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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약속의 땅을 향하여(15)-감사할 이유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07-09 | 조회: 231

약속의 땅을 향하여 - 감사해야 할 이유(맥추 감사절) 33:28-29. 7/8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6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23:16절에 보면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향하여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첫 열매를 거두고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때입니다. 마가 다락방에 약속하신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초대교회가 시작된 때입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단순히 첫 열매를 거둔 것을 감사하는 것만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성령님을 부어주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감사절을 맞이하여 혹시라도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 감사의 신앙이 상실되었다면 다시 한번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얼마 전 기분 좋은 뉴스를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 GNI가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다는 것입니다. 작년 1인당 국민총소득이 작년에 3 6194달러가 됐고, 3 5794달러에 그친 일본을 앞질렀다는 것입니다.(아무도 안놀래십니다.) 그리고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만 놓고 보면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6위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조만간 4만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우리의 현주소를 보고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자살률과 우울증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2011년 자살예방법 제정 후 성장세는 꺾였지만 여전히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또한 우울증 유병률도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전체 인구의 약 5%,이던 것이 2020년대 전체 인구의 약 10% 크게 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잘 살게 됐으면 자살률이 줄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잘 살게 됐으면 우울증이 줄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잘 살게 됐는데 자살은 더 늘어나고 있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2:13을 보면 여기에 대해 진단을 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장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문제의 핵심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물을 구하려고 웅덩이를 팠지만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어서 물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가지게 되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으로는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풍요가 터진 웅덩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잠시는 만족을 얻을 수 있어도 얼마 가지 않아서 터진 웅덩이에 물이 빠지듯 만족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멀리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십시오.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만 영적 갈증은 더 깊어져만 갑니다. 영적 갈증을 채워보려고 돈으로 갖가지 시도를 해 보지만,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더하는 것처럼 영적 갈증은 더 심해져만 갑니다. 그러한 인생에게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감사가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딤후서 3장을 보면 말세에 고통 하는 때의 증상들을 열거하는데 그곳에 감사하지 않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망각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질병 중의 하나가 망각증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고질병이 있습니다. 그것이 원망과 불평입니다.

 

그들은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체험한 후 3일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물이 없다고 원망을 쏟아냅니다. 40년 동안 매일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나님이 먹여 살리셨지만, 나중에는 만나밖에 없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나님께서 사랑한다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언제 우리를 사랑했느냐고 따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은 은혜받은 것이 적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지독한 망각증세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불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잊지 말 것에 대해 자주 명령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2) 명기서의 주제는 기억하라, 잊지 말라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나에게 더 큰 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큰 것으로 부어주셔도 반응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주일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주셨던 은혜에 대한 기억을 재생시키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회복하면 우리에게 이런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 이미 베푸신 은혜가 넘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본문 2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기 "너는 행복자로다"라는 말은 "너는 지극히 행복한 사람이로구나"하는 감탄과 탄복의 외침입니다. 한마디로 감격의 격한 감사가 가나안 땅이 바라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외친 메시지입니다. 참 이해하기 힘든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아온 광야 백성에게 행복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행복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그 행복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3가지로 말씀합니다.

 

. 하나님의 남다른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9

29절에 보면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이 구원이라는 단어처럼 흥분되는 단어가 없습니다. 구원 안에 숨겨진 의미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원 안에 우리의 진짜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광대하고 풍성해서 우리가 다 받아들일 수 없지만 우리의 갈증, 궁핍, 절망적 상태를 더 걷어내기에 충분한 것이 구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을 할 때, 애굽 왕 바로의 압제로부터 구원받은 것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입니까? 장자를 죽이는 죽음에서부터 구원받은 것이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합니까? 홍해에 가로막혀 몰살당할 위기에서 홍해가 갈라져 맨 땅처럼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이 인간의 공적으로 가능한 것입니까? 목말라 죽을 위기에 닥쳤을 때, 반석에서 생수가 나와 해갈할 수 있었던 것이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굶어 죽을 위기에서 하늘의 만나를 40년 동안 먹은 것이 인간이 쟁취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까?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만 가능한 여호와의 구원이었습니다.

