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어린양을 보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03-24 | 조회: 172

어린 양을 보라 1:29-30,35-38 2024. 3/24 주일 낮 설교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비록 짧은 생을 살아갔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꿈은 자신은 쇠하여야 되지만, 내가 소개하는 그 분 예수님은 흥해야 된다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시는 대로, 하나님 나라는 말라기 선지자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 음성이 단절된 어두움의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두움을 뚫고 유대광야에서 하나님 말씀이 사가랴의 아들 세례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이 유대광야는 오늘날처럼 시설이 잘 갖추어진 도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왕래하는 번화가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낮이면 뜨거운 뙈약볕이 내리쬐고 밤이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모닥불을 피워야하고, 맹수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고적한 광야였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세례요한을 붙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요한의 멧세지는 마음상한 사람들의 심령을 위로해주거나 인생의 고통 속에서 낙심하고 좌절한 자들을 향하여 따뜻하게 해주는 말씀이 아니라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대단히 원색적인 설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저분이 우리가 지금까지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를 따르는 수많은 제자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단호하게 자신은 당신들이 기대하는 메시야가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27절에 보면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에서는 주인의 신발을 풀고 묶고 하는 것은 천한 노에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가르켜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어 줄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대로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사명을 받은 소리꾼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낮추며 오실 예수님에 대해 증거 합니다.

 

누구나 인기가 절정에 오르고 사람들의 기대가 높아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분수를 벗어나기 쉽습니다. 모두가 메시야로 보면 마치 그런 것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대중적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기 분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주님께 드렸습니다.

 

오늘 본분을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라” -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36절에도 보라 하나님 어린양이라고 증거 합니다. 이 어린양은 속죄의 제물로 드려지는 희생양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아갈 때 자신들은 속죄할 제물은 어린양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 어린양은 장차 오실 구원자인 메시야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 인간이 범한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아시고 흠도 티도 없는 어린양이 대신 죽는 속죄를 통해서 모든 죄인은 사망의 형벌로부터 해방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 어린양이 예수란 말입니다.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 고백한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온 백성의 죄를 회개하는 대 속죄일이 있습니다. 이날 미리 준비한아사셀양의 머리에 대제사장이 손을 얹고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때 모든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아사셀에게 전가하면서 돌팔매질을 합니다. 이때 아사셀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보내는데, 그러면 양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불의를 대신 지고 버림을 받게 됩니다. 최후에 아사셀은 고통 중에서 비명을 지르면서 죽어갑니다. 이것이 아사셀 양입니다.

 

이런 예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만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신 예수님의 그림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어린양 한 마리를 죽이는 유월절 의식을 행했고, 대 속죄일이 되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고 가는 아사셀 양을 보았기 때문에 "죄를 지고 간다"는 말이나,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이해하기 쉬운 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 옆을 지나가시는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입니다. 고전5:7절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자신이 피가 터지도록 외쳤던 그 참 빛으로 오신 예수, 생명의 예수 그 어린양 예수가 오시는 것을 보고,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저 없이 그들의 등을 떠밀어 예수님에게 가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독생자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양으로 화목제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  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나 하나를 당신의 자녀 삼으시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고난주간은 바로 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도대체 내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누구입니까? 그 생명이 코의 호흡에 붙어 있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원수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사 십자가에서 돌아가게 하시고, 그 위에서 방울방울 흘리신 보혈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말끔히 씻어 주셨습니다.

