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초대 마11:28-30. 초청 잔치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특별히 모두가 다 반갑지만, 오늘 처음 교회 vip로 초대 받은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이 자리까지 오기를 얼마나 망설임을 가졌겠습니까? 그래도 그것을 뿌리치고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이 짧은 한 시간에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복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옆 사람과 인사할까요? 안녕하십니까? (함께) 우리 한국의 대표적인 인사말이죠!!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세상의 모든 나라에 이와 비슷하거나 똑같은 인사가 다 있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안녕하냐고, 만나면 인사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안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우리 인생을 표현한 성경 구절이 많은데 그 중 오늘 예수님이 인생에게 표현한 말씀은 참 우리의 마음에 와닿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동의가 되시지요? 여기서 ‘수고하다’라는 말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온갖 모든 힘든 일들을 가르칩니다. 짐진자 할때 이 짐은 가벼운 짐이 아닙니다. 등산할 때 등에 메는 백팩이 아닙니다. 이것은 너무나 힘들어 또는 내 힘으로 견딜 수 없도록 마딱 드리는 인생의 짐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인생의 짐을 아주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바로 웃음입니다. 웃음을 통해 인생의 짐을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많은 특징이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은 잘 웃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태어나고 여러분의 손자 손녀가 태어나면 그 갓난아이 앞에는 유머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유모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웃죠? 까꿍!! 질리지도 않는가 봅니다. 까꿍하면 숨이 넘어가듯이 웃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잘 웃던 아이들이 점점 점점 자라면서 뭘 잃어버리는지 아세요? 웃음을 잃어버립니다.
여러분, 지나가는 어른에게 깍꿍 해보세요? 웃을까요? 웃기는커녕 빰맞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왜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웃음이 사라질까요? 심리학자들은 그 이유가 다름이 아닌 나이가 들면 우리가 인생의 짐의 무게를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 살수록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생의 짐의 무게를 끄게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짐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삶을 가까이서 살펴볼 때가 많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누가 나에게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야 묻는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가장 힘든 일은 감당하기 힘든 인생의 짐을 지고 무너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힘들어요.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어떤 사람은 관계의 아픔으로 어떤 사람들은 갑자기 불어 닦친 사고로 어떤 사람들은 어느날 의사를 만나고 내린 진단 앞에 무너져 내립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무너져 내립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내 보내고 주저앉은 사람들, 얼마든지 내가 대신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그 자녀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사람들... 여러분, 누구라서 이 인생의 짐을 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니 누구라서 이 인생의 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그것이 우리입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모두는 이 인생의 짐 앞에 사실은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 인생은 그리 수고로운가요? 왜 이렇게 살기가 빡빡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 우리에게 인생의 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여러분, 누구라서 이 인생의 짐을 져 보지 않았겠습니까?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 어깨에는 수많은 인생의 짐이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Ⅰ. 다 내게로 오라
우리의 인생의 짐을 예수님께서 다 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연약한 인생들에게 절망하는 인생들을 향해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보세요. 두 팔을 벌리시고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에게는 안식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감히 이런 절대적인 초청과 약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초청이요 절대적인 약속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돈 많은 사람은 오라. 많이 배운 사람은 오라. 건강한 사람은 오라 하셨다면 어떤 사람은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다 내게로 오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초청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전 우주에 유일한 신이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그리고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을 만드셨다구요. 창1: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여기서 말하는 형상은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직역하면 영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영혼을 가진 존재는 바로 여러분과 저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는 저 달을 보며 가슴을 먹먹하게 하나요? 왜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쓸쓸함을 느낍니까? 그 이유를 아시나요?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너도 나도 개를 키우죠? 어린이 대공원에 가보면 유모차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그 유모차 안을 들여다 보면 개가 들어 있습니다. 왜 개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닙니까? 저는 깜짝 깜짝 놀랍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아무리 똑똑한 개가 있어서 낙엽을 보더라도 쓸쓸함을 느끼는 개가 있을까요? 개가 달을 보며 ‘내 인생이 왜 이러나요?’ 한탄하는 개가 있나요? 없습니다. 우리만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고 당신의 형상을 닮은 우리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람들이 모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고 당신의 형상을 닮은 우리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혼은 짐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영혼의 짐은 무엇인가 성경은 말합니다. 아주 쉽게 성경은 말합니다. 죄의 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인생의 짐을 지듯이 우리의 영혼에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왜 이렇게 삶이 힘든가요. 바로 영혼의 죄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죄를 몰라요.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기를 원하는데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 인간을 보시고 구원받아야 될 존재로 선언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거침없이 이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우리 모두 다 죽습니다. 육신이 죽고 난 다음에 죄의 결과로 따라 오는 것이 있습니다. 심판입니다. 여러분 심판의 무서움을 압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압니까? 여러분 법원에서 판사가 호출을 해도 가슴이 덜렁덜렁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신다면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아십니까?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심판을 면하려면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으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최고의 뉴스가 있습니다.
