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향하여 – 하나님의 기대 ⑫ 출19:1-6. 2024. 6/16
저는 목사로서 늘 설교와 씨름하고 삽니다. 한편으로는 설교가 제게는 삶의 의미가 되기도 하고, 또 보람이 되기도 합니다.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벅찬 감격이 제 자신의 존재 의미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하는 설교말씀을 듣고 삶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분들, 믿음이 자랐다고 하는 분들, 은혜 받았다고 하는 분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설교가 제게는 큰 부담입니다. 계속되는 목회일정 속에 지속적으로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제게는 큰 부담입니다. 평균 1주일에 10편정도 설교를 해야 하는 하는데, 벌써 목회자로서 설교를 시작한 지가 37년이 넘는데도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떤 때는 설교준비를 하는데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할지 가닥을 잡지 못해서 쩔쩔맬 때가 있습니다. 설교시간은 다가오는데 설교준비가 안 돼서 초조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짧지 않은 세월 설교를 해왔는데도 여전히 설교는 제게 큰 부담입니다.
더 큰 문제는 때때로 설교가 제게 큰 좌절을 느끼게도 한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제 자신의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도 안할 수 없어서 설교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면 정말 하나님께 죄송하고 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자책하게 됩니다. 때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말씀을 전했지만 교인들이 경청하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 설교를 오랫동안 들었는데도 신앙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신앙을 잃어버리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럴 때면 정말 낙심하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말씀의 종으로 쓰고 계신가고 의심해 보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설교를 해가야 하는 제게 설교는 여전히 무겁고도 힘겨운 과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출애굽을 읽으며 큰 충격과 도전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그렇게 베풀었는데.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렇게 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만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기대감 때문입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러니까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을 떠난지 3개월이 지나가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 시내 반도에 들어와 드디어 시내 산이 위치한 시내 광야에 도착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향하여 행진해 가는 과정에서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과 맺게 된 소위 ‘시내산 언약’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시내 광야 산 앞에 장막을 쳤다고 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과의 약속의 실현이었습니다. 출3:12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예배하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여기 ‘반드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그 산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마침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인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새로운 또 하나의 중요한 약속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구약학자들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제일 중요한 구절이 바로 오늘 본문 출애굽기 19:1-6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체결한 결혼예식을 거행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기억하고 있어야 할 하나님의 기대는 무엇일까요? 먼저
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4절
4절에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보았느니라” 독수리는 새끼를 새중의 왕으로 삼기 위해 아주 심한 훈련의 과정을 겪게 합니다. 독수리는 새끼를 위해 높은 절벽에 둥지를 치고 부드러운 털로 새끼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합니다. 알을 낳아 부화시키고 먹이를 나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새끼들을 둥지에서 밀어냅니다. 신명기 표현에 의하면 독수리가 날개를 퍼덕였다고 말합니다. 부드러웠던 깃털은 날아갑니다. 쭈빗쭈빗 가시들이 새끼 독수리들을 찌르기 시작합니다. 깜짝 놀란 독수리 새끼들은 벼랑 둥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꽥꽥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어미 독수리의 힘에 밀려 벼랑 아래로 사정없이 떨어집니다. 새끼 독수리는 연약한 날개를 퍼득이며 살려달라 몸부림칩니다. 아서라히 떨어지는 새끼 독수리를 지켜보던 어미는 새끼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쏜살같이 내려와 날개로 받아 다시 높은 고공으로 올라가 새끼를 떨어뜨립니다. 겁에 질린 새끼 독수리는 다시 “나 죽는다”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펄럭입니다. 그러면 벼랑 바위에 떨어지기 전 쏜살같이 내려와 새끼를 날개로 받습니다. 어느때까지 하는 줄 아십니까? 스스로 날개를 펴서 어미새처럼 창공을 솟구칠 때까지입니다.
이 장면을 연상하며 본문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인도했다’고 말합니다. 다른 새들은 새끼를 옮길 때 부리로 물어서 옮깁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새끼를 등에 태워 옮기기도 하고 훈련시키기도 합니다. 내가 너희를 등에 업어 여기까지 인도하였느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방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을 여기까지 인도한 방법이었습니다.
