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목마른 인생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10-20 | 조회: 262

목마른 인생 4:13-15. 2024. 10/20

 

지금부터 30년 전에 스미스라고 한는 사람이 미국 아리조나에 있는 수석 전시실에 들렸습니다. 아름다운 돌을 전시해 놓고 판매도 하는 곳입니다. 그가 눈에 확 띠는 돌을 보고 그 앞에 멈추었습니다. 번쩐번쩍 빛나는 돌이었는데 아름다웠습니다. 가격이 15불이 붙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겠다고 하니까 주인이 그 돌을 마음 좋게 5불을 깍아서 10불에 판매를 했습니다. 나중에 이 돌이 다이아몬드 원석임에 밝혀졌습니다. 불과 6개월 후에 그는 이 돌을 경매에 붙였는데 당시 228만불 우리 돈으로 한 25억 지금으로 환산하면 40-50억원으로 엄청난 돈입니다. - 놀라지도 않내요. 1,2만원 주고 산 돈이 그렇게 팔렸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한 사람이 다락을 청소하다가 오래된 박스 한 상자를 그냥 길에다가 버렸습니다. 길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그 박스에 있는 책을 뒤지다가 가운데 하나를 가지고 갔습니다. 나중에 그책이 최초로 번역된 구텐베르크 성경이었습니다. 그 책 역시 얼마 뒤에 경매에 팔렸는데 23억 오늘날로 말하면 한 40억에 팔렸습니다. 길에 버린 것을 거져 줏은 겁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가치에 대해서 생각나게 만듭니다. 가치를 아는 것과 가치를 모르는 것이 때로 우리의 인생을 갈라 놓을 때가 있습니다. 좀 더 좁혀 말씀드리면 똑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가치를 알고 살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이 살아가는 일에 대한 가치를 전혀 모르고 살아갑니다. 저는 오늘 왜 우리가 한 생명을 이렇게 태신자로 세워서 주 앞으로 인도하려는가 하는 것입니다.

 

4절을 읽어 보면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당시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땅을 반드시 통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해야겠다는 예수님의 의지입니다. 예수님도 이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그 뙤약볕을 받아가며 우물가까지 오셨습니다. 왜 그렇게 피곤함을 무릎쓰고 이 우물가까지 오신 것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이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물가에 먼저 도착하여 이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 이 여인은 무엇보다 소외된 고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이 여인은 제6시에 물을 길러 우물가에 나아왔습니다. 이스라엘 시각으로 6시면 우리 시간으로 낮 12시 정오입니다. 사막지대에선 가장 더운 시각 아무도 우물가에 나오지 않는 시간을 선택한 것입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었습니다. 그녀는 고립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혼자 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방황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 SNS나 미디어로 외로움을 달래고, 반려견을 키우며 허전한 마음을 채웁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날 때 배웅을 받지 못하고 고독사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 그는 누구보다 인생의 상처가 깊은 인생입니다.
7절에 보시면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란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는 요청에 줄 수 있다/ 없다하면 될 것인데 이 여인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9절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하나이까 이 말은 매우 감정적인 표현입니다. 이 물을 길러 나온 이 여인을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기 유대인들에게 멸시 천대를 당해온 사마리아인의 역사적 상처가 이 여인의 말에 묻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 남자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자 사마리아 여인은 이렇게 대꾸합니다. 9절에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단지 물 주는 것을 거부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사마리아 사람 만나는 것을 부정하게 여기는 유대인인 당신이 어찌 사마리아 땅에 오셨습니까?’라는 사마리아인으로서의 내면적 상처가 불쑥 튀어 나온 것입니다. 할 수 있으면 예수조차도 피하고 싶었습니다. 나를 제발 괴롭히지만 말고 그냥 버려달라는 것입니다. 상처 때문에 그렇습니다.

 

