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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약속의 땅을 향하여 - 비돔 라암셋에서(1)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02-04 | 조회: 252
약속의 땅을 향하여 - 비돔 라암셋에서(1) 출1:8-14. 2024. 2/4

1996년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부른 “안녕이라 말해야 할 시간”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한 안드레아 보첼리를 기억하십니까?
며칠 전에 우리나라의 성악가이자 트롯 가수인 김호중씨에게 자신의 신곡을 선물을 했습니다. 이는 흔치 않은 일이기에 세계가 환호하고 있습니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이탈리아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사고로 인해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입었습니다. 좌절하고도 남을 상황이 어느 날 갑자기 그를 덮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추수린 다음에 새로운 삶의 길을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법학박사가 되고, 변호사로 활동한 뒤, 마침내 어릴 때 꿈이었던 노래로 돌아 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분일초라도 한탄하는 데 허비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겸손하십시오”라고 많은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희망은 접어버릴 것이 아니라 포기해야할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해야 할 보배입니다.
보첼리는 자신의 일기에 이런 이야기 한 토막을 담았습니다. “내가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꿈들은 현실이란 장벽에 부딪쳐 깨져버렸다.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난 몸을 숙여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웠다. 이제 끝없는 인내로 그것들을 다시 맞추려한다. 그 맞추어진 조각들은 나의 옛날의 찬란한 빛을 돌려주고 날개를 달아 줄 것이다.”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던 안드레아 보첼리는 시각 장애인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테너가수로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는 희망을 접어야 할 바로 그 순간, 앞을 못본다는 그 고통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약속의 땅을 밟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주 ‘두려움보다 설레임’이란 제목으로 광야길을 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새로운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길을 나서는 모습 속에서 우리 역시 이 한해를 출애굽기와 함께 나아 갈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주전 1200년대만해도 애굽 땅에서 잘 나가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의 리더인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고 그들에게 분배된 고센 땅을 잘 가꾸어 그들은 번영하고 성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존재를 잘 모르는 새로운 애굽의 지도자가 최고 통치자로 등극하자 이스라엘 민족은 한순간에 고통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소위 고센 지역에 속하는 비돔과 라암셋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학대를 받는 운명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고통의 시간이 바로 출애굽과 “약속의 땅을 향한 위대한 새역사”를 열어가는 반전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위기가 닥치면 많은사람들이 좌절합니다. 좌절이라는 말은 꺾일 ‘좌’(挫)와 꺾일 ‘절’(折)이 합해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좌절이라는 말은 마음이나 기운이 꺾인 것을 말합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도저히 해낼 수가 없다.”는 식으로 마음이 꺾인 것을 말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새로운 일에 대해 두려움이 있나요? 아직도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 어떤 트라우마 때문에 여전히 현실의 문제 앞에 주저 앉고 계신 분은 안계십니까?
아직도 자신을 괴롭히는 어떤 고통 속에 새해를 맞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도 볼 것을 보아야 합니다. 사실 위기가 닥치면 제일 먼저 시선에 문제가 생깁니다.
쓰나미가 밀려올 때 사람들은 거대한 파도를 보고, 파도에 휩쓸리는 건물, 자동차, 그리고 무너지는 제방과 다리를 봅니다. 그러면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흔들립니다. 이 시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일으키실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고통의 시간을 이해하는 두 가지의 중요한 관점을 함께 배웠으면 합니다.