Ⅱ. 우리를 위대한 백성으로 살아가길 기대하십니다. 5-6
하나님은 떠돌이 유랑 민족, 430년동안 종살이나 하던 민족, 노예근성이 딱지 딱지 붙은 이스라엘 족속을 택하여 위대한 백성을 만들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 영광스런 비전의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시내산 언약의 내용을 5-6절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정확하게 말하면 3가지의 약속이 있습니다. 첫째, 내 소유(보물, 왕의 보물, segulla)가 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사장 나라가 되겠다는 것이고, 셋째는,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지금까지 너희가 소유(보물)같은 백성이었다. 제사장 나라였다. 구별된 백성이었다. 과거형으로 말씀하지 아니하고 되겠고, ‘되리라 ’미래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너를 그렇게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 시내산 언약이 있기 전까지 그들은 세상 누구로부터 소중히 여김받던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시내산 이전에 그들의 존재는 그들의 가치는 그렇게 남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단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존재 가치가 바뀌어지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고 잠자고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가장 긴급한 문제는 애굽에서 가지고 있던 꼬리표를 떼는 일이었습니다. 노예근성 말입니다. 부정적이고 패배주의에 찌든 의식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야 위대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노예가 아니라 나의 소유이다. 너는 애굽인의 종, 마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이다. 너는 존귀한 존재이다. 너는 가치있는 보물이다. 너는 가난을 정복할 위대한 정복자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6절입니다. “너희는 제사장 나라가 되며” 위대한 백성은 제사장으로 살아갑니다. 벧전2:9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은 중보자 - 제사장 의식으로 살아갑니다. 역사의 구경꾼이 아니라 역사의 중심에 서서 역사의 아픔을 붙들고 살아가는 중보자 제사장 나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한 손으로 이웃의 아픔을 붙들고 또 한 손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뻗어서 이웃의 아픔을 하나님께 아뢰는 복을 비는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중보자는 역사의 조연이 아닙니다. 언제나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하나님 조국이 분단된 이 현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정치가 비틀거리는 것도, 경제가 어려운 것도 교회가 제 역활을 다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얼마든지 비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정죄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아니하고 그 상처와 아픔과 연약함을 가슴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를 이름하여 우리는 제사장 나라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의 명운을 걸머진 사람들입니다. 나라의 명운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릇된 오만이 아니올시다. 이 땅을 밟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의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피 묻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저 백성에게 던지며 살아가겠습니다. 정의를 하수같이 공 의를 생수같이 흘러 보내며 살아가겠습니다. 역사의 아픔을 가슴에 끌어안고 내 책임인양 하나님 앞에 아파하며 울며 기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이 백성을 살려 주시옵소서.
이런 제사장 나라로 이 백성이 거듭나게 될 때에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아버지의 마음과 제사장 마음을 가지게 될 때에 저주의 물결이 끝나고 축복의 물결이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제사장 나라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백성은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무기는 총과 칼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도록 지어진 구별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거룩한 백성, 구별된 백성이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도록 지어진 존재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절대 살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거룩한 교통이 없이는 우리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도록 지어진 존재들입니다.
자식의 반란으로 왕궁을 떠났을 때에, 무서운 범죄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에, 다윗은 왕궁을 그리워하지 않았습니다. 따스한 이부자리 침대를 그리워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나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내게 성령을 거두지 마시옵소서. 주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한다고 하면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다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는 존재 바로 그것이 거룩한 백성 당신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여러분은 당신의 야망을 이루고 끝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비전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보았던 그 비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원했던 사도 바울의 그 비전, 주님께서 세우기 원했던 영광스런 교회에 대한 비전을 안고 살아가십시오.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얘기만 듣는데 인생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위대한 사람이 되십시오. 당신의 비전을 역사 위에 펼쳐가는 사람 말입니다.
단지 우리가 은혜 받기에 좋고 편안히 교제하기에 좋은 교회, 그것은 진정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아닙니다. 위대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비전을 이루어 드리는 교회, 그 주님의 비전을 역사 속에 나누는 교회, 그래서 교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교회, 그것이 우리는 꿈꾸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입니다.
한 젊은이가 신앙생활 하다가 어느날 모퉁이에서 목사님을 만나 “목사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데 주머니에서 담뱃갑이 툭 떨어졌습니다. 목사님도 한참이나 담뱃갑을 쳐다보고 이 청년도 담뱃갑을 주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얼른 주워서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모퉁이 지푸라기에 무릎을 꿇고 얼마나 창피했던지 얼굴이 불처럼 달아올랐습니다. 그 시간에 결심을 했습니다. 담뱃갑을 쥐어뜯으며 하나님 내 주머니에서 앞으로 담뱃갑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이 떨어지기 원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담뱃갑이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복이 쏟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담배를 끊기 위하여 그때부터 은단을 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담배를 끊기 위해 은단을 만들어야지. 은단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약품을 만들 거야. 비타민 C를 개발하여 비타민 C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바로 고려 은단 회장 조규철 회장입니다. 그의 아들은 조창현 장로님으로 지금 그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복을 세상 가운데, 우리 한민족 가운데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전국 도로명 마다 큰 표지를 달기로 했습니다. "Jesus loves you"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속도로를 이곳저곳 달리다 보면 올림픽 대로를 달리다 보면 이곳 저곳에서 Jesus loves you.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3분의 장로님을 세웠습니다. 너무 기쁘지 않으십니까? 이분들은 하나님의 기대가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여러분은 위대한 영향력을 나누며 살아가게 될 위대한 백성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복은 한없이 흘러 넘쳐서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지게 될 여러분들은 제사장 백성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을 바꿀 위대한 백성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면 행복합니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살 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