흡과 심장박동 그리고 근육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리면 달리는 동안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 하나 준비가 소홀하면 달리는 동안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래서 좋은 기록을 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심한 경우 도중에 기권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면 제대로 달려갈 수가 없습니다. 더더욱 종말을 대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제 인생의 여정을 마쳐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믿음을 지켰으니입니다.
여기서 믿음을 지켰다는 말은 군인이 상관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전쟁터에서 상관으로부터 돌격 앞으로 공격 명령이 떨어집니다. 포탄이 빗발칩니다. 적군이 공격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갈 수 없습니다. 갔다간 죽을 것이 뻔합니다. 상관의 명령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정말 힘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부하들은 그 명령을 목숨처럼 받들고 나아갑니다. 바울은 이렇게 전쟁터의 군인들처럼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 8

8절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고대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완주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에게는 종종 황제가 그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주었습니다. 그ê ��이 최고의 명예요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마라톤 경주를 마치면 우리 역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머리에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임을 압니다. 스테파노스  하나님의 영광으로 관을 씌웠다는 뜻입니다. 신앙인에게 이보다 더 큰 명예와 영광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에서 황제가 씌워주는 면류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지만, 인생의 경주-신앙의 경주에서는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며 완주한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오늘 예배 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면류관의 주인공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그리고 이런 믿음이 이 고백을 하던 사도 바울과 같이 노년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날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서 그렇게 고백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늘 믿음의 길을 올곧게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 최선을 다 합시다.

제가 오늘 몇가지 그림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사진1> 이 사진은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 모습입니다. 강수진 씨는 남들보다 늦게 발레를 시작했지만, 발레를 시작한지 불과 4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로잔 발레 콩코르에 1위로 입상하게 되었고, 세계적인 발레단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한국인 최초로 입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9년에는 무용계의 최고의 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우수 여성 무용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강수진 씨가 그렇게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뒤늦게 발레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녀는 남들보다 더 많은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하루에 19시간씩 연습을 했고, 그런 피나는 연습을 했기에 1년이면 천여 컬레의 토슈즈가 닳아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혹독한 노력과 훈련의 결과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었지만, 그의 발은 아름다운 여인의 발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발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발레리나 강예나 씨의 발도 그렇습니다.<사진2> 이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김용호)의 평에 의하면 가냘프면서도 우아해 보이는 몸에 어떻게 저런 손과 발을 가졌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메말라 있습니다. 바싹 마른 겨울나무의 가지처럼 손으로 움켜쥐면 바스러질 것만 같은 발과 손입니다. 발레리나의 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 최초로 영국 프리미어리거가 된 박지성도 다르지 않습니다.<사진3> 그는 평발이어서 축구하기에 적합한 신체조건이 아니었습니다. 평발을 가진 사람은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축구에서 90분을 뛰려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박지성은 ‘< /span>심장을 2개 가진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발도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굳은살이 가득한 발에는 수없이 많은 상처자국이 남아 있고, 발톱은 아주 심각한 상태로 쪼개져 있습니다.

 

첼로의 신동이라 불리던 장한나 씨의 손도 그렇습니다. <사진4> 오래 전 한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나와서 휘어져 비대칭이 된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첼로를 연주하다 보니 손에 변형이 와서 친구들이개구리 손이라고 놀렸다고 합니다. 줄을 만지는 왼손이 오른손보다 길고, 활을 잡는 오른손은 휘어 있습니다. 오랜 연습으로 인해 손 모양이 그렇게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의 모습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아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어르신들의 몸에도 그런 영광의 상처들이 있습니다.

 

<사진5> 할머니의 굽어진 허리는 그 동안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또 먹고 살기 위해서 밤낮 들에 나가 땅을 파고 거름을 주는 등 농사일에 여념이 없이 살아온 삶의 결과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도 자신의 발전과 성공을 위해 엄청난 댓가를 치루면서 사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한 해동안 외쳤던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말처럼 내가 자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엄청난 기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왜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습니까? 왜 그토록 신앙생활을 오래하고도 우리 마음에 변화가 없습니까?

 

그 이유는 성경을 수없이 읽으면서도 이 애타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우리가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찾아 바울로 그의 삶을 바꾸신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을 찾으십니다. 여러분의 있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우리가 변화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집요하신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그분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심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이제 다시 도전할 의향은 없습니까? 자신의 삶과 습관과 모습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죄와 거짓된 것들을 찾아내 도려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잘못된 것을 도려내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결단과 용기가 없이는 바른 신앙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을 도려낼 뿐만 아니라, 그 잘못을 되풀이하려는 우리의 삶의 습관을 따라가지 않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연민을 가지고 그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작은 허물이지만 그것이 언젠가는 내 인생을 망가뜨리는 독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작은 일이지만 그것이 종양이라면 그것을 도려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하늘의 기쁨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죄를 도려내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 우리의 삶에 아름다운 은혜의 열매들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싸웠노라, 마쳤노라, 지켰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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