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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새 시대를 향하여 (6) 건강한 공동체 생활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09-02 | 조회: 183

 

 

우리 교회는 한 생명을 주님께로라는 표어를 가지고 터치 153 새 생명 축제 비전 선포식을 갖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 새 생명 축제를 한지도 벌써28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한 생명을 주님께로 라는 이 터치153새생명 축제를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컸습니다. 전도 한번 안하던 분이 용기를 내어 친구를 데려 오기도하고 어떤 분은 평생 처음 새벽 기도와 철야에 참석도 했습니다. 처음에 열심하던 분들도 뚜렷한 열매가 없자 우리 안에 형식과 타성이 일어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역은 우리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씨앗은 겉보기에는 작고 하찮아 보입니다. 게다가 이 씨앗이 뿌려져서 땅 속에 묻히면, 그나마도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부터 반전이 일어납니다. 싹이 터서 땅 위로 솟아오릅니다. 그리고 자라납니다. 그러면서 큰 나무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씨앗의 역설입니다. 우리는 이 씨앗의 역설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낍니다. 죽은 것 같으나 다시 살아서 더 크게 일어나는 반전의 기적을 봅니다. 그리고 비록 연약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용기를 내야겠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설의 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말 중요한 말씀을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예루살렘교회는 처음 생긴 교회요, 때묻지 않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첫 믿음, 첫사랑을 가지고 성령 충만해서 시작한 교회요, 몇천 명이나 되는 성도들의 공동체였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가 그렇게 아름다운 교회였다면, 그런 교회를 만들어낸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42절에 보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생활이 나오고 있습니다.

 

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 구절을 원문에서 곧바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일과,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는 일, 그리고 기도하는 일을 꾸준히 계속하니라.’ 요즘 말로 하면, 열심히 성경공부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교제했다는 뜻 아닙니까? 이 말은 한마디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성숙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현장이 이제 가르침을 통해 아름답게 세워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고후5:17절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제는 죄악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건져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에게는 새로운 욕구들이 생깁니다.

 

. 가르침을 따라

4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 정말 엄청난 역사를 만나보게 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눈먼 자가 눈을 뜹니다. 심지어 죽었던 자가 살아납니다.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사도행전에는 일상의 삶처럼 이런 기적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만 보면 안 됩니다. 이런 일들은 당시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임심을 믿게 하는 표적으로 나타난 것이지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작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저의 친구 동역자인 은혜의 교회를 담임하던 박정식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천에 창녀들과 극빈자들이 모여 있는 학익동에다 아내와 함께 천막 교회를 치고 이곳 주민과 함께 복음을 위해 살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개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치유 사역이 우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매일 은사집회 하고 매일 성령 의 역동성을 구했지만 병자도 낫고 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보았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역사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변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시기와 반목, 그리고 분열의 뼈아픈 경험을 해야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민이 되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부터 사 복음서를 붙잡고 묵상하기 시작했는데 거기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말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가르침라는 단어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가르쳤다."는 단어였습니다. 헬라어로 "디다케"라는 말인데 말씀을 가르쳤다 가르쳤다. 가르쳤다. 가르쳤다. 그런데 똑같은 성경을 봐도 사람이 관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자기가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나중에 가르쳤다에만 동그라미를 계속 치면서 읽었답니다. '가르쳤다' '기적과 이적'보다 아홉 배가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9:1의 빈도입니다. 런데 기적과 이적조차도 기적과 이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여기서 깨달은 것은 왜 사람이 안 변하나? 왜 안 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 것입니다. 거꾸로 사역을 한 것입니다. 매일 은사집회 하고 매일 성령의 역동성을 구했지만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거기서 새롭게 목회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목회를 포기하려다가 아니구나 다시한번 해봐야겠다는 불꽃이 가슴에 와 닿자 그는 달동네에서 미친 듯이 가르치는 제자훈련을 한 것입니다. 이 교회가 한국에서 제자훈련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교회로 많은 교회의 사례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초대 교회의 제자훈련은 단지 고급지식을 나누어주는 그런 사역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임재 앞에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나와 어떤 관계가 되는지를 피를 토하듯 가르쳤습니다. 6:6절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지도자와 성도들이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 마귀는 한국 교회와 세계교회에서 엄청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자도자와 교인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어떻게 하든지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순종하지 않도록 해서, 교인들을 병들게 하고, 나중에는 자기 마음대로 짓밟아 버리려고 마지막 사력을 다하는 것이 오늘날 마귀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위시해서 세계교회를 가보면 순종하지 않는 교인들 때문에 교회가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니까 다 영양실조에 걸려요. 불순종하니까 병이 들어요. 불순종하니까 성령의 도구가 아니라 마귀의 도구가 되버려요. 그래가지고 교회에서 쓴 뿌리 노릇을 하면서 교회를 못쓰게 만들고 있습니다. 보세요. 이런 사람들이 주님 앞에 설 때 어떻게 견딜지 아주아주 소름이 끼쳐요.

