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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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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향하여(3) - 성령이 이끌어 가는 공동체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08-04 | 조회: 189
새 시대를 향하여 - 성령이 이끌어가는 공동체 2:1-4. 2024. 8/4


여러분의 기도와 격려로 청년들의 수련회가 잘마치고 돌아 왔습니다. 우리는 한삶의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왔습니다. 저는 매 주일마다 사도행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사도행전적 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가 있으며 또 변화된 사람들의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목숨마져도 포기할 만큼 자신들의 삶을 바치는 그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사도행전의 기록 내용 중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뭐냐고 하면 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일 것입니다. 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한 신자의 신앙의 색깔과 모습에 상당한 차이를 가져오게 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갖는 의미를 성경이 요구하고 지시하는 대로 이해하는 것이 사도행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들에게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유언을 합니다. ‘땅끝까지 증인이 될것을 말씀을 합니다. 증인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재판장 앞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위증죄가 되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증인은 자신이 목격한 바를 증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있습니다. 그런 절박감은 자신을 가만있게 하지 못합니다. 어떻게든지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런데 승천하시는 예수님은 자신의 증인자로 삼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그 당시에 무시당하던 갈릴리 지방의 배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거기에는 남자, 여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병이 나은 경험이 있거나, 또는 예수님을 통해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로서 대부분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에게 전 세계를 향해 증인자로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무슨 현실성이 있겠습니까? 예루살렘에서 명함도 못 내밀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의 이 말씀이 현실성이 없는 이유는 이 세상이 너무도 악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세상은 아직도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점령지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마귀와 사탄과 악령을 일컬어 '세상의 신'라고 요한복음에서 3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을 보아도 신통치 못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현장을 보아도 악하고 무서운데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도무지 될 것 같지도 않은 일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명령하고 승천하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에 성령강림의 역사는 상상을 초월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비린내나 풍기던 어부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저들은 중국의 진시왕도, 로마의 시져도,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도, 저 몽골의 징기스칸도 하지 못했던 역사의 대변혁을 몰고 왔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시작된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새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도행전1장부터 28장까지의 기간을 보통 약 30년으로 잡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에서 제일 처음 등장한 교회의 교인 수는 몇 명입니까? 120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약 30년이 지난 후, 사도행전의 기간동안 예수 믿고 돌아온 모든 성도들의 숫자를 학자들은 10만 명으로 어림잡습니다. 30년 사이에 120명의 갈릴리 촌놈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는데,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사마리아를 넘어 헬라권에 이르기까지 수만명의 사람들이 예수 믿고 돌아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누구의 역사입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입증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그 능력이 얼마나 강한가를 입증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이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사도들과 초대교회 사람들이 마신 우물물을 똑같이 마셔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의 원천인 성령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성령은 이미 교회에 임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모두에게 임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거하십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말씀한 것은, 우리말 성경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의미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순절 날이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문을 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본문입니다. ,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만들자고 한 것이 아닙니다. 시장조사를 하고 어디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빨리 부흥할 수 있는 지 연구해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사도행전 22-3절 보세요.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홀연히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가운데 하나입니다. 19:16-18절을 보면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도 큰 소리와 불 가운데 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120명의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연구를 해서 교회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 같이 모여 기도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교회가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교회가 하나님이 시작하지 않고 인간이 만든 제도라면 어떻게 2000년이 넘게 교회가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가보면 또 어떻습니까? 탁월한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무슨 문제는 그렇게 많은지 모일 때 마다 교회에 이런 문제가 있고 저런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가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친히 만드시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늘로부터 임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는 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땅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땅의 사람들인 갈릴리 사람들은 이 땅에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입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땅의 사람들은 땅엣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땅엣것만 생각하던 사람들이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임하신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경험하고 난 후 그들은 더 이상 땅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임하신 성령이 그들의 마음 중심에 ,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그들은 더 이상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며 삽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살아갑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건강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나의 어떤 모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갑니다.
 
