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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새 시대를 향하여(1) 갈릴리 사람들아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07-21 | 조회: 286

새 시대를 향하여  갈릴리 사람들아 1:1-11

중국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당신이 기적 같은 놀라운 선교를 할 수 있었던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프로그램도 아니고 전술 전략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그와 함께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뢰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붙들고 어떤 큰 일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위기에도, 절박함에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나라 이스라엘이 전쟁에 지고 있어도 법궤를 빼앗겨도 가만히 계셨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망해도 개의치 않고 기다리셨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아도 같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일어나면 그를 붙잡고 큰 부흥의 바람을 일으켜 주십니다. 온 도시를 회개시키고 나라를 바로 세우며 성령의 강력한 역사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하시고 위기를 순식간에 극복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다가도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교회는 쇠퇴하고 맙니다. 지역 사회 안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교회가 있어도 그 사회는 다시 죄와 타락이 만연해집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우리를 감동을 주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참 하나님의 사랑을 헌신짝처럼 팽계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전반기 약속의 땅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모세를 어떻게 쓰셨습니까? 출애굽 역사를 이루어낸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다. 그는 40세까지 애굽의 왕궁에서 자라면서 막강한 권력과 지위를 가진 애굽의 왕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철저하게 낮아지고 실패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게 하신 후, 80세가 되었을 때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자신에게 아무런 능력도 없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듭거듭 거절합니다. 나같은 놈이 어찌 그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40세 때에 모세를 부르셨다면 모세는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르겠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만만한 모세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 80세의 모세를 부르시고 그를 통해서 출애굽의 역사를 완성시키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참 많은 것을 가진 모세가 아니라, 가진 것이라곤 지팡이 하나뿐인 모세를 사용하신 것일까요? 애굽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상대해야 하는 사람으로는 너무나도 늙고 초라하고 연약한 모세를 굳이 부르신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span>.

 

 

. 희망을 잃은 사람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님은 당신이 꿈꾸시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선택된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당시에 갈릴리는 이방 땅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만큼 갈릴리가 소외되었고, 무시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 그러면 아주 천시 여기는 호칭이요, 비아냥거리거나 놀림거리처럼 들리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로 하면 촌놈들!’입니다. 이 촌놈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세상은 그들을 핍박했지만, 오히려 그들의 가슴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근사한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은 모이면 찬양과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흩어지며 뚜드려 맞으면서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사도행전을 통해 교회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세상의 희망을 주는 교회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생생한 역사 기록입니다.

 

 

6절에 보시면 절망촌에 사는 그들에게 하나의 희망은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6절에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지금 이스라엘 나라는 수 백 년 동안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도 없는 착취와 고통을 받으면서 신음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다급한 현실입니까? 얼마나 답답한 현실입니까? 힘만 있다면 당장 로마의 쇠사슬에서 해방시켜 주고싶은 생각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7절에 답을 하십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라.” 하셨습니다. 이런 현실을 놓고 주님은 한마디도 안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다소 불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한 불만이 6절에 표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이스라엘 나라가 해방될 날이 언제입니까? 좀 가르쳐 주세요."라 고 여쭤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번 대답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때 정확히 대답할 수 있으면 여러분의 관심은 그만큼 하나님 나라에 가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빨리 정의가 내려지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관심이 그만큼 흐트러져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나라는 흔히 천국을 이야기 합니다. 죽어서 들어가는 나라로 말합니다. 그것은 반쪽 진리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들어가는 천국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더 넓고 더 크고 더 높은 의미를 갖은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통치하는 영역을 말합니다. 이 나라는 영원히 이어질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사시면서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시간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손에 쥐기보다는 스마트폰을 먼저 듭니다. 그만큼 우리의 관심은 세상에 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경건하게 살기를 작심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면 성경 말씀 들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앉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스마트폰에서 다양한 기사를 검색하며 살아가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손바닥만한 폰 안에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람의 일의 관심이 얼마나 이 시대를 바꾸어 놓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시작된 PC, 구글로부터 시작된 포털검색, 애플로부터 시작된 스마트폰, 그리고 오픈AI Chat GPT로부터 시작된 AI... 정보화시대의 빠르고 눈부시게 변화되어온 세상의 변화를 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갈릴리 사람들의 외침처럼 회복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묻습니다. 지금 부활하시고 이제 승천하실 주님이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4절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여기 사도들입니다. 그리고 11절에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당신이 꿈꾸시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본문 11절을 보시면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고 있는 사람을 향해 두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천사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서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증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은 초라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이에게 멸시당하기도 하고, 내세울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실 것이기에 이 땅에서 복음에 증인으로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인으로서 삶을 살 때 반드시 놓쳐서는 안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셔야 합니다.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예루살렘과 온유대와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이 명령을 들은 그 당시에 사람들은 무시당하던 갈릴리 지방의 배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증인으로 살 것을 이야기하며 온 세상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무슨 현실성이 있습니까? 그리고 나중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120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는 남자, 여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다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병이 나은 경험이 있거나, 또는 예수님을 통해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로서 대부분 사회적으로 주목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에게 전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무슨 현실성이 있겠습니까? 예루살렘에서 명함도 못 내밀 사람들인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얼마나 비현실적입니까? 여러분, 전도지를 가지고 거리에 나가보십시오. 참 냉정합니다. 자존심 상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예수 믿게 할 수 있습니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 이것은 절벽이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하잘 젓 없는 존재들을 불러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현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의 명령이 현실성이 없는 이유는 이 세상이 너무도 악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고후서 4:4절에서 사탄을 일컬어 '이 세상 신', '이 세상 왕'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려 놓아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못하게 하고, 설령 들었다 해도 깨닫지 못하게하고, 깨달았다 해도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그 마음을 꽉 붙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점령하는 지역입니다.

