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감사 (시30:1-12) 2010.7.4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0-07-06 |
조회: 1901
여러분도 아시지만 신앙생활은 배움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잘하려면 기도를 연습하고 배워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알려고 한다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도 배우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 좋은 주변 형제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눈여겨보면서 배우고 연습해 보십시오. 그러면 드디어 나에게도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며 나아가 습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배워서 습득한 사람은 훨씬 더 감사가 풍성하고, 깊이 있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일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공할 때야 어느 정도 감사할 수 있지만, 실패할 때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란 웬만큼 배우며 연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힘듭니다. 이익을 많이 남겼을 때는 저절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손해를 입었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평소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굉장한 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법을 배우십시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감사의 예술을 터득할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피눈물 나는 수고와 연습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의 예술을 터득하려면 남보다 더 많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피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감사가 나에게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감사를 통해 엄청난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아무리 풍요로워도 감사할 수 없으면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어느 사회학자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이 시대는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곧 감사 불감증이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1년 중 중요한 명절 3개를 지정해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이라는 3개의 명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1년에 3번 추수를 합니다. 겨울 동안 자란 밀을 초봄에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 추수기에 맞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입니다. 곧 유월절 명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봄부터 시작해서 뿌린 밀과 보리가 자라서 추수를 하는 늦여름이 되면 칠칠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맥추절로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신 양식을 놓고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늦은 가을이 되면 그동안 열심히 가꾼 올리브나 포도, 무화과 같은 과일들을 풍성하게 소출하는 연말이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1년에 3번의 추수가 있었는데, 여기에 맞춰 큰 명절 3가지를 제정하셔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절을 지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신 은혜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매년 몇 개월에 한 번씩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히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불행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이 3절기를 제대로 지킨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귀찮다는 이유로 절기가 있다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수백 년을 보낸 암흑기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때를 따라 적절한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철를 밟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감사가 우리에게 체질화되고 습관화 되도록 계속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지난 반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기에 동일한 마음으로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매년 7월 첫 주일에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기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깊이 감사함으로 우리의 신앙과 인생에 큰 축복이 임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함께 본 본문은 ‘다윗의 감사 생활’에 대해 잘 증거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신앙을 가리켜 훌륭하다고 평가하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감사 신앙’입니다. 감사하면서 산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개는 고난의 때에는 낙심하거나 원망하기 쉽고, 형통의 때에는 교만하거나 방자하기 쉽습니다. 이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잘 안됐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본문에 그런 과정을 잘 표현해 줍니다. 그는 형통할 때에 자기가 잘 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교만했죠. 그러다가 고난을 당했고,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윗은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신앙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여기 6절을 보면, 그는 과거 형통할 때에 영원히 그 인생이 요동치 않을 것으로 착각하고 장담했습니다. 6절입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사실 자신이 그만큼 축복 받고 형통한 삶을 살았던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한 동안 잘나가니까, 좀 잘되니까 모든 것이 자기 힘으로 잘되는 줄을 알고 자신만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금세 넘어집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그런 사실을 다윗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웠다”는 것은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도우심으로 다윗의 인생이 정상까지 오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순간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다윗은 인생의 최고의 자리에서 인생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쳤습니다. 한순간에 지위와 가정을 다 잃고 유랑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심지어 죽음의 자리까지 이르는 절망이 그의 삶을 덮어왔습니다.
어느 평범한 주부의 간증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평소 단조롭고 분주한 일상으로 마음에 불만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깼는데 허리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있고, 화장실도 못 갈 정도가 됐습니다. 결국은 대소변을 받아내는 신세가 되었고, 119를 불러 들 것에 실려 병원으로 갔습니다. 각종 검사를 받으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살다 가나?''이러다 그냥 죽는 건 아닌가?' 점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걷게만 해 주세요. 아니, 아이들에게 밥해 줄 수 있게만 해 주세요. 아니, 일상생활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더 바라지 않습니다.' 그분의 병명은 '급성요추부염좌'였습니다. 다행히 한달 만에 퇴원합니다. 그 때 그분은 감격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걷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숨 쉴 수 있게 해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이 문제입니다. 생각이 바뀌니까 그토록 불만스러웠던 일상이 감사 제목이 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뭐, 우리 역시 크게 이 자매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평안하고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잘 몰랐지만, 우리가 어려움에 빠진 후에야 비로서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동안 내가 믿는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랑이요 자기 과시였다는 깨달음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태에서 죽으면 그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뭐, 다윗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제 죽음이 그를 덮어왔지만, 그 속에 잠자고 있던 신앙이 꿈틀거린 것입니다. 8-10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서 깨달았는데, 자신은 죽어가고 있어요. 그러니 더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후회가 엄습해 옵니다. 죽음의 그늘이 덮을 때, 인간은 누구나 다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올려드릴 수가 있겠냐는 것이 아닙니까? 이제 그는 겸손하게 주의 은혜를 붙잡습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처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지난 날 눈먼 바디매오가 길을 가던 예수를 향해 외쳤던 간절함입니다. 세상은 바디매오의 외침을 막았지만, 그 가슴속에 있는 사모함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다윗도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이 다윗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다윗은 ‘이제부터는 내 힘으로 이 세상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다윗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감사 신앙’을 배웠습니다. 4절에 보세요.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이제 다윗은 고난의 때에도 형통할 때에도 영원히 감사하리라고 결단합니다. 12절을 보십시요.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결국 그의 입술에는 감사가 넘치게 됨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제 한생을 감사함으로 살기를 결심합니다. 평생 감사하기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고난도 약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시119:67, 71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고, 감사하는 신앙으로 변화되는 ‘신앙의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의 고백처럼 "나는 장미를 들고는 수백 번 감사를 했지만 가시를 가지고 감사한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라는 말은 솔직한 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장미를 놓고 감사해야 되지만, 가시를 놓고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가시를 가지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물이 무지개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길 원한다면 장미와 가시를 동시에 놓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생 장미만 들고 인생을 화려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가시 때문에 찔리고 고통 하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5-6절을 보십시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감사를 잃지 않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울음이 기숙하는 저녁때를 살아간다 할지라도 아침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다가오는 아침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아침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침이 되면 어두움은 물러가고 어김없이 태양은 떠오릅니다. 만물의 모습이 분명히 밝혀 보여 집니다. 그때야 모습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캄캄한 밤중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할 때 감사할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다윗은 일찍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근심 속에서도 근심을 품지 아니하고 그 근심을 감사로 승화시킬 때 슬픔이 춤이 되고 눈물이 기쁨으로 변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슬플 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슬픔이 춤으로 변할 것입니다. 눈물 날 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눈물이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 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고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사람에게 가장 큰 저주는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름’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감사는 기적의 씨앗임을 알고 평생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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