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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새롭게 하소서 (엡4:22-24)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01-07 | 조회: 260
주여! 새롭게 하소서 엡4:22-24. 2024. 1/7

새로운 한해의 첫 주일을 맞아 예배로 함께한 모든 성도들 가정과 직장 그리고 섬기는 모든 일들 위에 주의 은혜가 넘치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 표어가 “주여! 새롭게 하소서”입니다. 누구나 새해가 되면 새롭게 하려는 갈망이 있습니다. 

일전에 한 지하철 광고가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딸아 걱정마! 이제 시집갈 수 있을 거야” 한 성형외과 병원 광고였습니다. 사람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반면에 이 병원이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결국 “노이즈마케팅!”에 성공한 것입니다. 저는 이 광고를 보고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①. 먼저는 어떻게 하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대놓고 성형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나 하는 걱정입니다. ②. 다음으로 정말 시집 못갈 얼굴을 시집갈 수 있을 정도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 하는 놀라움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성형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성형광고마다 보여주는 ‘Before & After’ 사진을 보면 같은 사람인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매스컴이 보여주는 여신처럼 예쁜 연예인들의 과거 사진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또 하나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겉사람을 성형하는 것처럼 속사람은 성형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속사람의 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법무부가 하고 있는 교도소 수감자들에 대한 교정노력입니다. 그리고 마약, 술, 담배, 게임 등에 중독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거의 성과가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속사람의 성형은 사람의 전문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어떻게 보면 성경 이야기는 하나님의 속사람 성형이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교회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성장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교회다움을 추구하는 길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교인들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해 예수 믿는 일에 열심을 낼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람이 되기 위해 예수 믿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 22-24절을 보면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Ⅰ. ‘벗어 버려야 합니다. 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여기 ‘벗어 버리고’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마치 의복에 비유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옷이 날개라는 말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옷은 어떤 의미에서 삶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벼운 옷을 입으면 가볍게 행동하고 싶어지고, 무거운 옷을 입으면 무거운 행동을 하고, 야한 옷을 입으면 야하게 행동하고 싶어지죠. 편한 옷을 입으면 편하게 행동을 하고, 정장을 입으면 정장다운 행동을 하고 싶어지는 용기가 부여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어떤 옷을 입고 나오는 가에 따라 여러분의 행동이 달라지게 됩니다.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이가 사면이 됐습니다. 석방됐습니다. 죄수에서 자유인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제일 먼저 옷에서부터 변화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옷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가 세상적인 삶을 살다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된 것을 옷을 바꿔 입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 마구잡이로 살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세상의 옷을 벗어 던지고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섰다면, 이제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버린다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벗어버린다는 것입니까? 옛사람입니다. 이 ‘옛사람’을 칼빈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인간이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는 거듭나기 이전의 행실, 성격, 태도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악이나 그 세력의 지배하에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이 말씀을 받는 에베소 교인들은 불신자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선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정말 핍박과 조롱을 견디며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 심령 속에 복음이 들어가니까 인생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세상 유혹이 그들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손해가 나고 고난이 옵니다. 그러다 보니 구원받은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세상 앞에 무력하게 무릎 꿇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에는 당시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아데미’라고 기록된 신을 섬기는 신전입니다. 그 아르테미스 신전을 가지고 있는 에베소는 우상 숭배의 도시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 우상숭배의 도시라고 하면 그것은 곧 종교적인 창녀가 득실거리는 성적 타락의 도시라는 말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라는 이름의 너울을 쓰고 성적 타락이 판을 치는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와 성적 타락은 필연적으로 에배소를 사치와 쾌락의 도시로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온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하게 되었다고 해서 한 순간에 과거의 모습이나 생활습관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것을 벗어버린다는 것은 세속의 한복판에서 쉬운일이 아닙니다. 구원받았지만, 성도가운데 세손의 유혹에 빠져가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되기 위해서 바울은 옛사람을 버리고 
Ⅱ. 새사람을 입으라 엡4:23-24,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바울이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은 '철저한 변화'(radical change)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우리 인간 편에서 '회심'(conversion)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는 우리를 '재창조'(recreation)하시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지난날 죄짓기 전에 아담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혁명이요, 은혜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마치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이 옛사람은 벗어던지고 새 사람을 입는 것과 같다고 말씀 합니다.