< !--[if !supportEmptyParas]--> 

그런 다음 무조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름 지으시고, 언제든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 나와서 예배하는 영광스러운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가 아닙니까? 생각할 때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아신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아무것도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값없이 영생을 주셨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이 고백이 일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제 평생에 정말 잊을 수가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해마다 교회 청년들이 단기 선교를 갑니다만, 한번은 강영순 선교사님이 있는 몽골 울란바토르에 우리 청년들이 선교를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강선교사님은 다리를 저는 소아마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몽골 청소년 탁구 대표팀을 지도하는 코치로 계셨습니다. 우리 일행이 일정을 마치고 떠나기 전날에 너무 아쉬웠든지 양한마리를 잡아 주셨습니다. 저와 우리 청년들이 그때 양을 잡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몽고인이 양을 잡기 위해 양을 끌고 오는 동안, 그 모습을 본 개는 이제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는 듯 요란하게 짖어대는데, 막상 끌려오는 양은 너무나도 잠잠하고 평화스러웠습니다. 양을 마당 한 가운데 거꾸로 눕힐 때에도 양은 전혀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양은 다른 가축의 경우처럼 정수리를 찍거나 혹은 목을 따서 죽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기 위해 거꾸로 눕힌 양의 배 가죽만을 칼로 조금 갈랐습니다. 그러자 속에 있던 밥통의 윗부분이 잘라진 틈으로 불거져 오르면서 피가 흐르지 못하도록 자동마개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몽고인은 양의 배 가죽과 밥통 사이로 손을 넣어 양의 숨통을 눌러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무지막지한 사람의 손이 그처럼 양의 배를 가르고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숨통을 틀어쥐는데도 양이 신음소리를 한번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숨이 너머 가는 마지막 순간 허공을 향해 치켜든 네 다리를 파르르 떨 뿐이었습니다.

 

양이 죽자 손을 빼낸 몽고인은 양의 털 가죽을 다 벗겨낸 다음 양의 배를 완전히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흥건히 고여 있는 피를 주걱으로 남김없이 다 퍼내었습니다. 그렇게 잡은 양고기와 내장, 피를 돌멩이와 함께 큰 통에 넣고 몇 시간을 삶은 뒤, 마침내 조리가 끝난 양고기를 시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우리 청년들은 처음에는 양고기를 어느 누구하나 입에다 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 둘씩 그 양고기를 먹기 시작을 했습니다만, 그날 그 시식은 양고기를 씹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 53 7절의 의미를 되씹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고난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않았도다."( 53:7)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동물들 가운데 왜 구약의 사람들이 유독 양을 속죄의 제물로 즐겨 사용하였는지, 왜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셨는지, 왜 성경이 하필이면 주님을 양에 비유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그날 확연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양은 자기 생명을 남을 위하여 잠잠히, 그리고 기꺼이 내어놓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배를 가르고 속으로 손을 넣어 숨통을 눌러도 반항 한번 없이 자기 생명을 내어놓으므로 양이 인간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듯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 내어놓으시므로, 잠잠히 포기하시므로 인류의 구원자, 영원한 생명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저는 한주간 기도원에 머물면서 이런 고백을 수도 없이 외쳤습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그 첫사랑, 첫열정을 회복 시켜달라고 외쳤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신 그 예수님은 내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이 엄청난 사랑에 눈이 뜨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라도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사는 고난주간을 맞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주간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인 구원을 완성하셨듯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승리합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공입니다. 십자가는 모욕이 아니라 영광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아니라 은총의 기쁨입니다. 십자가는 절망이 아니라 최후의 희망입니다. 십자가는 어둠이 아니라 광명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로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며 사십시다. 그 주님의 뒤를 따라 사십시다. 이번 고난주간에 우리의 눈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이 힘겨울수록 더욱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두려울수록 더욱 십자가의 주님 손을 꼭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세 상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을 더 깊이 묵상하고,주님을 따라가는 믿음으로 사십시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승리가 주어질 것입니다.십자가를 통해 하늘의 기쁨을 맛보는 날이 반드시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늘 저녁부터 고난주간 특별 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제목은 어린양을 보라!! 누가 말했는지 '특새'라고 말을 생각해 보면 은혜가 됩니다. 새벽마다 나오는 수백 명의 성도는 '특새'를 통해 특별한 비상(飛上)을 꿈꾸는 특별한 새입니다. 이른 새벽 찬바람을 가르며 주 앞에 바짝 다가가서 기도의 힘을 쏟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던 어린 양 예수님의 모습을 깊이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대속의 고통을 당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고, 사랑으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

 
←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