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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새시대를 향하여(12)-갈등 극복의 원리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10-13 | 조회: 195

새 시대를 향하여  갈등 극복의 원리  6:1-7. 2024/ 10/13

 

하루는 미국의 영적 대각성을 일으켰던 DL 무디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상담을 합니다. "무디 선생님, 문제없는 교회를 저에게 좀 가르쳐 주세요. 제가 세 번이나 교회를 옮겼는데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무디가 의외로 답을 말합니다, "제가 당신이 찾는 문제없는 교회를 알긴 아는데 추천을 못해주겠다."라고 했어요. 청년이 볼멘소리로 "왜 못해 줍니까?" 하자 무디는 "제가 당신을 그 교회에 소개해 주는 그날로 그 교회는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여러분, 문제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문제없는 가정과 교회도 없습니다. 본문의 예루살렘 교회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기가 막힌일 아닙니까? 예루살렘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성령이 충만했던 교회요, 날마다 부흥한 교회요, 사랑이 넘쳤던 교회입니다. 얼마나 사랑이 넘쳤는가? 성도 가운데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성도에게 나누어주었어요. 얼마나 부흥되었는가? 한 주일에 3천명이 등록하는 놀라운 교회였어요.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던 그 교회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사도행전은 지적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어려운 문제가 예루살렘교회에 등장합니다. 그 문제는 바로 분열과 원망의 문제였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여기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이 말은 사도들이 엄청난 고난과 능욕을 받은 그때란 말입니다.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하며 채찍을 맞던 그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렇게 박해와 위협 속에서도 교회는 복음을 전했고,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씀합니다. 외적으로 어떤 위협이나 박해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교회를 결코 넘어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뜻밖의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건 바로 교회 내부의 갈등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인들을 크게 구분한다면 본문 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그곳을 떠나지 않고 살면서 유대인들의 풍습을 따르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헬라문화로 인해 잃어버린 유대인의 신앙전통에 대한 향수와, 그나마 자신들이 유대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 헬라파 유대인들은 조상들의 시대에 고국인 이스라엘을 떠나 헬라문화가 지배하던 타국의 도시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조국에 오면 따듯하게 맞이해 줄줄 알았는데 자신들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무시를 당하는 것 같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1절입니다. 공동번역에 보면 이 무렵 신도들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게 되자 그리이스 말을 쓰는 유다인들이 본토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의 과부들이 그날 그날의 식량을 배급받을 때마다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구제가 공평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이국만리에서 온 헬라파 과부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습니다. 이로 인해 헬라파 유대인들이 불평과 원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파 과부에게는 식량이 잘 배급이 되는데, 외국에서 온 헬라파 사람들에게는 식량 배급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원망과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6장의 문제가 작은 문제 같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지금 굉장히 큰 문제에 봉착하였습니다. '원망의 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멸망시켰던 직접적인 원인, 그 원망이 점점 밑에서부터 자라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가 문제를 대처하는 원칙을 통해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가정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서 주의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문제 앞에 직면해야 합니다.

교회 봉사를 하다보면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하던 봉사를 그만두는 겁니다. 문제가 찾아올 때 가장 쉬운 것은 사표 던지고 떠나가는 겁니다. 왜 시간내고 희생하는데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는 생각에 '집사 안 할란다! 여전도회 그만 할란다!' 이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요, 우리가 보통 쓰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은 갈라서는 겁니다. 형제간, 성도간에도 교제하다 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럴 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서로 교제를 안 하는 겁니다. 형제 관계를 청산해버리고 사는 동안 얼굴을 맞대지 않습니다. 같은 교회 다니면서도 동문과 서문으로 다닙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얼굴을 부딪히지 않고 말을 안 하는 겁니다.

 

구원 이후의 우리의 삶에 열매가 바로 사명 감당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쓰임받는다는 것, 내가 쓰여지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딤전1: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여기의 충성되이는 원어로 피스톤 인데 신실한, 믿을 만한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믿을 만한 존재로 여겨주셨기에 긍휼을 베푸셨다는 고백입니다.특히 바울은 폭행자였던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겨주셨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모습이 어떠했을지라도 또 현재의 모습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무어라 해도 하나님께서 충성되이 보시고 복음을 맡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언제나 감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더욱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해결에는 수고가 따르고, 고생이 따르고,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에 수없이 다가오는 문제의 언덕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하는 해결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문제로 말미암아 일을 중단하는 일이 여러분 일상사 가운데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라 일을 서로 분담하라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안합니다. 2-4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여기에서 사도들은 우선순위를 바로 설정하였습니다.