Ⅰ.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사실입니다. 11절

11절을 보십시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국고성은 아마도 통치자 람세스가 전쟁을 위해 군대들의 식량,
무기등을 비축하기 위한 창고 역할을 한 성으로 건축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바로가 통치하던 지금부터 약 3, 4천여 년 전 고대 애굽은 풍부한 노동력으로 대제국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피라미드나 룩소의 신전과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짓고,
나일강의 홍수와 맞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노동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바로 시대에 이 노동력은 주로 장정만 6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이 담당했습니다.
여기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이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빠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은 노예의 자리로 전락해 가기 시작합니다. 또한 그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의 회오리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한순간 무대가 돌아가면서 번영은 고통의 무대로 바뀝니다. 이들이 누렸던 번영의 시간은 한순간에 고통의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서 놀라운 사건을 보게 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 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더라” 무슨 말입니까? 학대를 받을수록 이스라엘 백성이 더욱 번성한다는 말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c.s루이스는 ‘고난은 변장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이스라엘의 민족사적 고통에는 도대체 어떤 뜻이 있을까요? 잘 아시는 것처럼 이런 바로의 압제를 인해서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소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의 이스   엘 백성들의 삶이 만일 번영의 지속이었다면 그들은 결코 애굽을 떠날 생각을 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이 그들로 애굽을 떠나 시온의 땅으로 가야 할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많은 경우 고통은 단순한 고통이 아닙니다. 그 고통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섭리의 하나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서도 오히려 번성하고 오히려 새 역사를 준비하는 마당에 서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고통의 마당을 인하여 절망하지 마십시다. 고통에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서 있는 오늘의 고통의 마당은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출발하는 현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고난의 현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Ⅱ.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고성을 건축하는 동안 그냥 고통스럽게 견디며 노동만 하고 있었을까요? 아니지요. 그들은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출3:7-8의 말씀을 보시지요.
모세에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무슨 말입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제 앞에 체념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주님이 개입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복되게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복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게 사는 것보다 더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질병에서 치료되는 것보다 더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많은 기적이 일어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사시면서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병자를 고치셨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한 자를 보게 하셨고, 배고픈 자들에게는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베풀어 풍족히 먹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기적을 ‘표적’이라고 표현합니다.
‘표적’이라는 말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병이 고쳐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귀신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배고픔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주님을 나의 구주 삼고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을 주께서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다음 출3:9에도 다시 한번 강조됩니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고통의 현장에서 그냥 기도하는 정도가 아니라,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었고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듣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애굽의 손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은 문제가 아니라 훈련입니다. 여러분에게 오는 고난을 겁내지 마십시오. 불안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고난을 자기 팔자소관이라고 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여러분이 설혹 실수하여 죄를 범하고 고통이 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큰 유익을 주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문제가 아니라 기회이며 훈련과 축복입니다. 이제 고난을 보는 눈을 올바로 갖고 우리의 고난을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을 바라보며 밝게 눈을 뜨십시오.
어떤 고통속에서도 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지역에 머문지 55년이 되갑니다. 저는 역사와 전통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여기 계시는 여러분이 정말 주님 주신 은혜 앞에 믿음을 갖고 살아가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를 먼저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새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로 교회의 지체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아닙니다. 지금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며 여기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숱한 소리와 세속의 엄청난 타락의 물결이 밀려온다 할찌라도 이제 우리가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내 한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 삶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원망하거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때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을지라도 욕망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 아낙자손과 같은 거인이 나타나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32:10-11절에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도다.”

여러분, 지금 삶이 조금 불편하십니까? 지금 여기가 비돔과 라암셋의 수모의 현장이요, 고난의 현장일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를 이끄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십시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가장 복된 자리에 쉬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으로 기대하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 앞에 우리가 가져야 할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가 내 심령에 임하면 나는 더 이상 옛것에 매여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생애를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내 마음의 이런 상처, 저런 아픔, 고통으로 겹겹이 쌓여 열등감 많은 내 생애를 모든 사람 앞에 온 세상 앞에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외쳐대는 당당한 인생으로 우리의 생애를 바꾸십니다.
그래서 인생의 남은 시간을 가장 값지게 만드시는 손에 이끌려 살아가는 승리자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여 새롭게 하소서’라는 표어를 우리 마음에 잘 밖힌 못처럼 단단히 박고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임을 잊지 마시고 더 간절히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부르신 그 부르심의 소명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십시오. 반드시 주님의 영광이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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