. 이 여인은 목마른 인생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과 물길러온 이 여인과의 대화에서 제일 흥미로운 대화의 역전은 물 좀 달라던 예수님이 갑자기 이 여인에게 네가 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내게 오히려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네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네게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 앞에 여인의 절규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15절에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 대화를 보면서 고독과 상처투성이인 이 여인의 가여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갈증을 치료해 주시기 위해서 그녀가 가진 가장 큰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16절에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사마리아 여인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대답합니다. 4:17절에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이 말은 인생에 실패한 자들의 모든 답과도 같습니다. 나는 실패했습니다.” “나는 상처 가운데 있습니다.” “나는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나에겐 참 만족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지금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했는데 뭐라고 이야기를 합니까? 18절에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남편으로 인해서 상처입고 공허된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번을 결혼하고 이혼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했으니 그 마음에 상처, 갈등, 고통, 그 괴로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상처가 좀 싸매어지려 하면 또 곪아터지고, 또 곪아터지고, 또 곪아터지고... 완전히 이제는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깊은 절망 가운데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결혼식도 필요 없고 아무하고나 그냥 살자.’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 일본에 다녀왔습니다만, 일본이 예전만 못한 모습들이 보입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 GNI가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경제 학자들은 일본을 따라잡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이젠 우리가 모든 면에서 앞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이러니 하게도 우리나라가 자살률과 우울증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2011년 자살예방법 제정 후 성장세는 꺾였지만 여전히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또한 우울증 유병률도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전체 인구의 약 2%, 이던 것이 2020년대 전체 인구의 약 10% 500만이 넘어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잘 살게 됐으면 자살률이 줄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잘 살게 됐으면 우울증이 줄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잘 살게 됐는데 자살은 더 늘어나고 있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2:1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장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문제의 핵심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물을 구하려고 웅덩이를 팠지만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어서 물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가지게 되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으로는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풍요가 터진 웅덩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잠시는 만족을 얻을 수 있어도 얼마 가지 않아서 터진 웅덩이에 물이 빠지듯 만족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은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멀리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만 영적 갈증은 더 깊어져만 갑니다. 영적 갈증을 채워보려고 돈으로 갖가지 시도를 해 보지만,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더하는 것처럼 영적 갈증은 더 심해져만 갑니다.

 

오늘 이 여인을 보세요. 그의 인생에 물한 모금에 갈증이 있지나, 그것은 먹을 때 뿐입니다. 마실때뿐입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죄로 얽매인 인생이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채 여기 저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찾아다니지만, 자신의 갈증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만 더 해집니다. 오늘 저는 여기 모인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는 이 가치를 아십니까? 이것이 선행 되지 못하면 전도에 대한 갈망이 없습니다. 먼저 우리 역시 영적 갈증이 일어나야 합니다.

 

 42:1절에 보면 다윗이 얼마나 갈급한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우리는 대체로 사슴을 동물원에서나 보았기 때문에 사슴이 자연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슴에 대한 이미지는 어려서 본 동화나 만화 영화에서 보았던 것들입니다. 아름답고 숲속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꽃사슴과 같은 그런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사슴들은 이런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거친 광야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모습도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숲속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사슴은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원래 사슴은 열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하루에 두 번은 물을 마셔야 생존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러나 이스라엘에는 매년 절반이 건기입니다. 이때면 물이 흐르는 시내가 없습니다. 늘 마실 물을 찾아 헤맵니다.문제는 물이 있는 곳에는 포식자들이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존이 힘이 들어 지금은 거의 멸종상태라고 합니다. 이 저자는 그렇게 가물 때 사슴 한 마리가 목이 너무나 말라서 물을 찾느라고 옆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고 온 사방을 누비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루 종일 이 언덕 저 언덕 골짜기마다 다니면서 물을 찾는 모습을 본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것을 연상하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낙망이 될 때 하나님을 찾는다면 어떤 식으로 찾을까? 바로 저 사슴처럼 찾아야 되겠다.’ 바로 터치 153 새생명 축제는 이런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이 수가 여인을 보세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 내려갑니다. 자신이 만난 예수를 증거합니다. 29절에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예수님을 만난 다음 그녀는 변화되었습니다. 자기를 비난하고 죄인 취급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물동이를 내려놓고 사람들을 향해 달려 나가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가성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목마름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겪고 있는 갈증을 아시고, 그분의 생수로 우리의 영혼을 채우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우물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길어올리려 해도, 그 물은 우리를 다시 목마르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우리 안에서 솟아오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느끼는 갈증을 예수님께 내어드리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아시고, 그곳에 생명의 물을 부어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우리의 삶이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그분을 전하는 기쁨과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상처를 치유 받고 사람들 앞에 가 내 문제를 치유해주신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소리치자 사마리아 동네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도대체 그분이 어떤 분이기에 이 여인을 이렇게 변화시켰단 말인가?’ 정말로 위대한 분이 아니고서는 이 여인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그 뜨거운 대낮에 야곱의 우물까지 찾아왔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다음 주 초청 잔치를 합니다. 여러분,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까? 복음이 기쁜 소식임을 믿습니까? 왜 주저하십니까? 왜 용기가 없습니까? 확신이 없습니다.

 

우리교회는 이번 한 주간 모두가 새벽에 모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서야 합니다. “주님의 초대라는 주제로 새벽을 깨웁시다. 내 영혼의 메마름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복된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