 

 

이번 주간에 여름 성경 학교와 연이어 수련회를 합니다. 학생 목회 만만치가 않습니다. 저도 동성 교회에서 부교역자 시절 청소년 목회를 했습니다. 기독교 3d 업종이 있다면 청소년 사역입니다. 게들 미전도 종족입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모여도 그 아니들이 자원해서 수련회 성경학교 잘 안옵니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자 같습니다. 절반 정도는 왜 왔냐고 물어보면 안오면 엄마가 죽인다고 그럽니다. 절반 정도는 너 왔냐 그러면 갖다와서 5만원 받기로 했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아이들 중에 설교를 드러누어서 듣는 애들도 있습니다. 놀래면 안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현장입니다. 교사들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탄의 점령을 받고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악한 세상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기에 너무나 현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을 보아도 신통치 못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현장을 보아도 악하고 무서운데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도무지 될 것 같지도 않은 일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명령하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 난제를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 같은 별수없는 존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key가 성령입니다. 이 악한 세상을 다룰 수 있는 열쇠가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우리는 강해집니다. 얼마만큼 강해집니까? 예수님만큼 강해집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어두워도 우리 앞에 대적하지 못하는, 적수가 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성령이 key입니다. 그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 믿음으로 나갈 때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 나라가 온 땅에 펼쳐질 것입 다.

 

 

여러분, 우리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남들보다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더 힘 있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가 가진 무엇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권능을 통해서 말입니다. 나는 배운 것이 없다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에서 쓰임 받지 못한 것 아닙니다. 내가 초라하고 볼품없는 사람이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갈릴리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시고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담대하게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것은 그런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는 갈릴리 사람들과 다름이 없는 우리를 통해서 그 일을 계속해 가길 원하십니다.

몇 년 전에 나온 영화 중에 <극한직업>이란 제목의 영화가 100 0만이 넘는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마약반 형사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수사에 나서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입니다. 범인 검거 실적이 낮은 마약반 형사들이 국제 마약조직 밀수 정황을 입수했습니다. 형사들은 범인들을 감시하려고 그들의 아지트 건너편에 있는 치해 위장치킨집을 인수 오픈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위장 창업을 한 것입니다. 마침 형사 중 한 명이 요리를 잘했습니다. 본가가 30년간 갈빗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자랑 속에 자신이 집에서 배운 갈비 양념을 치킨에 입혀서 '수원왕갈비통닭'이란 메뉴를 선보이게 됐는데, 그게 대박이 났습니다.

 

 

잠복수사를 하기 위해 위장으로 창업을 했는데, 손님들이 몰려오자 처음에는 당황하고 난감해하다가 나중에는 치킨 장사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돈 버는 재미에 본업은 잊은 채 어느새 마약 수사는 뒷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영화가 만든 대표적인 유행어가 있습니다. 닭을 잡을 것인가, 범인을 잡을 것인가?" 한동안 이 대사가 계속 내 마음에서 맴돌았습니다. 형사가 범인 잡는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닭 잡아서 파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상황인데, 이것이 말이 되는가? 하지만 이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변질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세상에 속한 변질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증인으로서의 삶이 아닙니까? 오늘 그 증인으로 누구를 사용하십니까?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패배를 숙명처럼 알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을 맡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맡긴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받으셨습니까?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십니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습니다. 복음의 권능을 말입니다. 담대함의 권능, 시련과 고난과 박해를 견디어내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능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힘으로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야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어가길 원하십니다. 구원받은 사람, 갈릴리 사람과 같은 바로 나를 통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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