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사 중입니다. 엡2:21-23 ① 2024. 6/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동성교회가 다음 주면 55주년을 맞게 됩니다. 참 파란만장한 세월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습니다. 지나 온 55년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 우리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나님이 ‘기뻐하나’는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저는 이번 우리 창립 55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가 여기서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비전의 날개를 펴서 주께서 주신 귀한 사명을 힘 있게 감당할 것인가를 분명히 정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침! 한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이제 55주년을 맞는 여러분은 어디에 관심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도 당신의 관심이 하나 있으십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입니다. 가장 높으신 주님이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희망을 거는 대상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핏값으로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이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교회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스럽게 주목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에 큰 기대를 걸고 계신다면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고 제자가 된 우리들은 얼마나 더 교회를 사랑해야겠습니까?
얼마나 더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게 되면 자연 이런 소원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 이 교회를 그처럼 귀하게 보시고 사랑하신다면 나도 한 생을 살 동안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지. 좋은 교회 에 다니면서 우리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야지.“ 이것이 바로 저의 소원이요, 또 여러분의 소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건강한 교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 각 사람이 좋은 신자가 되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의 전제 조건은 우리 각 사람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주님이 칭찬하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교회의 공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한번 태어나 행복도 맛보고, 고생도 맛보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개인의 행복과 인생의 의미가 어떤 교회를 다니느냐에 의해 상당부분 좌우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은혜를 받았느냐, 교회를 통해서 정말 삶의 의미를 발견했느냐, 교회를 통해서 정말 뒤돌아보아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왕에 다닐 바에야 좋은 교회에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동성교회가 얼마나 좋은 교회냐는 주님이 평가하시겠지만 동성교회에 몸담고 있는 이상 동성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야 내가 삽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구성원을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22-23절에 보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여기 ‘지어져 간다’는 말은 – 이 지상교회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아직도 ‘공사 중에 있다’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공사 중인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3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Ⅰ. 교회는 하나님의 권속이 모인 곳입니다. (19).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여기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권속’은 그 의미가 가족과는 약간 다릅니다. 가족은 아버지, 엄마, 형, 누나, 동생등 혈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속이라는 말을 쓸 때에는 가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에 함께 사는 모든 사람, 즉 머슴으로부터 노예까지도 권속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녀가 되었고 사회적 신분과 혈통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피로 묶인 공동체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 다양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을 보여 줍니다.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이지만, 우리 교회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움의 정도도 다양합니다. 연령층도 다양합니다. 피가 끓는 젊은이들도 있고, 가만히 앉아만 계셔도 마음이 든든한 어머님 아버님과 같은 분들도 계십니다. 직업도 다양하고 생각하는 것도 다릅니다. 좀 여유 있게 사시는 분도 있고,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조차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격적으로도 다양합니다. 차분한 분부터 성격이 느긋한 사람도 있고, 무엇인가 주어진 일이 있으면 빨리 처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을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동성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섬기고 사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삶의 모습이 다르고, 배움의 정도가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 않습니까?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했는데 이것은 교회에 대한 탁월한 묘사입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개념입니다.
신자로서의 정체성은 공동체 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코라고 해도 얼굴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굴러다닌다면 섬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등록을 한다는 것은 세상의 멤버십과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멤버십은 마음에 안 들면 탈퇴하면 되지만, 그리스도 몸 안에서는 탈퇴가 불가능합니다. 몸 안에 있으므로 분리가 되지 않는 관계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손가락에 상처가 생겼는데 이것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가서 손가락을 잘라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프면 싸매 주고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손가락은 몸의 일부이고, 몸은 손가락을 보호해주고 회복시켜주는 기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건은 고장 나면 빼버리면 되지만 손가락은 생명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끝까지 품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속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몸 안에서 함께 자라가고, 몸 안에서 보호받고, 몸 안에서 우리 신앙의 모든 것들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과 너무나도 다른 나를 여기 동성교회로 보내주신 것은 여기에 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양성 속에서 하나가 되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일을 감당케 하시기 위해서 나를 여기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공사 중인 우리에게 놓쳐서는 안될 것은
Ⅱ. 예수 그리스도 터 위에 견고히 서야 합니다. (20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여기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신약성경, 사도들은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은 성경 말씀 위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말씀의 기초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 터가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안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맙니다.