 

. 예배에 대한 갈망이 일어났습니다.

46절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밤낮으로 거룩하신 보좌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싶은 마음이 순간, 순간 끓어올랐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도들의 모습은 예배하는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만큼 예배가 중요합니다.

 

15:3-4절을 보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천군 천사들이 주를 찬송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위대한 영적 거인이라 할 수 있는 요한 웨슬레는 이런 찬송을 작사했습니다.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입이 만 개라면 만 개의 입을 다 벌려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주님의 은총을 찬송하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얼마나 그 마음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싶어 열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는 지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예배의 심정이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일을 지키고, 주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이 주일 예배를 통해서 기독교가 이어져왔고, 이 세상을 바꾸어 왔습니다. 우리는 이 예배 시간 동안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해 실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얼마나 큰 은혜를 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영혼이 기뻐 춤을 춥니다. 우리 영혼의 세포가 기뻐 춤을 춥니다. 우리가 제대로만 예배를 드리며 이러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 해 계시는데 어떻게 은혜를 받 지 못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는데, 그 영광 앞에 어떻게 춤을 추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가 분명히 이 자리에 있음을 우리 모두가 믿어야 됩니다.

 

 나눔의 공동체로 변화를 가져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의 소유가 인생의 최고의 축복이라고 알았지만, 그들 속에 성령의 임재를 통해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는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보세요. 이들이 누구입니까? 저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 폭도였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들이었지만, 이젠 이렇게 완전히 변한...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4:34-3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러분, 여러분은 자기의 소유를 포기한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잖습니까? 요즘처럼 돈에 대해 민감할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요즘 보십시오. 우리의 사회 구조가 한 푼이라도 더 소유해야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서점 등에 가보면 재태크 방법이니, 주식투자의 지름길이니, 100% 수익보장이니 하면서 돈 버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돈 쓰는 방법에 대한 책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돈을 벌 줄은 아는데, 쓸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돈을 모을 줄은 아는데, 돈을 풀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요즘 2-30대의 주요 관심사가 조사되어 신문 통계에 났습니다. 주요 관심사 중에서도 첫째가 노후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20, 30대가 벌써 연금도 들고 상가를 알아본다든지 하는 대책을 세우느라 정신없다고 합니다. 요즘 주부들은 재테크에 한창 열을 올릴 정도로, 그리고 은행 지점장을 바꿀 정도로 돈의 흐름을 붙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자녀교육을 잘 시킬 수 있는가에 혈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 주님은 이것 자체를 어리석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이것만이 전부인냥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만족을 모릅니다. 이 소유욕의 절정은 탐욕으로 나타납니다.

 

6:38절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이것이 성경적 경제의 원리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 교회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이 말했습니다. 진정한 부자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주는 사람이다”. 우선순위가 필요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되 돈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채의숭 장로님이 계십니다. 자동차 부품 사업, IT산업등으로 세계적인 그룹이 된 대의그룹 회장입니다. 이 분이 쓴 <주께 하듯 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그가 충남 대천의 가난한 집에 태어나 세 가지 꿈을 꾸었답니다. 하나는 박사가 되어 교수가 되는 것, 둘은 큰 회사의 회장이 되는 것, 그리고 셋째는 전 세계에 100개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는 결국 해냈습니다. 그가 꿈을 이룬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어릴 때 들은 어머니의 우선순위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어릴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숭아. 반드시 너는 평생 세 가지를 기억해라. 첫째 반드시 주일성수하고 교회가면 반드시 앞자리에 앉아라. 둘째 너는 반드시 물질은 하나님의 것으로 여겨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라. 셋째 너는 반드시 목사님을 주의 종으로 여겨 순종하고 복종하라”. 채의숭 장로님이 이 말을 가슴에 새겨 실천했을 때 하나님도 그에게 세 가지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이와 같이 섬김과 나눔이 있는 초대 교회 공동체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기 47절을 보세요.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 하게 하시니라.” 할렐루야!! 이들의 삶을 보고 당시 예루살렘의 모든 자들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저들이 믿는 하나님을 보고 또 그 앞에 달라진 사람들을 보고 그들 역시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거리는 더 이상 피를 부르고, 저주하는 죽음의 거리가 아니라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축복의 현장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동참하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하더라!!“ 세상은 그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는 예수 앞에 나아와 무릎 꿇고 주님을 영접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 휩싸여 사는 것을 포기하고 은혜의 공동체 안에 살아가는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부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초대 교회의 부흥이 파도처럼 밀려와 우리의 영혼에 적셔지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에 누군가가 잃어버린 구원의 감격, 행복한 신앙생활, 삶의 기쁨과 환희를 어디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저와 여러분에게는 ! 동성교회에 가면 구원의 감격과, 인생의 환희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

 

이 은혜가 여러분 위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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