 

첫째 문제 앞에 선 사도들은 먼저 4절에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먼저 기도하는 사역에 우선순위를 둔 것입니다. 흔히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얘기합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좋은 음식과 적당한 운동과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입니다. 며칠 음식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호흡은 5분만 안 해도 죽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삶에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초대교회는 세상이 모르는 놀라운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이 기도로 연약하고 무기력한 교회가 막강한 세상권력과 맞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사도들은 사도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기도와 말씀을 제쳐 놓고 재정출납을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다." 교회가 과업 위주로 흐른 것을 반성했습니다.

 

또 말씀입니다. 119:105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가는 길에 빛이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우리 인생항로의 계기판과 같습니다. 우리의 현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안내해 줍니다. 그러나 말씀을 외면하면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마치 조종사가 계기판을 보지 않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과 같은 일이 생깁니다.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시행착오를 범하게 됩니다. 후회하고 회개해야 하는 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순종해야합니다. 한 마디로 말씀이 이끄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사도들은 우선순위를 두고 오로지 말씀을 연구하고 선포하는 일에 힘을 쓰는 우선 순위를 하게 됩니다.

 

둘째는 사도들은 사람을 세웁니다. 어떤 기준을 제시합니까? 내적으로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외적으로는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무엇보다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것과 지혜가 충만한 것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너무 분별없이 행해서도 안 되고, 지혜가 있다고 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아야 합니다.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말이나 행동에 있어 본이 됨으로 남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바른 섬김도, 영적인 지도력도 나오는 것입니다. !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7곱을 세웁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저는 성경을 읽다가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 일곱 사람의 이름이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다 헬라식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사람을 세우는데 히브리 사람을 세우지 않고 상처받은 헬라사람들을 뽑습니다. 여기에 배려하는 섬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얼마든지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이 구제의 일을 누구에게 맡겼습니까? 히브리 사람에게 맡긴 것이 아니고, 헬라파 사람에게 다 맡겼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배려요, 양보입니까?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배려와 양보를 했습니다. 이 사도들은 다 히브리파 사람들입니다. 열두 명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히브리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제하는 일에 불평이 생기니까 관할하는 사람 전원 일곱 명을 헬라파에서 뽑은 것입니다. 탁월한 지혜입니다. 배려와 섬김을 통해 갈등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8장에 보시면 육신을 좇아 행하는 사람,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인인데도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성도인데도 두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을 좇아 살고, 어떤 사람은 성령을 좇아 산다. 육신을 좇아 살면 죽습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야 생명과 평안입니다.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에 속한 자는 성숙치 못한 자들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보세요. 어린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거기서 뭐가 생기겠어요? 싸움이 일어나고, 시기가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고, 분파가 일어나고, 서로 자기 잘났다는 자랑하고, , 이런 현상들이 생기죠. 해답은 뭡니까? 자라나면 되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어린아이를 벗어버리고 빨리 자라나면 되요. 바울은 내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벗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가서 사랑장이 나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 진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예요.

 

그리고 이 성숙함이 빌2:4절에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자기일 아주 열심히 해야 되요. 그러나 내가 시간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일을 어떻게 해요. 도와줘야 되요.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줘야 되요. 왜냐하면 우리는 공동체 이니까. 결국은 네 일과 내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교회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의 사역이기 때문에 그것이 마땅한 자세예요. 그래서 함께 일하는 자가 되야됩니다. 그게 동역자예요, 동역자, 더불어 함께 일하게 됩니다. 이 갈등을 이기고 나니까

 

. 새 시대를 향한 변화를 주도하라 7

7절에 놀라운 세 가지 결과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졌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능력이 더해졌어요. 두번째로 제자의 수가 많아졌어요. 부흥되어졌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그렇게 율법적이던 제사장들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지금 영적 지진이 예루살렘에 일어난 것입니다. 새 시대에 새로운 교회의 변화는 세상에 안 믿는 자들까지, 예수를 부인하던 자들까지 회개하고 주 품에 돌아옵니다.

 

보세요. 초대 교회가 달라지니까 세상은 결국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들의 삶속에서 예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은혜 앞에 서게 됩니다. 이제 터치 153 새생명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서야 합니다. 한 생명을 주님 앞에 인도할 때, 그 사람이 예수를 만나 변화의 인생이 된다면 세상은 흼망이 있습니다. 이 은혜가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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