Ⅱ.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저는 어린 시절 가난한 달동네라고 하는 미아리에서 살았습니다. 이곳엔 이곳 저곳 똥을 묻어둔 웅덩이들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이들이 놀이 할만한 운동기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뛰어 다니는 것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뛰다가 이 똥통에 빠지면 골 아픈 것입니다. 그 때만 해도 미아리 공동 묘지가 있고, 화장터가 있는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야산에 똥 밭이 많았습니다. 한번은 우리 동네에 오줌통이라고 불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만 이 친구가 다방구를 하다가 똥통에 빠진 것입니다. 가슴까지 들어갔습니다.
어릴 때라 우리는 그냥 지켜보고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저 밑에 옹달샘이라는 곳에서 물을 길러왔던 오줌통 어머니가 본 거예요. 뭐 순식간에 달려오더니 아들을 들어가서 그냥 건지는 거예요. 그리고 샘터에서 '이 녀석아! 이 녀석아!' 울면서 씻기는데 그 똥 냄새가 문제가 아닙니다. 역겨움이 문제가 아니예요. 지금 어머니의 눈에는 다만 사랑하는 자식이 똥독이 오를까봐 부벼 가며, 끌어안으며 울면서 씻기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님 역시, 이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이 세상 한복판에 당신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으로 물들고 오염된 나하나를 건지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뛰어드신 것입니다. 뭐 자격을 따지지도,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달려와 십자가에서 나의 더럽고, 역겨운 냄새로 진동하는 나의 죄를 그대로 끌어안으시고, 희생 제물로 나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내가 뭔데, 도대체 나란 인간이 뭐길래, 하나님께서 외아들 독생자를 아무 조건 없이 주셨는지, 어거스틴은 어느 날 이 은혜 앞에 눈물을 쏟으며 고백합니다. "내가 이 세상의 유일한 존재라 할찌라도 주님은 나를 위해 기꺼이 당신을 주셨을 것이다"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 ‘쉬게 하리라’는 말은 안식을 말합니다. 죄로 고통받고 상처로 괴로워하는 인생, 절망 속에 주저앉은 인생에게 다가오셔서 안식을 허락하십니다.
그분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시라는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노래한 그 노래들은 지난 2000년 교회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수없이 많은 노래들의 사연들을 보면 꼭 예수 이름 때문에 복 받고 장수하고 잘되고 돈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지금 겪고 있는 고난과 역경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름과 고통의 한 복판에서 이 이름 하나 때문에 위로 받고 용기를 얻었고 힘을 얻었던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어떤 분은 병상에서 그 예수를 그 이름을 부르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도 그 이름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드립니다. 어떤 사람은 그 이름은 건축자가 내버린 돌맹이처럼 하찮게 내버렸지만 어떤 사람의 가슴속에는 그것이 어느 보물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고 귀한 보석으로 품고 살고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이 안고 있는 짐, 그 수고를 맡아 주시겠다고 여러분을 초대하신 것입니다.
Ⅲ. 그 예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2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 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여기 ‘내 멍에는 쉽다.’란 단어는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유대 땅에 가면 두 마리의 짐승이 한 멍에 아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끝까지 책임진다는 말입니다. 이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을 뿐만 아니라 예수는 우리를 끝까지 책임을 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히13:5절을 보면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 ’과연‘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never’입니다. '결코'라는 말입니다. 한번 택한 나를 언제나 보호하시고 도우시겠다는 말입니다.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도 제가 봐도 괜찮은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앞모습뿐이지, 그 삶의 옆문이나 뒷문으로 들어가 보면 어느 가정, 어느 개인 할 것 없이 예외 없이 깊은 탄식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 안에 연약함과 죄의 상처와 자기만의 안고 있는 삶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겉모양으로만 봐가지고는 그 삶을 다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누구나 앞문은 굳게 닫고 오십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졌고 남 보다 행복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그 속에 어떤 슬픔이 담겨있는지. 또 가슴 깊은 곳에 어떤 아픔의 눈물이 흐르고 있는지를 사람들의 겉모습만 봐 가지고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그렇습니다. 어떤 인생의 짐도 심지어 내가 내 힘으로 벗어 던질 수 없는 죄 짐도 그 분은 당신이 나 대신 짊어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을 우리가 믿기만 하면 이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 가운데 다가오셔서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줄로 확신합니다. 아-멘
이 은혜가 여러분 위에 항상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