. 각 사람에게 임하사
이 성령강림사건이 중요한 것은 이 사건으로부터 새로운 성령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성령은 이 땅에 임하셨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부터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선 이 사건 이전에는 성령이 특정인들에게만 임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나 다윗과 같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특별한 지도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나 엘리야와 같은 영적 지도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이 사건 이전에는 성령이 임하셨다가 떠나기도 하셨습니다. 사울의 경우 성령이 임했다 저가 죄를 지은 후에 성령이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는 성령이 한 번 임하신 뒤에 떠나지 않으시고 계속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전에는 성령이 선택된 사람들 위에 오셔서 머무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는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임하셔서 그 안에 내주해 계십니다. 이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사람 잘 안 변해요.
 
 요즘 비즈니스 세계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킨 마커스 버킹엄이란 사람이 저명한 경영지침서인 [First, Break All the Rules]이란 책을 썼습니다이 책에 성공한 CEO들의 직원관리 4원칙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는다./
2. 그 사람에게 없는 것을 있게 하려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3.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면 된다./
4. 그것조차도 쉽지 않다
그렇습니다기업을 경영하는 많은 경영인들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 기업이나 기관의 인사 관리하는 책임자들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원칙으로 삼기도 합니다사실 이 세상을 살만큼 살아본 사람들은 대체로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정말 오랜 만에 옛 직장동료나 학교 동창들을 만나보면 겉모습은 참 많이 변했는데 사람의 본성인격습관 같은 그 사람의 속 모습은 그대로인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그리고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구나!’하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한 마디로 말하면 성경도 대체로 이런 생각에 동의합니다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 본다면 ‘사람은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하나님을 등진 사람들은 계속 하나님을 등진 채로죄인은 또 계속 죄인으로그리고 악인은 또 계속 악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성경은 한 가지 예외가 있다고 말씀합니다사람이 변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이 임하실 때 그 사람이 변한다는 것입니다5:5절 말씀에 보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여기 ‘부은 바 되었다 이 말은 원문적으로 보면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져서 흘러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어질 때 그것은 아무도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안 맞으려 발버둥쳐도 안 맞을 수 없고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넘치도록 사랑을 쏟아부어 주셨습니다그리고 그 사랑으로써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또 자녀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그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가 된 것입니다여기 보세요. 무기력하리만큼 패배를 숙명처럼 알고 살았던 사람들이 상령의 임재 앞에 엄청난 변화가 온 것입니다.
 
. 담대해 졌습니다.
하찮은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던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거침없이 나왔습니다.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말하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강력하게 일어나니까 종교지도자들이 복음 전하는 것을 금지하며 위협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반응합니다. 4:19-20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증인으로서 확신에 찬 모습으로,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갈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세상이 괄시하고 무시하는 조롱 속에서도 당당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을 방언으로 말한 제자들을 향해 사람들이 조롱했습니다. 술 취한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영적 세계, 하늘의 비밀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게 성령의 권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 속에 살길 원하십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주십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참된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꽉 붙잡히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날 위해 기꺼이 당신의 몸을 버리고 십자가에 높이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사랑에 꽉 잡히는 것입니다. 성령받은 초대 교인들이 그 고난과 상처 속에서도 왜 행복했습니까? 사랑하는 그분께 꽉 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또한 그분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에 매여 사는 삶입니다. 그렇게 매여 살 때, 꽉 붙잡혀 살 때 어떤 자리에 있어도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갈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세상이 괄시하고 무시하는 조롱 속에서도 당당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을 방언으로 말한 제자들을 향해 사람들이 조롱했습니다. 술 취한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영적 세계, 하늘의 비밀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게 성령의 권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 속에 살길 원하십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주십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보세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아직도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세계는 테러와 전쟁, 그리고 기아와 굶주림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사탄이 그저 제철을 만난 듯 미친 듯이 날뛰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우상들이 판을 치고 있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영적 어두움이 우리를 덮으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충만하여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한국교회는 지금의 시대 앞에 직면한 이 문제를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동성의 그리스도인들은 회복을 너머 부흥으로 나가는 소원을 가지고 사도행전을 계속 읽고 붙잡고 이 놀라운 역사가 나의 것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증인자로 삶을 살게 해달라는 소원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뜨거운 사명을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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