지난번 튀르키에의 지진과 아이티의 지진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 무너져버렸고 남아있는 것이 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무너져 버린 것과 함께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이 무너진 땅 속에 다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또 순식간에 미래마져도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상황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리 위에 바로 서지 못할 때 우리의 신앙 역시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란 말은 기둥의 기초석이라는 말입니다. 그 돌을 빼내면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돌로 만든 그 무거운 집의 하중을 다 받는 곳이 집 모퉁이 머릿돌이기 때문에, 이 머릿돌은 가장 튼튼한 돌이어야 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돌이 머릿돌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고,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버린 돌처럼 취급했던 예수님을 진짜 건축자이신 하나님께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세우셨습니다. 온 인류의 구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구원사역에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는 진리의 터 위에 바로 서서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를 늘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공사 중인 우리는
Ⅲ. 성장해야 됩니다. 21-22절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여기 ‘함께, 서로’라는 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함께라는 개념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성전을 지을 때는 생김새가 다양한 돌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출애굽기에도 보면 성전을 지을 때 정으로 돌을 쪼지 말라고 했습니다. 소리를 내지 말라고 했는데 이것은 돌의 모양 그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있는 대로 끼워 맞춰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돌담도 그렇습니다. 다양한 돌들을 끼워서 멋지고 가지런하게 담을 쌓은 것을 보면 참 멋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성격이나 배경, 경험, 기질, 어떤 일에 대한 관점과 생각이 다릅니다. 이해나 반응, 은사도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절망이 됩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진리가 아니라면 그 사람에게 맞추어주는 것입니다. 돌담을 만들 때도 큰 돌만 있으면 돌담이 안 됩니다. 튀어나온 돌이 있으면 다른 돌이 들어가면 됩니다. 서로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함께입니다.
여기 물컵이 있습니다. 물은 컵에 맞게 담깁니다. 물이 자기 형태를 가지고 있다면 컵에 못 들어갑니다. 이것은 줏대가 없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성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자기 고집과 방식, 주장을 일관되게 고집한다면 미성숙입니다. 자기 소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절제는 공동체에서 함께 하는 태도입니다. 성가대는 내가 노래를 잘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함께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외톨이가 됩니다. 외톨이는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든 것이 많습니다. 교회는 더불어 세워가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성전이 되어가고”,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진행형이고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물로 치면 준공검사가 되지 않은 공사판과 같습니다. ‘공사 중’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낙석을 조심하시오’ ‘먼지가 많이 나니까 통행에 불편을 드려 매우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아직 공사 중입니다. 우리의 성숙치 못한 모습으로 인해 머리가 깨진 사람도 있고, 상처받은 사람도 있다는 것은 우리가 ‘공사 중’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교회는 미완성입니다. 교회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보면 압니다.
여러분, 혹짓다가 만 건물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번 총회 교직자 수양회 가는 길에 사북 쪽에 대단지 건물을 짓다가 몇 년 째 공사를 중단한 건물이 흉측스럽게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어보니 콘도를 짓다가 부도가 나서 몇 년째 공사를 하지 못하고 방치해 놓은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건물들은 흉측스런 모습으로 인해 미관을 해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공사 현장에서 날아오는 먼지로 인해서 주변 주민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고, 심지어 폐자재까지 인가로 날아오면서 큰 위험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방치된 건물은 돌보는 사람이 없어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로 변하기도 합니다.
짓다가 만 건물은 그냥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흉물로 변해갑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성장이 멈추어버리면, 신앙이 그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멈춘 신앙은 그때부터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냄새가 납니다. 마치 죽은 물고기가 부패하면서 썩은 냄새가 나듯이, 성장이 멈춘 신앙인에게서는 세상적인 냄새가 풍겨지기 시작합니다. 내 삶과 생각을 말씀에 맞추려하지 않고 세상에 적당하게 맞춰 살기 때문에 세상의 냄새가 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공사 중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인격도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지기 위해서 공사 중에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그 공사를 완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를 세워나가는 건축자는 그리스도이시고, 건물을 완성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주 안에서”입니다. 완성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교회를 보면 미약해 보이지만 하나님이 언젠가 완성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부족함이 많고 엉성하고 실망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상의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교회는 55주년 창립을 준비하면서 우리 교회는 한 주간 특새를 합니다. 저의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동성교회의 새벽기도회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부흥의 진원지가 되고, 온갖 퇴폐로 무너져가는 한국사회를 바로 세우는 영적 생수의 발원지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의 진자리 마른 자리를 통하여 갈급한 심령에 은혜의 물꼬가 터지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여러분 새벽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준비하고 기대하는 은총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충심으로 부탁합니다. 나는 이번 주간 모든 교우들이 자발적으로 새벽걸음을 재촉하는 많은 분들로 이 본당이 거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부흥의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그 현장에서 소외되는 자가 없기를 바라며, 모두가 성령 충만하여 “믿음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