이 말은 새롭게 되는 것은 어느 한 시점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새롭게 되는 일이 한순간에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옷을 벗고 입는 것처럼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옷을 입고 영원히 안 벗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아끼는 옷을 그대로 벗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옷은 매일 벗고 매일 입습니다. 아침에 입고 저녁에 벗습니다. 옷을 벗고 입는 것처럼 우리 영혼은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새로워집니다.또한 ‘입으라’는 말은 수동태입니다.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새로워지는 일은 내가 할 일이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그 일의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 도와줘서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누군가 옷을 벗기고 입히는 것처럼 우리 영혼을 주관하는 분이 있고 우리는 그 분의 뜻을 따라 그렇게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내 인생을 새롭게 하는 것이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여기서 “심령”은 문자적으로 말하면 “마음에 있는 영”입니다. 영어 성경으로 하면 “spirit in the heart”, 마음속에 있는 성령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되어“라는 의지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계신 성령이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령을 붙잡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만이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인접한 국가이지만 집이나 길거리가 참 많이 다릅니다. 이집트는 새로 지은 건물들도 외벽이 지저분하고, 거리도 깔끔하지 못합니다. 사막 지대이고 모래바람도 많이 불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건물이 그런대로 깨끗합니다. 길거리도 깔끔한 편입니다. 인접한 나라고 강수량도 비슷한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알고 보니 이슬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와 달리 이스라엘에는 매일 밤에 이슬이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이슬이 집 외벽이나 길거리를 물청소한 것처럼 씻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와 달리 깨끗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이슬처럼 매일 내리므로 우리의 심령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 성령이 나를 새롭게 할 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삶이 됩니다. 성령의 새로움을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마치 이집트 길거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매일 성령충만을 받으며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스라엘의 길거리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는 새해 ”주여! 새롭게 하소서‘라는 표어를 가지고 출발을 합니다. 시103:5절에 보면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독수리의 특성 가운데 비상이 있습니다. 

이 비상은 독수리의 전유물과 같습니다. 기록을 보면 무려 지상에서 11킬로미터까지 날아오른 독수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 어떤 새들이 흉내를 낼 수 있을까요? 이 비상이 힘든 것은 중력을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종류에 따라 무게 차이가 나지만 저 몽골 초원을 나는 독수리는 15킬로그램이나 나간다고 합니다. 그 무거운 몸으로 저 높은 하늘을 비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거센 바람의 저항과 싸워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40: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 “날개 치며 올라감”이란 말이 바로 이 비상을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명확하게 비상이라는 뜻의 ‘soar o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영적으로 부흥한다는 것은 독수리가 비상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앞을 보며 살았고 또 땅을 내려다보며 살았을지라도 새로운 부흥을 위해서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봐야 합니다. 고개를 들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부흥을 꿈꾼다면 우리도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하늘 문이 열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늘로부터 성령의 특별한 기름 부으심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참새와 독수리가 나는 것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참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날개를 펄럭거리며 납니다. 오직 자기의 날개짓으로만 납니다. 그래서 멀리 날지도 못하고 또 높이 날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다릅니다. 처음에 날개짓으로 날아오르다 상승기류를 발견하고는 그 기류에 올라탑니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그 상승기류에 몸을 맡깁니다. 그리고 저 높은 하늘로 비상합니다.

이것 역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줍니다. 바로 부흥은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점입니다. 그래서 독수리가 비상할 때 상승기류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성령의 상승기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강력한 바람을 받아야 합니다. 행 2:1-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성령이 강림할 때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불었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는 참된 부흥은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시작됩니다. 상승기류를 만나야 독수리가 비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성령의 상승기류를 타야 부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소서. 우리 각자의 심령에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소서. 우리 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소서.” 

올해는 교회가 교회 창립 55주년을 맞는 뜻깊은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동안 3년여 짧지 않은 세월을 코로나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내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코로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신앙의 정체성의 회복을 위해 힘써왔습니다. 이제 회복을 넘어 새로운 변화로 독수리처럼 비상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옛 사람의 성품과 옛 사람의 모습을 과감하게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을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가기 위해서 우리 안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옛사람과 끝임 없이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우리에게 능력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그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를 온전히 변화시켜 가는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여!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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