 

40년의 세월  여기 가나안 문턱에서 인간의 힘으로 올 수 없는 이 자리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예비한 인도 라는 것을 알고 온 몸을 다해 외친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단어입니다. 어느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이 시대는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곧 감사 불감증이란 이름의 병이다.”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불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게 풍부해야만 행복한 게 아닙니다. 행복은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할 때 찾아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린다 하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행한 인생입니다. 풍부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감사함으로 행복해지는 겁니다. 지금 모세는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도움 앞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29절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 주위에는 수많은 적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가까이에 모압, 암몬, 아모리, 그리고 가나안 7족속 등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어할 수 있는 성벽이 있는 것도 천혜의 요새 안에 피해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빌4:6절을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우선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이 다급합니다. 잘못되면 큰일이 나기 때문입니다. 래서 염려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기도하러 나오면서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염려는 우리의 의지대로 하고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답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하면 염려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8:20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이 지켜지고 있음을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지켜주시고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 은혜 앞에 선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누가 행복할까요? 우리가 감사해야 할 분명한 이유는

 

. 인생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9절 하반절에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무슨 말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행복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전한 승리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때로 삶의 역경과 고난의 비바람이 갑자기 어느 한순간 휘몰아치기 시작할 때 기도조차 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해 보신일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섭리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 삶에 불어닥친 고난의 비바람 속에서 갑자기 리듬을 잃어버리고 낙심하며, < /span>좌절하며 방황하다가 기도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종종 발견 할 때가 있습니다. 강한 것 같으나 사실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한때 유럽을 열광케 했던 나폴레옹은 초인적인 일화를 많이 남긴 위대한 군인입니다. 용장이요 지장이었던 이 나폴레옹도 집에 돌아오면 고독감과 외로움을 이길수 없어 부인 조세핀의 무릎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한 시대를 움직이는 영웅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의지할 곳을 찾는 매우 약한 존재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인생을 질그릇에다 비유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이 얼마나 깨어지기 쉽습니까? 사실 인간의 육체는 질그릇과 같아서 조금만 과로해도 쓰러지고, 몸안에 조그마한 세균이 들어와도 감당치 못하는 존재입니다.

 

모세 역시 40여년의 지도자로 얼마나 많은 갈등과 두려움 속에 광야길을 헤쳐 왔습니까? 오죽 했으면 광야를 두려운 광야라고 했습니까? 그러나 그에겐 한가지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나안의 비전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40여년 자신은 이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나는 구원받은 행복자야, 주의 도움과 인도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올 수없다는 사실과 자신이 무엇을 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가더래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자신을 겸손히 내려 놓고 다음 세대를 향해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은 너희를 약속의 땅에 승리자로 세울 것이다. 이 확신을 모압 평지에 있는 200만 백성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백성이 행복한 사람이라며 한 이유는 한 마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성경의 그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다 같은 이유로 행복을 발견하고, 고백하고, 그 행복을 누리며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윗이 그랬습니다.  23:1을 보면 이렇게 고백하며 찬양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 한 분만 내게 목자로 계시면 나는 만족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분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도 그랬습니다.  3:17을 보면 이렇게 고백하며 찬양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 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 땅의 것들이 부족하여 힘이 들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 내 곁에 계시면 그것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행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제일 큰 힘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절대 다른 것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에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소원하십시오. 우리가 가진 꿈을 이루는 힘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우리를 이길 자가 없습니다. 내 비전을 꺾어 놓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교회는 전반기를 마치고 후반기를 시작하는 자리에 섭니다. 그 첫주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은 고속도로의 잠시 쉬는 휴게소와 같습니다. 휴게소에서 떨어져가는 연료를 보충하고, 전 중에 지친 몸을 쉼으로 원기를 회복하여 다시 가야할 길을 가는 것처럼, 감사는 우리의 심령에 하늘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힘입니다. 감사는 우리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감사는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기대하게 만들어줍니다. 감사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하늘로부터 주어진 새로운 능력이 덧입혀질 것입니다. 그 감사는 우리가 행복자임을 고백하게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만 보지 마시고 고개를 들고 저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지금까지 여러분을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기억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을 향해 행하실 하나님의 미래를 소망 가운데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재발견하시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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